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저는 외계인이랍니다. 하지만 무서워 마세요. 지구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외계인은 위험하지 않답니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을까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것을 다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우리들을 오징어 괴물이나 침략자로 생각하지요. 사람들이 그려 논 외계인을 보고 처음엔 우리들도 배꼽을 잡고 웃었답니다. 머리만 크고 창백한 게 웃을 줄도 모르는 유령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곧 슬퍼지더군요. 이런 너무나 많은 헛소문 때문에, 우린 더 이상 지구에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지구인은 참 많은 걸 두려워해요. 귀신, 모기, 벌레, 똥, 먼지, 세균, 동물들, 어둠, 숲, 외계인, 우주, 하느님……. 정말 모든 걸 무서워하고 더러워하더군요. 하지만 왜죠? 단지 다를 뿐인데. 아! 제발, 우리 모두는 같이 살아가는 우주인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구인의 모습으로 지구에 내려가기로 했답니다.
2. 외계인, 꽃을 심다
제가 낙산에 착륙해 목화씨를 심고 있을 때였어요. 예쁜 지구인들이 다가왔어요. 그리고 묻데요. 뭐하냐고. 뭐하냐고요? 물론 씨를 심죠. 물어봐 주는 게 너무나 좋아 목화에 대해 저는 신나게 얘기했어요. 목화가 가진 뜨거운 나라의 이야기와, 맨날 목화를 괴롭히지만 너무나 귀여운 진딧물과 나비의 애벌레들, 개미들, 그리고 모시나비 날개 같은 꽃잎이며, 아줌마 같은 솜에 대해. 한참을 말하니, 예쁜 지구인들이 빙그레 웃었어요.
저는 매일 물을 주었답니다. 가끔은 잡초도 뽑고요. 목화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자, 그 때부터 매일 새로 태어나는 잎들과도 인사를 했어요. 잎들은 먼저 나온 순서에 따라 지들끼리 형 아우 동생 다 정했어요. 이제부터 가을의 찬바람이 불고 달 같은 솜이 터질 때까지는 내내 즐거울 거예요. 목화도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안녕! 목화야.
물론 다른 나무나 풀들도 다 좋아요, 예쁜 지구인들도. 하지만 저는 지구에서 목화랑 봉선화를 더 좋아하기로 했답니다. 제 마음이 정한 거예요. 이들은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아요.
오늘도 노랑주전자로 물을 주다가 쭈그려 앉아 친구들을 보았어요. 낮달이 떴군요.
저기 또 지구의 이뿌니들이 빵이며 쭈쭈바를 먹으며 오는군요.
"목화랑 얘기해요?" "뭐라고 해요?" 제가 그냥 웃으니까, 깔깔깔 웃으며 팔짱들 끼고 가요.
알고 싶으세요? 여러분도. 목화랑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하지만 비밀이랍니다. 정 듣고 싶다면…‥.
봐요.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보세요. 눈과 귀를 가만히 열고 조용히, 가만히. 들어보세요. 아니, 눈과 귀만 아니라, 가슴을 열어야 해요. 기다려야 해요.
이제 들려요? 이들은 항상 작은 소리로 속삭인답니다. 이건 소리가 아니에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마음을 가지고 가만히 기다리세요. 그러면 차츰 트여오는 소리가 있을 겁니다. 잎들의 속삭임이 들릴 거예요. 바람의 속삭임, 햇살의 속삭임도 들릴 거예요. 나무와 풀, 나비, 벌레들 모두 말해요. 참 다정하지요. 아름다운 합창이랍니다. 지구인 여러분! 우리는 꽃과 나무와, 구름과 물과, 또 하늘과 얘기할 수 있답니다. 간단해요, 우리도 우주인이니까요.
ET 알아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맘을 손끝에 실어 인사한답니다. 그럼 손끝에서 불이 환하게 켜지지요. 사랑이 있어야 해요. 여러분이 나무와 꽃과 이야기하는 것도 이렇게 손끝으로 만나 인사하는 거랑 똑같아요. 마음을 실어야 해요.
3. 성북동의 외계인
"아… 아프구나." 삼선교 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어요.
"누구니?"
"나야, 플라타너스. 너는 내 말을 들을 수 있구나!"
"……"
"오랜만이야, 우리 말을 듣다니. 사람들은 벌써 잊었거든, 나무의 말을 더 이상 못 듣는단다. 늘 자기 말만하지. 우리들은 가로수야. 나는 162번 가로수"
"그런데 왜 울상이니?"
