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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천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베푸미
백두산문인협회(http://cafe.daum.net/bdsmunhak)에서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압록강, 윤동주 생가, 고구려 유적을 돌아보는
백두산역사문화기행 참가요청 메일이 왔길래
백두산,천지,윤동주 생가가 보고싶어 응했다..
8월4일 오후3시까지 인천 국제 여객선 터미널 휴게실에 모여라 했다..
걸망하나 달랑매고 만행떠나는 심정으로 물어물어 찾아갔다...
주최측에서 단체모자를 하나씩 줬다..총 24명이란다...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배를 타고 떠나는 외국여행이라 조금 설레였다..
주체측의 인도와 24명의 대중 흐름에 따라 행동하면 되었다..
배에 올라 배당된 자리를 잡으니 한가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선상에 나가보니.. 배웅하는 갈매기와 사람들의 교류가
너무 아름답고 정겨워 보였다..
인천대교 밑을 지날때는 인천대교를 한참 보았다...
저녁을 먹고 편안한 차림으로 제일 높은 선상에 오르니 찌뿌뚱한
마음이 싹 씻기우는 상쾌함이 밀려왔다..
저녁노을이 붉으스레 지는 가운데 사방팔방 바다뿐인 바다 한가운데
서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상쾌할수 없었다...
바다가 주는 넉넉함을 만끽하고 선실에 들어가니
주최측에서 단체미팅을 주선했다..
빙 둘러앉아 간단한 자기소개와 분위기를 위해 노래도
한곡씩 하라는 것이었다..
대충 들어보니 시인과 교직자가 대부분이었다..
나에게도 차례가 주어져 간단히 분위기에 맞춰 말하고
정지용의 향수를 불렀다..
내옆에 앉은이가 나이가 같고 자칭 좌빨이라며 고등학교 현직 선생님이라
하기에..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아서..벌떡 일어나서
나도 자비로운 빨갱이 자빨이라 말하고..
좌빨 힘내라며 패티김의 초우를 한곡 더 불렀다..
첫날밤은 배에서 자는 것이었다...몸시계가 깨워 일어나 습관적으로
좌선하다가 어슴프레 날이 밝아오는 것 같아 조용히 선상에 나가
바다 한가운데서 밝아오는새벽을 맞이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새벽을 맞이하는 마음은 정말 신선했다..
아침을 먹고 바다를 보노라니 중국 단동에 도착했단다..
대중흐름에 따라 중국입국수속을 마치니 현지 가이드가 맞이해 주었다..
준비된 버스에 올라 이동하는데 주최측에서 긴급상황이라며 비가
많이와서 천재지변으로 길이 막혀 예정대로 곤란하다며 윤동주
생가와 고구려 유적탐방중 하나를 택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동행하는 구성원들이 대부분 문인들인지라 윤동주 생가를 택하는 것 같아
내마음도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 별이 스치웠다..
단동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느라 황금같은 첫날을 널부러져 자빠뜨렸다..
천재지변으로 어쩔수 없이 예정에 없던 기차표를 따라 심양까지
앉아가고 심양에서 백두산역인 백하까지는 침대칸으로 간단다..
주마간산격으로 달리는 기차안에서 중국을 볼수밖에 없었다..
기차밖은 우리 조상의 땅 옛 고구려 영토였다..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인 기차는 여섯명이 마주보고 가야했다..
심양에서 같은 기차 침대칸으로 옮겼다...
침대칸은 3층으로 되어 있었다..맨위 3층이 배정되어 있었다..
누울수 밖에 없는 3층 침대칸에 올라 누우니 조금은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잠이 든 가운데 기차가 멈춰 있는것 같아 기차도 잠을 자는가 싶었다..
날이 밝아 기차밖 풍경을 구경하노라니 중국에는 만만디라는 것이 있단다..
만만디라는게 중국인들의 뱃짱으로 여겨졌다...
중국에서는 만만디라는걸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중국뛘놈이라는 말이 나왔을께다....
만마디로 무려 2시간이나 연착하여 백하역에 도착했다..
버스로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곧바로 백두산으로 향했다...
정상을 앞두고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백두산 북파에 도착했다..
정상은 예상대로 바람이 거칠게 불고 추웠다..
준비했던 옷을 껴입고 조금 걸으니 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맑고 고요함과 時空을 초월한 순간에 머물러 멈췄다...
도인스님 친견하는 순간과 똑같았다..
어디 한점 갖다댈수없는 백두산 천지를 마주하였다...
아 ! 이것이 그토록 보고싶었던 천지라 말인가?
언어도단 심행처멸...확연무성(廓然無聖) 그 자체였다...
사량분별을 전혀 허용치 않았다...
순간의 느낌을 영원히 간직하기로 하고 대중흐름에 따라 사진도 찍고
이리저리 둘러 보고 장백폭포에 들렀다...
장백폭포를 보고 온천을 했다...
온천은 단체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한단다..
목욕비가 중국돈으로 80원,우리나라 돈으로 만육천원이었다..
