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3는 MGS와 같이 잠입을 주 테마로 하는 종류의 게임이며, MGS보다 이를 좀더 강조합니다. 적이 모르는 사이에 기습하여 죽여버리면 다양한 어드벤티지가 주어지거든요. 게임 자체의 형태는 많이 달라보이지만 MGS가 확립한 ' 잠입 ' 이라는 요소를 적극 차용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불릿 타임이라는 시스템이 맥스 페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위치에 놓이는 것과 같죠. 그러나 아래에서는 이런 잠입 게임으로서 천주3의 위치보다는 조금 다른 면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1. 게임과 현실 사이
아시겠지만, 게임에서 지나치게 리얼리티가 강조될 경우 게임을 망치게 됩니다. 현실의 불편함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재미있는 부분만을 뽑아내어 구성된 것이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 물론 반대 방향에서 접근하는 쪽이 더 많습니다. ) 이는 당연한 것이죠. 기술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던 시대에서 서서히 3D 환경이 보편화되어 나가며 ' 보다 리얼하게 ' 를 부르짖는 게임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이런 사실이 간간히 잊혀지는 것 같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은 현실이 아니기에 재미있는 것이니까요.
천주3는 이런 점을 잘 살린 것 같습니다. 실제와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게임이 더 잘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예를 들어 천주3의 적 ( 몬스터 ) 은 위아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비교적 먼 곳에 있어도 같은 높이에 위치한 플레이어 캐릭터는 즉각 알아보지만, 바로 코 앞에 있어도 한 층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는 경우는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실제라면, 바로 코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를 못볼 리가 없는데 말이죠. 맵의 구성을 봐도 이런 점은 두드러집니다. 설정상 사람 사는 집이거늘 이 집의 구조는 위 아래 좌우로 미로처럼 꼬여있어서 3D 미로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비실용적인 집에서 대체 누가 살 수 있을까요? ^^;; 그러나 게임 내에서는 너무도 태연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 입체 ' 닌자활극을 연출하기 위해 레벨 디자인된 요상한 내부구조의 집들이 버젓이 존재합니다. 실제와는 다른 게임에서만의 독특한 규칙들이 사소해 보이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게임을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현실을 흉내내고 있으되 현실과는 다른 차이점을, 빨리 파악할 수록 게임을 풀어나가기가 좀더 쉬워집니다. 좀더 수월하게 잠입하기 위해서 적의 시야한계 ( 멀리 볼 수 있지만 바로 위, 바로 아래는 잘 보지 못한다 ) 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룻바닥 삐걱거리는 소리는 적에게 안들리지만, 아주 작은 물방울이 튀는 소리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게임 진행이 가능해지고, 재미있어지죠. 이런 규칙들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천주3의 이러한 ' 게임 내적인 정합성 ' 은 대단히 잘 지켜지고 있으며, 이를 활용할 기회도 많이 주는 편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접근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적에게도 게임에서만 통용되는 특별한 규칙들을 활용하면 가능해집니다. 즉, 천주3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거죠.
