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적(최철호)과 두한(안재모)은 탐색전을 펼치며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신마적은 처음에는 유리하게 싸움을 전개하지만 두한에게 턱을 몇 번 맞고는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구경꾼들은 두한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설향(허영란)은 눈물까지 글썽인다. 다음날 병문안을 간 두한은 신마적에게 용서를 빈다. 신마적은 그 동안 함부로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며 종로를 책임져 달라고 부탁한다. 두한이 자신을 도와달라고 간곡히 말하지만 신마적은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야 하는 법이라며 고향인 평양으로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아이란(조여정)은 아버지의 노름빚 오천원 때문에 중국으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다. 애인인 문영철(장세진)은 자신이 돈을 마련하겠고 큰소리치지만 막상 거금을 구할 생각에 앞이 막막해진다. 아이란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면서 서럽게 운다. 한편 두한이 상인들에게 세금을 절반으로 줄였다는 소식을 접한 구마적(이원종)은 심기가 불편해진다. 뭉치(정소영)는 두한이 아예 세금을 바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한다. 구마적은 두한에게 가서 당장 이번달 세금을 받아오라고 명령하는데….
# 1 명월관 마당(밤)
지난 회와 연결된다. 두한과 술을 마시던 손님들과 기생들, 지배인, 그리고 김영태들과 신마적과 함께 온 학생패들까지 이 숨막히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신마적: 나하고 한 번 해보겠다? 이 신마적하고 맞장을 떠보고 싶다, 이 말이지?
두한 꼭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신마적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두한 이 아우를 원망 마십쇼. 형님께서 그런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신마적 건방진 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가 그 꼴이로구나.
두한 ...........
신마적 그 동안 어린놈이 배포가 많이 커졌구나. 나에게 다 덤벼들다니 말이다? 좋다, 해보자. 자...
신마적이 비호처럼 주먹을 날리는 것을 신호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무서운 신마적의 기세에 두한이 피하기만 할 뿐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흥분한 사람에겐 헛점이 있는 법, 어느 순간 두한의 발차기가 신마적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비틀하는 신마적.. 예상치 못한 일격에 정신이 바짝 든다.
신마적 짜식.. 제법이구나...
두한 ..............
두한이 외투를 벗어 던진다. 신마적이 이젠 마구잡이로 덤비지 않고 탐색전을 펼친다. 두한도 신마적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바짝 긴장해 있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 2 그 일각
설향은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아이란이 그런 설향을 감싸고 있다. 김영태와 부하들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김무옥 두한이가 참말로 일을 낼 모냥입니다.
김영태 상대는 천하의 신마적이야. 속단하기엔 일러.
신마적이 탐색을 마치고 다시 공격을 해온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매서운 공격이다. 두한이 그예 신마적의 강펀치에 맞고 만다. 그리고 계속되는 공격에 두한이 결국 쓰러지고 만다. 구경꾼들 속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일어난다. 그때 거지패 1,2가 대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이 휘둥그래지는 그들..
신마적 일어나.. 이제 겨우 시작이야..
두한이 다시 일어난다.
거지패1 (놀라며) 두한 대장이잖아?
거지패2 시, 신마적하고 싸움을 하다니....
신마적의 계속되는 공격을 피하며 이번엔 두한의 발차기가 연거푸 작렬한다. 이번엔 관중들이 환호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그러나 신마적은 먼지를 털며 일어난다. 대단한 맷집이다. 두한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신마적 발차기 하나는 쓸만하구나..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돼.
신마적이 몸을 날리며 두한의 허리를 태클하며 나뒹군다. 몇 바퀴 그렇게 구르다가 신마적이 두한의 상체에 올라타 목을 조른다. 두한이 안간힘을 다해 신마적의 손을 떼어놓으려고 하면서 둘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군중들이 안타깝게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김영태는 틀렸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는다.
김무옥 두한아.. 힘을 내! 여그서 지면 끝장이여!
그러나 놀랍게도 두한이 신마적의 손을 서서히 떼어내고 있다. 신마적이 당황해 힘줄이 터져라 힘을 써보지만 신마적의 손은 두한의 목에서 떨어지고, 두한이 그 손을 옆으로 제껴버리자 신마적이 그 쪽으로 나뒹군다. 두한이 재빨리 일어나 신마적의 턱을 걷어찬다. 신마적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두한이 몸을 추스르며 신마적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잠시 후 신마적이 비틀거리며 육중한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미 지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있다. 두한이 끝을 보려는 듯 기합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솟구쳐 다시금 신마적의 턱을 몇 번 강타한다. 그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신마적이 서서히 무너져 쓰러진다. 군중들이 눈앞의 상황이 믿겨지지 않는 듯 잠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배인 이겼어, 이겼다구... 저 총각이 신마적을 꺾었다구.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김무옥과 부하들이 두한에게 다가온다.
김무옥 두한아... 난 니가 해낼 줄 알았당께. 천하의 신마적을 니가 이긴 거여. 하하하..
두한 ..........
김영태 잘 싸웠네 두한이. 정말 대단했어.
두한 형님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십쇼.
김영태 암 그렇게 해야지.. 삼수야, 어서 병원으로 모시도록 해라.
삼수들이 대답하고 쓰러진 신마적에게 다가간다. 두한이 옷을 받아 입는다. 학생패들이 신마적을 따라 그곳을 나가고 있다.
두한 가시죠. 오늘은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두한이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설향이 저 만치서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다. 두한이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그러나 끝내 설향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설향은 그런 두한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다. 그 모습에서...
# 2-1 종로거리(첨가)
양코와 정진영이 거지패2와 뛰어오고 있다. 정진영과 거지패2가 앞서 뛰고 양코는 숨이 턱까지 차 올라 힘겨워하며 뒤쳐져 달려오고 있다.
정진영 분명 두한이였지? 잘못 본 건.... 아니지?
거지패2 에.. 그렇다니까요..
양코 진영아... 천천히 좀 뛰어.. 이 양코.... 숨차... 죽겠다. 아이고...
양코가 그예 뛰다말고 주저앉는다. 정진영이 멈춰 서며 돌아본다.
정진영 야 양코....!
양코 벌써.... 다 끝났을... 거야.. 빨리 가봤자... 소용없다구...
