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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31일 / 부활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 나셨느니라!”
+ 본 문 : 누가복음 24장 1절 - 12절 (신약성경 139쪽)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역입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주일 저녁예배 때, 다른 교회에 가서 헌신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하려고 보니까, 설교 원고 절반이 사라진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가 설교준비를 잘 했습니다만,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제 서재에 와서,
설교 뒷부분을 다 찢어서 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를 길게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짧게 설교를 끝냈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 교인들은 모두 집에 돌아갔고 강사 목사님과,
당회원들, 그리고 담임목사님이 다과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장로님 한 분이 강사에게 말했습니다.
“강사 목사님! 강사 목사님 집에 강아지가 새끼 낳으면, 우리교회에 한 마리만 보내 주십시오.” “장로님이 그 강아지 직접 키우시게요?” “아니요. 우리교회 담임목사님 집에 선물하게요.”
우리 집에 설교 원고 찢어먹는 강아지 선물로 안 보내 주셔도, 오늘은 제가 정말 짧게 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 할 때는 안 웃겨도 그냥 웃어 주시는 분들은, 마음도 몸도 영혼도 건강하신 분들입니다.
우리 한국초대교회에 선교사님들이 우스개소리를 해도, 교인들이 잘 웃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다음 한 장로님이 변명삼아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묵상하면서, 경건한 신앙생활이 몸에 배여서 잘 안 웃습니다.”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그러시더랍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아직도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십시오. 그리고 웃으세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예수님의 부활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설교를 길게 하든, 짧게 하든 설교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성탄절은, 백화점이나 장사하시는 분들이 대목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백화점이나 장사꾼들로부터 외면당한 절기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떠하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 기독교의 절기 가운데 최고의 절기는 부활절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으로 변장한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사탄은 마침내 승리했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온 땅을 죽음의 저주로 덮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예배가 열납되지 않았다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을 때도 사탄은 환호했습니다.
라멕이이라는 사람이 철무기로 ‘연쇄살인’ 을 저질렀을 때에도, 사탄은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을 때에도, 사탄은 판정승을 자축하였습니다.
사탄은 이제 죽음의 권세가 온 세상을 장악했고, 세상은 저주로 충만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흐뭇했습니다. “보라! 온 땅은 죽음과 저주의 땅이 되었다.” 사탄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예수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 병든 자를 치유하고 회복시키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사망권세를 깨드리시기 시작합니다.
사탄은 예수를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와 유대의 종교권력자들과,
그리고 가롯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불어넣어,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탄은 모진 고문과 채찍에 맞은 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조롱하며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님의 보혈이 사탄의 머리를 부수어, 예수님께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성경은 이미 이 사실을 창세기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 지낸 지 3일 후, 마침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주 최대의 드라마가 연출된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봉하였던 자신의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의 돌무덤이 굴러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서도, 사망의 무덤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죽음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고, 천국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되었고, 온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 우리 기독교의 알맹이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탄생입니까? 천군천사가 노래하고 하늘의 별이 움직입니다. 동정녀 몸에서 탄생합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성탄이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교훈입니까? 놀라운 권세를 가진 말씀이지만, 복음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까? 병든 자를 고치고, 바람과 풍랑을 꾸짖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던 기적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능력입니까? 이 모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적이었지만, 기적도 복음의 핵심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오직 예수 십자가와 예수 부활입니다. 믿습니까?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요 과학자였던 토마스 헉슬리 교수는 신앙인을 비웃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키던 간호사는, 그가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세 마디를 남기고 죽었다고 증언합니다.
“아! 내가 틀렸군요. 나사렛 예수여! 당신은 죽으셨으나 부활하셨고, 오늘도 살아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을 믿습니까?
