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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일반적인 중세부근의 시대를 배경으로 톨킨의 세계를 상식으로 하는 월드를 운영하는 마스터의 자료를 제공하고 플레이어에게 참고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의 내용은 역사/학술
면의 고증이 결여되어 있으며, 우리 나라의 RPG풍토 혹은 필자가 접하는 자료들을 토대로 혹은 자료의 바탕 없이 필자의 주관적 해석과
경험에 의하여 마스터링과 플레이에 용이하도록 풀이/ 재해석/ 추가설정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속옷편!
여기서
말하는 속옷은 외의(양복),중의(셔츠),내의(난닝구)중 중의 안쪽의 옷을 말합니다.
속옷은 여러 이유로
입습니다. 추워서, 부모님이 낳아준 옷걸이가 너무 빈약해서 보강하려고, 깨끗하라고, 야시시해 보이라고. 잘난 사람이라고 과시하려고.
깨끗하라고 입는건 18세기 산업혁명 때부터 시작된 근대의 것이니, 위의 4가지 이유정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p.s. 1:
플레이어들을 원숭이로 알라는 말이 아닙니다.)
**: 플레이어들의 취향에
따라 변경. 기묘, 뾰족, 펑퍼짐, 봉긋,
대표적인 과거의 선정적인
속옷으로는 제단 위에 누워있는, 혹은 기둥에 묶여 있는 제물처녀 유니폼인 아마로 만든 긴 통옷인
오래 군림한 것이
패티코트라면, 역사로 오래된 것은 역시 여성
리넨은 뒤로 오면 올수록
비싸집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리넨은 ‘신사의 속옷’이라는 뜻이었답니다. 마치 ‘메리야스’가 내복이라는 뜻을 가지는 것과 비슷할까요?
속옷은 이상하게 속옷이
레볼루션을 일으키는 17세기까지 끈과 리본으로 조여집니다. 신기하죠? 언제나 하듯 시대별로 살펴보며 역사를 찾아봐야
겠습니다.
종종 메소와 그리스 사이에
등장하는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크레타문명에서도 속옷에 한가닥합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코르셋 벨트를 하고 다녔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하고 다녔답니다. 가죽이나 금속으로 만들었고 여러 가지 장식을 넣었다네요. 요즘
잘 나오는 컴퓨터
케이스의 절단면 처리처럼 벨트끝을 둥글게 만들어서 피부에
안전하게 하고 옆에서 끈으로
매었답니다. 이것이 코르셋의 원조가 됩니다.
그리스는 원래 헐벗고
다니는 민족이라서 속옷이 없을 줄 알지만 그 외에도 드러낸 가슴이 걸을 때 매무새를 유지하도록 끈으로 가슴을 받힌 아포대즘Apodesm을 했고, 그냥 끈인 아포대즘에 비해 밴드의 형태로 되어 좀더 압박하는 형태인 마스토디톤mastodeton 또는 마스토디스mastodes라는 가슴걸이도 있었습니다. 마스토디톤은 아포대즘과는 달리 가슴 주위에 착용했고, 가슴의 곡선을 창조하기보다는 평평하게 압박하는 형태였습니다. 좀더 활동성 있는 여성에게 쓰였을까요? 가령 모험가 같은? 그렇다면 우리 모험가를 남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을 듯 싶네요.
암튼. 그외에도 경기장에서
여성들이 착용한 운동복인 비키니
사실 인간문명이란게 그리 오래된게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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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나 가야 여성의 신체곡선이 좀 나오기 시작하죠. 중세사람들은 평상복을 그냥 입은 채 자거나, 알몸으로 잤습니다. 그래서 부유층의 이불에는 안쪽에 모피가 달려있죠. 뭐, 전에 설명했듯 방은 커튼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래서 문헌에는 단정한 차림으로 손님을 맞은 집주인의 부인이 밤에는 옷을 훌렁 벗고 한방에서 잠자리에 들었고, 손님 또한 피차 마찬가지인지라, 현대로 보기엔 묘한 상황이 연출됐죠. 당시엔 그게 정상이어서 꺼리거나 주저하는게 오히려 이상하게 비치는 시대였으니까요. 한마디로 이런 세상에는 속옷장사는 별 수지맞는 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글은 창업상담도 겸하고 있나봅니다.)