정진영 그럼 넌 여기 있어. 내가 가볼게.
양코 야, 야, 진영아...
정진영과 거지패2는 벌써 저만큼 달려가고 있다. 양코도 하는 수없이 일어나 그들 뒤를 따라가는데, 잠시 후 정진영들이 거지패1과 마주친다.
거지패1 진영이형?
정진영 (멈춰 서며) 어떻게 됐냐? 두한이는?
거지패1 이겼어요. 두한 대장이 신마적을 때려 눕혔다구요.
정진영 ..........!
거지패2 정말이야? 두한이형이 정말 이겼어?
거지패1 그렇다니까.. 진짜 끝내줬어.. 그냥 붕붕 날아다니면서..
양코 (뒤늦게 다가오며) 붕붕 날다니.. 뭐가?
정진영 두한인 지금 어디 있냐? 명월관에 아직도 있어?
거지패1 아뇨.. 부하들하고 어디론가 갔어요.
양코 (어리둥절하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응?
거지패2 두한이 대장이 신마적을 이겼대요.
양코 (놀라) 뭐, 뭐라구? 두한이가 이겨? 그게 정말이야? 응?
정진영 어쨌든 다행이다.. 많이 걱정했는데....
양코 세상에... 두한이가 신마적 형님을 이기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이야...
정진영 그만 돌아가자.. 무사한 걸 알았으니 이제 안심이다.
양코 돌아가다니? 이왕 나왔는데 두한이한테 가봐야지.. 두한이가 신마적을 이겼어. 이건 그야말로 잔치를 벌여도 허벌나게 크게 벌여야 하는 일이라구..
정진영 됐어.. 우리가 끼여들 일이 아니야.. 가자..
진영이 앞서가면 거지들이 쭈삣거리며 따라간다.
양코 진영아.. 야 진영아...? 하여간 기분 깨는 덴 뭐 있다니까.. 지금쯤 뻑적지근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을 텐데...
양코가 입맛을 다시고 따라간다.
양코 야, 같이 가..
# 3 혼마찌 일본식 음식점 외경
# 4 동 음식점 안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한쪽에서 일본 게이샤가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상하이와 시바루, 가미소리, 미우라도 합석해 있다.
하야시 하하하..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술이란 참으로 좋은 거지요. 처음 만난 사람들도 이 술만 있으면 어느새 십년지기가 되지 않습니까?
구마적 하하하.. 맞는 말이오. 사내와 계집이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듯이 사내들도 이 술을 함께 마시며 진한 우정을 쌓는 거 아니겠소?
나미꼬 꼭 사내들끼리만 그러라는 법이 있나요? 여성들도 이제는 전과 달라요.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주체로서 당당히 나서고 있다구요.
구마적 하하하.. 그런가요? 하긴 나미꼬양 같은 신여성들은 경우가 다르겠지요. 한데... 아우님은 왜 한 잔도 하지 않는가? 오야붕 앞이라고 자제하는 건가?
시바루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구마적 아니 왜?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술 한 잔쯤은 할 줄 알아야지..
하야시 본래 무도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라 주색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자기절제가 대단한 아이지요.
구마적 무도라? 그러고 보니 눈빛이 아주 좋구만..
하야시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 대회 우승자 출신이지요. 이 하야시가 삼고초려 끝에 겨우 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실력을 구경할 기회가 있으실 겝니다.
구마적 허허허. 대단한 사람을 아우로 두셨구려... 이보게 아우님, 나는 본래 싸움과 무술은 그 길이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시바루 ......(허락을 구하듯 하야시를 본다)
하야시 (끄덕이며) 괜찮으니 말해 보게.
시바루 무예든 싸움이든 진정한 도를 깨우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고 배웠습니다.
구마적 그렇다면 자네는 지금 어떠한 수준에 올라와 있지?
시바루 건방지게 여기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직까진 제 무술을 시험해 볼 만한 진정한 싸움꾼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구마적 하하하. 그래? 정말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로구만...
하야시 시바루의 단점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돌려서 할 줄을 모르지요.
구마적 어쨌든 반갑구만.. 난 자네처럼 과묵하고 솔직한 사람이 좋아. 앞으로 자주 만나세 그려..
시바루 ..........
구마적 그럼 우리끼리 한 잔 하실까요?
그들이 그렇게 건배하고 술을 마시는데.. 밖에서 하야시 부하의 소리가 들려온다.
부하 (E)오야붕, 종로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하야시 종로에서...?
구마적 ..........?
상하이 제가 나가보고 오겠습니다.
상하이가 그렇게 나간다.
하야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입니다, 형님?
구마적 급한 일이 뭐가 있겠소? 자 마십시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밝지 않다. 잠시 후 상하이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와 구마적 옆으로 다가간다.
상하이 큰형님,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겠습니다.
구마적 무슨 일인데...?
상하이 저 그게... (눈치들을 보며)........
하야시 ...........?
구마적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잖아?
상하이 신마적이... 당했답니다.
구마적 ...! 뭐, 신마적이....당해?
하야시 ...........?
구마적 잘못 안 거 아니야? 신마적이 당하다니.. 누구한테...?
상하이 그게... 김두한이랍니다.
구마적 뭐, 김두한?
하야시 .......(중얼거린다) 김두한...?
# 5 종로/어느 선술집 외경
유리문으로 두한과 영태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 6 동 안
무옥이 신이나 떠들고 있다.
김무옥 참말로 난 그때 다 끝나는 줄 알았다니께.. 신마적이 두한이를 타고 앉았을 때 말이여.. 당하고 있는 건 두한인데 아 나가 다 숨이 막히더라고..
문영철 맞아. 그 땐 정말 아찔했어. 하지만 두한이는 조선 제일이라는 신마적의 괴력을 힘으로 이겨냈어. 그래서 두한이가 더욱 대단한 거야.
김무옥 아먼.. 그 발차기는 또 어땠고? 나가 맞아봐서 알지만 그것이 어디 사람 발이냐? 오함마라고 하믄 딱 좋제.. 모르긴 해도 신마적 형님도 쪼께 고생 좀 할 것이다.
두한 ......(조용히 술을 마신다).......
