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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로방스
피터 메일 지음 /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1월, 면도날 같은 미스트랄
찌는 듯한 더위와 따가운 햇볕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면 관광객으로 이삼 주 동안 이곳을 찾곤 했다. 그리고 떠날 때마다 콧등이 벗겨진 채 아쉬워하며 언젠가 여기에서 살리라고 다짐했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갈구하듯이 이 마을의 상점들과 포도밭을 찍은 사진들을 모았으며 침실 창을 통해 비스듬히 스며드는 햇살에 잠을 깨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거의 충동적으로 일어났다. 순전히 집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집을 오후에 보았지만, 저녁쯤에 마음은 벌써 그 집으로 이사를 끝낸 듯했다.
북쪽으로 1천6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베리아에서 시작한 바람은 최종 목적지를 향해 속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스트랄에 대한 이야기를 적잖게 들어 알고 있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까지 미치게 하는 바람이었다.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폭력적 범죄에 가까웠다. 보름 동안 계속해서 불어대면서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 자동차를 뒤집어버렸다. 한마디로 프로방스의 모든 문제는 정치인 탓이 아니라, 프로방스 사람들이 일종의 피학적 자존심 때문에 ‘신성한 바람’이라 이름 붙인 미스트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추운 날씨는 개인적인 즐거움까지 빼앗아갔다. 프로방스에서는 벽난로를 아직도 사용한다. 요리하는데, 빙 둘러앉아 담소를 즐기는데, 발가락을 녹이는 데 사용되며 때로는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겨울에는 아침 일찍부터 불을 지핀다. 뤼베롱산에서 긁어온 떡갈나무 잔가지나, 방투 산기슭에서 꺾어온 너도밤나무로 종일 지핀다.
2월, 폭설에 덮인 프로방스
프로방스의 한겨울은 이상하게도 딴 세상 같은 분위기를 띤다. 침묵과 텅 빈 공관이 어우러지면서, 세상에서 격리되고 정상적인 삶에서 유리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보클뤼즈의 자살률이 프랑스에서 가장 높다. 묘지는 대개 마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있다. “죽은 사람이 왜 가장 전망 좋은 곳을 차지해야 하느냐고? 하염없이 거기에서만 지내야 하니까.”
우리가 영국에 살 때는 몇 년이고 연락조차 않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를 보고 싶다고 달려드니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기야 햇볕과 공짜 숙박을 찾는 사람만큼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부엌 벽의 구멍을 통해 산들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포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돌 식탁에서 물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봄이 온 것이다.
3월, 비밀스런 송로의 세계
아몬드가 수줍은 듯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낮이 점점 길어졌고, 저녁이면 하늘은 분홍빛의 장엄한 파도처럼 변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포도나무를 손보고 있었지만 게으른 농부들은 지난 11월에 끝냈어야 할 가지치기를 하느라 바빴다. 자연이 모두에게 활력이라도 주사한 것처럼 프로방스 사람들 모두가 활기차게 봄을 맞았다.
건축업자, 그들이 약속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고, 언제 오고 언제 못 오는지 전화로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길게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일을 할 때는 언제나 흥겹게,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송로의 세계는 비밀스럽다. 하지만, 외지인이라도 카르팡느라 부근의 마을에 가면 송로를 슬쩍 엿볼 수 있다. 불합리하게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 향과 맛에서 신선한 송로에 비길 것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인들이 아직 송로를 인공재배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탓이다. 송로의 번식은 자연만이 그 법칙을 알고 있다. 라모의 말에 따르면 타이밍과 지식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돼지나 훈련받는 사냥개, 아니면 지팡이가 필요하다. 송로는 땅 밑에서 몇 센티미터 아래, 떡갈나무나 개암나무 뿌리에 붙어 자라난다. 최고의 추적자는 바로 돼지다. 돼지는 천성적으로 송로를 좋아해서, 적어도 송로 냄새를 맡는 데는 개보다 뛰어나다.
집에 오자마자 전화벨일 울려댔다. 우리 부부 모두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소리였다. 서로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딴전을 부렸을 정도였다. 우리는 전화벨 소리에 선천적인 알레르기가 있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전화벨은 적절하지 않은 때에 울려대지 않는가? 게다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당신을 예기치 못한 대화로 끌고 간다. 하지만, 편지는 받으면 언제나 즐겁다. 적어도 당신에게 대답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가.
4월, 부활절, 몰려드는 관광객
프랑스법에 따르면 정상적이면 재산은 모든 자식에게 공평하게 상속된다. 따라서 유산을 팔려면 자식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자식이 많을수록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떨어진다. 결국에는 서로 믿지 못하는 백일흔다섯 명의 먼 친척들이 그 농장의 주인이 되기 십상이다.
