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 재 지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2. 마을연혁
ㅇ 함라면은 원래는 함열군의 치소(治所)인 읍내였으므로 군내면(郡內面) 또는 현내면(縣內面)이라 하였으며, '함라'는 함열의 별호(別號)이고 함열군의 치소가 지금의 함라면 함열리에 있었기에 여기에서 면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함라'라는 명칭은 이곳의 주산(主山)인 함라산에서 취한 것이다. 1914년 일제시대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부근에 함께 있던 몇 개 마을(갈마동· 행동·천남리·천북리·수동·안정리·교동)을 병합하여 함열리라 부르게 되었다.
3. 마을현황
ㅇ 마을의 경관은 주산(主山)인 함라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로 인근에 향교가 위치하고 있고 아사(衙舍) 위 소재지의 위쪽마을을 의미하는 수동마을이 중심 고을로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함라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을 측면으로 흘러내려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의 마을로 생각되나 지금은 하천(河川)을 복개하였다.
ㅇ 마을 뒤로 함라산이 주산으로 되어있고, 그 옆으로 와우산이 있어 마을 전체를 싸고 있고, 앞으로는 익산 황등방향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데 원래는 이곳이 호남 3제(堤)였던 황등제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 마을은 농경에 유리한 지형적 조건으로 일찍부터 조성되었다. 와우산이라는 명칭은 소가 누워있다는 형세에서 따온 것으로 부를 가져온다는 형세이며, 일제시대에는 이곳 마을에 식수가 부족하여 부잣집에서는 하인들이 오리 남짓 되는 곳으로부터 물을 길어왔는데 저녁때가 되면 그 모습이 볼만하였다고 전해진다.
ㅇ 마을은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을 중심으로 천남과 천북으로 구분되었으나, 지금은 개천을 복개하여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주민들은 천남과 천북의 개념으로 마을을 인식하고 있다.
ㅇ 현재 함열리는 262세대 674명이 살고 있는데 담장과 관련된 교동, 수동, 안정, 천남에는 178세대, 534명이 거주하고 있다.
ㅇ 마을의 가옥은 1970년대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다만 이런 가옥과 아울러 지정문화재로 되어있는 규모가 큰 와가(瓦家)가 4채가 있다. 문화재 자료인 조해영 가옥, 함열향교 대성전, 지방민속자료인 김안균 가옥, 익산시 향토유적인 이배원 가옥이 그것이다. 이들 가옥은 일제강점기 때 이 지방을 풍미하던 부호의 집으로서 한말과 일제시대 양식을 보여주는 민가들이다. 조해영 가옥은 일제시대 일본식이 접합된 형태이며, 김안균 가옥은 담장의 규모가 340m로 토석담장 외에 붉은 벽돌 담장, 행랑채 등이 갖추어진 규모가 큰 가옥이다.
ㅇ 마을의 주택은 대부분 개량되어 한옥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며 대부분의 주택들은 정형적인 농가 주택이다. 전체적으로 마을은 전통적인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건축은 문화재로 지정된 민가를 중심으로 이 지역 대부호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담장도 그에 못지 않은 형태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양옥에 비하여 한옥의 수가 많다.
4. 담장특징
ㅇ 대체적으로 토석담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막돌담장이 2군데 정도 있다. 담장의 양식은 거의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으로 같은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높이는 1.6m 정도이며 담장의 지붕은 한식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하였다. 일부 전돌을 막돌 대신 쓴 담장도 보인다.
ㅇ 담장의 형태는 기초를 두고 흙과 석재를 혼합하여 쌓은 토석혼용 담장을 비롯하여 돌로만 쌓은 담장, 흙으로만 축조한 순수한 토석 담장 등이 있다. 높이는 1.3m에서 2.2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전반적으로 농가의 담장이라는 점과 주택의 규모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5. 문화재 현황(3건)
ㅇ 함열향교대성전 : 문화재자료 제85호
ㅇ 조해영가옥 : 문화재자료 제121호
ㅇ 김안균가옥 : 시도민속자료 제23호
6. 인근 주요 관광지
ㅇ 금강,웅포숭림사,익산미륵사지, 왕궁리5층석탑,황등석재가공단지,익산귀금속단지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