김영태 이제 그만들 해라. 두한이도 그만 마시고.. 겨우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야. 앞으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김무옥 아따 성님, 걱정도 팔자십니다. 구마적도 두려워한다는 신마적을 두한이가 깼는데 아 뭣이 또 걱정이시다요?
김영태 그건 그렇지가 않아. 구마적은 신마적과 달리 조직이 있어. 구마적이 전쟁을 하자고 나선다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해.
김무옥 그것이야...
문영철 그러기 전에 두한이가 구마적에게 도전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쌍칼 형님처럼 말입니다. 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는데요.
김영태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당장은 어려워. 마땅한 명분이 없단 말이야. 구마적이 결정적인 실수를 할 때까지 일단은 기다려야 해.
두한 ...........
그때 문이 열리고 삼수들이 들어온다.
삼수 다녀왔습니다, 형님..
김영태 수고들 했다. 앉아라..
두한 신마적 형님은 어떠셔? 깨어나셨냐?
삼수 예, 하지만 일어나 돌아다니려면 한참 걸리겠던데요.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시더라구요. 헤헤..
두한 ...........
김영태 두한이, 내일쯤 문병을 가보는 게 어떻겠나?
두한 .........?
문영철 문병이라니요? 그런 인간 문병을 가서 뭐하시게요?
김영태 어찌 됐든 주먹세계의 대선배야. 문병을 가는 게 예의야.
두한 ...........
# 7 병원(밤)
신마적이 부상 부위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다. 의사 임동호가 이제 막 응급처치를 끝낸 모양이다. 학생패들이 옆에서 지키고 있다.
학생패1 상태가 어떻습니까, 선생님?
임동호 급한 대로 응급조치를 해놓았소. 워낙 상처가 심해서 완쾌가 되려면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소.
학생패1 네....
임동호 한데 말이오.... 혹 이 환자가 종로에서 신마적이라 불리우는 사람 아니오?
학생패1 예, 맞습니다.
임동호 허허 내가 잘 보았구만.. 한데 어찌 된 일이오? 조선 땅에선 상대할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싸움꾼이라 들었는데..
학생패1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들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종로2정목에 그렇게 신출귀몰한 자가 있었는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임동호 그래요?
뭔가 생각이 많다. 그때 간호사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간호사 선생님, 201호 환자 분들이 지금 퇴원을 하겠다고 하는데요.
임동호 무슨 소리야? 퇴원이라니? 허 이 사람들이 참..
그렇게 밖으로 나가면..
# 8 다른 병실
뭉치가 턱에 감긴 붕대를 스스로 풀고 있다.
제비 형님, 좀 참으시우. 그 몸으로 어딜 나가겠다는 거요?
뭉치 임마.. 신마적이 당했다잖아?
제비 신마적이 당한 거하고 형님이 퇴원하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요?
뭉치 왜 상관이 없어? 그 자식 다음 목표가 누구겠어?
제비 큰형님이 가만히 앉아서 당할 분이오. 괜히 억지 부리지 마쇼.
그때 임동호와 간호사가 들어온다.
임동호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뭉치 보면 모르슈. 다 나았으니까 퇴원하려는 거요.
임동호 아직 뼈가 붙지 않았소. 더 치료를 받아야 해요.
뭉치 됐수다. 우린 그만 나가겠소. 뭐해, 임마.. 어서 옷갈아 입어.
제비 .... 나 이거야..
뭉치가 환자복을 벗어버리자 간호사가 놀라며 외면을 한다. 임동호는 못 말리겠다는 듯 도리질을 친다. 묵묵히 옷을 갈아입는 모습에서...
# 9 우미관 외경(밤)
# 10 동 사무실
구마적은 눈을 감은 채 평양박의 보고를 듣고 있다.
평양박 야시장은 물론 종로 일대가 온통 김두한이 얘기뿐입니다. 대부분 신마적이 그렇게 된 게 속시원하다는 반응들입니다.
상하이 이봐, 평양박.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고 있는 거야? 김두한이가 잘했다는 거야, 뭐야?
평양박 얘기들이 그렇다는 거야.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김두한이가 하루저녁에 영웅이 돼버렸어.
상하이 뭐, 영웅? 위아래도 모르는 새끼가 영웅은 무슨 얼어죽을 놈에 영웅이야?
구마적 조용히들 해! (사이)....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 자식을 그렇게 풀어 놔주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
상하이 맞습니다, 형님. 뭉치가 당했을 때 바로 응징을 했어야 했습니다.
구마적 건방진 자식...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도저히....
평양박 하지만 이번 일은 신마적 형님의 잘못이 큽니다. 그 동안 신마적 형님의 행동이 도가 지나친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김두한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구마적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나더러 등이라도 두드려 주라는 거야?
평양박 좋은 쪽으로 생각하십쇼. 어차피 신마적은 큰형님께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손 안대고 코푼 격이 아니겠습니까?
구마적 어쨌든 용서 못해. 내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는 놈이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
# 11 관철여관 앞
두한과 김영태들이 여관을 향해 걷는데, 저 멀리 전봇대 밑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김무옥 저것이 누구다냐? 설향이 아니여?
두한 ...........?
설향도 두한을 보았다.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지면...
김무옥 서방님 보러 왔구먼? 고맙다는 인사하러 말이여..
김영태 먼저 들어가겠네.. 너무 멀리 가진 말게.
영태들이 안으로 들어가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설향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요. 서방님이 아니었으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두한 설향씨 때문에 싸운 게 아닙니다.
설향 알고 있습니다. 서방님께서 저처럼 하찮은 여자 때문에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두한 ...............
설향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뭐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두한 그만 돌아가요.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요. 그게 설향씨와 나를 위하는 길입니다.
설향 서방님?
두한 그럼...
두한은 외면하듯 그렇게 여관으로 들어가 버린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설향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 11-1 거지촌(밤)
양코가 비스듬히 누워 코를 후비며 중얼거리고 있다. 거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다.
양코 아깝다, 아까워.. 나 혼자라도 갔어야 하는 건데.. 하여간 진영이 자식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니까.. (입맛을 다시다가 거지들을 본다) 어이그...한심한 자식들.. (혀를 차고) 야 이 자식들아! 개지랄들 그만 떨고 일루들 좀 모여봐..
거지들 ...............
양코 너희들 오늘 명월관에서 있었던 얘기 다 들었지? 내 친구 두한이가 신마적을 패대기친 일 말이야..