교양 없는 사람은 언제 봐도 불쾌하다.
프랑스 주부들의 무자비한 손길은 영국여인들과 달랐다. 가지는 꽉 쥐어보고, 토마토는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고, 강낭콩은 손가락으로 툭 부러뜨려보고, 양상추는 미심쩍은 듯이 축축한 녹색의 중심부까지 찔러보고, 치즈와 올리브는 조금 떼어 맛을 본다. 이렇게 물건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도 그들이 마음대로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주인을 쏘아본다. 다른 가판대를 찾아가 똑같은 짓을 되풀이한다.
부활절 주말이 되었다. 서른 그루쯤 되는 우리 집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 길에서 보면 집이 분홍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바다에 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운전자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우리 집까지 천천히 걸어 들어오다가 개가 짖어대면 돌아서기도 했다. 부활절 주일, 지역번호판을 단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카페 밖에서는 자동차 석 대가 이마를 맞대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한 대라도 10미터만 뒤로 물러서면 모두가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었지만, 프랑스 운전자들에게 양보는 곧 도덕적 패배로 간주한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주차해 극도의 불편을 가져오고, 심하게 굽은 길에서 추월하는 것쯤은 도덕적 의미라 생각한다.
“지루하진 않나?” 우리는 지루하지 않았다. 그럴 짬이 없었다. 프랑스의 소골 생활에서 매일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있었다.
프로방스에서 카펫 장사꾼은 별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의뭉스런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당신 할머니의 코르셋까지 훔쳐갈 사람이란 뜻이다.
5월, 인생은 즐겨야 하는 법
자전거타기, 푸름에 물든 살들도 부드럽게 보였다. 타이어가 도로에 닿는 소리가 단조롭게 들였다. 가끔 로즈마리와 라벤더, 야생 백리향의 향내가 풍겼다. 걷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포스탱은 여러 면에서 느릿한 편이었지만 인사에는 잽쌌다. 다음날 저녁,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을, 그것도 빨간색과 흰색, 파란색이 어우러진 리본으로 깔끔하게 묶어서 가져왔다.
초기의 방문객들은 올바른 손님이 되기 위한 강좌라도 듣고 온듯했다. 그들은 자동차를 렌트해서, 우리 신세를 지지 않고 부근을 돌아다녔다. 낮에는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야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기로 약속한 날에 떠났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손님들이 휴가 중이란 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일곱 시에 일어났지만, 그들은 대개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침대에서 뒹굴었다. 우리가 일하는 동안에 그들은 일광욕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훌륭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기꺼이 달려가는 열정이 있다 편리함보다는 음식의 질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뛰어난 요리사는 전혀 장사가 되지 않을 곳에 식당을 차려놓아도 성공할 수 있었다.
6월, 태양은 효력 좋은 신경안정제
이 지역 광고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한 운전자가 길 한가운데에 자동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아는 사람과 포옹하고 있었다. 저걸보게? 남자들끼리 입맞춤을 하잖아! 저런 불결하구먼! “너무도 낯선 행동에 그의 예절의식이 강간이라도 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상대와 항상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악수 대신에 목례하며, 여자 친척에게만 입맞춤하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는 애정표현은 개에게만 하라고 배웠다. 따라서 공항 검색원이 몸수색하듯이 몸을 더듬는 프로방스식 인사법은 처음에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인사법을 즐긴다.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의식의 미묘한 멋에, 매료되고 말았다. 따라서 프로방스 남자가 당신을 정말로 반가워한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껴안아서 가벼운 타박상을 입을 수도 있다. 프로방스에서 처음 내가 입맞춤을 한 번하고 뒤로 물러서자 신사인 체하는 속물이나, 선천적으로 쌀쌀맞은 사람이라 했다. 왼쪽 - 오른쪽 - 다시 왼쪽, 이렇게 세 번 입맞춤하는 것이라고. 개화된 사람들 사이에는 두 번이라고…. 아니에요, 세 번 해야 해요!