속옷처럼 생긴 게 나타나려면 이 암흑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중세 후기까지 가야합니다.
종교와 권력이 동거하며 패션을 입는 시대. 비잔틴의 시대에는 뭐니뭐니해도 튜닉이죠. 겉에 치렁치렁 두르는 옷 때문이었는지 튜닉은 긴 팔에 좁은 소매를 유지합니다. 길이는 무릎부터 발목까지 지 맘대로였죠. 솔직히 속옷이라 부르기 뭐한 이 튜닉은 양옆을 차이나 드레스 마냥 쫘악- 슬릿을 넣어 훌렁 터버린 후 허리를 끈으로 맨 시원한 스타일이었고, 추울 때는 스커트가 긴 튜닉(undertunic)을 입고, 그래도 못 참겠으면 소매가 넓직하고, 스커트 길이가 긴 슈퍼튜닉(supertunic)을 입었답니다. 오호 슈퍼 튜우닉! 그림을 보면 정말 슈퍼튜닉이라 불릴 만 하죠? 프랑스에 노틀담 성당이 지어지는 12세기. 중세전기 때 패션의 주역은 게르만 친구들의 민족 대이동이었습니다. 원래 추운 쪽이라 옷이 발달된 탓에, 밑으로 찬바람 훌렁훌렁 들어오는 옷에서, 상하 투피스로 된 옷으로 점차 바뀌어갑니다. 스목(smock)이 등장하는데, 빵꾸 뚫린 자루 옷이라고 볼까요? 이건 원래 튜닉 위에 입던건데 나중엔 튜닉을 벗어던지고 이것만 달롱 속옷이 됩니다. 겉옷이었을 때는 화려한 장식이 붙지만 속으로 들어갈 때는 무명저고리가 되버리죠. 쯧쯧.
쉐엥즈는 발목까지 오는 길이에 소매와 폭이 좁았고 목 들어가는 구멍 앞쪽을 폴로셔츠 처럼 일자로 찢어서 장식밴드를 장식한 옷입니다. 겉옷인데 다뤄야할 옷인 꼬르사주(Corsage)는 블리오 위에 입은 옷인데, 등 뒤에서 끈으로 매어 조이는 형태의 조끼로 코르셋의 역할을 해주는 옷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배 들어가고 허리 얇은 게 미의 기준인 듯 합니다. 허어, 뱃살을 빨리 빼야할텐데 하긴 코르셋이 괜히 생겼나.
케임브릿지 대학이 설립되는 13세기. 쉐엥즈가 많이 들어봤을 슈미즈로 바뀝니다. 몸에 꼭맞는 헐렁한 스커트. 모순되나요? 슬립이라고 하죠? 그런 형태에 좁은 소매로 비단이나 부드러운 천을 사용합니다. 남녀 공용이었습니다. 물론 여성용 쪽의 디자인이 훨씬 훌륭했습니다만. 코르셋의 역할이 아닌 정말 코르셋의 원형인 스테이스(Stays)가 등장합니다. 남녀 모두 사용하던 물건이고, 당연히 허리가 가늘어 보이려고 썼죠.
정말로 속옷이 발달하는 우리의 르네상스. 한 맺힌 중세의 설움이 한번에 다 터져 나오는 시대입니다. 비록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로코코와 바로크의 전초전이기도 하지만. 백색의 슈미즈는 화려한 자수가 놓아지고, 14세기 후반에는 패드(뽕)를 이용한 치마 부풀리기가 시작됩니다. 조이다가 안되니까 이제 스커트를 넓혀 가늘어 보이게 하려나봅니다. 그럼 뭐하나 스위트 파우더라는 향이 함께 사용되는데 목욕을 자주 안 하는 신체의 냄새를 없애주기 위해서랍니다. 세탁에는 나무를 태운 재를 사용했습니다.
15세기 후반이 되면 이것이 극에 달해서 스페인에서는 페딩게일(farthingale)이라고 뼈대있는 치마 속 구조물이 등장합니다. 고래수염이나, 등나무 등을 이용해 뼈대를 만들고 모직, 빌로드 등을 이용해 살을 붙인 거한 물건이었습니다. 파팅게일은 프랑스식과 스페인식, 영국식으로 구분합니다.
