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따라쟁이
신동환
(옥곡초등학교장)
모처럼 운전을 했다. 운전 경력은 오래되지만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장거리를 가기는 오래만이다. 바짝 운전대에 신경을 쓰면서 달리는 길은 꽤나 구불구불하였다. 이 굽은 길도 어쩌면 우리나라의 장점이다. ‘한 시간 넘게 똑바로 곧은길을 가다보면 졸음이 오고 신경이 마비되어 사고를 유발하기 쉽다’고 미국에 살다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영천을 지나 청송으로 가는 산길은 한시(漢詩) 구절 그대로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이다. 늦가을로 접어들어 단풍은 비록 힘을 잃었으나 이월의 꽃보다 붉고 진하였다. 굽이 또 굽이 길을 오르니 인가(人家)가 나왔다. 인가는 주위가 구름과 안개로 쌓여 있어 신비감을 자아냈다. 선경이 따로 없었다. 차를 멈추고 이런 장관을 감상하고 싶은 유혹이 속도를 느리게 하였다. 뒤에 달려오던 차가 비명 같은 경적을 울린다.
정신을 차려 운전대에 힘을 주었다. 그때 차내 라디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렸다. 여의사의 이야기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기도 뭣하고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다.
그녀는 대학에 다닐 때도 앞니 없이 다녔다고 한다. 임플란트 할 형편도 그렇고 틀니도 어릴 때 일부러 부러뜨린 앞니 때문에 고정이 잘 안되어 할 수가 없었다. 바깥출입도 잘하지 않고, 미모의 세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이다. 그녀는 3학년이었는데 그 반에서 제일 예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하루는 앞니 2개가 빠진 채 학교에 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매력적이었는지 자신의 앞니도 빠져주길 기다렸지만 이놈의 앞니는 생전 빠져 주질 않는다. 하느님께 빌어도 보고, 온갖 귀신에게 소원도 해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이를 부러뜨리기로 했다. 조그마한 주먹으로 힘껏 앞니를 쥐어박았지만 주먹만 아프지 빠질 리 없다. 못을 박는 망치로 때릴까 싶었지만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밥 먹다가 숟가락으로 앞니를 자신의 있는 힘을 다해 용을 써서 때리다가 어머니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혼나기만 했다. 앞니를 때리는 이유도 말하지 못하였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 오다가 툇마루 위에 놓인 절구통을 보았다. 그녀는 작심을 하였다. '절구통에 이를 부딪혀보자.' '이제는 실패하지 말아야지.' 주위를 살폈다. 어머니가 부엌에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고 툇마루에 올랐다. 눈을 질끈 감고 절구통에 앞니를 세게 부딪쳤다. 이는 아프기만 했지 부러지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다시 한 번 이를 바짝 깨물고 잇몸에 힘을 주었다. 머리를 뒤로 한껏 젖히고 눈을 감았다. 논개가 남강에 몸을 던지듯 절구통에 온몸을 던졌다. '절구통아 깨어져라'이다. 하늘에 별이 몇 개 왔다 갔다 하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쓸어 졌다. 입 주위는 피범벅이 되었다. 집이 떠나갈 듯 엉엉 울었다. 어른들이 달려 왔다. 그녀는 드디어 앞니 3개를 부러뜨리는데 성공 하였다.
그녀는 이제 자칭 유명한 여자 치과 의사가 되었다. 자신의 부러진 앞니의 결점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치과의사가 되었고 틀니도 다른 의사 보다 훨씬 고정이 잘되고 거의 완벽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단다.
'흉내 내기'나 '부러움' 같은 것은 아이들이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아이들은 친구나 선생님, 연예인들이 모방의 대상이다. 이런 모방은 예상하지 못한 안전사고를 유발할 때도 있다.
아이들 안전사고는 우리의 예상을 초월한다. 아이들은 항상 부모님과 우리 사회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신경을 써줘야 한다. 아이들은 항상 어디로 틜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아이들의 흉내 내기나 모방, 부러움 같은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흉내 내기는 창의성의 출발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흉내 내기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최대한 살려, 이를 상상력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엉뚱한 곳에서 어른들이 생각해낼 수 없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한다. 툭툭 내 뱉는 명대사나 엉뚱한 발언들은 어른들의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생각들을 슬며시 비난한다.
어른들과 사회는 아이들이 흉내 내는 모델이다. 따라서 가정과 사회, 학교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진작 시킬, 모델로서의 역할에 유의 하여야 한다.
아이들이 쑥스러움에 숨어있지 말고 마음껏 흉내 낼 수 있게, 열린 광장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