이런 장치들은 크게 두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첫번째는 적응. 게임이 마련한 내부적인 물리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과정, 그런 요소들을 찾아나가면서 그것을 적에게 시험하는 과정이 즐거움을 줍니다. ' 어, 이렇게 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 라던가 ' 헉,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간파해버리는군 ' 과 같은 상황을 자주 겪습니다. 두번째는 그것을 활용하는 단계가 되죠. 자신이 파악한 게임 내의 규칙들을 다양하게 응용하여 ' 이것도 될까? 과연, 되는군 ~!! ' 과 같은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
2. 자유도
천주3에서는 ' 적은 범위내에서의 많은 자유 ' 를 제공합니다. 미션을 수행하는 순서와 같은 것은 플레이어가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일의 진행이 어찌 되어 나갈 것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특정한 목표를 지정해주고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 또는 수단만은 전적으로 유저에게 일임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 무엇을 어떻게 하든 ' 의 여지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천주3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각 스테이지는 광범한 지역을 담고 있으며, 유저는 특정한 목표지역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물론 들키지 않고 적에게 죽지 않고 가는 것이 좋겠죠? 그리고 맵에는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아주 많은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것은 자기 맘대로입니다. 여기에 변수로 주어지는 것이 ' 적의 배치 ' 입니다. 어떤 사람은 줄타고 위로 올라가서 아래로 습격하여 죽여버리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조용히 땅굴을 타고 피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태연하게 적이 망보고 있는 바로 뒤를 스쳐 지나가듯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 적은 범위 ' 에서의 자유도입니다. 목표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렇고,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사용한 수단과 방법이 이후의 플레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넓은 범위의 자유도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이 철저히 유저의 선택에 의존한다는 점, 아울러 그 폭이 대단히 넓다는 점에는 주목할만합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 목표 지점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젤다의 전설 : 바람의 택트 와도 비교해볼만 합니다. 젤다도 역시 비슷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젤다와 천주3는 자유도의 부분에서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젤다의 전설은 위에서 언급한 ' 목표지점 ' 은 물론,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세분화되어 있으며, 수단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천주3 에서 ' 스테이지1의 목표는 A 지점에 도달하는 것. 가는 방법은 니맘대로. ' 라고 한다면 젤다의 전설은 ' 1번째 섬에서 목표는 A 지점에 도달하는 것.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A-1, A-2, A-3, A-4 지점을 지나야만 한다 ' 라고 되어있는 것이죠. 아울러 A-1, A-2, A-3 등의 지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 반드시 부메랑을 사용해야만 함 ' ' 반드시 훅샷을 사용해야만 함 ' ' 반드시 나뭇잎을 사용해야만 함 ' 등으로 사전에 방법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게임 디자이너가 정교하게 안배해 놓은 길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부분은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액션의 요소가 좀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천주3와, 철저하게 어드벤처인 젤다의 전설 : 바람의 택트 사이의 장르적 특성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스테이지 클리어 방법에서 다양성보다는 연출된 즐거움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천주3 쪽이 좀더 '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서 풀어나가는 ' 즐거움을 준다고 할까요? 젤다의 전설이 ' 서울에서 부산에 가야한다. 조건이 있다. 날아서 가라. '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천주3 는 ' 서울에서 부산에 가는데 니맘대로 가라 ' 라고 말하는 느낌입니다. 전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비행기가 답이죠. 후자는 시간과 노력, 감수해야하는 위험 등등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가든 자동차를 타고가든 걸어가든 자기맘입니다.
3. 자유를 보장하는 것
비록 좁은 범위내에서나마 그 다양성의 측면에서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천주3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생각해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1에서 언급했던 게임 내의 정합성이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동작하고 저 경우에는 다른 식으로 동작한다면 이런건 있을 수 없겠죠. 그러나 천주3의 레벨 디자인과 적의 움직임은 언제나 자신들이 만든 규칙들을 철저히 준수합니다. 그렇기에 유저는 초반에 이 규칙들에 익숙해진 후에는 자유로이 이들을 응용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이 규칙들이 지나치게 많았거나 정교했다면, 오히려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에는 이런 일이, 저 경우에는 저런 일이 벌어진다 .. 라고 하면 모든 경우에 대해 모두 익혀야만 하며 조금이라도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 이번엔 어떻게 되는거지? ' 라는 걱정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천주3의 간략화된 몇 개의 대표규칙들은 유저가 익히기 쉽도록 직관적이면서 간결합니다. 이들이 조합될 경우에는 충분히 이해가능한 범위내에서 복잡해지죠. 규칙 자체가 광범하다면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만, 몇 가지의 규칙들을 조합하여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천주3는 자신들만의 규칙을 확고하게 세웠고, 이 규칙들을 플레이어에게 비교적 잘 전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한적이나마 풍부한 자유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 잠입 ' 의 특성이 주는 두근거림과 맞물려서 썩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