비싼것 같아서 하고싶지만 안할려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한분이.."스님 들어 갑시다"한다..
귀신같이 내마음을 알아차리고 표를 두장 들고 있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지금의 내형편으로는 만육천원 목욕은 할수 없는 것이었다..
참 고마우신 분의 배려로 백두산 천지 온천욕을 할수 있었다...
목욕탕 시설은 열악했다..중국뛘놈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목욕비를 만육천원이나 받아 먹으면서 시설은 고작 우리나라
최하위 목욕탕 사설보다 열악했다..
사실 여길 시설보고 들어온건 아니지만 가격에 비해 너무 열악했다...
백두산 천지에 손담그고 싶은 마음을 백두산 유황온천에 푸욱 담구고
천지물인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하며 본전을 충분히 뽑았다..
온천을 하고 점심먹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뜻밖에 주최측에서 나에게 건배사를 해라고 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었다...
난 그저 감지덕지하며 대중흐름만 따르기로 했는데
나에게 건배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기일회(一機一會)..
주어진 조건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禪客의 입장인지라...
벌떡 일어나 잔을 들고 순간적으로 외쳤다..!!
"배에서도 같이 자고 기차에서도 같이잔 우리는 영원한 백두산 동지 !!
천지를 위하여...!!"
임기응변이었지만 괜찮았던거 같았다...
윤동주 생가를 보기 위해 연길로 향했다...
4시간여 달리는 버스안에서 돌아가면서 백두산 천지를 본 소감 발표와
노래를 하는 자리가 펼쳐졌다...
앞자리에서 부터 차례차례로 맨뒷자리에 앉은 나에게도 왔다...
나도 대중들과 똑같이 앞에 나가 꿈에 그리던 백두산 천지를 보게해준
대중들께 고마움을 말하고 집에 갈때까지 아무 탈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래는 위키리의 "미련도 후회도 없다"를 불렀더니..앵콜이란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앵콜인지라 들뜬 마음에 "숨어우는 바람소리"를 불렀더니
앵콜 안했으면 큰일날뻔 했단다...
내차례가 끝나니 숙소에 도착했다...
황금장호텔인가 최고급호텔이란다...
2인1실 나는 갑장인 자비로운 빨갱이 자빨 선생님과 짝이 되어 방을 잡았다..
다들 안마 받으러 가는 것 같았는데 내짝은 굉장히 진보적 사고이면서
행동은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나는 룸메이트 덕분에 편안히 쉴수 있었다...
5박6일간의 여정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편안한 룸메이트 덕분에 아주아주 편히 쉴수 있었다...
몸에 밴 습관에 의해 잠깨자마자 좌선을 취하고 있으니 희끄므레하게
창밖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난 조용히 호텔을 빠져 나와 개인적으로 중국을 구경했다..
조선족 자치구인지라 한글을 위에 쓰고 한문은 밑에 씌여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호텔주변에 있는 강가에 가서 거닐다가 강을 건너 걷다보니
보고 싶었던 중국 재래시장이 나왔다..
내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속이 상했다...
중국 재래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뭔가 한번 사볼까 싶어...
생각해보니..내손으로 직접 시장에서 뭘 사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큼지막한 포도송이가 맘에 들어 옆에서 지켜보니 무게를 달아
값을 치르는 것 같았다..
적당한 크기를 포도송이를 가리키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 네닢을 주니
무게를 달더니 손가락을 다 펴보인다...
나는 없다고 손을 흔드니 가져가라며 준다...
큼지막한 포도를 한알한알 먹으며 중국 재래시장을 구경했다..
행여 호텔에서 나를 찾을까봐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돌아가니
다행히 찾지는 않았던거 같았다...
샤워를 하니 샤워물이 제대로 안나왔다...
시설이 안좋은 호텔이었다...쫄쫄쫄 나오는 물로 간신히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윤동주 생가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 한분이 동승했다..
윤동주 생가는 연길에서 차로 40분정도 걸리는 용정에 있었다...
가는 길에 일송정과 해란강을 보여줬다..
윤동주 생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의분을
이곳 용정에서 삭히시었다..
그리고 윤동주님은 그렇게까지 행동도 안했는데..
다만 일본 유학시절에 가방에 무슨 유인물이 있는 것에 걸려
잡혀가서 29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놈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처리됐다는
사실에 치가 떨리며 일본놈들의 무지막지한 악행에 내 온몸이 부르르르
떨리고 털끝 하나하나가 분노로 파랗게 질러 버렸다...
대성중학교를 둘러보고는 뼛속깊이 나라잃은 서러움이
스며드는게 느껴졌다...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는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뇌아리며 다음 목적지인 압록강으로 향했다...
용정 현지 가이드는 조선족 가장들이 한국에 돈벌러 가는 바람에
조선족들의 가정이 파괴된 현지실정을 말하면서 울컥이곤 했다..
일제시대때는 나라잃은 설움에 민족끼리는 하나였는데
지금은 돈벌려고 조선족 가정의 절반 정도가 파괴되어 살아간다는 것에
퀭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맺혀지기도 했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가정이 파괴된다 말인가?