거지들 네......
양코 이건 진짜 대단한 일이야.. 신마적이 누구냐? 종로바닥에서 구마적 형님 다음으로 잘 나가는 주먹 아니냐? 근데 우리 두한이가 한 방에 날려버렸다 이거야.. 응? 거 뭐냐.. 홍... 홍.. 그래 홍길동이가 따로 없었다니까.. (싸움 시늉을 하며) 그냥 주먹으로 까고, 붕 날라서 돌려 차고, 이마로 들이받고.. 이야... 하여간 진짜 끝내줬다.
거지패2 (혼잣말로) 치... 보지도 못해 놓구.
양코 ....? 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거지패2 아, 아니에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양코 (째려보다가)....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한이가 어떻게 신마적을 이길 수 있었느냐, 어떻게 하면 싸움을 잘 할 수 있느냐, 바로 이거야..
거지들 .............?
양코 궁금하지 너희들?
거지들 예..
양코 두한이가 신마적을 이길 수가 있었던 건 말이야.. 매일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저 막내만 할 때부터 지켜봐서 아는데 두한인 하루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어.
거지패2 에이.. 시시하네..
양코 (쥐어박으며) 이 새끼.. 너 자꾸 깝죽거릴 거야.
거지패2 (이마를 문지르며)....
양코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부터 우리 거지도 운동을 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 이거다.
아이1 대장... 하지만 우린 주먹패가 될 것도 아니잖아요?
양코 이런 꼴통하고는... 그래야 다른 거지 새끼들이 우리 나와바릴 넘보지 못하지. 누가 너희들 밥그릇 빼앗으면 참을 수 있어?
아이들 .......아뇨.
양코 두말 할 거 없어.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야. 모두들 일어나! 아 어서!
아이들 ............(쭈삣거리며 일어서면)
양코 싸우는데는 뭐니뭐니 해도 발차기가 제일이야. 내가 숫자를 셀 테니까 너희는 젖 먹던 힘으로 발을 내지르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넷.... 똑바로 하란 말이야, 자식들아.
그러나 아이들 좁은 장소라 서로 부딪치고 차고 완전히 엉망이다. 양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숫자를 센다. 그때 정진영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들어온다.
정진영 야밤에 뭐하는 거야?
양코 음... 왔냐?
정진영 뭐하는 거냐니까?
양코 애들 운동 좀 시키느라구. (아이들을 향해) 뭣들 해. 계속하지 않구. 자 다시.. 하나.... 둘...
정진영은 어이가 없는 듯 그저 지켜보다가 그만 실소하고 만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 12 혼마찌깡 외경(아침)
하야시 (E)종로가 시끄럽겠구만.
# 13 동 거실
하야시가 가미소리, 나미꼬와 함께 앉아 있다.
하야시 신마적이 무너진 건 일대 사건이야. 천하의 구마적이 당황할 만한 일이었어.
가미소리 김두한이라는 자에게 당했다는 게 더욱 아팠겠지요. 자신의 부하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겠습니까?
하야시 그렇겠지.. 김두한이라...?
사야꼬가 찻잔을 쟁반에 받쳐들고 와 상에 내려놓는다.
나미꼬 죄송해요, 언니.. 손 하나 까딱 안 하구 앉아만 있네요.
사야꼬 얘는 무슨.. 드세요. (그렇게 물러간다)
나미꼬 근데요, 형부. 신마적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하야시 구마적과 함께 조선 주먹계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지. 우리를 아주 싫어했어.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잘 된 일일 수도 있지.
가미소리 하지만... 구마적에게 강력한 적이 생겼다는 건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아닐런지요?
하야시 물론 그렇지.. 잘못되면 사업파트너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나미꼬 구마적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하야시 사업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변수를 다 고려해야 하는 거야. 항상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해.
나미꼬 구마적이지는 게 최악이라는 말인가요? 꼭 구마적과 사업을 해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김두한이라는 사람과 손을 잡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하야시 하하하.... 처제는 모든 게 시원시원해서 좋단 말이야. 맞는 얘기야. 구마적이든 김두한이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지. 하지만 우린 아직 김두한이라는 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거지.
나미꼬 ............
하야시 어쨌거나 심심치 않은 구경거리가 생겼어. 구마적이 이 일로 머리가 복잡하겠구만. 골치께나 썩겠어.
하야시, 잔을 들고 차맛을 음미한다.
# 14 우미관 사무실
구마적이 문 앞에서 소리치고 있다. 뭉치와 제비가 그 곳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구마적 뭐야, 너희들? 여기가 너희들 안방이야?
뭉치 .....죄송합니다, 큰형님. 자지 않고 기다리려고 했는데 깜빡 졸았습니다.
구마적 한심한 자식들.. (가서 자리에 앉는다) 잠자코 병원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여긴 왜 나왔어?
뭉치 신마적이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들이 필요하실 것 같아...
구마적 뭐가 어째?
뭉치 큰형님,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십쇼. 이번엔 실수 없이 놈을 처치해 버리겠습니다.
구마적 누가 누구를 처치해?
뭉치 자신 있습니다, 큰형님. 병원에 누워서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믿고 맡겨 주십쇼.
구마적 널 어떻게 믿어, 임마? 두한이가 너한테 당할 것 같아?
뭉치 좋은 계획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형님.
구마적 됐어. 넌 빠져.
뭉치 형님?
상하이 큰형님 말씀대로 해. 그 몸으로 뭘하겠다구 그래?
뭉치 뭐야?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야? 엉? 그런 거야?
구마적 조용히들 못해!! 이거 아주 개판이야. 그러니까 두한이 같은 놈이 선배한테 기어오르는 거 아냐?
그들 ...........
구마적 두한이는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해.
뭉치 큰형님?
구마적 닥치고 들어!
뭉치 ...........
구마적 그렇다고 그 아이를 용서하겠다는 건 아니야. 두한이는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어. 하지만 신중해야 돼. 신마적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야.
평양박 .........
구마적 어리다고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야. 싸움 실력도 그렇지만 아주 영리하고 치밀한 녀석이야. 신마적을 친 것도 미리 계획된 것일 수가 있어.
상하이 그게 무슨...? 미리 계획된 거라니요?
