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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47) /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말 씀 : 요 한 복 음 14장 1절 - 3절 (신약성경 p.171)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아멘!
여러분은 요즘 어떤 근심거리가 있습니까? 살다 보면 갑자기 위기를 만납니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초기 암이라 수술하면 된다고 하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간단한 수술이라는데, 이 수술이 정말 깨끗하게 암을 잘라낼 수 있을까?
막상 열어보면 암이 더 심각한 상황이면 어떻게 하나?’ 괜찮다는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집세가 올랐는데, 마땅히 어디서 돈을 구할 수도 없고 이사할 곳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나고 보면 다 견딜만한 것들이었고, 다 잘 해결이 됐지만,
쉬운 일이이든, 힘든 일이든 막상 당하고 보면, 당황스럽고 마음에 걱정 근심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큰 근심거리는 자기가 그동안 믿고 있었던 근거가 무너지는 경우입니다.
사람마다 큰 근심거리가 있어도, 자기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는 부모가 정신적인 기둥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부모님께 달려가 상의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례차례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덕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까?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된 것 말고는 다른 어려움이 없는데도, 이미 망한 것처럼,
허탈하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만 생각하게 되고, 힘들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이 기둥입니다. 그래서 늘 직장만 믿고 큰소리쳐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직장으로부터 나가달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은 당연히 스승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많은 예수님이 있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무조건,
예수님께 말씀드리면 되었습니다. 누가 그들을 공격할 때에도 예수님이 막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큰일 났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두고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한 명이 배신을 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고, 베드로마저,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너무나 구체적으로,
말씀하셨고, 더구나 그런 모든 위기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임박한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현실로 다가온 위기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부터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그들은 근심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바로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금 근심에 빠져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버팀목이요.
삶의 목표였던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가시게 되었고, 자기들만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볼 데가 전혀 없고, 무서운 바리새파 사람들이,
공격 해와도 막아줄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시기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위로하시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 결코 믿음의 끝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기에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장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죽으심은, 전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죽으시는 것이고, 성부와,
성자 간의 약속을 이행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일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시지 않고 율법대로,
형벌하시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로 부르시는 시대가 시작됩니다.
죄가 본성이 되고, 죄가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 죄에 매여서 바르게 살아보지도 못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죄의 사슬을 다 끊고, 형벌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축복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 -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미든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 사람의 죽음과 똑같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죽음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고, 나라가 예수님을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사이에 약속에 의한 죽음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가 요구하신 죽음이요, 예수가 죄인들 대신 죽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약속이 걸린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믿음이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여서 분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들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을 믿는 자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거짓말쟁이들이고 사기꾼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특히 과학을 깊이 연구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깊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이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십자가를 믿지 않고도 선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많은데, 왜 십자가만을 주장하느냐고,
편협하다고 말하고,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어떻게 오늘을 사는 나의 죄를 사하느냐?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예수님은 거부합니다.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고,
오직 예수님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으니라.” 물론, 아들 하나님이 인자가 되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성부와 성자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드러나시지 않고 계셨던, 성자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모든 인류의 운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믿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나오는 사람만을 아들의 생명 값으로,
구원하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아멘! -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불문에 붙이십니다. 다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느냐는 것만 물으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믿는 것은 아버지를,
믿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또 나 예수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을 믿는 표식이 무엇이냐? 그것은 세례입니다. 마가복음 16:15-16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믿는,
그 사람은 그 표시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무조건 세례 받아야 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그러므로 세례는 사양할 일이 아닙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이제 그제자들은 고아처럼 버려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진리를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으시고,
사람들이 그들을 공격할 때 막아줄 보호자도 없습니다. 그게 그들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떠나시면 성령님이 오신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오히려 더 유익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걱정 근심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육신으로 오셨던 예수님이 가신 후, 대신 우리 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 오시면 육신으로 계셨던 예수님이 도우시는 것보다, 더 유익한 면이 많습니다.