에어로빅이 프로방스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된다. 수다 떠는 십 분 동안에도 충분히 운동이 되는데 에어로빅을 따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프랑스에서 다녀본 거의 모든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손님보다 파리가 많은 조그만 마을의 초라한 카페까지도 좋았다. 엑스는 대학도시다. 카페에서의 행실에 관한 학위과정 1. 도착, 최대한 눈에 띄게 도착해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2. 입장, 식탁에 앉아 있는 한 친구가 알아볼 때까지 선글라스를 벗어서는 안 된다. 친구를 찾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깜짝이야!’라고 말하면서 친구를 만난다. 3. 의례적인 입맞춤, 식탁에 앉은 친구들에게 적어도 두 번, 때로는 세 번, 특별한 경우에는 네 번 입맞춤해야 한다. 4. 식탁예절, 일단 자리에 앉으면 선글라스를 다시 쓴다. 그래야 카페의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매력 포인트를 점검하려는 것이다. 담뱃불을 붙이는 모습, 설탕 조각을 우아하게 조금씩 갉아먹는 모습 등을 점검해야 한다. 이런 모습이 만족스러우면 선글라스를 코끝에 매력적으로 살짝 걸친다. 그럼 탁자에 앉은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다.
이런 동작은 오전 중반부터 초저녁까지 계속된다. 나는 카페의 탁자에 책이 놓인 경우를 본 적이 없고 고등 수학이나 정치 문제로 논쟁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학생들은 그저 멋지게 보이는 데만 관심을 둘 뿐이다. 그래도 그들 덕분에 미라보는 한층 화사해진다.
오늘은 휴일이라고 서로 위로하며 이런 방종을 합리화시킨다. 우리에겐 돌아가서 할 일도 없고,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곧 일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두 잔째의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엔 무엇을 할까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아픈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줘야 할까? 나는 아플 때 나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동정의 말을 들어야 위로가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프로방스의 기온은 영상 37, 39도에서 영하 7도까지 극과 극을 달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도로가 유실되고 고속도로가 폐쇄될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붓는다. 미스트랄은 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무지막지한 바람으로 겨울에는 모진 추위를, 여름에는 잔인할 정도로 건조한 공기를 몰고 온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볼 일을 일찌감치 끝냈다. 지중해 사람들의 지혜로운 습관, 즉 낮잠에 빠져들었다.
7월, 뤼베롱 잔자락세서 즐기는 불르
8월, 뒤죽박죽 염소 경주 대회
8월 들어 첫 주말에, 그들 이외에 수백만 명이 북쪽에서 내려오면서 도로를 변비 환자로 만들어버렸다. 리옹의 터널을 한 시간 만에 통과한 것도 운이 좋은 것이었다. 자동차가 뜨거워지는 만큼 인내심이 한계로 치달았다. 덕분에 레커차들이 그해 최고의 주말을 즐겼다. 그리고 한 달 후 탈출의 주말에는 반대 방향에서 똑 간은 시련이 재현되었다.
관광객은 티가 났다. 깨끗한 신과 하얀 피부, 밝은 색의 새 쇼핑백, 흠집 없는 자동차! 심지어 마을 사람들까지 예스런 흥취를 간직한 기념품처럼 쳐다보았다.
미스트랄이 갑자기 불기 시작했다. 상추 이파리와 빵부스러기가 접시에서 날아올라, 눈처럼 하얀 가슴과 실크바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이따금 셔츠 앞가슴을 정면으로 때렸다. 미스트랄은 식탁보까지 낚아채 돛처럼 활짝 펴며 초와 포도주잔을 뒤집어버렸다. 정성 들여 손질한 머리와 옷차림이 헝클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원시적이었다. 황급히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결국, 만찬은 지붕 아래에서 다시 지적되었다.
그 들은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깍듯하게 인사말과 악수를 하였다. 게다가 이름 대신에 직업으로 서로 불렀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귀족 직함처럼 길고 엄숙한 이름까지 만들어 냈다.
우리끼리 오붓하고 조용히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9월, 포도 수확의 계절
하룻밤 사이에 뤼베롱의 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별장들 - 간혹 굉장히 멋진 별장도 눈에 띈다. 별장에 자물쇠가 채워지고 덧문이 내려졌다. 문기둥에는 녹슨 긴 쇠줄이 채워졌다. 이제 별장은 크리스마스까지 비어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기상천외한 도난 부엌을 통째로, 옛 로마식 기와를 벗기고 고풍스러운 현관문을 떼어갔다. 9월 초는 다시 찾아온 봄 같은 느낌이었다. 낮에는 건조하고 더웠지만, 밤에는 서늘했다. 8월의 무더운 아지랑이가 물러나면서 공기가 한층 맑아졌다. 골짜기의 주민들은 무력증을 훌훌 털어내고 본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9월의 주말이면 3차 대전을 준비하는 듯한 소리가 시골을 뒤덮는다. 사냥철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소리였다. 프랑스에서 남자다운 남자라면 모두가 총을 메고 사냥개를 끌고, 사냥감을 찾아 산으로 향한다. 프랑스 사람들의 총에 대한 애착,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열정이 예컨대 사이클링이나 테니스, 스키를 시작하면 프랑스 사람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초보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사람은 전문가의 기준에 맞춰 장비를 마련한다.
