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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집 「달궁 아리랑(2010)」과 「빨치산」(2012)에 대한 변명
- 지리산, 현대사의 아픈 상처 씻기
송수권/ 순천대명예(강의) 교수/ 한국풍류문화연구소장
1. 나비들의폭풍
6.15남북공동성명 10주년을 목전에두고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결론이 어찌 날지 아직 장담하긴 이르지만 적어도 이 사건이 한반도 남쪽 주민들의 ‘느슨해진’ 분단체제 감각에 돌연 찬물을 끼얹은 것만은 사실이다. 사건의 전말을 해명하는 일은 모든 정치∙경제 이해당사자들의 실리를 떠나 객관적으로 이뤄져야겠지만 최근 성사된 북중회담의 여파가 보여주듯 ‘한미공조’를 중심으로 한 대북 강경노선이 어느모로 보나 패착에 불과했음은 분명해졌다. 그것은 하반도 북쪽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의 입장에서조차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동아시아 지역에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는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또는 동아시아 긴장완화의 새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도 남북 당사자들이 중심을 회복하되 각자의 의식 속에서 중국과 미국이라는 양쪽 저울추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시급해졌다.
자칫 그 출현 자체가 생경하게 비칠 수도 있었을 송수권의 빨치산 서사시 「달궁아리랑」이 남다른 감회를 자아낼 수 있었던 것도 분단체제 극복의 향방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산식에 휘말린 최근의 한반도 정세 때문일 것이다. 이 서사시집의 등장에는 우선 두 가지 물음이 갈마들고 있다. 왜 빨치산인가. 그리고 왜 서사시인가. 1980년대라면 모를까 지리산 남부군南部軍 후일담이 그 자체로 정치적, 미학적 감응력을 지니긴 어려워진 시대가 아닌가. 게다가 장장 27편 700매 분량에 달하는 서사시라니. 무엇이 칠순의 노시인을 책상 앞으로 이끌었을까. 이 작품의 집필과 발표는 6.15남북공동성명 10주년을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 그러나 물리적 시의성에 기댄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작품의 시인 화자는 “장전항 풍악호에서 동해안 물길 따라오며/ 도깨비 같은 두 사내 악수하는 것”을 보고 감격했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도깨비” 비유가 암시하고 잇는 것처럼 이 ‘정치적 기념비’의 비육체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것은 곧 “새벽종이 울리고/ 부리망 쓰고 밭 갈고/ 오갈병 든 시인들/ 서정시 몇 닢으로 알사탕 먹이며/ 휴전선을 넘나드는”(이상,161면)에서 알 수 있듯 6.15 현장에 바쳐진 ‘서정시’, 이른바 ‘서푼짜리’ 기념시의 불모성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진다. “하초下焦나 튼실하면/ 팔도장승이나 뽑아다/ 불땀을 놓는 강쇠/ 잡놈이나 되지/ 시인은 무슨?”(162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썼다. 왜? “새로운 인간들이 오고”있기 때문이다. “아니, 새로운 아침이 오고”(162면)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은 인간’ 또는 ‘새로운 아침’에 대한 기대가 현실정치의 선택지로 주어진 남북 혹은 좌우를 승계하는 방식이 아닌 ‘제3의 길’을 향해 있음은 더 말할 나위없다. 실제로 “우로 가면 우익, 좌로 가면 좌익/(....)/ 앞서 가면 선동, 뒷서 가면 반동”(160면)에서 보듯 이데올로기의 무상함이나 상대성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자못 선명하다. 가령 「서시」의 “그 무쇠솥 뚜껑 위에// 산마루 태성 성城돌을 베고 누운/ 잠든 얼굴 위에// 지리산에 눈 내린다”(7면)와 같은 종결부만 해도 흰 눈에 덮여 모든 인간적 구별이 무화된 ‘세계=지리산’이라는 등식을 명확히 함으로써 그의 서사시 작업이 이데올로기 대립을 지양한 지점에서 출발한 ‘지우고 다시 쓰기’와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을 지양한 ‘새로운 인간’의 출현은 실상 기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인간’ 또는 ‘새로운 아침’이 탈이념 시대에 새롭게 태어날 아이들일 수밖에 없음은 요소요소에서 작품 전체의 리듬을 조성하고있는 ‘단동치기檀童治基’ 노래가 암시저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상 시상 달궁/ 섬마 섬마 달궁” “잼 잼 잼 잼 달궁/ 도리 도리 달궁”과 같은 단동치기 노래는 “세상에 태어났으니세상 구경 다하고/ 본분을 찾아/ 하늘을 섬기는 노래/ 세상에 태어났으니 걸음마로/ 똑바로 서라는 노래”(16면)이다. 새 세상의 새 주인을 기다리는 이 종교적 비원은 빨치산 길례의 어미인 ‘보쌈 에미’가 ‘마고할미’로 불리는 데서도 알 수 있듯 한반도 고대사의 황금시대에서 출현한 대종교大倧敎 계열 문헌(「천부경天符經」등)에 근거를 둔 이 모티프들은 물론 사료적으로 허황하다. 그러나 문학 상상력의 차원에조차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유하느냐, 그러니까 어떻게 오늘날의 문제의식으로 되살리느냐다.
