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의 창
시를 발견하는 시간, 새벽의 오장육부
배태건|시인
시인 타이틀을 달고나니 시를 만나는 즐거움이 더 커졌다. 하지만 문예지에 발표된 시를 볼 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기 위해 몰입하는 즐거움은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 중 존경하는 강은교 시인도 “시를 생각하는 것만큼은 소홀히 할 수 없잖아요?”라고 어느 토크 자리에서 들었다. 50년 이상 시를 써 오신 분들도 시를 대하는 자세가 저리 진지한데, 이제 풋내기 시인에게는 시를 마치 신주 대하듯 모셔올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또 그만큼 시를 만나는 어려움도 크다. 시가 쓰여지지 않는 어려움, 시를 읽는 어려움, 시인을 만나는 어려움 등 다양한 어려움이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다. 즐거움과 어려움을 동반하니 역설의 헤게모니를 쥔 듯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불편함이라 할까?)은 시를 쓰는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다. 내가 시인입네, 하고 계시는 분들의 고결함이 무너져 내려 시를 창작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왜냐면 등단 이전에는 ‘시’나 ‘시인’의 단어만 들어도 관심과 존경심 같은 것이 앞섰다. 어느 빵 가게 상호에 ‘시인’이라는 단어가 있어 일부러 멀리 찾아가 빵을 사 먹곤 했다. 그만큼 시와 시인은 국토계획법을 전공한 나에게는 하나의 힐링단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문단의 말석에 들어서고 이런저런 행사에서 시인들을 만나면서 휼륭한 시인도 많지만 너무나 실망스런 분들도 자주 만나는 어려움에 부딪힌다. 물론 시와 사람이 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식선의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많아 적잖이 놀랐다. 그렇지만 시와 시인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고 단언한다.
시인들이 시를 영접하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한낮 눈부신 태양을 마주하여 쓰는 시, 혼자 고요한 카페 구석에 앉아야만 나타나는 시, 흔들리는 버스에서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들을 봐야 나타나는 시, 술에 취해 혼미한 미간을 찌푸려야 나타나는 시, 잠들기 전 숙제처럼 끄적이다 보면 나타나는 시(술 깬 다음 날 자신이 무슨 시를 썼는지 글을 알아볼 수 없다고 했는데, 밤에 술을 한 잔 들이켜고 나면 혼미한 시들이 보인다고 함), 새벽마다 한잔의 커피를 앞에 두어야 나타나는 시 등 시가 나타나는 모습은 너무도 다양하다. 이는 모두 시인 특유의 기질이나 생활습성에서 기인한다. 어쨌거나 좋은 시를 만날 수 있다면 독자는 행복하다.
나의 시 영접은 새벽이다. 무엇보다 밤의 적요를 즐기려면 새벽이 안성맞춤이다. 번잡한 도시의 낮과 밤이 가장 고요한 시각이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다. 5시면 새로운 하루가 꿈틀꿈틀 시작된다. 첫 버스가 움직이고 사찰의 예불 소리며 교회를 오가는 사람들, 이른 새벽 근무지로 향하는 사람들로 아침이 부드러운 하품을 하며 개봉된다. 나는 이러한 하루의 시작이 움트기 전인 가장 고요한 새벽의 독서와 창작을 즐긴다. 하루 동안 휴대폰에 메모해둔 시의 아귀들을 꺼내 정리도 하고 새로운 촉을 만나 시를 만들기도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이 새벽형 인간은 본격적인 詩作에 몰입하면서 더 두터워진 것 같다. 그런데, 새벽의 시 쓰기는 아내에게 엉뚱한 오해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남편이 새벽마다 서재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이고 있으니 분명히 누군가와 이 새벽에 문자를 주고받을 것으로 짐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부부 사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오해를 가진 것, 어느 날 남편이 서재로 나가고 한참 지나 발자국 소리를 죽여 슬금슬금 남편이 있는 서재로 들어가 남편의 등 뒤에서 휴대폰 놀이를 훔쳐본다. 그런데, 여자는커녕 이상한 문자놀이다. 놀란 가슴이 스르르 눈 녹듯 내리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아내는 그날 이후 엉뚱한 오해를 풀고 새벽의 시 쓰기를 적극 응원한다.
이처럼 새벽 나의 시 쓰기는 하루도 거르면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최근에 본 시들 중 새벽의 고요를 잘 표현한 시가 있어 살펴본다.
집이 트림하는 소리
잡식 동물인 양
주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 삼키더니
속이 거북한지 냉장고 방귀 뀌는 소리
허전한 옆구리로 딸깍딸깍
싱크대 그릇들이 딸국질하는 소리
TV 부속품들이 코 고는 소리
수도꼭지가 쉬익 오줌 갈기는 소리
하품하는,
켁켁거리는,
하루를 신진대사 하는 적막
적막에도 오장육부가 있다는 걸 감지하는
귀는
5차원이다
-김정순, 「불면은 적막보다 깊다」 중
새벽의 고요를 이처럼 잘 표현한 시를 본 적이 없다. 가장 고요한 새벽 시간에는 김정순 시인의 시처럼 냉장고를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들의 발육 소리가 들리고,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아랫집인지 윗집인지 싱크대 물소리며 아파트 전체를 관통하는 수도관 소리도 곧잘 들린다, 아마 시골집이라면 밤벌레 소리가 요란할 것이다. 그렇게 집이 트림하는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이는 시각이 새벽 3-4시다. 무엇보다 김정순 시인이 새벽을 ‘오장육부가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나도 매일 오장육부가 꿈틀거리는 새벽의 활기찬 응전을 시로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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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건|법학박사. 2024년 《사이펀》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가난한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가 있으며 사이펀문학상운영위원장, ‘시밀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