10월, 진정한 빵의 궁전
낮에는 수영할 수 있을 정도로 더웠지만, 밤에는 모닥불을 지펴야 할 만큼 쌀쌀했다. 이른바 인디언 여름이었다. 한마디로, 잠자리에 들 때의 계절과 아침에 일어날 때의 계절이 달랐다.
비가 밤새 내리더니 다음 날에도 거의 종일 그치지 않았다. 굵고 따뜻한 여름 비가 아니었다. 수직으로 퍼붓는 잿빛 호우였다. 포도밭을 휩쓸고 지나가 작은 관목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리고, 꽃밥을 진흙탕으로 만들더니 결국에는 황하로 만들어버렸다.
‘상셰 피스’는 약속한 날에 불도저를 끌고 나타났다. “마음에 드십니까?” 다음 날 아침, 털털대는 자동차가 빗질해둔 듯 완벽한 찻길을 더럽히며 기어올라와 주차장에 몸서리를 치며 멈추었다. 겨울을 지내러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 일자리를 찾으려는 떠돌이 밭 일꾼처럼 보였다. 물론 부자인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다른 일도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두 손을 놀려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들을 도와주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나는 백만장자를 일꾼으로 써본 적이 없었다. 아니, 백만장자와 오랫동안 이야기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온종일 백만장자와 지냈다. 아들은 부모에게 거의 명령조로 소리치곤 했다. “여기에 한 삽 더 갖다 부으세요! 저기에 써레질 좀 더 하시고요! 발조심하고요! 포도나무를 밟지 마세요….” 진정한 가족노동이었다. 오후가 저물어갈 때쯤, <불도저 잡지>이 후원하는 ‘엘레강스 콩쿠르’에 출품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다져진 자갈길, 희끗희끗한 색의 소박한 자갈길이 완성되었다.
11월, 햇살 맛이 나는 올리브기름
프랑스 농부들은 손재주가 뛰어나다. 그들은 낭비를 증오하고, 무엇이든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미스트랄은 사흘 동안이나 불어대며 뒷마당의 사이프러스를 C자처럼 꺾어버렸고, 멜론밭의 엉성한 비닐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또한, 밤새 웅웅대면서 허술한 기와와 덧문을 걱정하게 하였다. 결코, 피할 길 없는 고약한 바람이 끊임없이 집 안으로 파고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우리 기운을 꺾어놓았다. “자살하기에 좋은 날씨에요.”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한두 명 정도 장례를 치를 거라고요.” 바람이 몇 주 동안 쉴 새 없이 불어대면서 인간의 뇌에 이상하고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12월, 아피 크리스마스! 보나네!
간을 도마에 올려놓았다.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간을 썰어내고 저장용 유리병에 눌러 넣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송로 조각을 그 위에 뿌렸다. 마치 돈을 요리하는 기분이었다. 프로방스의 크리스마스에서 절대 바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크리스마스의 주된 행사는 음식이었다. 프랑스 사람에게 몸을 다쳤다거나 재정적으로 파산했다고 이야기해보라. 그럼 웃고 말거나 예의상 동정을 표하는 것으로 끝낸다. 하지만, 먹는 문제로 곤경에 빠졌다고 말하면 그들은 하늘과 땅, 심지어 식당의 식탁이라도 옮겨서 당신을 도와주려 할 것이다.
프로방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프로방스라는 이름은 기원전 2세기경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프로빈키아 로마나, 즉 로마의 지방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프로방스, 알프스, 코트다쥐르 등 세 지역을 통틀어 프로방스 지방이라 한다.
프로방스는 유럽 사람들에게 낙원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일 년에 3백일이 넘는 프로방스에서, 5월의 여름 하늘은 9월까지 나날이 푸른빛을 더해간다. 여름의 강렬한 빛과 뜨거운 열기는 농가의 겉창을 닫게 하지만 무더위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없다. 라벤더, 백리향 같은 허브는 산책하는 이들의 발길에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해가 짧아지고 호두가 시장에 나오면 포도 수확기, 즉 농번기다. 11월이면 ‘보졸레 누보’를 포도주잔에 채운다. 겨울에는 프로방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눈은커녕 얼음도 보기 어렵다.
당신에게 일 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나는 프로방스 일대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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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짝지가 아들집에 갔다가
며느리가 사놓은 책을 몇권 빼더니 빌려왔다
모두 프로방스에 관한 책이다
ㅋㅋ
아무래도 며느리 내외보다
먼저 사고를 칠것 같다
원문출처 : 류창희 수필산책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