오신 예수님은 육체로 계셨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두 장소에 계실 수가 없었지만,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함께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항상 성령님 곁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들을 다 깨닫지 못하고 대부분 흘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오시면 놀랍게도 옛날에 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생각나게 해주시며,
그때 깨닫지도 못했던 의미들을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큰 실망과 좌절감을 느꼈던 그들이 나중에,
성령님이 오신 뒤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렇게 좋으신 성령님이 오실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근심 하였으나,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심으로 하늘에 우리의 처소가 마련됩니다.
오늘 본문 2절 - 3절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옛날에는 귀족들이 든든한 성을 지어놓고 살았습니다. 성에는 방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어느 날 한 귀족의 아들이 친구들에게 “얘들아, 우리 아버지 집에는 방들이 아주 많아,
내가 이번 겨울방학에 너희들을 데리고 갈수 있도록 준비하고 올게.” 라고 했답니다.
그 말은, 내가 가서 방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오겠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에게,
우리 성에는 방이 많으니 친구들과 방을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오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하시면서 거처를 마련하러 간다고 하신 말씀은, 천국에 가서 너희가 살 집을 짓고,
오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가서 허락을 받고 오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순간에 아버지께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아버지, 보시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제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제 약속하신 대로 나를 믿는 죄인들을,
받아주세요.” 라고 청원하셨을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응답을 즉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는 순간,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해놓은 휘장이 찢어져서,
누구라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부활하셨을 때에, 그 허락받은 소식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기쁜 얼굴로 “샬롬!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날까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고 오직 믿음 안에 살아가도록 성령님을 보내어, 돕고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날마다 근심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모든 것을 이 세상 기준으로 보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삶의 목적과 기준이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이 부럽고, 좋은 대학 들어간 아이의 부모가 부럽고, 건강한 사람이,
부럽습니다. 모든 것이 세상의 기준입니다. 다른 것은 오직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살면서도 우리가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보다 돈이 적고, 남보다,
건강하지 않고, 남들이 갖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 근심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출세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천국에 갈,
준비 잘 해서, 천국가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가? 내가 얼마나 남들의 선환 모습을 본받으려고 하는가?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했는가? 내가 얼마나 믿음으로 고난을 잘 견디고 있는가?
내 상황을 얼마나 영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얼마나 주님 명령에 순종하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언제 세상 사람과 경쟁하려고 예수 믿었습니까?
우리는 삶의 목표가 다르고, 영적인 DNA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집, 예수님이 마련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지니까, 여기서 영원히 살고 싶지만, 우리는 잠깐 여기에 머무릅니다.
여기에 있는 것들 중에는 영원히 있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
우리 곁에 있는 것,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맡겨두신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채우려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지 맙시다. 그러면 신앙도 무너지고 근심도 더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날마다 근심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둘째로, 무한한 능력을 가진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일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 동네방네 소문내서 오라고 초청하겠지요?
예수님 말씀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열심 내겠지요? 그런데 구역예배도, 가정예배도,
우리끼리만 모이니까,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의 모임을 너무나 우습게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고, 내가 우울할 때 위로와 힘을 얻는 곳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단 두 세 명만 모여도,
내가 너희 중에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개인과도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십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역하고,
모임을 갖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참석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신 이 약속을 믿습니까?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단지 우리가 낙심하고 힘들어할 때에,
한번 찾아오셔서 상한 감정을 한번 추슬러주시고, 그 다음 떠나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항상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보호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내 곁에,
계시고 내가 성도와 함께 모이는 그 모임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아멘! - 내가 떠남으로 인해서 너희에게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면,
내가 너희를 돕지 못하게 된다면, 내가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느냐, 너희는 조금도,
근심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성령님이 너희를 도우실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굉장히 힘든 일이 앞에 있는데 대책이 없어서,
근심하십니까? 걱정하고 근심할 정도로, 그렇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혹시 세상의 기준에 따른 것 아닙니까? 나의 오늘과 내일과 영원한날까지 책임지고,
도와주실 성령님, 우리의 지각보다 뛰어난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우리의 목표, 우리의 우선순위가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이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믿고,
지금 내 곁에 와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면서 책임지겠다고 보장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그분 몸의 일부를,
그 약속의 징표를 받아먹기 때문에, 구원의 약속과 삶의 보호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을 지라도,
근심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