구마적 모르겠나? 그 아이는 지금 내게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어. 이 구마적을 노리고 말이야. 하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지. 내가 저희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데 말이야.
평양박 .......?
구마적 당분간 두한이쪽 애들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도록 해라. 어디까지 가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옹졸하게 보여서는 안돼. 어른스럽고 위엄 있게, 조직의 이름으로 반란자를 다스려야 한다 이 말이야.
# 15 병원 앞 거리
두한과 부하들이 병원을 향해 오고 있다. 그 앞에 이르면..
삼수 여기 이 병원입니다, 형님.
두한 ......(묵묵히 병원 건물을 올려다본다)....
김영태 들어가지. 마음의 준비는 됐나?
두한 예...
그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면..
# 16 동 병실 안
신마적이 붕대를 감은 채 병상에 누워있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두한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곁에 앉아 있던 학생패들이 벌떡 일어나 가로막는다.
학생패들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간다. 김영태들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신마적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두한 (조금 다가가) 몸은 좀 어떠십니까?
신마적 죽을 맛이야. 그렇게 맞아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어. 허허허.. (그러다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두한 형님?
신마적 아니야. 괜찮아... 두한이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 걸... 그러고 보면 내가 선배답지 못한 건 사실이야.. 이 곳에 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말이야..
두한 어제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신마적 하하하... 용서라니? 그 기백은 다 어디로 가고? 두한이답지 못하구만..
두한 ............
신마적 내가 잘못했지. 어젯밤 많은 생각을 했네. 그 동안 잘못한 일이 너무 많더군. 두한이한테 맞고 나서 제정신이 든 모양일세.. 허허허..
두한 ...............
신마적 사실... 변명을 하자면 그 동안 내가 개망나니처럼 군것은 세상이 싫어서였네. 온갖 수모를 견뎌내며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조국의 현실은 너무도 비참했어. 그땐 정말 절망뿐이었지..
두한 ..........?
신마적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더군. 뭔가를 때려부수지 않고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어. 한 번 그러고 나니까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춰지지가 않더구만.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말이야. 허허허..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아니, 어쩌면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두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신마적 내가 떠나면.....자네가 종로를 책임져야 하네.
두한 .....? 그게 무슨...?
신마적 구마적은 이제 늙었어. 주먹패다운 패기도 없고, 보신에만 급급한 노회한 여우가 되어버렸어. 비록 내가 형님 대접을 해주긴 했지만 구마적은 틀려먹었어. 하야시패와 손을 잡을 때 이미 그 자는 끝난 거야.
두한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떠나셔야만 되겠습니까? 여기 계시면서 이 두한이를 도와주십쇼.
신마적 아니야, 아니야.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야 하는 법이야. 나는 그만 떠나야 해.
두한 ..............
신마적 몸이 좀 괜찮아지면 바로 고향으로 갈 작정이야. 내 고향 평양으로 말이야. (사이) 두한이, 이제 모든 시선이 자네에게 쏠려있네. 그들의 바램을 져버리지 말게.
두한 명심하겠습니다.
신마적 그래, 고맙네. 갑자기 많은 말을 했더니 피곤하구만. 눈을 좀 부쳐야겠어. (누우며 눈을 감는다)
두한 ......예, 형님. 그렇게 하십쇼. 그럼 편히 쉬십시오.
신마적 눈을 감은 채 끄덕인다. 두한이 한동안 신마적을 보다가 돌아선다.
# 17 동 복도
두한이 나오자 김영태들이 다가온다. 학생패들은 안으로 들어간다.
김영태 이야기가 꽤 길어진 모양이구만.
두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가시죠.
그들 그렇게 가는데 저쪽 편에서 임동호가 다가온다. 문영철과 김무옥이 가볍게 인사를 하는데 임동호가 무심히 지나치다가 문득 돌아선다.
임동호 저기 잠깐.
두한 ....(돌아보면)....?
임동호 혹시 자네.. 김두한이 아닌가?
두한 ....예, 그렇습니다만..?
임동호 오 그랬구만.. 바로 자네였구만..
두한 절 아십니까?
임동호 최동열 군에게 귀가 닳도록 자네 얘길 들었지 조선중앙일보 최동열 기자 말이야. 내 절친한 벗일세.
두한 그러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임동호 나도 반갑네. 한데 이렇게 만나다니 조금은 안타깝구만. 자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들어서 알고 있네. 혹시, 저 병실에 있는 누워 있는 사람을 자네가 그렇게 한 것인가?
두한 ............
임동호 그랬구만.. 2정목의 주먹패라고 하기에 자네 생각을 먼저 떠올렸지.
두한 ..........
임동호 참 두한이, 그 최동열 기자 소식을 아는가?
두한 ....?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임동호 그 친구가 다니던 신문사가 결국 문을 닫았네. 일장기 사건으로 말이야.
두한 .....?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되시는 거죠?
임동호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찾겠지. 그 친군 오히려 자네 일로 근심이 많다네. 한 번쯤 찾아가 보게. 종로에 비너스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길 자주 들른다네.
두한 예...
임동호 이거 공연히 바쁜 사람 붙들고 사설이 길었구만. 그럼 다음에 보세나.
임동호가 그렇게 돌아서 병실로 들어간다. 두한은 생각이 많다. 그 모습에서..
# 18 최동열의 본가 대문
커다란 대문이 열리면 최동열 안으로 들어선다. 대 장원이다. 문을 열어준 하인이 땅바닥에 머리가 닿을 듯 고개를 숙인다.
하인 어서 오십쇼, 서방님. 정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요.
최동열 오랜만일세. 아버님 안에 계시는가?
하인 그러믄입쇼. 서방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요. 자 어서 안으로 드십쇼. 저쪽으로....
그들 그렇게 향하면...
# 19 동 방안
최동열이 그 아버지와 마주해 앉아 있다.
최동열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동열부 애비가 자식을 보는데 굳이 이유가 필요하단 말이냐?
최동열 ...........
동열부 소식 들었다. 네가 다니던 신문사가 어리석은 짓을 하다가 문을 닫았다지?
최동열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동열부 이제 어쩔 셈이냐? 허구헌날 허송 세월을 할 수는 없는 일이겠고..
최동열 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겠습니다.
