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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
강현식 지음
소울메이트 / 2010년 12월 / 548쪽 / 16,000원
내재적 동기 _ 아이들은 보상을 받을수록 흥미를 잃는다
2010년 4월, 전 세계 주요 신문은 프라이어라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의 연구가 무위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는 금전적 보상이 학업 능력 향상에 미치는 효과를 알기 위해 미국의 뉴욕, 워싱턴, 시카고, 댈러스 등지에서 학생들 1만 8천 명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3년 동안 무려 630만 달러를 사용했다. 성적 우수자에게 25달러에서 50달러까지 포상금을 주었고, 또한 독서, 출석, 수업 태도 등에서 다양한 기준을 세워놓고 현금을 지급했다. 돈이 걸렸으니 당연히 아이들은 공부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효과가 매우 단기적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3년에 걸친 프로젝트는 ‘현금 보상이 학습 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키지는 못한다’는 결론만을 얻었다.
보상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흥미와 자발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1970년대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자 레퍼가 한 실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매우 잘 알려진 이 실험의 결과가 있음에도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가 앞서의 실험을 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레퍼의 실험을 살펴보자.
연구자는 유치원 아이들을 세 집단으로 나눈 뒤 그림을 그리게 했다.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대가로 상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실제로 상을 주었고, 두 번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상을 주었으며, 세 번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상을 주지 않았다. 2주 후에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었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세 집단 중 어느 집단의 아이들이 자유 시간에 그림을 그릴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할 때 보상을 약속하고, 약속대로 보상을 해주면 그 활동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 집단 중에서 첫 번째 집단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첫 번째 집단 9%보다 두 번째 17%와 세 번째 집단 18%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이상의 실험 결과는 ‘외재적 동기를 받았을 때 내재적 동기가 사라진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외재적 동기란 어떤 활동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금전이나 선물 같은 보상을 의미하며, 내재적 동기란 활동 자체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등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동기를 의미한다. 두 동기는 종종 부적 관계성(negative relationship)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어떤 활동에 대한 내재적 동기가 있는 상태에서 보상을 받게 되면 내재적 동기는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를 과잉정당화 효과라고 한다.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보상으로 정당화시키는 과정이 지나쳤다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 이유는 귀인(attribution) 때문이다. 보상을 받는 경우에는 자신이 행동을 한 원인을 보상에서 찾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는 호기심이나 활동 자체의 즐거움에서 그 원인을 찾기 때문이다. 보상 때문에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으니, 보상이 없다면 더 이상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의 부적 관계성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우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과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자신의 일이나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까? 개개인의 상황마다 다르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는 후자의 경우가 더 높다.
이처럼 외부의 환경과 심리 내적인 현상은 종종 반대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는 우울한 것도, 환경이 너무 어려워서 다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루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데자뷔 _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의 이유는 전생이나 꿈이 아닌 마음
첫눈에 전혀 낯설지 않은 이 기분, 언젠가 한 번 만난 것 같은 그 느낌 /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낯익은 말투, 너무도 익숙한 웃음, 그 몸짓 목소리 / 그러고 보니 또 여긴 꿈에서 본 것만 같은 거리, 때마침 내게 힘이 돼 주던 옛 노래 / 반갑게 내게 인사할 것만 같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내 맘이 떨려요
김동률 4집에 나오는 노래, <데자뷔>의 가사다. 기시감(旣視感)이라고도 하는 데자뷔는 프랑스의 철학자 보아락이 자신의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이미 보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기시감을 기억착오와 혼동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기억착오는 과거에 없었던 일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기억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왜곡해 기억하는 것이지만, 데자뷔는 분명 와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장면을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느낌이다.
조사에 따르면 대략 60% 정도의 사람들이 20세를 전후로 데자뷔를 경험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고 한다. 또한 수입이 높은 사람들, 교육을 많이 받는 사람들,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상상하기를 좋아하거나 꿈을 잘 꾸는 사람들이 데자뷔를 많이 경험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거의 대부분이 전생에서 본 것이거나 꿈에서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최면에서 본 경험도 전생이라고 너무나 쉽게 믿는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전생이나 꿈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 심리학에서는 데자뷔를 어떻게 설명할까?
