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겨울 장마에 축축한 밤이다. 책장을 둘러보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Crime and Punishment를 집어 든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몇 페이지 읽는다. 펭귄출판사에서 2104년에 ‘Deluxe Edition’으로 나온 영어 번역이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지금까지 11종류의 영어 번역이 나왔다. 러시아어 『죄와 벌』은1865-6에 어떤 잡지에 실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67년에 Anna와 재혼을 했는데 빚쟁이를 피해서 서유럽으로 도망쳐서 4년을 보냈다. 첫 영어 번역은 1885년에
출판되었다. 1914년에 E. Garnett가 번역한 『죄와 벌』이 80년 동안 가장 널리 읽혔다. 1990년 초에 두 개의 훌륭한 영어 번역이 나왔다. 그리고 25년이 지나서 O. Ready는 새 영어 번역을 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타일을 가장 잘 살렸다고 자신한다. 펭귄출판사의 Deluxe Edition은 눈길을 끄는 표지로 유명하다. 그런데 표지에서 스물 세 살의 ‘remarkably good-looking’ 라스콜리니코프는 못생긴 중년 남자처럼 보인다. 영어가 외국어인 내가 영어 번역에 대해 달리 할 말은 없다. 요즘 안간힘을 써도 좀체 읽히지 않는 울프의 『등대로』와는 달리 참 잘 읽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박한 취향의 사람에게도 편한 스타일로 글 쓰고 있음에 분명하다. 펭귄출판사가 1991년에 ‘새’ 번역을 내고서 25년만에 또 ‘새’ 번역을 내었다는 점에서도 『죄와 벌』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책 표지는 새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기로 작정한 청소년들의 취향을 고려했음에 분명하다. 또 몇 년이 지나면 새로운 세대의 취향을 고려하여 『죄와 벌』이 새로 번역될 것이다. 원전과 번역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영어로는 여러 번 새로 써지는 것 같다. 시만이 아니라 소설의 스타일도 번역될 수 없다. 정말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전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러시아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아무 번역이나 집어서 읽으면서 즐기면 될 것이다. 제 정신을 잃어가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독백의 한 부분을 옮겨 놓는다. 소설의 첫 대목에 나온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H’m . . . yes . . . man has the world in his hands, but he’s such a coward that he can’t even grab what’s under his nose . . . an axiom if ever there was . . . Here’s a question: what do people fear most? A new step, a new word of their own – that’s what they fear most. But I’m talking too much. That’s why I never do anything. Or maybe it’s because I never do anything that I’m always talking.’ (pp. 3-4)
첫댓글 한국어보다 더 재밋게 독백이 읽히는건...하이픈과 접속사와...대문자 때문일까요. 영어는 한국어 보다 내용의 주목 할 부분에 대한 강조가 구조적으로 쉬워서 일까요.
외국어로 글을 읽으면 단어와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온갖 감정을 무시하고 내용에 집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간명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