"내 몸을 보렴. 해마다 봄이 되면 해님은 햇살을 주지만, 사람들은 우리 팔과 몸통을 마구 잘라버린다. 보렴, 이렇게. 끔찍하고 창피하단다. 죽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우린 걸어다닐 수도 없다. 신음을 흘리며 견뎌야 해. 이곳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천지란다. 맑은 물도 흐르지 않고, 공기는 늘 시끄럽고 탁하다. 풀 한 포기 없어. 정말 죽겠다. 여기는 중환자실이야, 감옥이라구. 그래서 나는 162번으로 불린다"
외계인이 다가가 나무를 만지자, 녹슨 못의 머리가 만져졌습니다. 나무는 안이 꺼멓게 썩었으며, 거기엔 누군가 억지로 구겨 넣은 꽁초와 깡통, 빵봉지 같은 쓰레기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는구나."
나무는 갈색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너는 친구가 없니"
"아니 비둘기가 있어. 비둘기들이 간혹 찾아와 주지만 발가락과 다리가 잘려져 모두 고통받고 있단다. 사람들은 비둘기도 더럽고 추하다고 쫓아버린다. 처마에서 쫓겨난 비둘기가 내 잘린 팔뚝에 앉아 울다가곤 한다. 제발 사람들에게 말해주렴. 우릴 좀 가만히 내버려 달라고."
"그래. 하지만 나는 힘이 없단다."
외계인은 나무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나무들을 만지며 걷다보니 삼선시장에 와버렸습니다. 시장은 시금치, 고사리를 파는 할머니, 튀김을 파는 아저씨, 과일 파는 아줌마, 상인과 걸어다니는 사람들로 혼잡했습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아저씨는 누구예요? 노래를 잘 하는군요."
"나는 앉은뱅이 고무인간이란다." "그런데 왜 엎드려 있죠?"
"다리가 오그라붙어 걸어다닐 수 없기 때문이지. 이렇게 자동차 튜브로 다리를 감싸고 시장을 기어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
"… 하지만 내 노래를 즐겁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모두 피해 다니지. 짐승보듯 한단다. 몸이 망가지고 돈이 없으면 이 모양이란다. 아무튼 나보고 노래를 잘 한다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고맙다."
고무인간은 땀과 흙이 범벅이 된 얼굴로, 외계인을 올려 보았습니다. 정말 고무인간은 유치원 아이보다 작았습니다.
"아저씨는 그럼 즐거워서 노래하는 게 아니군요?"
"그렇단다. 돈 때문이지. 돈 때문에 억지로 노래한단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돈이 없으면 이렇게 거지가 될 수밖에 없어."
"아저씨도 외로워요?"
"너는 돈이 없니?"
"미안해요. 저는 돈이 없어요." 고무인간은 다시 노래를 부르며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외계인은 낙산으로 걸어갑니다.
낙산엔 500년 된 성이 있습니다. 해 지는 걸 보기 가장 좋은 장소랍니다. 낙산 가는 길은 꼬불꼬불 골목을 지나지요. 지구인들은 꼬불꼬불하게 살고 있습니다.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자니, 다리도 아프고, 맘도 꼬불꼬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때입니다. 어디서 종알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종알종알 종알종알……"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구석이군요.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누구니?"
"나는 뜯어진 책이란다. 버려졌어. 이제 아무도 나를 읽어주지 않아 혼자 읽고 있단다."
"재미있구나, 자기가 자기를 읽는 책이라니. … 나도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너는 왜 버려졌니?"
"너무 오래 되었거든, 내 몸을 보렴, 나는 한문도 많고, 세로줄로 써져 있어, 요즘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야. 책도 늙는다. 늙으면 버려진다."
"너는 아름답게 말할 수 있잖니?"
"그래, 하지만 사람들은 모양만 좋은 걸 찾아. 내 안엔 여러 나라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지만 아무도 몰라. 곱게 말려진 꽃잎 나뭇잎, 편지, 밑줄들, 메모들, … 다 사연이 있고 아름다운데. 때로 사람들은 나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한 아이가 유독 나를 아꼈어.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야, 그 아이가 떠나자,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손대지 않더라. 그 때가 그립다. 아, 정말 외로운 게 제일 끔찍하단다."
"너도 예쁜데, 참 많은 걸 알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해가 지는 걸 보러 가야겠어."
"나랑 좀더 얘기해줄 수 없니, 나를 데려가면 어떠니?" "그래."
외계인은 뜯어진 책을 쥐어들었습니다.
이런…, 길을 잃은 것 같군요. 계단을 벌써 몇 번 지났는지 모릅니다. 동네가 갑자기 조용합니다.
그런데, 아 저기, 아이 하나가 시멘트 계단에 앉아 있어요. 울고 있군요. 길을 물어볼 수 있을까요?
"안녕!" "……" "안녕! 왜 우는 거니?"
"개새끼들!" "왜 욕을 하니, 누가 너를 때렸니?" 외계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 개새끼들이야!" 아이의 눈에 모가 났군요. 단단히 성난 모양입니다.