동열부 이번엔 애비 말을 따르거라. 총독부에 선을 대줄 테니 정계로 진출을 해보거라.
최동열 ...? 제가 그렇게 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동열부 그렇게 신문장이 노릇이 하고 싶다면 경성일보나 매일신보로 들어가던지?
최동열 차라리 오지 않은 것만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일어나려 하면)
동열부 앉거라. (언성을 높이며) 앉지 못해!
최동열 ...........
동열부 니가 그렇게 존경한다는 김좌진이처럼 되고 싶은 게냐? 영웅이 되고 싶어?
최동열 그 분은 조국의 투혼이며 양심이셨습니다.
동열부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은 죽었어. 그것도 먼 타국 땅에서 비참하게 객사를 했단 말이다. 겨우 그런 자를 동경한단 말이냐?
최동열 잊으셨습니까? 아버님은 그 분께 목숨을 구걸하셨습니다.
동열부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어. 더럽지만 그래도 살아 남았단 말이다.
최동열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동열부 .....불효 막심한 놈 같으니라구.
최동열 ...............
동열부 너는 이 아비의 마음을 모른다. 나라고 일본이 좋아서 이러는 줄 아느냐?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 김좌진은 그렇게 명예롭게 죽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일족들과 자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으냐?
최동열 ...............
동열부 아무리 세상이 바뀌더라도 그들은 결국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 넌 그걸 알아야 해. 너는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들이다.
최동열 가겠습니다. (일어선다)
동열부 동열아....
최동열 안녕히 계십시오. 앞으로 그런 일로는 절 찾지 마십시오. 그럼..
동열부 네, 이놈.. 게 섰지 못하겠느냐? 이놈, 동열아... 아비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놈, 동열아... 동열아..
그러나 최동열은 이미 방문을 나서고 있다. 동열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도리질을 친다.
# 19-1 종로서 고등계
미와가 천천히 왔다갔다하면서 중얼거린다.
미와 그 공산당 놈들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 몇 번 우리에게 덜미를 잡히더니만 이젠 아주 지능적이 됐어.. 아주 교묘하게 신분을 위장하고 있단 말이야... 이봐, 오무라..
오무라 (책상에서 일어나며) 하이 경부님..
미와 공산당 대건 그룹의 총책이 이재유라고 했나?
오무라 예, 그렇습니다, 경부님..
미와 이재유라 이재유... 박헌영이를 잡아 가둬놨더니 이번엔 이재유가 설친단 말이지? 이거야...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구만.. 끝이 없어.. 그리고 또 누가 있지?
오무라 김삼룡과 이현상, 정택식 등이 핵심급 인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미와 음... 다들 알만한 자들이구만.. 이현상이만 해도 아주 오래 전에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잡혀와 나와 만난 적이 있었지.. 그때 정신이 번쩍 나도록 혼을 좀 내줬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오무라 우리 종로서 외에도 비밀 고등경찰과 헌병정보부, 그리고 경방단들이 뒤를 쫓고 있으니 곧 일망타진 될 것입니다.
미와 그래야지, 암..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놈들도 나름대로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까.. (생각하다가) 그건 그렇고.. 그 벌떼같은 기자들이 안보이니까 우리 사무실이 아주 조용하구만.. 마치 절간에 온 기분이야.. 아니 그런가? 하하하..
문달영 그렇습니다, 경부님.. 이제 뭘 감추려고 쉬쉬하지 않아도 되고... 하여간 요즘 같기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서 그 최동열이는 뭘하고 있을까요? 안보이니까 궁금한데요.
미와 그건 나도 그래.. 참으로 딱하게 되었어.. 이제 영락없는 실업자 신세가 아닌가? 응? 하하하하...
미와와 형사들의 웃음에서...
# 20 카페 비너스 외경
# 21 동 카페 안
최동열이 어두운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김이수가 카운터에서 나와 앞자리에 털썩 앉는다.
김이수 실직자 생활이 적잖이 괴로운 모양이구만.. 초저녁부터 술을 찾는 걸 보면 말이야?
최동열 (씁쓸한 미소).... 그렇게 보이는가?
김이수 암, 채만식의 소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최동열 .......채만식의 소설..?
김이수 자넨 기자라면서 그런 소설도 안 읽었단 말인가? '레디메이드 인생' 이라는 제목이야. 실직한 조선 인텔리들의 일상을 아주 풍자적으로 묘사한 소설일세. 그 소설의 주인공이 자네 같다는 얘기야.
최동열 나도 읽기는 했네만.. 설마 내가 그렇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김이수 농담일세.. 하하하.. 술이나 한 잔 주게.
최동열 (술을 따르고는) 실은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들렀네.
김이수 의견이라니? 나 같은 술집 주인이 뭘 안다구? 어쨌거나 들어나보세.
최동열 잡지를 하나 내볼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김이수 잡지? 허허허. 며칠 유유자적한다 했더니 결국 생각해 낸 게 잡지였구만. 솔직하게 말해 보게. 나한테 필요한 게 의견인가 아니면 자금인가?
최동열 (미소) 도와주겠나?
김이수 더 말하면 입만 아프지. 어떻게든 변통을 해봄세.
최동열 그럴 줄 알았네. 고맙네.
김이수 하지만 큰 기대는 말아. 내 형편도 그리 좋은 건 아니거든..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임동호가 들어온다.
김이수 어, 돌팔이 의사 선생. 어서 오시게.
임동호 허허 이거야 원.. 손님을 이렇게 대하니 장사가 잘될 리가 없지.
김이수 그러는 자네는 요즘 장사가 잘 돼서 좋겠구만. 이번엔 신마적이란 사람이 입원을 했다지?
임동호 하 이렇다니까.. 신성한 의술을 장사라고 하다니.. 쯧쯧..
최동열 (미소) 어서 앉게.
임동호 동열이도 와 있었구만.. 마침 잘 됐네. 자네한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말이야..
최동열 .........?
임동호 오늘 병원에서 두한이를 우연히 만났네.
최동열 두한이를?
임동호 그래.. 헌데 말이야..허허 이거 참, 이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발생을 했다네.
최동열 무슨 말인가? 기가 막힌 일이라니..?
임동호 종로에는 지금 그 사건으로 시끌벅적 하다네. 일대 이변이 일어났단 말일세.