스페인식은 2가지가 있는데, 스페인식은 뭐 남아있는 사료가 없어서 그냥 최초에 만들어진 물건이고 생긴 게 종모양처럼 아래로 퍼지는 형태라는 정도에, 두 장의 천을 박음질하고 두 줄로 두 천을 박은 후 그 사이 홈에 뼈대를 집어넣었습니다. 정적이고 품위 있는 안정감을 줍니다.
영국식은 엘리자베스1세 때 휠 파팅게일이라고 해서 허리에 마차바퀴 끼운 것처럼 수평으로 거대하게 퍼집니다.
풀 먹인 천에 둥근 테를 계속 이어 붙인 형태였습니다. 16세기에는 수평 길이가 허리에서 20센티부터 120센티까지 퍼졌고, 치맛단이 약 7미터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물건도 나옵니다. 당당한 박력이 있죠.
프랑스식은 취향도 이상해서 엉덩이 부분만을 강조합니다. 롤 파팅게일이라고 하는데, 승마하기 편해서 프랑스에서는 꽤나 유행한 모양입니다. 화려하고 품위 있는 나름대로 당찬 느낌입니다. 속옷이 오버하는 시대. 르네상스였습니다. 근데 이건 껌이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페티코트와 슈미즈, 꼬르삐께, 드로즈 등의 속옷이 많이 사용됩니다. 페티코트는 중세의 꼬트가 변화한 것으로 파팅게일과 드레스사이에 끼어 입던 옷입니다. 이 페티코트는 이른바 드레스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지나치게 무겁고 풍성했던 옷이 점차 실용적으로 바뀌어져 가는데, 그 중간 단계가 아름답죠.
처음 나타난 것이 스커트를 반정도 올려서 커튼처럼 고정시켜서 페티코트가 보이도록 한 형태로 순정만화같은데 많이 나옵니다. 뒤로 가면 파팅게일이 빠지고 페티코트가 더 강화되어서 적절한 신체실루엣을 만들게 되죠. 스커트는 여전히 길어서 커튼처럼 걷어올리는 것에서 앞을 째서 뒤로 모아 묶은 것, 뒤로 모아서 허리로 다시 집어넣어 엉덩이가 부푼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 등등이 나옵니다. 앞에서 보면 날씬하고 옆에서 보면 엉덩이가 풍성한 형태랄까요?
슈미즈는 전에도 있었던 거고, 목욕은 여전히 안 합니다. 독한 것들. 꼬르삐께는 코르셋의 할머니뻘 되는 물건으로 여전히 쪼여대는 물건이고, 드로오즈는 마키아벨리로 괜히 유명한 이탈리아 매디치(Medici)가의 카테린느(catherine)가 처음으로 입은 팬티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는 속바지입니다. 볼 수도 있다는 것은 결정적인 위생적 이유는 없었고 또 가랭이가 툭 터져있는 밑 터진 바지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속에 뭘 따로 입은 것은 아니니 아닐 수도 있죠. 로코코 시대는 뭐 그저 그런 시대였고, 볼스타라는 브래지어의 초창기 형태가 나타나고. 그렇게 로코코까지 돌파했는데, 아직도 속옷은 발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속옷부분을 쓰는데는 사료부족으로 인하여 특히나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걸린 것은 거의 없군요. 사실 복식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속옷의 역사는 100년도 안됩니다. (안 입고 살았으니 사료가 없지--;)
거기다가 중구난방 새로운 것이 쉬지 않고 출현해서 그 기능이 사라지고, 나타나고, 통합되는 경향이 강해서 시대별로 구분하기엔 후반에 오면 무리가 있군요. 거기다가 겉옷이 됐다가 속옷이 됐다가 다시 겉옷이 되고, 이번엔 액세서리가 되버리는 꼴이 겉옷과 분리해서 다루기도 난감하고. 최근까지도 속옷은 실루엣을 만드는 목적의 겉옷 받침대의 목적만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어깨 끈 브라가 나온게 1916년이고, 둥근 캡이 달린 게 1927년, 그게 사이즈가 정해진 것이 1935년. 1970년경에 되서야 좀 자연스런 형태가 나오는 지금도 그때의 생존자가 있는 상황이니 역사란 말을 붙이기도 뭐하군요. 