행복이 돈으로 판가름 나는 것인가?
물질 만능주의가 빚은 현실이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되어 먼데 산을 보며 용정 현지 가이드와
작별하고 기차를 탔다..
이번에는 3층칸을 우리 팀들이 모여 쓸수 있어써 다행이었다...
한식구가 되어버린 느낌인지라 다들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심양에 도착하니 비가 오고 있었다..
버스까지 우르르르 뛰어가니 재미가 있었다..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고 압록강으로 달렸다...
차창밖으로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도 비가 많이 와서 버스에 비가 새고 있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몇시간이나 달리더니 다왔다며 내리란다..
내리니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다행히 멈추는게 아닌가...?
사진으로만 보던 압록강과 압록강 철교를 보게 되었다...
6,25때 끊어진 압록강 철교는 끊긴 곳까지 갈수 있었다..
끊긴 곳까지 가서 북녘땅을 바라보니 손만 내밀면 닿을수 있는
북녘땅이 눈앞에 있었다...
북한만 생각나면 이명박이가 괘씸해진다...
우리 민족끼리 잘해보자고 시작한 햇볕정책은 세계가 부러워 하는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전환점이었는데 이명박이 들어서서
우리 민족끼리 또 전쟁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왜? 우리 민쪽끼리 전쟁을 하여야 하는가?
중국과 미국의 개가 되어 우리 민족끼리 전쟁하자며
으르렁대는 꼴이 정말 싫다...
햇볕정책은 미국,중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공감하고 시의적절한 조치에
노벨 평화상까지 주지 않았던가?
사람이 미워도 좋은건 인정하고 살려나가야지..
이명박처럼 내가 당선됐으니 내방식대로 해야된다는 것은
독재나 다름없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명박은 물러나야 하고
한나라당은 해체되어야 하고 조중동은 박살되어야
대한민국이 제대로 서게 되고 진정한 해방인 통일이 될 것이다..
햇볕정책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독립운동이며 통일운동인 것이다..
북한은 절대로 햇볕정책이외에는 죽었으면 죽었지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외부에서 물리적으로 압박을 가해서 북한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3차대전을 각오해야 될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같이 죽자고 나올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
남한의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일부분 정도만 베풀어도
햇볕정책은 유지되고 엄청난 남북긴장 비용을 줄일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은 서울시장하면서 청계천 공사로 대통령이 되어
임기내 뭔가 이루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4대강 속도전과 전쟁불사 운운하는 걸 보면 일본놈이 한국사람으로
위장하고 우리의 영혼을 고갈시킬려고 하는것만 같다..
임기를 채워봐야 5년인 선출직 공무원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4대강 사업과 남북문제를 한나라당과 조중동 빽만 믿고 밀어부치는
행태를 보니 이명박의 앞날도 뻔하다...
이명박은 두고두고 역사에 민족의 반역자로 남게 될것이다..
하찮은 詩 한구절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며 영원성을 띄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젖줄인 4대강과 남북통일 문제를 겨우 임기 5년인 선출직
공무원이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믿고 함부로 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조중동도 속으로는 지구촌이 인정하는
햇볕정책만큼 더 나은 정책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놈들 정권잡을 욕심에
퍼주기로 흑색선동 할수 밖에 없었을게다...
고약한 놈들!!
지놈들 정권잡을 욕심에 눈이 멀어 민족의 가슴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다니....
압록강 끊어진 철교 끊긴 곳에서 손내밀면 닿을것 같은 북녘땅을 바라보며
민족의 애환에 젖어 있다보니 대중들 맨뒤에 처지게 되어 허겁지겁 뛰어
버스에 오르니 우리가 버스타기를 기다렸다는듯이 비가 쎄차게 쏟아졌다..
시간에 쫓겨 버스안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귀국행 배를 탓다..
귀국행 배에서는 음악 전공 전직 교장선생님께서 즉흥적으로 작사작곡 하신
"백두산"을 단체로 배웠다..
"백두산 백두산 민족의 산이여 민족의 산이여..
역사를 딛고넘어 여기에 이렇게 이렇게 여기에..
문화민족 긍지를 드높히거라..
기행으로 왔다가나 영원하라 백두산아 영원하라 백두산아".....
이번 5박6일의 백두산,천지,윤동주 생가,압록강 철교, 친견은
나에게 있어 많은 것을 체험케 해 주었다...
무었보다 백두정상의 천지는 道의 경지는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것을
가슴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백두산 천지를 처음 대할때의 그 느낌을 항상 간직하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가 정말 간직하고픈 느낌은
스스로 그 느낌을 지키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참선수행 과정에서 보임에 해당되겠지만
정말 자기가 개인적으로 소중했던 기억은 화두 챙기듯이
순간순간 되새김해서 은연중에 완전히 자기것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백두산 정기를 잘 지키고 가꾸어서
백두천지일주배(白頭天地一酒盃)
백천삼매돈훈수(百千三昧頓薰修)되도록 하여야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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