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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交泰殿)
교태전(交泰殿)은 강녕전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태전의 정문격인 양의문을 들어서면 훤하게 펼쳐지는 전각으로 이곳은 경복궁의 안주인인 왕비의 침전이자 내명부를 다스리던 왕비의 정치적 공간이자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입니다.
교태전은 태조 초년 경복궁이 처음 세워질 때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없었던 것 같으며 건축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세종실록에 의하면 경복궁이 들어선 후 약55년 후 세종22년인 1440년에 지어졌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4년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인 다시 지었는데 10년 후 다시 불타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에 다시 지었습니다.
<이 사진은 창덕궁의 대조전으로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 나온 목재로 지은 전각입니다>
그 후 1917년 창덕궁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일본 애들이 고의로 화재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음)하여 침전인 대조전과 희정당, 경훈각 등이 소실되자 당시 비어 있던 궁궐인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함원전 일대의 건물들을 헐어 그 목재를 조달하여 1920년 창덕궁의 침전인 대조전과 희정당을 짓는데 사용되었습니다.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타 창덕궁의 전각이 소실되고 창덕궁의 전각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멀쩡한 경복궁의 침전 일대를 헐게 되니 이런저런 이유로 양쪽의 궁이 수난을 당하고 침전 일대는 빈 터로 남아 있다가 1995년에 복원하였습니다.
교태전은 강녕전과 같이 하나로 된 독립된 건물과 달리 우측 측면으로 진료를 맡아보았던 원길헌이 있고 좌측으로는 함홍각이 있으며 후면 아미산이 있는 쪽으로는 중전의 산실로 쓰였던 건순각 등 여러 건물들과 붙어 있습니다.
또한 교태전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으로 용마루를 두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갑설은---중전이 거처하는 중궁전은 임금이 찾는 곳인데 임금은 곧 용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건물아래 용이 둘이 있을 수 없다 해서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고
을설은---임금이 늦게까지 정사를 돌보다가 아니면 술을 마시고 중궁전을 찾을 때 어두운 가운데서도 지붕을 보면 용마루가 없어 쉽게 중궁전을 구별할 수 있도록 설치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는데 아마도 갑설보다는 을설이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교태전의 동측합각입니다.
붉은 벽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가운데 검은 벽돌로 수(壽)자를 넣어 장수를 기원하였습니다.
교태전의 서측합각입니다.
붉은 벽돌로 길상을 의미하는 만자무늬를 아름답게 꾸미고 가운데 검은 벽돌로 복(福)자를 넣어 만복 기원하였습니다.
창덕궁 대조전의 동측 합각입니다.
교태전은 벽돌로 아름답게 꾸민반면 대조전은 나무판자에 수(壽)자를 넣어 장수를 기원하며 통풍구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대조전의 서측 합각입니다.
교태전은 벽돌로 아름답게 꾸민반면 대조전은 나무판자에 복(福)자를 넣어 만복을 기원하며 통풍구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교태전의 내부
교태전의 현판은 1994년 사진으로 남아 있던 옛날 교태전의 현판을 복원한 것이며 교태(交泰)란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는 뜻입니다.
교태전의 잡상인데 함께 지은 함원전 흠경각의 잡상과 생김과 모양 그리고 배열이 같습니다.
양의문(兩儀門)
교태전 남측 행각 중앙에 있는 문으로 사실상 교태전의 정문격으로 삼문을 설치하여 중앙으로 왕이 통행을 하였으며 교태전과 함께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 졌습니다.
양의(兩儀)란 『양과 음』을 의미인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남자와 여자“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원길헌(元吉軒)
교태전 동쪽에 교태전과 붙여 지은 건물로 교태전을 중건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고종28년인 1891년 이곳에서 약원들이 진료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원길(元吉)이란 『크게 선하여 길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함홍각(含弘閣)
교태전 서쪽에 교태전과 붙여 지은 건물로 교태전을 중건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북궐도형과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함홍(含弘)이란 『포용하고 너그럽다』는 의미로 함홍광대(含弘光에大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승순당(承順堂)
교태전 남쪽 행각 중앙에 있는 양의문 동쪽에 위치한 당으로 보의당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언제 지어졌는 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승순(承順)이란 『받들어 순종한다.』라는 뜻으로 부인에게 유순함을 받든다는 덕성을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이같이 작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의당(輔宜堂)
교태전 남쪽 행각 중앙에 있는 양의문 서쪽에 위치한 당으로 승순당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보의(輔宜)란 『천지의 마땅함을 돕는다.』라는 뜻입니다.