기껏 속옷이 빛을 발하는 르네상스와 그 일당들의 시대는 인체와는 거리가 먼 실루엣의 구축에만 사용되어 인체를 장식하는 데만 쓰여졌습니다. 화려하게 변화되는 겉옷을 지탱하기 위한 뼈대의 구실을 했죠. 그 중에 가장 어떤 면으로든 가장 유명한 코르셋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나마 여성속박의 상징이니 뭐니 말도 많아서 사료도 많이 연구됐고, 또 동일한 목적으로 그렇게 장수한 속옷이 그것뿐인걸 보면 허리 가는 게 인간의 욕구 중에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
코르셋은 신체를 가다듬기 위해 생겨났고 그 형태나 재질이 시대마다 크게 다르고, 겉옷의 발전에 따라 쉬지 않고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을 꾸준히 유지해왔습니다. 조이는 목적만이 아닌 코르셋의 형태를 갖춘 모습은 14세기에 완성됩니다. 짤막하고 딱 붙는 소매로 대체로 팔꿈치를 넘지 않았고 허리를 가늘게 해주고 긴 스커트가 붙어있었습니다. 목둘레는 배꼽부분까지 트여 끈으로 꽉 조였습니다. 중세의 코르셋은 르네상스 일당과 근대와는 달리 볼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원피스 드레스 형태로 손끝부터 발끝까지 가는 몸체를 만드는 기능이었습니다.
르네상스 때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유래 없는 발전으로 그 형태에 따라 바스뀐느(basquine), 꼬르삐께(corps-pique), 꼬르발렌느(corps baleine) 라는 별도의 명칭이 붙어 특히나 사랑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코르셋이라는 말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중세 때는 코르사지라고 불렀죠. 17세기에 겉옷이 어깨를 노출시키는 형태가 되자 코르셋도 함께 어깨끈과 소매가 없어지기도 하고, 앞뒤 두 장의 구멍 뚫린 철판으로 만든 것이 좀더 인체에 맞추기 위해 4조각의 강철판으로 개선되고, 경첩을 달아 여닫고, 고리와 후크, 걸쇠로 살이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했습니다.
18세기에는 허리가 가늘고 가슴이 풍만한 것이 유행이 되서 허리와 아랫배부분에 한정된 코르셋이 대유행을 하다가 그레이스한 그리스의 키톤 풍 유행의 복고풍 바람이 불자 거짓말 같이 싹 사라집니다. 18세기 때의 콜셋은 강철판이 아니라 퍼팅게일처럼 고래수염이나 등나무 줄기로 촘촘하게 누빈 형태로, 아랫소리가 탭형태로 일정하게 분리되어 엉덩이의 곡선에 맞도록 만들어진 입체적 재단의 형태였습니다. 끈으로 조이는 것이 대부분이고, 실크로 겉을 수놓아 장식한 것도 있었습니다. 리넨으로 만든 슈미즈를 입고 그 위에 코르셋을 입어 허리를 조이고, 아래는 퍼팅게일 같은 후프를 입어 치마를 부풀린 갑옷을 방불케하는 복장을 했죠. whaleboned bodice라거나 Waist-coat라고도 부르는 바스뀐느는 뿔이나 고래수염, 상아, 금속으로 패드를 만들어, 두겹의 린넨으로 된 옷의 주요부분에 삽입한 형태로 조끼모양의 옷이었습니다. 부분부분에 체인을 댄 가죽갑옷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거기다가 필드플레이트 메일이 스커트를 달기 위해 달려있었던 가죽끈처럼,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페티코트 같은 속치마를 연결시킬 수 있도록 끈이 달려있었습니다.
꼬르삐께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중엽까지 약 70년을 사랑 받던 콜셋입니다. 1577년에 처음으로 태어난 꼬르삐께는 맏언니인 바스뀐느가 조이는 힘이 약해서 퇴출된 만큼, 그 기능에 충실해서 고문도구를 방불케하는 갑옷으로 발전합니다.
