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사이펀 신인상(하반기) | 안영순
병자의 꿈 외 4편
숲속 바다로 낚시를 하러 가자
찔레꽃머리의 수풀을 헤집고 참방참방 걷다 보면
오색의 풀벌레 소리 수초의 크랙 사이에서 깨어나고
오늘의 대상어 곰치 향을 쫓아
잔물결 일으키며 올라가는 길
컹컹 짖던 가시 박힌 속앓이가 발밑으로 솎아져 내린다
토실토실 땀방울이 나이테 굵은 옷깃에 솔찬히 배어들고
풀숲의 젖가슴을 열어젖히자
씨알 작은 녀석들은 제멋대로 살라 하고
손맛 즐기며 낚은 대물
아물지 않을 것 같던 욕지거리가
쏘아 올린 환호성에 들쩍지근해질 쯤
수중 여에 앉아 있던 꿩 한 마리, 퍼드덕
릴을 감는 발자국 소음에 넘실대다
공중의 한 움큼을 베어 물고 솟구친다
챙모자 틈새로 햇살은 폭우로 쏟아져 내 광기가 발끈하고
빛기둥에 기대섰던 잡목들의 대화가 이울어 갈 쯤
장화 신은 발목의 수영이 느려지면
조황이 좋아 어깨 시끄러운 배낭을 메고
원추리처럼, 참나리처럼 너무 고운 것은 죄악인 것을
숲속 바다를 헤엄쳐 내려오는 다리엔 지느러미가 방탕하게 하늘거린다
어느새
갓 구어낸 달은 비루한 창가로 들어와 동침하고
출렁거리는 꿈이 손짓하는 밤의 사기
병실에 누워
나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를 쓴다.
돈사 관찰 노트
이곳은 넌센스 공장
천장엔 프랑스 수도가 벌떼처럼 붙어 있고
줄줄이 매달려 있는 무덤이 먼지 입은 선풍기 바람에 멀미를 한다
노린내가 깨진 벽 틈으로 진동하는데
돼지들은 제육볶음으로 환생하여
우리들 뱃속으로 밀고 들어온다
짜뚜론은 태국의 어린 사내
파눙을 허리에 두른 수줍은 반라의 몸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는 배냇머리 같아
때 낀 창가를 달리며 샤워를 끝낸 형광색 수줍음이 뚝뚝 떨어지곤 해
지금쯤 빈 둥지엔 앨범만 남아있겠지
분만사인 푸르바는 아들이 보고 싶대
녹슨 핸드폰 속에서 그리운 살덩어리 하나 꺼내
내 목구멍 속으로 울컥 밀어 넣어줬어
야간근무 석 달째
측은함을 꾹꾹 눌러 담은 도시락과 바나나 한 개
연신 고맙습니다가 눌변으로 잇몸에 들러붙고
푸르바의 푸르름은 밤길로 사라져 보름달로 커지곤 해
네팔에서 온 밍마는 컴퓨터 공학도
히말라야를 넘어 항공료를 지불하고 도착한 강원도 철원의 돈사
당찬 포부는 트럭 따라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한탄강을 내려다보며 바그마티강 떠올리겠지
볼펜만큼이나 무거운 프라이팬 놀이
햇볕에 널어 말리고 싶은 건 보드만 한 도마나 거인용 냄비 대신
계륵 같은 잡념의 채나물들 꼬들꼬들 말려
소금 비 내리는 날
아무렇게나 무쳐 먹을 일이야
*파눙:태국 남성이 착용하는 전통적인 허리 옷
꽃이 피지 않는 바다
불량한 그리움이었다
둘둘 말아 쥐었던 기억의 세포들이 곰삭아지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는 제주 앞바다로 퇴근하여 목이 메었다
땅의 마지노선
테트라포드 사이로 나약한 반발들이 훅훅 빠져들곤 했다
바람 모서리가 따갑다
차가운 마그마처럼 파도는 창백한 노래로 수만 번 울렁였고
낚시꾼들의 발자국들만 촘촘히 복사되어 자라날 뿐
발아하지 못한 내가 성장을 멈추었다
바다의 안감을 직조하는 해녀들의 독백은 이어도에 가 머무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내 안에 축조하는 일
무너져 내리는 곤혹스런 노동이 되었다
섬은 마침표가 되어 에둘러 외면하지만 접속사의 다리를 놓아
열차의 궤도 같은 대화를 어떻게든 꿰매고 싶었다
나는 이제 파도에 젖지 못한다
꽃이 피지 않는 바다
해장술 대신 짠 내를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헝클어진 채
나는 빗겨지지 않는 바다가 되었다
배와 정신 그리고 9시 뉴스
오늘을 듣고 배탈이 났다
그래도 내일까진
어제를 뱉어낼 테니 뱃속은 걱정하지 마시길
신경정신과에선 불안성 우울장애란다 배는 안전하다
치명적이지 않음 단 한 글자도 낭비하지 않는 멘트
카메라에 바싹 구워진 아나운서들의 성형 미소가
개종한 사건 사고보다 기이하고
갈증이 리모컨을 찾다 말의 변비에 고꾸라진다
오대양을 건너온 숙성되지 않은 소설들이
눈 밑에 쌓여 조작된 피부로 단단해지면 그게 다크써클이 된다
만져지지 않는 여자가 소파에 누운 나를 배제시킨다
나의 9시는 침묵 한 수저로 몸서리치고
디지털 세계는 재건축한 꺼리들로 호황 중
뉴스 바이러스를 완전히 박멸시킬 수 있는 백신은 없을까
이제 그만 풀지 못한 방정식의 코드를 뽑는다
조제해 온 정신과 약을 먹고 배탈이 났다
배와 정신 그리고 9시 뉴스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아이덴티티
옷을 입는 순간부터 나는 옷이 된다
세심하게 옷을 골라 그 속으로 들어가 세심한 옷이 된다
옷과 한 몸이 되지 않는 한
영영 비난의 신앙이 되고
초대받지 못한 내가 장벽을 넘다가 증발하겠다
이곳에선
나를
전위적으로 삭제해야 하고
오로지
옷이 되고
신상 신발이 되고
명품 핸드백이 되어야 한다
그건 독선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나’란
거대한 당신들의 종속변수이기 때문
우리는 포노사피엔스*
손가락 사이에서 유행의 브랜드가 마하의 속도로 배달된다
순수이성이란 최장기 할부로 긁으면 그만
적응하지 못한 여행자가 제목을 부여받지 못해 고독사하는 사이
무엇으로 변할지 포커스 맞출 뿐
어떻게 변할 지엔 위조하는 습관이 생겼다
옷이 아닌 인간연습을 한다
내일은 맨발로 출근할까 부다
원시의 나체로
당신들의 눈동자 속에 참값으로 오차 없이 살고 싶은
나는 옷장에 갇힌 엄마 잃은 아이덴티티
*포노사피엔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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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숙
*1969년 부산 진구 출생, 돌 때 제주로 이주, 현재 철원 거주
*서강대 언론대학원 <드라마작가> 과정 수료
*서울 송파영재사관학원 국어 및 논술 강의
*2010년 《문장21》 수필, 2019년 《문학고을》 시 등단
*유튜브 <유연의 문학 TV> '시처럼 살자' 방송
*장성문화원 주최 수필부문 우수
*한민족 통일문화제전 시부문 강원특별자치도지사상
*강원문인협회 회원, 철원 문학동인 <모을동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