그 핵심은 “꾸다 둔 꿈”(56면)의 회복에 있다. 그 꿈은 ‘자치의 꿈’이다. 「달궁아리랑」은 지리산 달궁 마을을 “해방특구, 민주마을”그러니까 일종의 코뮌commune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빨치산 이현상李鉉相1906-1953 부대가 “달뜨기 능선의 달을 바라보며” 취기에 젖어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고대 부족사회의 제의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달궁 마을의 ‘망실忘失유격대’ 코민이 20세기 현실사회주의가 아니라 모계제에 기반한 생태자치사회 모델을 따르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리산을 마고할미 산으로 제시한 「달궁아리랑∙1」과 함께「달궁아리랑∙16」은 그 면면한 반란의 역사를 5.18광주시민군과 동학농민군, 백제유민으로까지 소급해 보여주고 있다. 「변강쇠타령」의 역동적 리듬에 실린 대지적 활력은 「달궁아리랑16」을 이 시집의 백미로 들어올리기에 충분하다. 보쌈 에미의 손자이자 “위대한 남부군의 혁명군 아들”(17면) 윤판이가 행방불명의 중음자中陰者로 떠돌 수밖에 없는 것도 부자승계의 트랙 바깥에서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 설정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아침”은 이 트랙 바깥에서 열릴 것이며 “새로운 인간”도 이 트랙 바깥에서 태어날 것이란 게 「달궁아리랑」이 고지하고있는 전망의 핵심이다. “단 한 번의 왕동설王動說이나/ 지기쇠왕설地氣衰王說에도 물들지않은 산/ 언제나 민중의 세력들이 마지막까지/ 그 치마폭에 매달리는 산”(39면)에서 문득 되살아오는 역사의 새 아침 말이다.
그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사시 또는 광의의 장시 창작이 한동안 드물었다. 더구나 서사와 서정의 길항을 독자적으로 조직한 성취는 더욱 뜸했다. 가까운 선례를 찾자면 황지우의 시극 「오월의 신부」(2000)가 겨우 있을 뿐이다. 그런데 5.18 당시의 전남도청 시민군을 하나의 해방 자치공동체이자 최후의 코뮌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오월의 신부」와 「달궁 아리랑」은 통한다. 이들이 작품 속으로 호출해낸 역사의 새 주인들이 소위말하는 하위자, 중음자들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이들은 미처 소설에 이르지 못한 시이거나 시에 이르지 못한 소설이 아닌 제3의 길, 혹은 그 길로 가는 이정표가 아닐까.
“오대산 택백산지구, 소백산 지리산지구/ 빨치산 5만” 중음자들의 화신인 ‘나비떼’를 새로 날아오르게 하는 문학, 그리고 그런 문학이 꿈꾸는 세상. “꿈꾸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듯이 깊은 잠”이 든 “이 나비들 잠깨어 나래치면” 정말 “베이징의 어두운 하늘에 눈이 내리고/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서 다시 태풍이/ 일어날”(이상,220면) 수도 있을 것이다.