먼저 기본이 되는 리넨 소재의 옷은 최소 두겹이상으로 하고 탄력을 보강하기 위해 천을 누빕니다. 거기에 뼈태를 딱딱하게 하기 위해 대체로 금속이 사용됐고, 쇳조각에 가까운 와이어가 홈이 파이는 부분에 대어집니다. 초기엔 앞으로 열리는(열리는!) 형태였으나, 당시 드레스가 앞쪽으로 점점 트이자 뒤쪽으로 열리는(열리는!!!) 형태로 바뀝니다. 대신 앞쪽은 비단으로 싸고, 전면장식을 화려하게 하고, 스터마커를 착용시켰습니다. 마치 갑옷 위에 타바드로 문장 장식한 것 마냥. 장식은 그렇다치고, 속은?
17세기 중반기에 배 부분이 거북이 등딱지 같은 만한 네델란드 민중 패션의 영향으로 힙의 부풀림이 가라앉고 허리선이 다리를 길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인지 위로 올라가자 강철도 그 순간은 매우 유연하게 되어 꼬르삐께도 철판인 탓에 배 앞쪽이 뾰족하던 것이 둥글어져 적응을 하려하지만, 허리를 조이는 유행이 점차 사라지고, 드레스의 부분에 고래수염이 삽입되어 옷이 바스뀐느보다 약간 덜한 코르셋의 기능을 가지게 되자 꼬르비께도 퇴출됩니다.
그렇다고 코르셋이 퇴출됐느냐? 아니죠. 17세기 후반에 조여대는 유행이 다시 돌아옵니다.
17세기 후반, 궁중세력이 강해지면서 귀족풍이 유행하게
되자 코르셋은 꼬르발렌느 혹은 스테이스(영어stays)라는 명칭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하지만 유행에 걸맞는 모습으로 시류에
적응합니다. 꼬르비께를 퇴출시킨 고래수염 드레스가 코르셋만큼 강화되는 형태가 됩니다. 코르셋이 담당하던 부분 전체에 고래수염이
들어있는 드레스를 고래수염 넣은 바디스라는 뜻으로 꼬르발렌느라고 불렀습니다. 이 꼬르발렌느는 허리를 조이는 것은 물론 가슴을
밑에서부터 받쳐올려 가슴 아랫살, 옆살을 모두 가슴으로 모아 빵빵한 앞가슴을 돋보이게 합니다. 운동화 끈처럼 빵꾸에 꿰어놓은 끈으로
죄고 아래로 갈수록 더 촘촘히 짧게 꼭 죄게 되어 가는 허리가 되게 했으며, 앞이 돌출되어 탭이 달려있어서 안쪽으로 스커트 고리를
걸어서 달았습니다.
이 콜셋은 18세기 로코코시대에도 계속 사용되었고 더 정교해져서 유방을 떠받치고 허리를 가늘게 보이도록 기술 발달을 거듭합니다. 코르셋은 그 제작방법이 끈기와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코르셋 제작자는 전부 남성이었습니다. 뭐 갑옷 만들던 친구들이 기사들이 이제 없으니까 코르셋 만들었나보죠 뭐. 아류작으로 발렌느드 드레사지(baleine de dressage)가 있었는데 가슴부분에도 고래수염을 채워 넣은 것입니다. 이음선의 방향은 모두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앞 중앙을 향해 V자처럼 선을 만들며 구성되었고 당시에는 대단히 세련된 디자인이었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세기가 되자 코르셋이 복대마냥 짧아져서 가슴을 떠받칠 필요성 때문에 브래지어가 탄생합니다. 남자 쪽은 중세에 겉옷인 브레이(braies)가 11세기부터 속옷이 되고, 속옷이던 셔츠는 지금 보다시피 밖으로 드러나는 옷이 됩니다. 그때도 속옷이었던 T셔츠는 지금 겉옷화 되어있죠. 현대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남성의 속옷이야 빤쓰와 난닝구, 그리고 일본 오야지들의 복대와 메리아스정도죠? 뭐 현대의 수십 종에 이르는 가터 벨트 (garter belt), 거들 (girdle), 몰드 브라 (mold bra), 버스트 폼 (bust form), 보디 수트 (body suit), 브라슬립(bra-slip), 브래지어 (brassiere), 브리프스 (briefs), 쇼츠 (shorts), 스트랩리스 브라(strapless bra), 슬립 (slip), 올인원 (all in one), 웨이스트 니퍼 (waist nipper), 캐미솔(camisole ), 캐미솔 브라 (camisolebra), 코르셋 (corset), 코슬릿 (corselet) 등등의 많고 많은 것들은 현대 것이니까 생략.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 테버언 이야기 의식주 편은 이걸로 끝입니다.