첫째로 우리 눈의 구조 때문에 데자뷔 현상이 생긴다고 말한다. 우리의 두 눈은 대략 6c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서 어떤 장면을 볼 때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들어가는 시각 정보에 시간차가 생긴다. 시간차가 0.025초보다 클 때 우리 뇌는 데자뷔의 느낌을 갖는다. 다시 말해 왼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와 오른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가 뇌에서 만나게 되어 일종의 착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로 데자뷔가 암묵 기억 때문에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신이 과거에 어디선가 본 장면이 암묵 기억에 저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장면을 보았을 때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요!” 그러나 현대 문명사회는 복제의 천국이다. 정확히 그 장면은 아닐지라도 그와 비슷한 장면을 보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마지막으로 뇌의 관점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1997년에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가브리엘리는 해마옆이랑이라는 부위가 어떤 장면과 대상의 친숙성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마옆이랑은 대뇌피질의 측두엽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더 안쪽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해마옆이랑은 과거와 동일한 경험을 했을 때 흥분하지만 때로는 갑작스럽게 흥분해 친숙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바넘 효과 _ 애매할수록 그럴듯하게 들린다
19세기 말 미국의 사업가이자 쇼맨이었던 바넘은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미국 전역을 여행했다. 그는 서커스에서 관람객들의 성격을 알아맞히는 마술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가 속임수를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원해 무대로 나갔다. 바넘은 조금도 주눅이 들거나 당황하지 않고 이내 그 사람의 성격을 정확히 맞췄다. 바넘의 비판자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추종자로 변했다. 바넘의 놀라운 능력은 미국 전역에서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과 돈을 끌어 모았다. 여전히 그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속임수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1세기가 지난 후 바넘의 놀라운 능력의 비밀을 밝힌 사람은 심리학자 포러였다.
포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제작한 것이라면서 새로운 성격 검사를 실시했다. 일주일 후 포러는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검사 결과지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결과지에는 개인의 성격이 묘사되어 있었다. 포러는 학생들이 옆 사람의 결과지를 보지 않게 한 후에, 검사 결과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0점에서 5점까지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다. 0점은 ‘전혀 맞지 않다’였고, 5점은 ‘매우 정확하다’였다. 학생들의 점수는 평균 4.26점이었다. 다시 말해 검사 결과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매우 일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었다. 학생들이 받은 결과지는 모두 동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실험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는데, 평균은 언제나 4.2점 근처였다. 바넘 효과는 포러가 밝혀냈다고 해서 포러 효과로도 불린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포러가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던 성격 묘사 결과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거나 존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당신은 장점으로 살리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약점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때로 당신은 옳은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곤 한다. 당신은 변화와 다양성을 선호하지만 한계에 부딪힐 때면 만족하지 못한다. 당신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당신은 외향적이고 붙임성 있으며 사교적이지만, 때때로 내향적이고 사람을 경계하며 위축되기도 한다. 당신의 소원 중 어떤 것들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안전은 당신의 인생에서 주요한 목표 중 하나다.
이렇게 애매한 표현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적용될 만한 것들이다. 결국 바넘이 사람들의 성격을 잘 맞춘 것도 바로 이런 식으로 성격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매한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 맞게 생각한다. 일종의 하향 처리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혈액형에 따른 성격 유형이나 역술과 점술, 타로점 모두 바넘 효과일 수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심리 검사를 제작할 때 검사 결과에 바넘 효과가 개입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상향 처리 vs. 하향 처리 _ 정보 처리의 두 가지 방식
· 자신이 쓴 글에서 오탈자를 찾기가 어려운 이유 : 하향
· 장기나 바둑에서 훈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수를 보는 이유 : 상향
· 아무리 생각해도 선입견이 정확하게 느껴지는 이유 : 하향
· 시대마다 뛰어난 인물들이 예리한 관찰자인 이유 : 상향
· 내 생각이 언제나 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 하향