길노래 부르며 노고 에미집
달궁 가자
붉은 바탕 양쪽 날개에 뜬
여덟 점 검은 점박이무늬는
백무동에서 본 큰굿내림, 신딸의
옷자락 같다
오늘은 뱀노인과 함께 뱀 망태를 짊어지고
이 현상의 산처山妻 하순임이 마지막 걸었던
하산 길
불무장등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구상나무 고사목지대의
큰 나무 등치며 잔가지들 끝에
주저리 주저리 늘어붙은 나비 떼들을 만났다
마가빛 강물을 이끌고 또 몇 천km의 여행을 떠나려는지
꿈꾸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듯이 깊은 잠들었다
한때는 오대산 태백산지구, 소백산 지리산지구
빨치산 5만이 산봉우리를 타고 넘나들었다는데
그들의 죽은 넋들이 되살아온 듯하다
이 나비들 잠깨어 나래치면
오색 빛 현란한 무지개 빛깔
베이징의 어두운 하늘에 눈이 내리고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서 다시 태풍이
이러날 듯하다
아, 나비잠, 나비꿈, 나비물결, 나비들의 폭풍이여,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산
오늘은 호랑나비 떼 잠깨워
훨훨 나비물* 뿌리며
소근개의길
소곤소곤 봄비 따라
우리 다함께 달궁 가자
-호랑나비 떼의 송가(頌歌)
* 하순임(가명): 이현상의 산처(山妻)로 임신중 불무자등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화개장터에서 잡혔다
나비물(마중물): 펌프로 지하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먼저 한바가지 물을 붓는데그 물을 말한다.
-강경석/평론가
2. 달궁길
- 내 문학의 산책길
나의 산책로는 지리산 속에 숨겨진 빨치산 루트와 같은 길이다. 40여 년 동안 산책길이어서 이 길 위에서 나의 문학은 탄생하고 소멸한다. 그래서 작년(2010)에 출간된 장편 서사시집은 ⟪달궁 아리랑⟫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남명 조식은 지리산을 두고 천석들이 종을 누가 칠거냐고 탄식 했지만 실은 구구빨치, 구빨치, 신빨치에 이르기까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는 지리산을 울리고 간 사람들은 이 빨치산들이었다. 신빨치(여순사건,14연대)의 몰락사를 원고지 700매에 담은 것이 지리산의 대서사극이다.
이 산책로는 1976년에 쓴 대표작으로 치부되는 <지리산 뻐꾹새>의 울음과 한으로 먹칠된 길이다. 그리고 등단작 <山門에 기대어>는 그 2년 전에 이 길 위에서 착상된 작품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고단-심원 마을(계곡)-달궁 마을(계곡)-반선 마을(뱀사골)의 기나긴 우렁이 속같은 숲길이다. 1976년 8월 구례 중학교에 부임하면서 산악회의 후원으로 노고단에서 최초의 ‘산상시화전’을 열었는데 그 사진이 지금도 노고산장 벽면에 붙어 있다.
그때는 황톳길이었고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한 군용도로였다. 근 40년 간 현대사에서 반란의 길, 역적의 길, 반역의 불온한 길을 걸으며 나의 문학도 이 길 위에서 출발된 셈이다. 이 산책로가 없었다면 통일 한국 백년을 내다보며 쓴 ⟪달궁 아리랑⟫도 없었을 것이다. ⟪빨치산 문학관⟫이 ‘달궁 마을’에 들어서는 날 이 시대의 불온문서로 치부된 그 시집도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이제 지리산이 세계 복합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지금도 나의 서재는 화개장터 건너편 섬진강 가에 있어 빨치산 오르그가 20여명이 나 나온 간전 모스크바, 산동 모스크바를 넘어 노고할미가 사는 노고단에서 반야봉 밑의 달궁까지 산책길을 밟곤 한다.
그래서 이 길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아래선 신성모독 죄에 걸려 있는 길이지만 통일 한국의 100년 그날이 오면 신화의 길이 되고 역사의 길이 될 것이다. 이 길을 넘나들며 나의 문학도 삶도 저물어 간다. 그 저무는 길 위에서 저 반야봉의 반야노인과 노고할미의 기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그들이 피워낸 이 고갯길의 도라지 꽃 한 송이에도 뻐꾹새의 피울음이 떨어진다. 달궁 마을을 찾아가는 원형의 길, 그 오래된 길의 솟대 끝에서 오늘도 새들이 날고 있다.