최동열 무슨 얘기인데 그렇게 장황한가? 어서 말해 보게.
임동호 두한이라는 아이가 이 종로 바닥의 밤의 제왕으로 떠오르고 있다네.
최동열 밤의 제왕...?
임동호 (끄덕이며) 두한이가 신마적이라는 유명한 주먹을 우리 병원에 데려왔다네. 때려 눕혔단 말일세. 신마적을 말이야. 신마적을...
최동열 ...........!
김이수 아니 그럼 신마적을 때려눕힌 게 두한이란 말인가?
임동호 그래.. 헌데 동열이 자넨 별로 놀랍지도 않은가 보구만..
최동열 신마적을 눕혔다...? 두한이가...? (한숨) 어쩌자고 두한이가 자꾸 그런 일에 휘말려 드는지 모르겠네.. 그래서는 안 되는 아이인데..
김이수 하늘이 다 꺼지겠네, 이 사람아. 아무튼 종로는 지금 난리일세. 난리야.
최동열 두한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 삼청동 어르신들을 앞으로 무슨 낯으로 뵐 것인지... 두한이가 그렇게 된 사실을 아시면 참으로 실망이 크실 터인데...
최동열은 그저 한숨뿐이다.
# 22 삼청동 외경(밤)
# 23 동 안
조모가 놀라며 되묻고 있다.
조모 신문사가 문을 닫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오씨 최기자님께 부탁을 하면 두한이 소식을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신문사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조모 그래? 허 이런... 갑자기 신문사가 왜 문을 닫았을꼬...?
오씨 왜놈들이 무슨 농간을 부린 것이겠지요. 조선 사람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으려구요.
조모 (끄덕이며) 그래, 네 말이 틀리지 않을 게다. 사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런 신문이 나온 것도 용한 게지..
오씨 최기자님이 걱정입니다. 졸지에 일터를 잃게 되었으니...
조모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더냐? 무슨 일을 하든 기개를 잃지 않고 잘 해낼 게다. (사이) ....헌데, 두한이 일을 알아보려고 했다고 했느냐?
오씨 예...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 최기자님의 그런 사정도 모르고 제가 경솔한 짓을 할 뻔했습니다.
조모 네 말이 맞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이 많을 터인데 우리까지 귀찮은 부탁을 해서야 되겠느냐? 두한이 일은 조금 더 기다려 보자꾸나.. 언젠가 소식이 있겠지...
조모의 그 한숨에서 디졸브 되면...
# 24 두한의 사무실 외경(낮)
김영태 (E)그게 무슨 소린가? 세금을 반으로 낮추라니?
# 25 동 사무실
김영태가 놀라서 되묻고 있다. 다들 모였는데 문영철만 보이지 않는다.
김영태 이보게 두한이, 우리는 우미관패에 비해 숫적으로도 열세이고 자금력도 형편없이 부족한 실정이야.
두한 상인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는 겁니다. 세금을 낮춰도 충분히 꾸려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십쇼.
김영태 어떻게 말인가?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두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갖게 할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놀고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김영태 좋은 생각이기는 하나 건달이 직업을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두한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죠. 그리고 제가 듣기로 매달 구마적에게 보내는 세금이 엄청나더군요. 앞으로는 바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갖다줄 이유가 없습니다.
김영태 .....(놀라 보다가)...? 음.. 그거였구만.. 하지만 말일세, 세금을 받치지 않으면 그 땐 정말 구마적이 가만있지 않을 걸세.
두한 어차피 바라던 바가 아니었습니까?
김영태 당분간은 이런 조용한 상태가 좋네. 굳이 구마적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문제는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빌미를 주는 거야. 우리를 칠 빌미 말이야.
두한 그 일은 이미 각오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하시죠. (모두에게) 너희들도 잘 알아들었지?
김무옥 잉 알았구만.. 영태 형님, 너무 걱정마씨요. 우리 두한이 오야붕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는 일이겄소?
그때 노크 소리 들려온다.
김무옥 들어와라.
문이 열리며 초췌한 모습의 번개가 안으로 들어온다. 의외다. 두한과 김무옥들 모두가 의아한 듯 본다.
김무옥 이게 누구여? 니.... 번개 아니여?
번개 (힘없이) 헤헤헤. 형님들... 그 동안 안녕들 하셨습니까?
두한 어 그래, 오랜만이구나. 어서 와라.
김무옥 근디 여긴 웬일이여?
번개 예.. 저기 실은... (한숨)....
김무옥 음마.. 땅 꺼지겄다.. 니 참말로 번개 맞냐? 아 왜 이렇게 풀이 죽었어? 누가 니 불알 돌라가기라도 혔냐?
번개 두한이 형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나 드릴까 해서요.
김무옥 잉?
두한 마지막... 인사라니....? 너 무슨 일 있구나? 그렇지?
번개 예.....이제 이 경성 땅을 뜰려구요. 얼굴이 다 팔려서 더이상 쓰리짓도 못해먹겠고... 저도 이제 지쳤어요.
모두들 ..............?
번개 근데 참, 두한이 형님, 지난번에 명월관에서 신마적을 쓰러뜨리셨다면서요? 이야... 정말 대단하시네요.. 싸움을 잘하시는 건 알았지만 설마...
두한 (생각하다가) 번개..
번개 예, 형님.
두한 너..... 우리와 함께 있자.
번개 예?
두한 얼마 전에 니가 순사들한테 쫓기는 걸 봤어. 어차피 다른 데 가더라도 또 그 모양일 거 아니야?
번개 그야.... 배운 게 그것뿐인데 어쩌겠습니까?
두한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번개 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눈치보며) 정말 그래도....될까요..?
김무옥 오야붕이 허락하면 그만이지 우리 눈치 볼 거 읎어. 안 그렇습니까, 영태 형님?
김영태 ......하지만 또 그 버릇이 나오면 용서할 수 없어. 약속할 수 있나?
번개 아이구 그럼요. 헤헤헤. 이제 이 번개도 진짜 주먹패가 되는 겁니까? 이야... 잘 부탁드립니다, 무옥이 형님, 그리고 다른 형님들두요.
김무옥 그려.. 열심히 혀.
두한 (미소)......
