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9. 화요일.
1. 저희 아버진 1904년생이십니다. 살아계셨으면 오래 우리 나이로 110세가 되셨을겁니다.
2. 저희 아버지는 아버지 고향에서 가장 먼저 양복을 입으셨던 분이고 양복 바지 주름 죽는다고 영하 20도 추위에도 내복을 안 입으셨던 분입니다.
3. 당구는 고수셨고 유도도 고단자셔서 일본 순사들이 아버지에게 유도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휘겨 스케이트와 사이클 정구를 잘 하셨습니다.
4. 그 당시 중국 상해, 베트남,일본등을 관광을 위하여 여행을 하셨다고 하니 제법 사셨던 분이라 할 수 있고, 겁이 없으신 분이셔서 경찰서장, 일본군 대위, 일본 깡패 오야붕을 패주었던 분이셨습니다.
... 5. 저희 아버지가 학교 수위를 하실 때 아버지의 옛날 화려했던 삶을 기억했던 분들은 저희 아버지를 보고 '천하의 아무개가 학교 수위 노릇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6. 제가 어렸을 때였는데 그 말을 들으신 저희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7. '48에 너를 낳고 보니 정신이 버쩍 들더라. 학교 수위가 뭐냐? 똥구르마(죄송합니다. 우리 아버지 표현 그대로 썼습니다.)도 끌겠더라.'
8. 저는 1951년 전쟁 중에 태어났습니다. 그 때는 정말 먹고 산다는게 전쟁이었던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굶기지 않으려고 부두노동자, 미군부대 일용노동자등등 일을 가리지 않으셨고 정말 일이 없어 집에 쌀이 떨어졌을 때에는 친구 집에 가서 몰래 바지 주머니에 쌀을 훔쳐와서라도 저를 굶기지는 않으셨습니다.
9. 서울에 올라 오셔서 학교 수위가 되시기 전 저희 아버지의 직업은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찍는 노동자셨습니다. 당시는 기계로 연탄을 찍는 큰 연탄공장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연탄 찍는 틀에 연탄가루를 넣고 큰 나무 햄머로 내려쳐서 연탄을 만들었습니다. 그 일을 우리 아버지가 하셨습니다.
10. 정말 제가 자라나던 때는 밥굶는 일이 비일비재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아버지 때문에 한 끼도 굶지 않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학교에서 퇴직하신 후 수입이 끊기자 어머니가 제가 월급을 받을 때까지 학생들 하숙을 하여 생활을 하였습니다.
11. 저는 제게도 그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DNA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2. 어제 하루 종일 만일 내가 정말 가난한 교회의 전도사나 목사가 되어 교회에서 나오는 생활비가 없어서 우리 아이들이 굶게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13. 아침에 신문과 우유배달을 했을 것 같습니다. 운전을 할 줄 아니 택시 운전이나 대리 운전도 했을 수 있습니다.
14. 만일 그것도 여의치 않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박스라도 줍고 빈병이라도 주워 아이들을 먹였을 겁니다. 그것도 여러워 정말 집에 쌀이 떨어지게 되었다면 아는 사람 집에 몰래 들어가 쌀이라도 훔쳐왔을 겁니다.
15. 그리고는 주일 날 교회 나가서 설교하고 목사 전도사일을 할겁니다.
16. 아는 사람 집에 들어가 쌀 훔쳐온 건 회개도 하지 않을 겁니다.
17.어제 저녁 아내에게 밑도 끝도 없이 지금 당장 모든 수입이 끊어져서 굶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16. 식장 설겆이, 간병인 같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17. 극심한 가난이 나를 찾아 온다면 저는 그 가난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싸울 겁니다. 절대로 우리 집 아이들 굶기는 일은 하지 않을겁니다.
18. 제가 목사고, 그것도 제법 잘 나가던 목사였다고 할찌라도 깨끗이 잊어 버리고 정말 우리 아버지 거친 표현대로 똥구르마라도 끌러 나가겠습니다.
19. 절대로 가만 앉아서 가난에게 패배 당하지는 않겠습니다. 절대로 우리 아이들은 굶기지 않을 겁니다.
20. 굶지만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굿모닝 인사할 수 있는 당당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가난에 항복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워 우리 아이들 밥먹이며 사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행복하겠습니다.
21. '말로는 누가 못해?'라고 하실 분이 있으실는지 모르겠으나 말은 고사하고 생각해도 저는 오늘 아침 신납니다. 누가 뭐래도 전 그렇게 살 겁니다.
22. 우리 아버지처럼, 우리 어머니처럼.
23. 굿모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