도라지 너를 보면
삼한적 맑은 하늘
이슬 내리는 소리
호궁(胡弓) 소리
이 산책로에서 다른 선배 작가 시인들이 이룩해 놓은 그 작품에 一字一劃을 더하고 싶어 두 권의 시집을 낸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다. ⌜달궁 아리랑」에 이어 그 밑그림이 되었던 단편詩들만 떼내어 ⌜빨치산⌟(2012.4)이란 시집을 낸 것이 그것이다. 순천대학에 오면서 이곳에 거처를 정한 것이 벌써 10년인데 강은 오염되었고 어초장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언덕바지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제11시집)」선비처럼 여유자적 했던 것이 또한 부끄럽다. 누구는 찾아와서 말했다. 이곳에서 경성 산책자가 되지 말고 영원한 지리산 산책자로 남으라고! 그래서 저 여든 일곱 봉우리와 그 골짜기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처음은 빨치산이 되라는 말로 들려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런저런 영향으로 어쨌든 나는 두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다만 이 봉우리 골짜기마다 빨치산 루트가 표적된 표지판과 지도가 완성되었으면 했는데 지금껏 감감하기만 하다. 현대사에 오면서 지리산은 그만큼 역사에 매몰된 산이면서 금기시 된 산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나의 ‘어초장 시대’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삼한 시대부터 있어 왔다는 오래된 달궁마을 ‘섬마 섬마 달궁/ 시상 시상 달궁’이라는 단동치기檀童治基의 텃노래와 함께 그 솟대 끝에서 날고 있는 새들을 떠나 나는 새로운사상의 거처가 될 땅을 찾아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지리산 에움길을 따라 빨치산 루트를 차례로 밟아 보고 싶다.
그리고 거창, 함양, 산청을 돌아 천왕봉 밑 시천강 덕산서원의 ⌜溪亭柱의 詩」에 입맞춤하고 뜰에 난분분 참매향을 쓸어보고 싶다.
다음 시는 문화공작대로 넘어와 김태진 등과 함께 달궁 전투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남원 역에서 열차를 타려다 붙잡힌 혁명시인 유진오(兪鎭五)의 사형언도를 듣고 노래한 이용악의 시다.
지난날 우리의 회관에서 정든 동무
지난날 한자리에서
지리산 유격대의 민다트를 받고
목을 껴안고 서로 뺨을 부빈
전위시인 유동무*의
사형 언도가 내려온 이튿날
헐버슨 인왕산 아래 붉은 벽돌담
눈보라 소리쳐 내리는 한나절
뜨거운 눈초리롱
조국의 승리를 믿고 믿으며
마지막 형장으로 가는 길
웃으면서 나간 동무⌟
도리 도리 달궁
짝짜꿍 달궁
봄이 오면
아아, 지리산에 봄눈 녹으면
우리 그 길동무 따라
시암재 지나 노고단 넘어
노고할미 달궁 에미집
이 시대의 무공해 건강식품 곰취죽 먹으러
달궁가자
시상 시상 달궁
섬마 섬마 달궁
우리 단동치기壇董治基 노래 속에
살아 있는 마을
길나비 따라 훨훨
길 뜨자.
-달궁길∙1
⌜시인세계」2011.겨울호
다음은 나의 서재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화개장터인데 심심찮게 품바 타령이 벌어진다. 다시 그 흥겨운 품바타령을 복원해 본 것이다.