번개 저 근데... 영철이 형님은 안 보이시네요? 어디 가셨나요?
두한 그래 참, 영철인 어떻게 된 거야? 왜 지금까지 안 보이는 거지?
김무옥 잉, 여, 영철이? (하다가) 긍게.. 그것이.. 어젯밤에 아이란이가 찾아왔었는디 말이여..
두한 아이란이?
김영태 그럼 어제 나가서 여지껏 안 돌아왔단 말이야? 이런 한심한 녀석을 보았나?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김무옥 아무래도 아이란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여라우.
두한 일이라니..?
김무옥 글씨 고것은 나두 잘 모르고.. 암튼 댕겨온다면서 나가는디 영철이 갸 얼굴이 똥씹는 표정이더라고..
두한 그래?
# 26 권번/어느 방
아이란이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다. 간밤에 얼마나 울었던지 눈시울이 퉁퉁 불어 있다. 그런 아이란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린다.
문영철 그만 울어. 운다고 일이 해결돼?
아이란 ...........
문영철 젠장.. 도대체 니 아부지는 어떻게 된 사람이냐? 기생으로 보낸 것두 모자라서 이젠 딸을 팔아먹기까지 한단 말이야.
아이란 ....그만 돌아가요. 바쁘다고 했잖아요.
문영철 어떻게 하든 그 돈을 마련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이란 틀렸어요. 지금 당장 오천원이란 거금을 무슨 수로 만들어내요.
문영철 그럼 어쩌자는 거야? 아버지 노름빚 때문에 그 일본 고리대금업자 놈이 하자는 대로하겠다는 거야? 뙤놈들한테 몸을 팔러 갈 거냐구? 만신창이가 돼서 인생 종치고 싶어?
아이란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문영철 말 같지 않은 소리 그만해. 그 쪽발이 새끼한테 협박을 해서라도 막아 볼 테니까 염려하지마.
아이란 큰 일 날 소리하지 말아요. 관공서에 경찰까지 끼고 그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영철씨 같은 건달이 넘볼 상대가 아니라구요.
문영철 내가 알아서 한다는 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에이씨..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이란은 더욱 소리내어 운다.
# 27 시장통
김무옥이 어느 가게에서 나오고 있다. 야시장에서 세금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부하들이 지켜서 있고 가게 주인이 지폐를 손에 든 채로 문 앞까지 따라나온다.
가게 주인 정말 고마우이. 자네들 오야지한테 꼭 고맙다고 전하게.
김무옥 아따 알았당게 그려요.
그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고 다른 가게로 들어간다. 그 고깃집이다.
# 28 시장통 그 고깃집
이들이 들어서며 인사를 한다.
김무옥 안녕하신게라우? 또 들렸지라우? 장사 잘되시는 게라우?
주인 어.. 무옥이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세금 내는 날이구먼..? (금고에서 돈을 꺼내 건네며) 자 여기 있네..
김무옥 고맙습니다요잉.. 근디...
돈을 세고는 지폐의 반을 도로 돌려준다.
주인 아니 왜? 맞게 줬을 텐데?
김무옥 이참부터 세금을 딱 잘라 반틈만 받으라는 우리 오야붕의 지시가 있었지라우.
주인 그래? 두한이 오야지가 말인가? 그것 참... 올려 받지는 못할망정 내리는 건 또 뭔가?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김무옥 헤헤헤. 아저씨 같은 분이 잘 되야 우리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지라우.
주인 허허허. 어쨌거나 고맙네. 이 공돈으로 손주놈 옷이라도 한 벌 해 입혀야겠어.
김무옥 그럼 수고허씨요.
김무옥들이 그 가게에서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모자를 푹 눌러 쓴 어떤 사내가 들어온다.
주인 어서 오십쇼.
사내1 저 말씀 좀 묻겠는데요. 방금 나간 사람들 말입니다.
주인 ........?
# 29 종로 거리(해질 녘)
네온싸인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뭉치와 제비가 오고 있다. 그리고 고깃집의 그 사내1이 따라붙고 있다.
상하이 하야시 오야붕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종로에 낼 영업점 계약을 마쳤다구요. 개업 날짜가 정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습니다.
구마적 일사천리구만.. 개업을 하게 되면 그 곳에 쓸만한 애들로 몇 붙이도록 해. 너희들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신경 좀 쓰구.
그들 예, 형님.
그때 , 뭉치가 그 쪽으로 다가온다.
구마적 좀 쉬라고 했더니 왜 기어 나왔어?
뭉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형님.
구마적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뭉치 야시장에 심어놓은 애들한테 이상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두한이가 상인들한테 걷는 세금을 갑자기 반으로 줄였답니다.
구마적: .....? 세금을 줄여?
상하이: 그 자식들 머리가 돈 거 아냐? 어디서 돈벼락이라도 맞았대?
구마적: .....세금을 줄였다? 그것도 절반씩이나...?
평양박: 상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뭉치: 하지만 두한이의 나와바리에서 걷어들이는 시금의 3할은 우리에게 상납하고 있어. 그러면 그 얘들한테 남는 게 없잖아?
상하이: 그렇다면 뭐야? 우리한테도 절반만 가져오겠다는 거야?
뭉치: 아니지.. 아예 바치지 않겠다는 뜻이지.
구마적: 이 자식들... 내 인내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고 싶다, 이건데...
모두들: ..........?
구마적: 이봐 상하이.
상하이: 예, 큰형님.
구마적: 두한이한테 다녀와야겠다. 가서 책임지고 이번 달 세금을 받아와.
상하이: 예, 지금 말입니까?
구마적 그래. 애들 붙이지 말고 너 혼자 다녀와.
상하이 예..... 알겠습니다.
상하이가 일어나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간다. 구마적은 여전히 생각이 많다.
뭉치: 헛수고하시는 겁니다, 큰형님. 순순히 세금을 바칠 자식들이 아닙니다.
구마적: 나도 알아.
뭉치: 예? 그런데 왜..?
구마적:맹수를 잡으려면 덫도 놓고 몰이도 해야 하는 거야. 단숨에 잡겠다고 나서면 이쪽이 몰리는 수가 있지. 하지만 다 걸려들었어. 이제 숨통을 끊어놓을 일만 남은 거야. 더는 봐줄 수가 없어. 두한이 이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