인간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방식 혹은 방향, 즉 상향과 하향으로 처리한다. 상향 처리는 자료주도적 처리라고도 하며, 하향 처리는 개념주도적 혹은 도식주도적 처리라고도 한다. 이를 ‘아래서 위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쪽으로’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과 도식이 자료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경험론의 대표 주자 로크의 주장처럼 아기들의 머리가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겠지만, 경험에 따른 지식이나 경험을 판단할 만한 기준이 적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기들은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하며, 그 결과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지식으로 승화시킨다. 아기들처럼 아무런 판단이나 의도 없이 세상에서 얻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것을 상향 처리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구분하게 되고, 부모와 사회 혹은 또래에게 얻는 다양한 기준과 가치가 생겨난다. 이것이 점차 자라서 경험과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만을 받아들인다. 이를 하향 처리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상향 처리를, 어른일수록 하향 처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상향 처리는 선입견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장점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따라서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 현대인들은 바쁠수록 하향 처리를 사용한다. 하향 처리는 많은 자료에서 자신의 도식에 맞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빠르다는 장점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도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 때문에 자료를 꼼꼼히 살피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당연히 두 가지 방식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낫다고 할 수는 없다.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고집하기보다 때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주로 어떤 방식으로 정보처리를 하는지 파악하고,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보자. 어느 시대나 어느 장면에서든지 일과 대인관계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방식을 고르게 사용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연산법 vs. 발견법 _ 문제 해결의 두 전략
윤선은 여행을 가려 가방을 꺼냈다. 먼지가 쌓여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가방이었다. 먼지를 닦고 나서 가방을 열려고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가방은 열리지 않았다. 가방의 자물쇠 번호는 000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이런 가방은 제품 출고시 비밀번호가 000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자신은 번호를 변경한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열려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여쭈었더니 작년에 단체 해외여행을 가면서 비밀번호를 변경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당신은 비밀번호를 바꿀 줄 몰라 함께 여행에 갔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도와주었는데 몇 번으로 바꾸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다. 자,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윤선에게 조언한다면 어떤 방법을 추천하겠는가?
① 무식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인 000부터 999까지 모든 번호를 하나씩 돌려본다.
②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번호 몇 가지를 시도해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문제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많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연산법과 발견법이다. 이 두 방법은 문제 해결을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의미하는 문제 공간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차이다.
앞서 서술한 문제의 경우 000부터 999까지의 모든 번호들이 문제 공간이 된다. 이때 연산법은 문제 공간 전체를 탐색하는 방법이고, 발견법은 문제 공간에서 일부만을 선택해 탐색하는 방법이다. 연산법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논리적 접근이기는 하지만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있고, 발견법은 문제를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비논리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어림법이나 추단법이라고도 번역되는 발견법은 종종 주먹구구식 방법이라고도 하며, 비논리적 접근방식이므로 오류나 편향이라고도 한다.
발견법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가용성 발견법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보에 근거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특히 위험성 지각에서 자주 사용한다. 만약 부산으로 휴가를 가려고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출발 전날 비행기 추락사고가 발생했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예약을 취소하고 자가운전으로 부산에 내려간다. 이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인 듯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비행기와 자가운전 중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자가운전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비행기를 탄다. 조류 독감이 유행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온갖 매체를 통해 섭씨 1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조리했을 경우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정보를 접해도 사람들은 닭고기를 외면했다. 대신 질식사할 가능성이 높은 찹쌀떡이나 산낙지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먹었다.