3.화개품바
- 노래는 세상에 거는 주문呪文이다
품바, 품바*가 잘한다
꽃 피는 화개장터 벚꽃 십리 길
빨치산 여전사같이 생긴 굴뚝각시가
죽지도 않고 찾아와
각설이 타령 한번 잘한다
이현상이 사살되기 두 달 전
빗점골에서부터 불무장등 주능선을 타고 내려온
간호사 출신 이현상의 처
임신을 해서 내려오다 붙잡힌
하순임이라고도 하고
강 건너 간전면 중대리 출신 여전사
박정애, 동무라고도 하고
산동 부녀죽창대 이정순, 동무라고도 하고
감옥에서 풀려난 정순덕이라고도 하고
어허
품바품바가 잘한다
일 자 한 장 들고나 보니
일각이 여삼추라 60분단 웬말이당가
두 이, 두 이 자를 들고나 보니
이화 도화는 만발했는데
이산가족이 슬피 운다
어허,
품바품바가 잘한다
작년에 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지리산도 엉덩방아를 찧고
섬진강물도 흠칫 놀라 가던 길 멈춰 서서
이 난장판 보고 껄껄 웃는다
어허, 품바 품바가 잘한다
쉬, 물럿거라
함양 산청 내원골 빨치산, 지리산 최후의 망실유격대장
정순덕 처자 나온다
함양 산청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요
우리 집에 우리 님은 나를 안고 돈다네
지리산 머루 다래는 앙기당기 여물고요
단성들에 목화송이 봉실봉실 터졌네
경호강 금잉어는 토실토실 살이쪘고요
지리산 단풍잎은 울긋불긋 물들었네
어허, 품바품바가 잘한다
지리산 그 뜬쇠소리*
먹귀신 타령 한번 들어보거라!
처먹고 베먹고 떠먹고 개먹고 싸먹고 캐먹고 짜먹고 타먹고 파먹고 퍼먹고 데워먹고 달여먹고 태워먹고 익혀먹고 삶아먹고 볶아먹고 끓여먹고 지져먹고 덥혀먹고 튀겨먹고 담아먹고 담가먹고 날로먹고 조려먹고 당겨먹고 고아먹고 삭혀먹고 다려먹고 무쳐먹고 재워먹고 이겨먹고 쑤어먹고 내려먹고 구워먹고 쪼여먹고 식혀먹고
부쳐머고 불려먹고 절여먹고 박아먹고 부셔먹고 밀어먹고 녹여먹고 찧어먹고 다져먹고 으깨먹고 가셔먹고 깎아먹고 비워먹고 채워먹고 잘라먹고 발라먹고 뜯어먹고 찢어먹고 말려먹고 우려먹고 헹궈먹고 꽂아먹고 꿰어먹고 찍어먹고 남겨먹고 다퉈먹고 끼어먹고 주워먹고 골아먹고 집어먹고 씻어먹고 솎아먹고 닦아먹고 씹어먹고 후벼먹고 핥아먹고 긁어먹고 말아먹고 비벼먹고 풀어먹고 끊어먹고 길어먹고 깨물어먹고 버무려먹고 빨아먹고 수라먹고 굴타리먹고......
먹고 먹고 먹고 빌어묵고 잡혀묵고 굶어 죽은 빨치산 귀신
때깔 한번 좋구나
얼쑤 얼쑤
빨치산 애먹은 귀신
쉬, 물렀거라
달궁 안골 큰마님 들어가신다
쉬, 물렀거라
요것 봐라, 요것이 무신 시상이다냐
해방특구 민주마을 뿔갱이 마을!
달궁 아리랑 속에 살아 있는 뜬쇠소리
어허,
잘한다 품바, 품바가 잘한다
구구빨치, 구빨치, 신빨치 피물림의
새끼들
오늘은 논다니패들 모여
품바, 품바가 잘한다
자네 죽지도 않고 또 왔능가?
물짠이** 왔당가
자네 보러 왔지
어디 숨어살다가 왔당가?
황칠 먹칠 개칠 피갑칠 뒤집어쓰고
삼밭골 무렁등이 마을***
언덕 밑에 숨어 살다가 왔지!
무얼 먹고 살았당가?
삼굴 속에 숨어 애기 하나 먹고
삼굿하다가
삼씨***하나 뱉고 왔지!
