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광산김씨의 시조는 신라왕자공(新羅王子公) 흥광(興光)이시다.
흥광께서는 신라국의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서 신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신라말기에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아시고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으로 세상을 피해 사시면서 광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왕자공께서는 헌광왕자설, 신무왕자설 등 몇가지 설이 있으나 확증하기 어려워 결정적인 지석이나 고증자료가 나오기까지 신라왕자공으로 하고 근사후일(謹俟後日)하기로 한다.
2번 수산공파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광산김씨의 분파도는 크게 5대파(大派)로 분류되며, 그 파명은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직장공파입니다. 그런데 이들 다섯 파들은 다시 그 아래 작은 파로 세분되어 있습니다. 다른 건 많으니까 바로 수산공파로 넘어가지요.
이때 문숙공파에서 갈라진 계파 중 하나가 삼사좌사공파 입니다. 16세인 김승사에게서 분파된 파입니다.
16세 김승사(金承嗣)(문숙공파/삼사좌사공) 고려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충숙공(忠肅公) 심(深)이며 어머니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왕씨(王氏)이다.
충목왕(忠穆王)때 벼슬이 삼사좌사(三司左使)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로 대원(大元)에 들어가 토적(土賊) 이홍성(李弘成)등을 토평(討平)하였다. 묘(墓)는 실전되어 나주군 공산면 삼장산에 설단하였다.
다시 이 삼사좌사공파가 분파되는데, 그 중하나가 바로 수산공파입니다. 20세 김자진에서 분파되었습니다.
20세 김자진(金子進)(문숙공파/충숙공파/삼사좌사공파/수산공) 고려말의 충신, 호는 수산(首山)이다. 아버지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백균(伯勻)이다.
공민왕때 금위사정(禁衛司正)을 역임 하였으나, 고려가 망하게 되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등 제현으로 하여금 의리를 같이하고 나주(현 영암) 우정으로 은적하였다. 거주한 곳을 종오리(終吾里)라 하고 그 산을 수양산(首陽山), 정자(亭子)를 수산정(首山亭), 밭(田)을 여전(麗田), 우물을 여정(麗井)이라 하고 두문불출 하였다. 조선조(朝鮮朝) 태종이 대관(大官)을 세 번 제수 하였으나 불응하였다. 수산공은 고려가 망하자 나주로 은둔하여 백이숙재(伯夷叔齋)와 같이 수양산의 고사리를 케어 먹을망정 나아가 벼슬하지 않는 정신으로 자호를 수산(首山)이라 하고 그 정자를 수산정이라 명하고 고려에 충절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