보의당의 현판
보의당의 현판이 “輔宜堂”라고 서야 맞으며 북궐도형이나 동궐도에도 “輔宜堂”으로 표기되었으나 현재 현판은 “輔宣堂”으로 달려 있는데 현판을 재작하여 달 때 宜과 宣이 비슷하여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체인당(體仁堂)
교태전 동쪽 행각 중앙에 있는 만통문 옆 서측에 위치한 당으로 내순당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체인이란 『인을 견주어 본을 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만통문(萬通門)
교태전 동쪽 행각 중앙에 있는 동문으로 체인당과 붙어 있으며 고종4년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 졌으며 만통(萬通)이란 『만물이 형통하여 태평하다.』라는 뜻입니다.
내순당(乃順堂)
교태전 서쪽 행각 중앙에 있는 재성문 옆 서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체인당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내순(乃順)이란 『순종하여 하늘을 받는다.』라는 뜻으로 내순승천(乃順承天)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재성문(財成門)
교태전 서쪽 중앙에 있는 서문으로 내순당과 붙어 있으며 고종4년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 졌으며 재성(財成)이란 『계획하여 이룬다.』라는 뜻입니다.
함형문(咸亨門)
함원전에서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으로 들어가는 서쪽문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건순각의 서문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함형문은 북궐도형과 궁궐지에 나오며 함형(咸亨)이란 『난물이 모두 형통하다』는 뜻으로 품물함형(品物咸亨)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건순각(健順閣)
교태전 후원 아미산 뜰 앞에 있는 건물로 왕비가 왕자를 순산하던 곳이라는 건순각은 뒤에서 보면 별도의 건물로 보이지만 교태전 동측에 붙여 지은 건물이며 교태전 앞에서 보면 우측의 원길현만 보이고 뒤편에 있는 건순각은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완전히 돌출되어 지어진 건물로 아담하게 보입니다.
남동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고종4년인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 졌으나 고종13년인 1876년 화재로 인해 교태전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이후 중건되었으나 창덕궁 화재로 인한 목재조달 때 교태전과 함께 헐렸을 것이며 지금의 건물은 교태전과 함께 1995년 복원되었으며 건순(健順)이란 『굳세며 유순하다.』라는 뜻입니다.
건순문(健順門)
자경전 서측 넓은 공터에서 교태전 뒤쪽 건순각으로 들어서는 문으로 이 문을 들어서면 앞은 건순각이지만 우측으로는 아미산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며 밖에서 들어서기 전 건순문을 보면 매우 아름다운데 이는 아미산을 둘러싼 담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문설주 양쪽으로는 붉은 벽돌로 수놓은 여러 문양과 당초문양이 있습니다.
원지문(元祉門)
교태전 뒤 아미산 동산을 연결시킨 꽃담은 가운데 원지문을 두고 양쪽으로 있는 이 꽃담은 우아하면서도 단아한 국모의 성품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교태전 후원에 있는 아미산으로 들어서는 문으로 원지문의 위치는 건순각 옆이 아니며 자경전 서측 넓은 공터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문은 화려하지 않으나 문설주 양쪽으로 이어진 붉은 벽돌의 담장과 담장에 수놓은 여러 문양이 아름답고 돋보입니다.
이 문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북궐도형이나 궁궐지에 나타나 있으며 원지(元祉)란 『큰 복』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휘문(延暉門)
교태전 뒤뜰의 건순각으로 들어가는 동쪽문으로 문의 형식이 월문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건순각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은 이문을 지나 건순문을 만나고 다시 아미산담장으로 이어지다 원지문으로 이어지는데 이 담장의 여러 조각과 무늬로 아름답게 꾸몄는데 이 연휘문에서 비롯하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의 담장의 아름다움과 월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연휘문은 일반적인 문과 달리 문지방과 양쪽 문설주는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윗부분은 대리석위에 붉은 벽돌로 아기자기한 모양을 내며 위로 솟았고 위는 문 중앙 위는 아치형으로 단장을 한 후 기와를 입혔고 기와 아래는 붉은 벽돌로 무지개 형식을 취했고 위에는 가운데 나티가 있고 좌우로는 학이 조각된 전돌같은 판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나티는 악귀와 액운을 방지하며 학은 장수를 의미합니다.
아미산(峨嵋山) 정원
교태전의 후원에 자리 잡고 있는 정원으로 태종 때 근정전 서쪽에 연못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그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으로 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으며 일부에서는 교태전 부근의 건물이나 조형물들이 세종 때 만들어졌으므로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아미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러 산이 있는데 대표적인 아미산 중국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당나라의 시인 이백의 아미산 월가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는데 이 산은 모양이 매우 아름다워 시인 묵객들이 이를 두고 시를 읊거나 그림으로 그릴 정도로 선경을 이루고 있다는 이 명산의 이름을 빌어 교태전의 후원을 아미산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교태전의 후원은 계단식 화계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계단식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에 맞게 경사진 후원을 생긴 그대로 정원을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이나 아미산 정원은 경회루가 있는 연못을 조성하며 나온 흙으로 인공으로 만든 가산을 계단식으로 만든 화계입니다.