얼씨구 절씨구 들어간다
품바, 품바가 잘한다
다리 하나 건너 전라도와 경상도 땅
웃동네는 남원 순창 구례 곡성
아랫동네는 악양동천 청학동천 화개동천
진주 산청 함양 팔도 잡놈이 다 모여든
화개장터 5일장
대성골, 문수골, 피아골, 체장수, 홍두깨
방망이 깎던
가야유민, 백제유민, 구구빨치, 구빨치, 신빨치
그 시절부터 풀무간에 쇠 치는 소리
뻥튀기 소리
옥화주막 앞마당 모기 쫓는 모닥불 냉기****속에
달 끄스르것다
어허,
자네, 죽지도 않고 또 왔능가
자네, 보니께 영 반갑네
어허, 품바, 품바가 잘한다
서이, 삼 자를 들고나 보니
무렁등이 마을 꽃핀다던 세상
꽃필 날은 언제 오려는가
어허,
품바, 품바가 잘한다
옥화네 주막 검둥개는 흰 꼬리로
마당을 치고
품바는 밤새도록 깡통을 친다
어허,
품바, 품바가 잘한다
-2010년 서사시집 ⌜달궁아리랑」∙8
*품바: 품바 소리는 전라도 말이다. 백재가 망할 때 그 유민들이 불렀다는 산유화가(메나리)에서 유래, 일제 때는 ‘각설이타령’으로 고착되었고, 5·18 이후에는 ‘품바’로 했다. 1대 품바는 무안 일로 출신 김시라 시인이었다.
**물짠이: 까닭 없이의 남도 토속어
***무렁등이 마을: 각설이들의 고향이라고 전해지는 문둥이 마울, 백무동 골짜기에도 있었다고 전해짐. 전남 무안군에 있음
****삼씨: 아마(麻)씨, 문둥병을 다스렸던 단방약
*****냉기: 연기(냉갈), 남도 토속어
4.제 14시집 ⌜빨치산⌟의 사족
[1]여는말
⌜지리산 뻐꾹새⌟에서 송수권은 전통적 한의 정서를 이어받되 한의 밑바닥에서 솟는 힘의 육화, 그가 ‘부활의지’라고 불렀던 울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한 마리 뻐꾹새의 울음이 개인적 한에 머물지 않고 수천 수백의 지리산 봉우리를 다 울리는 이유는 “걸려도 깊이 걸리고 울어도 진하게”(⌜산문에 기대어⌟자서 ) 울기 때문이다. 그 울음은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자연의 형상을 따라 정정하게 흘러간다. 연연한 지리산 봉우리들을 다 울린 후의 추스름 끝에 비로소 섬진강이 열리고, 그 강의 힘센 물줄기 끝에 남해의 작은 섬들이 밀어 올려지고, 그 엄청난 부활의지가 있고서야 세석 철쭉꽃밭은 이승의 진한 마지막 빛깔로 타오를 수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거쳐 남해군도를 울음으로 쓸어버리는 그의 장대한 스케일은 “참새처럼 찔찔거리지 말고 시대의 한복판에서 깊이 울어라”는 전통서정의 남성화를 보여 준다. <문학청춘> 2010년 가을호에서 따온 오현경 씨의 글이다.
"지리산 뻐꾹새"의 피울음을 역사적 현장과 부활의지로 끌어내기 위하여 이 시대의 금기식으로 불온 문서가 된 <달궁아리랑>서사시에 이어, 그 밑그림이 되었던 단편적인 시들을 모아 <빨치산>이름으로 엮어낸다.
2012년은 지리산의 봄으로 본격적인 ‘여순사건’이 떠오를 것을 직감하며 지리산에도 언젠가는 ‘빨치산문학관’이 들어서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어초장漁樵莊에서 건너다보는 연연한 산봉우리들의 저 깊고 의연한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라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우레 소리보다 더 큰 울부짖음이었음을 실감한다. 지금 “지리산 뻐꾹새” 한 마리가 온몸을 던져 그것을 피울음으로 토하고 있다.
2012.초봄, 섬진강 漁樵莊에서
날아가는 새가 되지 않으려고
밤마다 가슴에 돌을 얹고 잠들었다.
-빨치산∙1, 전문
매(鷹)는 하늘을 날아도 그 발톱은 땅에 찍힌다.
-빨치산∙2, 전문
꿈속에서 만났던 그 사람 종적을 알 수 없더니
백무동 골짝 용유담 맑은 물속에 숨어 살고 있었다
겨울 건기乾期를 지나 눈 녹고 봄비에 골짝물 불어나
폭포가 물기둥을 세우면
박치기, 박치기로만 물기둥을 뛰어넘는 가사어袈裟魚
봄에만 석 줄의 붉은 띠를 두르고 나온다는 가사어
백무동에서 달궁을 넘고 피아골 청학동을 돌아
삼남의 지붕을 제 집 삼아 한 생애를 다한다 하니
빨치산의 넋들림이라고도 하고 빨치산의 두목
이현상이 빗점골에서 사살된 후 새로 생긴
산천어라고도 한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전생에 죄를 얻어 나처럼
금란가사 한 벌 두르지 못하고
이 산천을 떠돌았던 몽구리 중놈이었던가 보다
근 현대사 이후.
