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영사
존경하는 선배님, 그리고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오늘 저희 36회가 주최하는 제17차 총동창회에 공사 간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신 것을 동기생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히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고향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힘을 얻곤 하는 경향 각지의 동문님들을 뵈니 더욱 반가운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이제 이런 자리가 아니면 고향 사람 만나기조차도 어려운 낯설어버린 고향땅과 모교에서 즐거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참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일은 모교가 개교된 지 서른여섯 번째로 입학하여 교문을 나선 지 서른 여섯째만인 올해에서야 저희들 6학년 때의 은사님이신 류인덕 선생님과 조윤제 선생님을 모시게 된 것입니다. 보다 정중하고 깍듯하게 모시지 못하는 제자들을 널리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젊음을 다 바치신 이 교정에서 저희 동문님들이랑 함께 어울려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저희 동기생들은 비극의 6.25를 전후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다른 기수의 동기생들보다 적은 95명입니다. 2학년 때는 사라호 태풍을 만났고, 3학년 때는 4.19를 만났으며, 4학년 때는 5.16을 맞았습니다. 역사의 변화를 체험하며 온통 ‘재건’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나무도 심고, 토끼도 기르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 어린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던 선생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보리 이삭줍기와 퇴비 모으기, 아카시아 씨앗 모으기, 파리잡기와 쥐꼬리 모으기, 솔방울 줍기와 난롯불 피우기 등 교실 안 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얀 가루를 입가에 묻혀가며 먹던 전지분유며, 구수하게 풍겨오던 강냉이죽도 그 시절엔 귀한 먹거리였지요. 5일마다 돌아오던 호계장날 우리들의 군침을 흘리게 했던 노릇한 풀빵이며, 양손에 잡고 고무공 차던 흔틀잽이 고무신도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의 언덕 너머에서 가끔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 36회 동기생들은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나름대로 힘을 모았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각 지역으로 흩어졌던 친구들이 애를 썼지만 좀은 부족하고 불편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널리 이해해 주십시오. 몇 해 차이로 함께 학교를 다녔던 선후배님을 그 시절엔 모두 알고 지냈지만 세월의 강을 여러 번 건너다보니 혹 낯설기도 하군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와 등도 치고 악수도 나누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저희 동기생들은 더욱 단합하여 농소인이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일 년 후에 만날 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좋은 소식으로 뵙기를 기약하며 이만 환영사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 1999. 8. 15. ’99. 총동창회 대회기 제36회 동기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