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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26 03:30
카를 체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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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곡의 작곡가로 유명한 카를 체르니의 초상화. 체르니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리스트 같은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위키피디아
체르니 연습곡 30번과 40번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한번쯤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동시에 대부분의 어린이들을 인생 첫 좌절과 낙심에 빠뜨리는 '원흉'이기도 하지요. 어릴 적 빨간색이나 초록색의 체르니 악보 표지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학원에 가기도 싫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실은 체르니 연습곡이 재미없는 이유는 악보 표지에 나와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기계적 연습곡'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 것이지요. 제목처럼 지나치게 오른손 선율 위주로 쏠리는 것을 막고 양손 열 손가락을 고르게 훈련시키는 것이야말로 연습곡의 목표입니다. 그 깊은 뜻까지 짐작할 수 없는 어린 나이였으니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지요. 도대체 체르니가 누구길래 우리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했던 걸까요.
빼어난 피아니스트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카를 체르니(1791~1857)가 당대 빼어난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입니다. 베토벤의 제자였고 리스트의 스승이었다는 점이 분명한 증거이지요. 독일·오스트리아 등 중부 유럽의 명피아니스트 계보는 베토벤과 체르니, 리스트를 거쳐서 후대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실제로 20세기 초반 미국의 음악 잡지는 체르니를 '현대 피아노 테크닉의 선조(forefather)'로 꼽기도 했지요.
바흐나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체르니 역시 할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는 피아노 교사였던 '음악 가족' 출신입니다. 체르니도 세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일곱 살에는 작곡을 시작한 음악 영재였지요. 아홉 살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으로 데뷔 무대도 가졌습니다.
체르니는 열 살 때 베토벤 앞에서 베토벤의 작품인 '비창' 소나타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체르니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베토벤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공부를 마친 뒤에도 체르니는 스승 베토벤의 곁을 떠나지 않았지요. 실제로 1812년에는 빈에서 스승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도 연주했습니다. 체르니는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대부분을 외워서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동시에 체르니는 열다섯 살 때부터 제자들을 가르친 빼어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평생 독신이었던 체르니는 길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에 12시간씩 레슨을 했다고 하지요. 1819년에는 리스트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체르니는 당시 여덟 살 꼬마였던 리스트의 연주를 지켜본 뒤 "불규칙하고 단정하지 못하고 혼란스럽지만, 이 소년의 타고난 재능만큼은 놀라웠다"고 격찬했지요. 체르니는 리스트를 제자로 받아들인 뒤 무료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훗날 리스트는 자신이 작곡한 '초절 기교 연습곡'을 스승 체르니에게 헌정했고, 파리에서도 스승의 곡들을 연주해서 은혜에 보답했다고 하지요.
체르니는 연습곡의 작곡가로만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실은 피아노 소나타와 녹턴, 변주곡 같은 독주곡은 물론이고, 교향곡과 현악 4중주까지 오페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장르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작품 번호가 붙은 곡만 860여 곡이고 전체 작품은 1000여 곡에 이르지요. 그는 자신의 방대한 작품을 네 가지 기준으로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분류했습니다. 이 네 가지 기준은 학생들을 위한 쉬운 소품들, 기술적 연마를 위한 연습곡들, 음악회를 위한 화려한 연주곡들, 진지한 작품들입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쉬운 소품과 연습곡들만 기억하는 셈입니다.
'작곡 공장'이라는 비판 받기도
체르니는 세상을 떠난 뒤 오랫동안 평가절하된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평론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은 "체르니보다 더 큰 상상력의 결핍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존경받는 작곡가(체르니)가 은퇴하고 작곡을 그만둘 수 있도록 풍족한 연금이라도 지급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체르니는 제자와 조수들에게 조옮김이나 편곡을 지시한 뒤, 자신의 작품들에 녹여 넣기도 했습니다. 음악 교육에 필수적인 도제식(徒弟式) 훈련으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기계적인 '작곡 공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1824년 체르니는 음악 교육자인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품은 많이 쓴 반면 지금까지 뛰어난 작품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음악계의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솔직하게 자기 비판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체르니가 편지를 보냈던 비크는 나중에 슈만의 장인이 되지요.
재평가되는 체르니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체르니의 다른 작품들도 서서히 재평가를 받습니다. 20세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는 체르니의 피아노 변주곡을 녹음했지요. 특히 음반과 유튜브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에게 악몽의 대상이었던 체르니의 연습곡들을 교육용 목적으로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남기는 전문 연주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84)도 1970년대 일본 도이치그라모폰(DG) 음반사의 요청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체르니 연습곡들과 부르크뮐러의 연습곡들을 음반으로 녹음했지요.
이 음반을 들어보면 명인(名人)이 손을 대는 순간, 재미없던 연습곡들조차 근사한 연주곡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체르니 연습곡 30번 가운데 양손이 빠르게 교대로 이어받는 29번 연습곡에서는 양손이 연결되는 흔적조차 느낄 수 없고, 마지막 30번의 막판 질주하는 뒷심에도 연신 감탄하게 되지요.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역시 '엘리제를 위하여'처럼 친숙한 소품들을 담은 음반 '피아노 북(Piano Book)'에 체르니의 곡을 포함시켰습니다. 혹시 어릴 적에 이런 명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었다면 피아노를 더욱 열심히 연습했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더 일찍 포기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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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반 미국 음악 잡지 ‘에튀드’에서 명피아니스트의 계보를 그린 삽화. 체르니(가운데 위)를 ‘피아노 테크닉의 선조(forefather)’로 묘사하고 있지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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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체르니의 연습곡을 녹음한 음반 표지. /유니버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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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니의 피아노 곡을 연주한 음반 표지. 최근에는 체르니의 피아노 곡과 교향곡 등을 녹음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요. /토카타 클래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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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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