이 산천에 웬 곡비哭婢들 이리 많은지
햇뻐꾸기 벌써 나와 공글공글 반 되짜리 울음 울고
소쩍이는 밤새도록 소탕掃蕩, 소탕掃蕩
한 되짜리 울음 운다.
-지리산의 봄, 전문
한국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섬진강변
19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알탉처럼 숨어들어 알을 낳고 싶은
알자리 하나가 있다
평사리 앞들이다
황금 벼이삭이 출렁일 때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왜 이 암탉골을 가상 공간으로 설정해서
대하 소설을 낳았는지 그 심중을 헤아리게 된다
참새가 방앗간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으랴!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14연대
신빨치산도 그랬을 것 같다
그들은 1951년 11월 29일 새벽에서
12월 1일까지 사흘간이나 이 방앗간에 머무르면서
벼를 찧어 산으로 날랐다고 한다
여자들은 머리에 쌀가마니와 김칫독을 이고
실한 장정들은 쇠죽을 쑤는 무쇠솥 가마를 수도 없이
세석평전 지하 무기 고트로 날랐다고 한다
이 악양전투가 참이라면
쇠꽃과 빨랭이 꽃이 핀 무쇠솥은 매장 문화재로서
백 년 후엔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떠오르겠구나 싶다
하동으로 들어가는 섬진강 19번 국도변엔
‘기록이 햇빛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를 기념하는 빗돌에는
그렇게 새겨져 있다.
-참새와 방앗간, 전문
4.신포도
말끝마다 민족이란 말,
통일이란 말,
민중이란 말,
툭하면 80년대란 말,
망월동이란 말,
5․18이란 말,
광주란 말,
노동꾼, 해방꾼, 통일꾼, 5월이란 말,
무등산을 세워 놓은 채 병 나팔을 부는
민주화란 말,
우리라는 말,
새벽 3시에 태어나는 어깨동무란 말,
역사라는 말,
투사란 말,
말끝마다 詩가 움직이는 첨병적인 시의 말,
국회의원이 된 국회의원의 말,
시인이 된 시인의 말,
총장이 된 총장의 말,
현상수배자 같은 광주라는 말,
보수 진보라는 말,
좌빨 우빨이라는 말,
2030이라는 말,
불바다란 말,
때만되면 망월동에 도깨비처럼 얼굴을 내밀고 겁주는 말,
이건 신 포도야,
넌 못먹어!,
삐쭉삐쭉 우는 종고산 비둘기,
오씨팔오씨팔로 우는 무등산 비둘기,
쪼삼쪼삼 우는 한라산 비둘기,
지리산 비둘기는 공글공글 밤새도록 반 되짜리 울음운다,
젬병,
신빨치란 말,
촛불을 들면 사탄의 무리,
14연대란 말,
앞서면 선동, 뒤서면 반동,
서 있으면 친고지 불고지죄,
사돈네 팔촌까지 엮어간 길,
뿔갱이라는 말,
빨랭이라는 말
아직도 중음신이 되어 중천에 떠도는 말,
합종연횡
安哲洙,
강남제비,
낙동강 벨트라는 말,
수첩공주라는 말,
수첩왕자라는 말,
서민경제라는 말,
부엉이바위라는 말,
콩쥐 팥쥐라는 말,
왼쪽으로 보면 오리
오른쪽으로 보면 토끼
두 귀는 쫑긋
요놈의 황금 주둥아리
영낙 없는 쥐박이로구나
⌜오리와 토끼⌟그림<비트갠트슈타인 곰부리치의 애매도형>
(시집 빨치산 50쪽에 들어갈 도형임)
거제도 포로수용소 포로들이 탔던
포인트 크루즈호*란 말,
민간 사찰,
빗질작전이라는 말,
딱이다딱이다딱이다라는 말,
세석평전에 진달래는 저 혼자 피고지고,
빨치산 1번지,
아아 봄날은 간다
잘도 간다.