"필자의 한마디"많은 분들이 편지 주셨습니다. 감탄과 격려도 있었고, 몇 가지 의문점을 나타내주신 분도 있었고. 국내 최강 사도의 마스터에게 어울리지 않는 글 아니냐는 말씀도 있으셨고.(웃음).
글의 목적은 위의 삼천포의 효용과 비슷합니다. 환타지는 개인의 공상이다. 정형화된 것은 환타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무용론을 주장하시는 분은 퇴장해주십시오. 환타지는 개인의 상상이 수많은 사람에 의해 버려지고, 선별되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으로 전승되온 인간의 완벽한 민주적인 산출물입니다. 그리스의 별자리 신화, 톨킨의 많은 이야기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 천년의 세월, 짧게는 수십 킬로미터부터 길게는 지구를 한바퀴 이상 돌아 사람과 사람들로 전해져 여기 여러분의 머리까지 왔고, 또 여러분의 입을 통해 여러분 맘에 들지 않는 건 도태되고, 맘에 드는 것은 보강/선별되어 나가게 될 거대한 상상물이죠. 공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암묵적인 허상의 상식으로 일반적인 환타지 세계가 만들어져 갑니다. 기준은 하나. 나름대로의 현실성을 위해서입니다. 상상도 좋지만 실감나는 상상을 위해서는 추리와 예측, 기대가 가능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반과 규칙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정의될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 대부분을 중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성 따위 없습니다. 환타지는 로마 이전의 영국 관에 르네상스 이후의 갑옷체계에 때때로 매우 민주적이거나 중세 후기 유럽, 근대 중동, 고대 이집트 등의 모든 장소, 모든 시간대의 특징적인 것들이 모여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반적 중세라고 부르는 부분에 나머지의 결정권을 맡기고 있는 것이 플레이어와 마스터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이것은 이래!라고 마스터가 주장할 때. 더 큰 자유도로 움직이고 싶어서 룰북에서 규정한 부분 바깥으로 나갈 때, 극히 사적인 부분일 때. 플레이어는 나름대로 어떤 지식에 의거해서 행동하며, 마스터 역시 그렇게 반응합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공신력을 가진 부분. 그것이 근거로 제시되었을 때, 양측이 둘 다 긍정할 수 있는 부분. 이것이 중세입니다. 그래서 테버언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테버언 이야기는 기반이 되는 중세에 대한 것을 알리기 위해 의,식,주 3부분만을 축약하여 쓰여졌습니다. 기대하는 첫번째는 이 글로 인하여 중세에 대한 상식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자료해독능력을 위해서입니다. 우측의 삽화를 보면 침대는 밑판이 있고, 매트리스가 있고, 이불 속이 있는, 수놓아진 쿠션 혹은 베게, 잠자리가 있으며 커튼으로 침실을 구분하고, 창문을 따로 없지만 아치형으로 장식된 작은 창문기둥이 있습니다. 조각된 다리에 쇠경첩이 심 부분이 밖으로 노출된 책상이 있고, 모포 같은 천이 깔려있고, 금속으로 만든 촛대 혹은 다른 용도의 것이 있고, 방석이 있는 네모난 의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앉아 머리띠를 하고있고, 쿠션이 마감질되어 있는 발판에 발을 얹고 손 바느질로 자수를 놓고 있습니다. 기대어 있는 것은 방패입니다. 방패 뒤쪽은 가죽끈과 버클로 이루어져 있군요.
예쁜 그림 오케~하고 끝내지 마시고, 자세히, 세심히 살펴보십시오, 그 안에 모두 있습니다. 그걸 읽을 수 있다면 제 글은 그 소임을 다한 것입니다. 그림파일은 그럼 어디있냐고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있죠. RPG는 숙련되는 것은 인생에 숙련되는 것. 바바 히데카즈의 말입니다. RPG가 당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길 기대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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