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을 이룬 철새들의 날갯짓에 넋을 잃었다
(평화 누리길 제10코스 2회)
루수/김상화
날씨는 추워도 함께 웃고 대화할 수 있는 일행이 있어 행복하다. 평화 누리길을 웃으며 걷고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다. 과연 행복의 열매는 어떤 맛일까? 달콤할까? 쓸까? 아마도 달콤하고 향기로울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행복이지만 말만 들어도 가슴은 설렌다. 누구는 행복은 선택이라 했다. 행복을 원하지 않으면 행복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늘 해야 한다. 모든 행복은 행복한 마음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하다는
마음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한다. 비록 추운 날씨에 긴 여정의 발걸음이 힘들지라도, 우리 일행은 오늘도 모두 행복이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 갈 길이 멀다. 부지런히 걸어야 주어진 10코스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다. 장남교에서 사미천교 까지의 거리는
5.3km이다. 둘레길 이정표를 알기 쉽게 표시해 놓아야 하는데 어느 곳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게 해 놓았다. 길을 찾는 시간도 꽤
소비된다. 아마 일손이 부족해서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원당 2리 마을에서는 담벼락 화단에 고 랑포국민학교(高浪浦國民學校)란 간판이 버려져
있었다. 이 간판을 보는 순간 코를 흘리며 다니던 국민학교 때의 옛 추억이 머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과거는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한가 보다.
그런데 행복의 마음도 잠시다. 이원갑 고문께서 깜박하는 사이 우리와 길이 엇갈린 것 같다. 아무리 부르고 찾아보아도 알 길이 없다. 전화로 몇
번을 통화 했으나 이 지역의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박원태 대장이 찾으러 나섰다.
그 틈을 타
우리는 더 즐거운 광경이 벌어졌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옆 논에 볏짚을 말아놓은 공룡 알이라 일컫는 곤포사일러지가 수십 개 놓여있다. 이것을
본 미인 세 분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발동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두 논으로 들어갔다. 직접 가서 보니 보통사람들의 키
높이다. 또 얼마나 무거운지 두 손으로 밀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톤 수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미인들은 그 위를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너무 높아서 올라갈 수가 없다. 남자들이 부 측 해줘야 간신이 올라간다. 세 명의 미인은 그곳에 올라가 멋들어지고
재미있는 포즈를 취한다. 장선덕 본부장은 그 광경을 일일이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이 또한 평화 누리길이 아니면 언제 어디서 이런 재미난 광경을
보겠는가? 상상만 해도 미소가 환하게 번진다
이원갑 고문과 도킹이 되었다. 한바탕 폭소가 터져 그 소리가 골짜기를 메운다. 꽤 많이
길을 헤맨 것 같다. 원당 2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 옆에는 삼거리 길이다.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를 우리는 한참 동안 망설였다. 평화 누리길
표시가 애매하게 붙어서다. 그래서 길을 잘못 선택해 약 2km를 딴 길로 가는 순환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둘레길의 큰 추억이 될
것이다. 이정표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걸어야 한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한 씨 가원(韓氏家園)이란 간판과 글이 보인다. 그 비에 새겨 놓은 글은
다음과 같다. 가원이란 아이디어는, 러시아에서 발간된 "아니스타시아"란 책에서 처음 생겨났다. 3000여 평의 땅에 숲을 가꾸고, 생태 연못을
파고, 집 짓고, 버섯, 꿀, 갖가지 채소, 곡식 등 최고의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곳이다. 현대 문명은 여러 가지 근본 문제와 모순을 안고
있다. 민주주의와 부패, 첨단기술과 부의 집중, 과잉 생산과 환경 오염, 종교와 온갖 갈등 등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가원이다.
가원은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새 문명이다. 문명의 척도는 물이다. 물을 깨끗이 유지하는
문명은 좋은 문명이다. 깨끗한 물을 우리 후손들이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씨 가원은 노력한다. 2006년 이곳은 인 삼 농사 후 참나무
묘목이 심겨 있던 밭이었다. 2015 년 현재 지금은 50여 종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고, 두 채의 통나무 집, 생태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가꾸기 시작한 한 씨 가원은 10년, 20년, 자손 세대에 가면, 억만금을 주더라도 살 수 없는, 풍요로운 가문의 동산이
된다.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며 두 부부가 자연과 함께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작게
시작했지만, 후손들에게 물려줄 원대한 꿈의 포부가 넘치는 글을 돌에 새겨 놓았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한 씨 가원(韓氏家園)의 성공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드디어 사미천까지 왔다. 얼음이 살짝 얼어 얼음 사이로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이곳은 사미천과 임진강이
합쳐져서 "합수부"라 부른다. 안내판에는 소름이 끼치는 글이 쓰여 있다. 하상 구간에는 북한에서 유실된 "목함지뢰" 등으로 사고 위험이 있으니
지정된 평화 누리길 코스를 이용하기 바란다는 글이다. 강의 어떤 곳도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분단의 아픔이다. 이곳은
징검다리를 놓은 곳이기 때문에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내릴 때는 꼭 알아보고 가야 한다. 여기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
박원태 대장이 맛있는 음식을 한 보따리 싸 와다. 먹는 즐거움이 행복한 시간을 만든다. 늘 감사한 박 대장이다. 뚝 밑의 사미천 강 분지에는
버드나무 숲을 이루었다. 그것이 마치 밀림지대처럼 느껴진다. 장마철에 강물이 범람해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나무들의 아픈 흔적을 보고 걷는다. 평화 누리길 기획자는 약 1km의 길을 조성할 때 자연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좋고 무서운가를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것 같다.