⌜영가천도와 49재 - 봄날은 간다⌟, 전문
- 제14시집 『빨치산』을 상재하고 나서
*포인트크루즈호: 1953.10.5 거제도 포로수용소 7900명 중 180명만이 북한으로 가고 중공군 포로는 장지에스가 25척의 수송선을 보내어 실어갔고, 88명의 포로는 중립국 수송선 <포인트 크루즈호>를 탔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한 것이다. 최인훈이 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이 배를 타고 가다 투신 자살한다.
이상으로 최근에 출판한 <달궁아리랑>과<빨치산>에서 한국전쟁 피해자들인 중음신들에게 나는 정부가 하지 못한 49재의 위령제와 천도제를 詩로서 헌사한 셈이다. 그것도 정부가 준 문예진흥 후원기금으로 시집을 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이야긴가.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또 있다. ⌜달궁 아리랑⌟원고를 탈고해서 H신문과 중앙일보에 동시 투고했는데 보수를 표방한 중앙일보에서만 인터뷰 요청이 오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수냐 진보냐, 좌빨이냐, 우빨이냐, 내가 식물 인간이냐, 중음神이냐, 하는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다. 문득 <포인트 크루즈호>가 생각났고, 최인훈의⌜광장⌟ 주인공인 이명준이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음을 온몸으로 전율했던 것이다. 이땅에 살아남기란 자살도 풍자도 아닌 ⌜해탈⌟이란 단어를 떠올린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들이 살아온 대다수 경계인들이고 중음자들의 길이 아니었을까?
그래요, 우리는 구렁이 뱀허물같이 본질이 없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어요
연좌제가 풀리고 저도 인도여행을 나간 적이 있지요
뉴델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북쪽 대사관 앞을 지났어요
들어갈까? 말까?
말까? 들어갈까?
발을 뗄까?
말까?
그때 어중간한 새벽 다섯 시도 아닌데
그 인공기를 내리는 하강 나팔소리가
옥상에서 들리더라고요 허허, 한참을 서서 웃었지요
그때 마침 빨치산 잡는 귀신 고달복*이가 있었다는데
그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달복아, 빨랭이 여기도 있다!
지옥의 귀신아, 파리지옥아, 끈끈이주걱아, 도꼬마리 씨야
아나,
나-잡-아 -봐-라-
그냥, 허허 웃었지요
손바닥에 침을 뱉고 치기방망이질을 하는 것을 보고
침이 남쪽으로 떨어지자
뱀노인도 따라 웃는다.
-파리지옥, 전문(시집/ 빨치산 45쪽)
*고달복(가명): 역빨치산 토벌대장으로 공을 세워 후에 산청군 화계면 지서장까지 지낸 인물
참으로 지리산 속에 들어와 출出과 처處를 분명히 했던 남명 조식 선생의 삶은 이 본말이 전도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부러운 것이다.
출出은 말末이요 처處는 본本이기 때문이다. 그는 本을 지켰고 그의 제자들은 특히 의병사(義兵史)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出을 지켜 <본말이 전도>되지 않았음을 증명함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빨치산⌟ 시집 속에 <남명梅를 찾아서∙1>과 <2>를 끼워 넣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연의 일치랄까, 이 시집이 출간도 되지도 않은 두 달 전에 벌써부터 남명기념관의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구나 싶은 것이다. 제자들을 길렀던 산천재(山天齊)의 기둥에 꽂힌 “백수로 돌아와 무엇을 먹을까 걱정말라(白手歸來何物食), 은하수가 십 리에 뻗쳤으니 마시고도 남는다(銀河十里喫猶餘)”는 말은 나를 또 한번 전율케 한다. 한반도적인 삶이 그때의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성(identy)은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언젠가 25시 작가 게오르규가 한국에 와서 강연했던 다음 말을 상기하고 싶다.
“열강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한반도는 마치 미인의 양쪽 귀에서 흔들거리는 두 개의 귀걸이처럼 귀엽다”라고. 지금이야말로 ⌜문화통합론과 북한문학⌟(방송통신대학강의요목/ 박태상 교수)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