다른 유형의 발견법은 대표성 발견법이다. 여러 해결책 중에서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것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처음 언급한 문제에서 두 번째 해결책이 바로 대표성 발견법이다. 친구가 당신에게 로또 복권을 사준다고 하면서 다음의 번호 모음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 2, 30, 17, 9, 41, 28 ] vs. [ 1, 2, 3, 4, 5, 6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의 모음을 고를 것이다. 왜냐하면 숫자들의 조합이 무작위인 것처럼 보여서 당첨확률이 높아 보이고, 후자는 당첨이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시행에서 두 번호 모음이 발생할 확률은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기준점과 조정 발견법은 같은 현상이라도 기준에 따라서 다르게 추정하는 것이다.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8 X 7 X 6 X 5 X 4 X 3 X 2 X 1’을,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1 X 2 X 3 X 4 X 5 X 6 X 7 X 8’을 주고 답을 추정해보라고 했다. 8로 시작하는 경우 사람들은 답을 더 크게 추정했다.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문제 해결 방식을 확인하고, 그에 따르는 오류나 편향은 없는지 살펴본다면 중요한 순간에 큰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정화 _ 억눌렸던 감정을 드러내다
속상했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올라와 울어본 적이 있는가? 실컷 울고 났을 때 마음이 후련해지는 경험, 이것이 바로 정화(catharsis)다. 이러한 정화는 강렬한 정서가 동반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의 경우 눈물로 감정이 드러나지만 굳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정화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닌 신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와 같은 종교적인 행위도 정화의 수단이 된다. 또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혹은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에게 동정하면서 정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는 정화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정화는 통찰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와 성장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통찰이 없는 감정만의 정화라면, 문제 해결이나 변화는 요원하다. 상담 장면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정화가 변화와 무관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정화와 통찰을 통한 문제 해결은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언급했다. 그는 히스테리 환자들이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기억과 감정을 의식으로 표출하면 그들의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가상인물인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는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분노와 아버지를 공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강한 초자아 덕분에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던 그는 이러한 충동을 무의식으로 억압했다. 하지만 무의식은 억압한다고 당하지만은 않는다. 아버지를 향한 그의 분노는 끊임없이 의식으로 올라오려 했고 결국 팔의 마비로 표현되었다. 그는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무의식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팔의 마비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강렬한 정서를 경험했고 그러자 마비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처럼 프로이트가 만났던 환자들의 히스테리 증상은 분석가의 해석으로 통찰과 정화가 일어나는 즉시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히스테리 증상보다는 성격이나 대인관계 문제를 가지고 프로이트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문제는 정화와 통찰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해석과 통찰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훈습(working through, 철저하게 처리하기)이라고 한다.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이 일회적인 정화에서 일련의 과정인 훈습으로 바뀌긴 했으나, 정화는 여전히 심리치료 장면과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집단사고 _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드는 최악의 의사결정
1961년 2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한 기밀계획을 보고받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 망명자 1천300명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쿠바의 피그만으로 침투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쿠바인들의 봉기를 유도해 공산주의 정권을 몰아내고 자본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CIA를 비롯한 합창의장과 백악관 각료, 외교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 작전을 검토했고, 만장일치로 이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준비 기간도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진행되었다.
1961년 4월 17일에 작전이 감행되었다. 피그만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 1천300명은 쿠바 민중들을 설득했다. 공산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쿠바인들은 카스트로 정권에 호의적이었고, 결국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의 예상과 달리 쿠바 군대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쿠바 군대는 4일 만에 100명을 사살했으며 1천200여 명을 생포했다. 결국 미국은 5천만 달러 상당의 식품과 의약품을 주는 대가로 포로들을 구할 수 있었다. 쿠바의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제니스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최고의 정보력과 군사력, 조직력을 가진 미국이, 또한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백악관 참모진들이 어떻게 이런 엉터리 같은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내고자 백악관의 의사결정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응집력이 높은 집단에서 만장일치가 요구될 때 그 집단은 종종 엉터리 같은 결정을 내린다고 결론 내렸고 이를 집단사고로 명명했다.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제니스가 차용한 용어다.
제니스는 집단사고가 나타나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바로 응집력과 집단의 구조적 결함, 그리고 불리한 상황적 요인들이다. 응집력이 높은 집단에서는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언쟁을 피하고, 집단의 결정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려는 경향성이 존재한다. 내부에서 다양한 의견이나 비판이 나오기 힘들다면 외부에서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집단이 외부로부터 차단된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면 이마저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성과를 빨리 내야 하는 상황이거나 외부의 비난을 받고 있는 불리한 상황이라면 집단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또 다른 집단사고의 예는 필자가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했던 인조와 그 신하들의 결정이다.
병자호란이 터지자 인조는 신하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논의 결과 인조는 왕세자들과 신하들을 강화도로, 자신을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피신이 아니라 고립을 자초한 결정이었다. 인조의 결정은 선왕이었던 선조와 비교했을 때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터져 한양이 함락될 듯하자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신했다. 이때 황비와 세자를 데리고 다니지 않고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한 곳에 머무르지 않게 했다. 당연히 왜인들은 이들을 잡을 수 없었다. 만약 인조도 선조처럼 세자를 강화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피신시켜 후일을 도모하고, 자신도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1만 명의 군사들과 함께 결사항전을 하면서 밤낮을 쉬지 않고 남하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청 태종은 인조의 이런 결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강화도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식량이 떨어진 이들은 백기를 들고 나왔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처럼 응집력과 집단의 구조적인 결함, 또한 불리한 상황적 요소들은 집단의 결정을 시궁창으로 몰아넣는다. 중요한 자리에서 파급력이 큰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일수록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부의 응집력이 강해 다양한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성급한 판단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틀 효과 _ 어떠한 틀을 가졌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는 날이면 지하철에서 우산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에게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다면서 우산을 구입하라고 권하다. 승객들은 긴가민가하다가 젖은 몸으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 지갑을 꺼낸다. 그리고 우산이 얼마냐고 뭍는다. 만약에 우산의 가격이 4천 원이라면, 우산을 판매하는 분들은 어떻게 가격을 알려줄까?