지금 조금도 의심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것을 믿는 믿음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할 때마다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이 고백을 할 때 가장 신이 납니다. 힘이 납니다. 내 영이 살아나고 설교를 듣는 심령들이 살아납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나 죽음은 확실합니다. 살아가고 있다는 말과 죽어가고 있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많을 것 같지만 그 종착점에 가보면 결국 하나, 죄의 문제요. 죽음의 문제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이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간들은 갖가지 헛된 시도들을 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시켰던, 진나라의 시황 - 진시황제는,
불노초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동방삼신산에, 동남동녀 오백 명을 보냈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진시황제가 보냈던 동남동녀들이 제주도에도 왔고, 그들이 고씨 부씨 양씨의 선조가 되었답니다.
진시황제에 버금가는 한무제 유철도, 장생불사하겠다고 숭로반에 이슬을 받아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제도, 한무제 유철이라는 황제도 다 죽었습니다. 결코 영생불사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저 이북을 포함해서 세계 도처에 영생의 꿈을 담은 “미이라” 가 있지만, 결코 부활은 없습니다.
현대과학과 의학계에서도 뇌세포와 뇌의 구조를 잘 보존하면, 다시 살려 낼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들입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세상에서, 영원히 천국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갈 영생복락을 준비할 뿐입니다.
우리는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저주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확실하고 실제적이듯, 우리 성도들에게 부활 또한 확실하고 실제적입니다.
겨우내 메마른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겨울을 지낸 앙상한 가지에서 새움이 돋아나는 것 같이,
계란에서 병아리가 깨쳐 나오듯, 자연 현상의 일부로 부활을 이해하고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설명은 못됩니다. 부활은 Life process 생명의 변화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소설처럼, 정신 속에 살아있는 부활로 이해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의 부활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돌고 돌아 다시 오는 환생이나 소생도 아닙니다.
성경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나오는 수넴 여인의 아들은, 죽었다가 엘리사의 기도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독자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살아났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도 죽었으나,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니, 아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듯 살아났습니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는 죽어 장사된 지 나흘이 되었으나,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시니, 온 몸을 베로 동인 채로,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로 살아 걸어 나왔습니다.(요11:1-44)
바울이 드로아에서 밤중까지 설교하는 중,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에 걸터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이 그 청년을 살렸습니다. 그 일을 보고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행 20:7-12)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난 놀라운 일에 대해 ‘부활’ 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눈을 떴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았고, 말도 하였다.’ ‘아이가 곧 일어났다.’
‘죽은 자가 수건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왔다.’ 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일에 대해서는, 부활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소생했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도 힘든데 그들은 두 번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다시 죽지 아니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 “사흘 만에”
장사된 지 사흘 동안 무덤에 누워 계셨다는 것은, 시체가 충분히 썩을 만큼 지난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 무덤에 묻히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복음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어 집니다.
오늘 본문 5절, 6절 말씀입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것이 바로 복음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구원은 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권세를 깨부수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무서운 지옥의 권세와,
모든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복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우리가 보았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
영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소년이 새장의 새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소년에게 “얘야 너 그 새를 어찌하려고?” 하자,
“좀 더 괴롭히다가 싫증나면 그냥 죽여 버리지요. 뭐.” “그러지 말고 그 새 내게 팔지 않겠니?”
“백 달러를 주면 팔지요.” 소년은 농담으로 말합니다. 새 한 마리를 백 달러에 살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은 백달러를 주고 그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예배 설교시간에,
그 새장을 들고 단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새장을 교인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망과 저주의 새장에 가두고 괴롭히는 마귀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셈이냐?’ 이에 마귀가 대답합니다.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 맘대로 갖고 놀다가 싫증나면 죽여 버리지요. 뭐.’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사고 싶은데 얼마면 되겠느냐?’ 물었더니, 마귀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죄인들을 사서 뭘 하시려고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배반한 존재가 아닙니까?
그래도 사시겠다면 당신의 외아들 예수의 목숨을 내어 놓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우리를 악한 사탄마귀의 손에서 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천국을 훨훨 날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게 구원입니다.”
이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말씀이 로마서 10장 9절 말씀입니다.
자막을 보며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지금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믿음으로 내가 영생을 얻어,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실하게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부활하셨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 아멘!
♡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립시다. / 박수
♥ 기 도 하 겠 습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