궁궐의 깊숙한 곳 왕비의 침전이 있는 부근에는 정원을 가꾸는 것이 상식인데 이는 왕비를 비롯한 후궁, 상궁 그리고 궁녀까지 일단 여자가 궁궐로 들어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므로 왕비를 비롯한 여자들을 위해 정원을 만들고 정원에 아름다운 나무나 꽃들을 심어 계절마다 꽃구경을 하도록 배려를 한 것입니다.
아미산 정원의 굴뚝---보물 제 811호
아미산 정원 화계 3단에는 붉은 벽돌로 아름답게 단장을 한 굴뚝 4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 굴뚝은 보물 제 811호로 고종2년인 1865년에 만든 것인데 서양이나 중국의 경우 침대를 사용하고 일본은 다다미를 사용한 반면 우리 선대들은 온돌을 만들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는데 이 굴뚝은 교태전의 온돌을 설치하고 불을 땔 때 연기가 배출되도록 세운 것인데 왕비가 거처하는 곳이라 굴뚝의 용도 이외의 화계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게 멋을 가미하여 만들었습니다.
<보물 제811호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1 >
아미산 굴뚝은 기능은 연기를 배출하는 것이지만 그 형태나 위치가 정원과 어우러져 뛰어난 조형미를 이루고 있는데 왕비가 사는 교태전 뒤에 조성되어있으며 소나무, 매화, 불로초, 학, 박쥐같은 무늬를 넣었습니다.
<보물 제811호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2 >
아미산 굴뚝은 현재 4개가 있는데 육각형의 굴뚝에는 여러가지 형상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했으며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했습니다.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는 굴뚝으로 사시사철 풍성하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있는 가운데 시나브로 4개의 굴뚝이 굽이굽이 선계로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굴뚝에는 당초무늬, 학, 박쥐, 봉황, 나티(용), 소나무, 매화, 대나무,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나비, 해태, 불가사리 등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한 만큼 생생한 천문도이며 우리 인간세상의 잡다한 일들은 굴뚝의 연기로 모두 잠재우라고 합니다.
<보물 제811호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3 >
아미산 굴뚝에는 돌을 구워 그린 매화, 가지끝 둥근 달에는 한 마리의 새가 있고 매화나무에는 매화가 피었으며 난초,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과 온갖 화초와 새들이 새겨져있습니다.
길상무늬에는 십장생이 있고 국화에 나비가 얹은 것 쌍학이 천도를 맞잡아 문것, 바위위에 석류나무가 솟아 가지마다 석류가 영근 것, 고목 매화나무가 가지를 뻗어 꽃이피어나고 그곳에 새한마리가 날아들고, 모란이 피어나는 곳에 벌 나비가 날아들고, 붉은 진달래가 봄뿐만 아니고 사시를 두고 피어나있는 것 용이나 봉황 그리고 박쥐같은 상서로운 동물은 물론 대나무, 매화, 포도와 같은 식물과 뇌문이나 만자문과 같은 길상무늬 등도 많습니다.
6각형으로 된 굴뚝의 각 면에는 당초덩굴 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등 십장생과 사군자 장수와 부귀 그리고 화마를 막는 상서로운 동물들의 문양을 설치하였는데 각각의 문양은
십장생 : 학, 사슴, 소나무, 바위
사군자 :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당초문 : 당나라 풍의 덩굴 문양을 말하며 길상의 덩굴 풀의 연쇄적인 형상을 그린 것으로 부귀만대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문양입니다.
박쥐 : 박쥐 문양은 한문으로 박쥐 복(蝠)자의 음을 그대로 딴 것으로 복 받기를 기원하는 길상문양입니다.
봉황 : 봉황이란 한 마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라하며 한쌍을 봉황이라 부르는데 봉황은 용(龍)과 학(鶴)이 사랑을 나누어 태어났다는 상상의 새이며 외형적인 특징은 뱀의 목과 제비의 턱과 거북의 등과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는 신성항 동물로 길운과 사악함을 물리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불로초 : 주로 기와문양과 굴뚝의 문양에 사용하며 장수와 소원성취를 의미합니다.
국화 :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입니다.
낙하담(落霞潭)과 함월지(涵月池)
『노을이 내려앉는 연못』이라는 뜻의 낙화담
낙하담은 아미산 화계 2단 좌측에 설치되어 있는 석조로 『노을이 내려앉는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달을 머금은 연못』이라는 뜻의 함월지
함월지는 우측에 설치한 연못으로『달을 머금은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낙하담이나 함월지는 통돌을 파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을 심는 연못이 아니라 물이 가득한 상태에서 그 못에 비친 달을 감상하기 위한 못이라 생각이 됩니다.
비슷한 못으로 창덕궁 후원 청심정 정자 앞에 빙옥지라는 통돌로 파서 만든 못이 있는데 빙옥지에 물을 가득 채운 뒤 달밤에 못에 비친 달을 정자에서 감상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청심제월(淸心霽月)이라 하여 상림십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