① 4천 원입니다.
② 천 원짜리 네 장, 4천 원입니다.
사실 둘은 동일한 가격이다. 하지만 ①보다 ②라고 표현할 때 사람들은 더욱 쉽게 지갑을 연다. 처음부터 4천 원이라고 했을 경우보다 단 돈 천 원이라고 했을 때, 비록 네 장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이처럼 동일한 현상도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틀 효과라고 한다. 틀 효과는 일종의 오류다. 우리가 잘 아는 틀 효과에는 조삼모사가 있다.
춘추전국 시대 송나라 저공이 자신이 키우던 원숭이들에게 ‘먹이가 부족하니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만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화를 냈으나, 저공이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는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는 나름의 틀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런데 종종 틀에 갇혀 오류를 범한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란 책에서 틀 효과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기술하고 있다.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외향적인가’라고 물었을 때보다 ‘내성적인가’라고 물었을 때의 응답이 더 내성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동일한 선물도 포장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듯이 틀 효과도 같은 현상을 전혀 다르게 느끼게 한다. 틀 효과는 때로 우리의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그 원리를 잘 안다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혈액형 _ 혈액형으로 정말 성격을 알 수 있을까?
2007년 가을, 주요 일간지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O형 외향적, A형 논리적, B형 감성적···. <연합뉴스>
국내 연구진 논문 발표, ‘소심한 A형 맞는 말’ <한국일보>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보이는 이 기사는 놀랍게도 연세대학교 대학원 기술경영학과 류성일 연구원과 심리학과 손영우 교수가 한국심리학회지 가을호에 게재한 ‘혈액형 유형학 연구에 대한 개관’에 근거하고 있다. 심리학자가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를 입증했다는 논문을 썼다니! 그동안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혈액형 유형학을 반대해왔기 때문에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니 일종의 오보임을 알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혈액형과 성격을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여러 분야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 50여 건을 검토했던 것이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상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그렇지 않다는 논문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성격이란 유전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혈액형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를 읽고 나니 한 가지 의문이 풀렸지만,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심리학자들은 일관되게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서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여전히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상관이 존재하다고 주장하는 다른 분야의 논문들 때문이었다. 혈액형 유형학이 맞는 것처럼 주장하는 논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경험상으로 혈액형 유형학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혈액형과 성격 사이의 연관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실제적인 무언가가 있다기보다는 혈액형 유형학에 대한 도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혈액형에 맞는 성격 유형을 알면 자연스럽게 그에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 또한 애매한 성격 묘사가 자신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고 착각하는 바넘 효과도 한몫한다. 세상에 소심하지 않은 사람이나 감정의 기복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혈액형 유형학이 자신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성은 보통설문으로 조사한다. 설문 조사의 단점은 사람들의 실제 성격과 행동보다 생각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면, 당연히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상관이 존재한다면 왜 그런지, 즉 왜 피가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사람들이 혈액형 유형학을 쉽게 표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이득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비전문적인 심리학자다. 심리학자들이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사람을 연구하듯이 일반인들도 나름의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사람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중의 한 가지가 암묵적 성격 이론이며, 혈액형유형학 역시 정확성은 없지만 이해하기 쉽고 간편해 이론적인 틀의 역할을 한다. 이는 제대로 된 심리학이 대중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정확하지 않으면 어떠냐고 반문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빨리 파악해 통제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혈액형 유형학을 배제해야 하는 이유는 부정확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편견과 차별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액형 유형학은 사람의 성격 중에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당신의 피 때문에 당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떨까? 다른 사람의 혈액형을 들먹일 때는 즐겁겠지만, 정작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