|
입력 : 2025.03.17
귀룽나무
▲ 새의 혓바닥처럼 생긴 귀룽나무잎은 이른 봄부터 펼쳐져요(왼쪽 사진). 4~5월이면 흰색 꽃으로 나무 전체가 뒤덮인답니다(오른쪽 사진). /김민철 기자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무는 무엇일까요. 바로 귀룽나무입니다. 이른 봄 숲에서 다른 나무들이 이제 막 잎눈을 틔우거나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귀룽나무는 벌써 푸른 잎을 다 펼치고 부지런히 광합성을 합니다. 며칠 전 서울 남산을 가보니 역시 귀룽나무는 벌써 새 혓바닥 같은 연두색 잎사귀를 펼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이 나무 잎을 보면 농사철이 왔음을 알고 농기구를 정비했다고 합니다.
귀룽나무는 주로 계곡가나 물이 흘러 습기가 충분한 곳에서 자랍니다. 키가 10~ 15m까지 자라고 우람한 줄기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늘어뜨려 큰 우산 같은 나무 형태를 만듭니다. 이런 형태로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니 여름에 참 좋습니다. 북한산 구기동 코스를 오르다 구기계곡 삼거리에서 승가사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아주 근사한 귀룽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침 나무 아래 의자도 있어서 누구라도 그 그늘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룽나무는 4~5월에 또 한번 강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흰색 꽃들이 무더기로 핀 것이 마치 눈이 내린 것 같기도 합니다. 둥근 열매는 여름에 검게 익는데 벚나무에 달리는 버찌 비슷합니다. 귀룽나무는 벚나무 무리와 같은 속(Prunus)입니다. 귀룽나무를 금방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꽃이 달린 꽃차례 아래쪽에 특이하게도 잎이 달린다는 것입니다.
귀룽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구룡'이라는 지역에 흔한 나무라는 의미인 구룡목(九龍木)에서 왔다는 주장, 하얀 꽃이 피면 뭉게구름 같다 해서 구름나무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구름나무'라고 부릅니다. 귀룽나무의 영어 이름은 '버드체리(Bird cherry)'인데, 새들이 귀룽나무 열매를 좋아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습기만 있으면 추위는 물론 공해도 잘 견딘다고 하니 정원수로도 손색이 없는 나무입니다. 빨리 크게 자라 작은 마당엔 심기가 어렵겠지만 너른 공원 같은 곳에는 더없이 좋은 나무일 것 같습니다. 다만 가지를 꺾으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가장 늦게 잎이 나는, 가장 게으른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바로 대추나무입니다. 대추나무는 다른 대부분 나무들이 잎과 꽃을 다 피우고 난 다음인 4월 말에서 5월 초에야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5월 초까지 잎이 생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지난겨울에 나무가 죽지 않았나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옛날 부잣집에서는 게으른 나무가 있으면 하인도 게을러진다고 대추나무를 집 안에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종시 금강수목원 등 일부 수목원에서는 귀룽나무와 대추나무를 비교할 수 있게 나란히 심어 놓기도 했습니다.
김민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