"우리 집을 뺏기게 됐다. 나쁜 놈들이 우리보고 나가래" "왜 갑자기 그러는데?"
"여기가 재개발구역이래, 너무 못 사는 동네라 없애버리고, 잘 사는 동네로 만든다는 거야?"
"그럼 좋은 거 아니니?" "바보! 집이 있어야 좋지. 우리는 세를 산다. 세 들어 살고 돈이 없으면 새집에 들어갈 수 없는 거야. 우리 집은 300만원이다. 우리도 새들처럼 집을 잃고 떠나게 됐다."
그러고 보니, 제 앞엔 재개발구역 고시 대자보가 무섭게 붙어 있군요. 골목을 따라 벽들엔 함부로 쓴 빨간 페인트 글씨들이 가득하군요. 435-23, 435-22 …‥. 몇 집 벽은 대문 만한 글씨로 '이주' '철거 공가', 또 몇 집엔 욕들이…‥ 그리고 허물린 집, 불탄 집. 골목은 무덤같이 조용했습니다. 고양이 한마리가 기어갑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왜 지구인들은 이렇게 버리는 걸 좋아하는 걸까요. 저기 작은 화단의 채송화며, 산나리, 고추 또 늙은 감나무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거리의 고양이와 개들, 새들은. 가난한 할머니와 이 아이는. 버려진 항아리들이 반쯤 깨진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아파트는 모두 거인을 닮았습니다. 산을 가리고 하늘도 가릴 만큼.
아이가 쇠못을 벽에 그으며 멀리 사라집니다.
골목이 텅 빕니다.
무서워졌습니다.
외계인은 드디어 낙산의 성에 올랐습니다.
해가 인왕산에 채송화 만하게 피었습니다. 아니 지고 있군요.
"해님, 말해줘요. 왜 세상은 이렇게 슬프죠?"
해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해님, 말해줘요. 왜 세상은 이렇게 슬프죠?" 그러자 하늘이 온통 붉어졌습니다. 해님이 고개를 들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사랑하기 때문에 슬픈 거란다. 발 밑을 보렴. 바위들 사이에 빼곡이 핀 민들레를." 정말 민들레들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군요.
"민들레는 커다란 바위에 눌리면서도 작은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민들레는 울면서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예쁘지 않니? 그게 세상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잊고 있어. 더 이상 해가 지는 걸 보러오지도 않는다. 하늘이 말을 걸어도 바람이 말을 걸어도 들을 줄 모른다. 자기 이익에만 골몰해 근심하고 외로워한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렴. 지금 나는 떠나지만, 하늘은 남아 여전히 밤을 지킬 거야. 떠남으로 노을이 아름답게 꽃피는 거다. 울지 말렴. 이제 곧 별꽃들이 하나 둘 보일 테니까. 내일이면 다시 환히 웃으며 나도 어둠 속에서 피어난다. 안녕, 사랑하렴. 그럴수록 세상은 아름답단다."
해님이 사라졌습니다. 민들레들이 힘차게 웃으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벌써 하늘에는 홀씨 같은 샛별이 떴습니다.
4. 외계인의 저녁
서울은 참 힘들군요.
외계인은 전철을 타고 당고개로 왔습니다. 며칠전 비가 왔습니다. 저녁을 먹는데 뻐꾸기가 뻐꾹 뻐꾹 자꾸 웁니다. '오늘은 뻐꾸기에게 인사를 가야겠어.'
어둑어둑한 아카시아 숲을 지나자니, 계곡이 우렁차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외계인은 가만히 멈추어 섭니다. 계곡물 소리가 우렁우렁 외계인의 귓속으로 들어와,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합니다. 온몸으로 기운이 납니다. 한 그루 나무와 같이 외계인이 팔을 들어올립니다. 팔에는 수만 장의 잎이 펴집니다. 하늘까지 닿을 듯 하군요. 온 세상이 짙푸른 숨소리를 냅니다. 별들이 송송 터집니다.
오해입니다. 외계인은 지구인이 붙인 이름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구인과 같습니다. 꽃과 나무와 바위와 별과 하늘 … 수없이 많은 형제의 이름으로 지구인을 부릅니다. 그것은 반짝임입니다. 사람들은 알까요? 아직 알아듣지 못한다고요? 아니랍니다. 이미 알고 있답니다.
산이 깊습니다. 어디 산길로 더 걸어가 볼까요? 외계인의 가슴이 콩당콩당 뜁니다.