사미천 강둑도 오늘의 코스로 되어있다. 둑에 오르자마자 기러기 종류의 철새 수천 마리가 갸륵갸륵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을 잠시 가득 메워 덮는다. 거대한 무리가 하늘을 나는 장면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
화려한 연출은 참으로 장관이다. 넓은 허공을 제멋대로 수놓은 철새들은 생동감이 넘쳐난다. 하늘을 점령한 그들은 말 그대로 자기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놓았다. 수천 마리의 철새는 무질서하게 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엄격한 질서 속에서 하늘을 나는
보석들이다. 필자는 구름떼처럼 날아오른 철새의 아름다운 날갯짓에 숨이 멎는지 알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날갯짓하는 모습에 반했고 질서 있는
동작에 놀랐다. 목은 길게 빼고 양다리는 꼬리 쪽으로 곧게 뻗어 좌우를 살피며 비행하는 광경은 천하일품이다. 이렇게 많은 철새 무리를 보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고생했나 보다. 원당의 하늘도 그 장면을 보고 감동했을 것이다. 철새들의 현란하게 춤추는 모습은 아마도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우리의 큰 자랑이다.
경기도 원당 평야에서 나 볼 수 있을 이 아름다운 장면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준 복이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원갑 고문과 장선덕 본부장은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철새 떼를 보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장면 그 자체도 예술이다. 심명자 김인숙
김명순 미인 세 분은 자기들이 새들과 함께 모델이 되고 싶어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거대한 철새 떼의 하늘의 물결을 언제 어디서 또
보겠는가? 남자들도 아마 그러한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상갑 회장은 그 엄청난 장면에 놀란 듯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곤
잠시 사색을 하며 거대한 파도가 흐르는 물결 속으로 들어가 새들의 아름다운 날갯짓 묘기에 빠지고 만다.
이상갑 회장을 비롯해
박순홍 회원과 박종대 회원 그리고 필자도 함께 먼저 둑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걷다 보니 하곡리 농수산물 가공 공장까지 왔다. 그때 해님은
너울너울 넘어가면서 서산 위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여기서 마감을 해야 할 것 같다. 몹시 춥다. 찬바람이 온몸을
얼 구어 댄다. 여기서는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정도 다니기 때문에 차를 타기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 택시도 없다. 콜택시를 불러도 택시가 바빠
갈 수 없다는 대답이다. 참으로 난감하다. 할 수 없이 김명순 총무가 공장엘 들어가 미인계를 썼나 보다. 직원이 트럭을 타라고 한다. 모두 트럭
뒤에 탔다. 추운 날씨라 찬바람이 마주치니 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그래도 가야 하니 참을 수밖에 없다. 6.25 직후는 트럭 뒤에 많이
타고 다녔다. 6.25 때 경험을 오늘 비무장 지대에 들어와 맛본다.
찬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는 모습을 본 김인숙 미인은 나를
보더니 앉아 가라고 손수건을 깔아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장면이
고생인가? 아니면 추억을 만드는 것인가? 아마도 큰 추억의 한 장면이 되리라 본다. 고맙게도 적성면 버스 종점까지 태워다 준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트럭 뒤에서 꽁꽁 몸을 얼려 내렸다. 손으로 볼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래도 감각은 살아있구나 하고 안도했다. 이젠 무사히 갈 수 있게
신께서 도우셨구나! 하며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했다. 모두 마음이 느긋해졌다. 저녁을 먹고 차를 타자고 한다. 식당으로 들어가 설렁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고생하고 걱정을 태산같이 한 10코스 둘레길이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워가는 하루였다. 철새의 장엄한 날갯짓도 보았고 살포시
내려앉는 장면도 보았다. 무엇보다 10명의 가족이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신께서 사랑하며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회원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하루였다. 고맙습니다
2018년 0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