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면(南一面) 덕천리(德川里)
남일면의 동쪽에 위치해서 동북쪽으로는 해발 558m의 덕기봉이 우뚝 서서 그 잔여 산으로 준령을 이루어 산악지대를 조성하고, 서쪽으로는 남쪽에서 흘러와서 북쪽으로 흐르는 봉황천이 있어서 비교적 들이 많은 지역에 덕천리는 자리한다.
구전에 따르면 영험해서 정성을 드리면 덕을 본다는 덕기봉과 봉황새가 깃을 펴고 날아앉는 그 핵심부분에 지역이 있다 해서 생기복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생업과 자기를 위해서 부지런한 사람들이 옛날에는 많이 살았다 한다. 비록 가난해도 마음만은 부자였다는 덕리의 사람들이 산다 해서 덕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남쪽으로는 신정리, 음대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초현리, 신천리와 접하며, 북쪽으로는 상동리와 접하고, 그리고 동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경계를 한다.
인류의 정착은 신라 때이며 백제 때는 진내군의 외곽지대였다. 신라 때는 진례군에 속했으며, 고려 때에도 그리 속해 내려오다가 제25대 충렬왕 31년 (1305)부터는 승격한 금주의 고을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종 13년(1413)에는 금산군에 속했으며 이때부터 마을이 크게 형성돼 가기 시작하였으며 봉황천을 낀 들녘에도 전답이 크게 개간되어 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남일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앞으로 봉황천이 흐르고 뒤에는 덕망을 준다는 덕기봉이 있으므로 덕천이라 부르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평대리, 월평리와 초현리, 홍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덕천리라 하고 전라북도 금산군 남일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에 편입,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덕천리가 되었다. 리의 면적은 6.0㎢이다.
자연부락(自然部落)
<벌대부, 월평리, 덕천>
덕천
벌대부 서북쪽으로 봉황천 건너 들에 있는 마을을 덕천(德川)이라고 부른다. 마을 동쪽으로 덕기봉이 있으며 또한 봉황천이 흘러서 산과 냇물과 들이 조화를 이루어 덕망있는 사람이 많이 배출된다 해서 덕천이라고 부른다 한다. 반남박씨(潘南朴氏), 평양조씨가 많이 산다.
월평리
덕천 남서쪽에 있는 마을을 월평리(月坪里)라고 부른다. 들에 있는 마을로 먹점산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먹점, 그리고 마을에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의 명당이 있으므로 월평리라고 부른다 한다. 마을 뒤에 있는 큰 골짜기는 큰골이라고 부른다. 반남박씨(潘南朴氏)가 많이 세거한다.
벌대부
평대(坪大),평대리라고도 부른다. 덕천마을 동남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남쪽에는 옛날에 서당이 있었던 서당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집채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고, 동쪽으로는 옛날 금을 캐는 막이 있었던 쇠막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는 마을이다. 남쪽에는 주성봉이라고 부르는 산도 있다.
금녕김씨(金寧金氏)가 많이 세거한다. 영산신씨(靈山辛氏)도 많다.
마을 양쪽으로 내가 흐르고 그 냇물이 큰 냇물로 들어가는데 마을 지형이 배 형국이라 한다. 그래서 샘을 파면 배 밑창을 뚫는 격이 되어 마을이 망한다해서 샘을 파지 못하고 마을 뒷산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대붓들 동쪽에 자리해서 벌판에 마을이 있으므로, 들의 한쪽을 차지한 곳에 마을이 있으므로 벌대부, 평대, 평대리라고 부른다. 들에 있는 큰 마을이라 그리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