부록. 외계인의 생활규칙
외계인은 채식을 해요. 우주와 소통을 하려면 남을 죽이지 말아야 한답니다. 우주는 서로 통하고 있으니까요. 함부로 죽이면 얘기를 할 수 없어요. 사람은 먹는 게 곧 그 사람이 된답니다. 아프거나 슬픈 닭, 돼지를 먹으면 아프거나 슬픈 사람이 되요. 물론 콩이나 쌀, 배추 같은 친구들을 우리도 먹어요. 그건 미안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동물보다 의식이 약하고, 재생을 더 잘 해요.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하면 그들은 기꺼이 자신을 주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우린 식물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들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욕심껏 먹지 않는다면 식물을 먹는 건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랑을 먹는다고 합니다. 제가 이상한가요? 지구의 어느 나라는 모든 사람이 채식을 주로 하며 살고 있답니다. 그래도 말짱해요. 오히려 더 행복하답니다. 아무튼 우리 우주 형제단은 욕심을 위해서 잡아먹는 일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답니다. 우주 형제단이 뭐냐고요? 그건 아직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꽃과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절로 우주형제단도 알게 될 테니까요.
외계인은 지구에 살면서, 각종 보험이나, 주택청약예금 같은 것도 들지 않기로 했답니다. 지구인들은 참 이상해요. 너무 두려움이 많고 서로를 믿지 못해요.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사람 대신 돈을 믿기 시작했답니다. 사랑보다 돈이더군요. 그러자 지구는 곧 자동차보험, 교육보험, 화재보험, 생명보험, 암보험 등이 넘치기 시작했어요. 왜 이렇게 불안해할까요? 사람들은 은행에도 길들어 버렸어요. 불과 백년 전 만해도 지구인들은 서로 돕고 고통을 나눌 줄 알았지요.
서울에서는 아파트 값이 한 달에 몇 억이 오르곤 한대요. 정직하게 몇 년을 일해도 집 값을 모으기 힘들어요. 하지만 한편 또 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기 때문에 단지 앉아서 한달 사이 몇 천을 벌지요. 그래서 지구인들은 이런 투기와 도박을 무척 즐기게 되었어요. 증권을 사고, 좋은 은행상품을 찾고, 땅과 집에 투자하며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그들 말로는 돈이 돈을 낳는대요. 그걸 수식을 세워 증명하곤 하지요. 정당한 노동으로 돈을 벌면 경쟁에 처질 수밖에 없대요. 그들은 항상 가만히 앉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하지요. 로또복권이라는 게 요즘은 유행이래요. 외계인은 이렇게 돈만 믿고, 돈이 돈을 낳는 지구를 이해할 수 없답니다. 왜 사람들이 서로를 못 믿고 정직한 노동 대신 정직하지 않은 돈을 더 믿게 되었을까요, 도박적 삶에 빠졌을까요. 나쁜 일입니다.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더 많이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요. 외계인은 고개를 흔들었어요. 지구는 슬픈 곳이군요. 온통 담을 높이 세우고 문을 꼭 닫았군요. 정말 안전할 수 있을까요.
외계인은 걸어다닙니다. 간혹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한때 스쿠터를 탄 적도 있어요. 그러나 외계인은 운전면허를 갖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자동차를 타면 빠르고 음악도 들을 수 있어서 좋겠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하지만 대가도 필요하답니다. 바람과 햇살을 느낄 줄도 모르고, 때론 작은 새나 개구리, 잠자리, 나비 같은 친구들을 무참히 뭉개고 지나갑니다. 두발로 어머니인 땅을 걸으며 즐거워할 줄도 모르고, 자동차 안에 갇혀 신경질을 부리며 경적을 울리곤 하죠. 자동차가 생기면서 자연은 사람과 더 멀어졌어요. 산과 강과 들엔 온통 검은 아스팔트 그물이 놓이고, 산은 쓰레기로 넘쳐요. 지구인이 아닌 다른 존재는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단지 빠르고 편하게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망치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지구인은 아기 수준이군요. 자기 욕심밖에 모르는. 그래서 외계인은 차라리 걷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빠른 것보다 느린 게 훨 행복하답니다. 빠르다면 속도 하나밖에 못 느끼지만, 느리면 모든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외계인은 경쟁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학교는 참 이상한 곳이랍니다. 학교에서 지구인들은 머리만 커지는 이상한 게임과 경쟁에 정신이 팔려 있답니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는데 사람들은 늘 부족해 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고 소유하려고만 합니다. 마음의 눈을 닫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두통을 참아가며 머리에 지식만 가득 넣고 누가 더 많이 넣었나 겨루고 있지요. 몸도 누가 더 많이 먹나 겨루는 것처럼 뚱뚱해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아이에서 어른까지, 학교에서 회사까지, 텔레비전에서 거리까지 온통 경쟁뿐이군요. 자연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게 낳았는데, 사람들은 자연의 축복을 거부한 채, 어른이나 아이나 경쟁에 급급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