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휴게소 라그랑주 포인트, 어떻게 쓰일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656호 2021년 06월 21일
우주 공간에서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우주 청소부들이 고철이 된 로켓 잔해물을 보며 한 마디를 남긴다. “어, 라그랑주 점에서 온 것 치고는 진짜 멀쩡하네”
올해 개봉한 영화 ‘승리호’ 속의 대사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라그랑주 점(라그랑주 포인트)’에는 우주를 표류하는 쓰레기들이 가득 모여있다. 우주 쓰레기가 넘치지 않도록, 화성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인공도시를 만든 기업 UTS는 우주쓰레기가 모여있는 라그랑주 포인트에 쓰레기를 분해하는 ‘나노 로봇’을 살포한다.
우주의 휴게소, 라그랑주 포인트
나노 로봇은 영화 속 허구지만, 라그랑주 포인트는 우주에 실존한다. 흔히 지구를 벗어나면 겪게되는 우주의 공간은 무중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우주는 무중력 상태가 아니다. 다른 별이나 행성의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주에 떠 있는 물체는 계속 움직인다. 우주에서 다른 천체의 영향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기에 두 개 이상의 천체에서 받는 인력이 교묘하게 상쇄되는 위치가 사실상 중력이 ‘0’이 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을 처음 발견한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의 이름을 따 ‘라그랑주 포인트’라 부른다. 연료를 소모하지 않고도 한 자리에 정지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의 휴게소라는 별명도 가진다.
지구와 달, 지구와 태양, 태양과 목성 등 두 천체 사이에는 각각의 라그랑주 포인트가 존재한다. 지구와 태양간에 위치한 라그랑주 포인트 중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L1지점은 지구에서 태양방향으로 약 150만 km 떨어져있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38만km)보다 약 4배 정도 멀다.
영화에서는 라그랑주 포인트에 우주 쓰레기가 가득 모여있지만 이는 영화적 상상이다. 현실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쓰레기 정체 구간이 아니라, 중요한 우주 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특히 우주정거장을 설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로 평가받는다. 우주정거장이란 우주선을 보다 먼 우주(심우주)로 날려 보내기 위한 휴게소이자 정거장이다. 지구와 달 사이에 있는 라그랑주 포인트에 우주정거장이 설치될 경우 고도 조정과 유지를 위한 연료 소모가 없기 때문에 유지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라그랑주 포인트에 위치한 위성들은 또한 지구의 공전주기와 동일하게 태양을 돌기 때문에 지구의 한 지점의 기상만 관측할 수 있는 정지궤도 위성과 달리 지구에 자전에 따른 지구 전체의 기상관측이 가능하다. 언제나 지구를 등진 채 태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관측 위성이 자리하기 최적의 위치에 있다. 지난 201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가 쏘아올린 심우주 기상관측위성 DSCOVR은 지구-태양 간 라그랑주 포인트(L1)에서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달 뒷면'의 모습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DSCOVR는 하루에 6번씩 태양의 움직임을 촬영해 지구에 전파 교란을 야기하는 흑점 폭발을 살펴본다. 이보다 앞선 1995년 유럽이 발사한 태양관측위성 소호(SOHO)도 L1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 1. 라그랑주 포인트를 나태나는 도형. (출처: NASA)
우주 탐사를 지원하는 라그랑주 포인트
2022년 8월 한국을 떠날 한국의 첫 달 궤도선 KPLO도 라그랑주 포인트를 들른다. KPLO는 달로 바로 향하는 대신 태양을 향해 발사된다. 스페이스X의 팔콘 9 발사체를 이용해 지구 중력을 벗어나는 KPLO는 태양의 중력 영향으로 궤도 에너지가 증가하다가 지구와 태양 간의 중력이 서로 상쇄되는 라그랑주 포인트(L1)에 도달한다. 무중력인 라그랑주 지점에서는 약한 힘으로도 궤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고, 이 지점 주변에서 태양의 힘을 잘 이용하면 궤적을 크게 변화시켜 달에 도착할 때 속력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L1에 도착한 KPLO에 약간의 추력을 줘 라그랑주 포인트에서 살짝 벗어나게 하고, 태양의 섭동력(궤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이용해 달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달과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 쪽으로 되돌아오는 KPLO는 바로 달의 궤도로 진입하지 않고 달과 지구 사이에 있는 지구-달 라그랑주 포인트 주변을 비행한다. 달이 지구의 남쪽에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라그랑주 포인트 안으로 들어가 달과 함께 이동한다. 이후 태양과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가며 달 주변을 매우 느리게 이동하다가 달이 지구의 북쪽으로 왔을 때 달 궤도에 포획된다. 보통 달이나 소행성 등 목표로 하는 천체에 궤도선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감속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라그랑주 포인트를 이용하면 에너지를 한 번 더 아낄 수 있다. 추진체를 활용해 달로 직접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일이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달로 향하는 여정은 130일 정도로 늘어난다. 하지만 연료를 아낀 만큼 더 오랫동안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다.
사진 2. 우리나라의 첫 달 궤도선도 라그랑주 포인트를 이용할 예정이다.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30년간 ‘우주의 눈’이라 불리던 허블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을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JWST)’은 올해 11월 중순 이후로 발사된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보금자리는 태양·지구 간 라그랑주 포인트 L2(EL2)지점이다. 이 지점은 L1 지점과 달리 항상 지구의 밤 영역만을 관측할 수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져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태양광 ‘엄폐 효과’를 이용하면 태양 빛의 간섭 없이 심우주를 관찰할 수 있다. 안정된 궤도에 자리하고 있으니 궤도 유지를 위한 대량의 연료 소모가 필요하지 않고, 중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빛의 왜곡도 없다. 2001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윌킨슨 마이크로파 비등방성 탐색기(WMAP)가 L2 지점에서 우주 탄생 당시에 나온 우주배경복사를 탐색해 우주 탄생의 신비를 푸는 데 일조하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대칭되는 지점에 위치한 L3는 지구-태양 간 라그랑주 지점 중에서 가장 지구와 거리가 멀다. 지구·태양 간 거리가 약 1억 5000만㎞, 지구와 L3 지점 간 거리는 약 3억㎞다. 먼 거리 때문에 아마도 5개의 라그랑주 중 가장 마지막에 인류가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 관측 위성을 놓는 데 성공한다면 태양의 뒤편을 항상 감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L4와 L5 지점은 5개의 라그랑주 지점 중 가장 안정적이다. 라그랑주 지점은 우주의 다른 곳에 비해 중력의 영향을 작게 받으면서 안정적인 지점이지만 완전히 중력이 ‘0’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주에는 두 천체 간 중력 말고도 여러 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L4와 L5는 먼 우주에서 오는 중력과 지구, 태양의 중력이 하나로 합쳐져 삼각형을 이루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궤도를 벗어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힘이 생긴다. 이러한 이유로 태양·목성 간 라그랑주 점 L4와 L5에는 수천 개의 소행성이 몰려 있다. 이를 '트로이 소행성군'이라고 한다. 태양-지구 간 라그랑주 점 L4 인근에서도 2010TK7이라는 소행성이 발견됐다. 이외에도 아직 찾지 못한 지구 트로이 소행성이 많으리라는 게 학계의 예측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소행성 아포피스 탐사선 연장 임무를 통해 가능하다면 이러한 소행성을 발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글: 이새봄 과학저널리스트/일러스트: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