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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종말론이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괄한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면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시작된 종말론을 다루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성취와 구속받은 공동체에 의해 이미 향유되고 있는 축복들을 다루고 있다. 제2부는 미래적 종말론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 죽음과 부활 사이 동안의 신자들의 상태, 시대의 징조들,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육체의 부활, 최후의 심판, 새 땅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본서에서는 특이하게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왕국”으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교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로 들어 왔고, “하나님 나라”로 되어 있는 ‘한글 개역성경’만을 읽어 왔기 때문에 어색하게 느껴진다.
제1부 시작된 종말론
제1부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측면에 관계되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제1장과 제2장은 구약과 신약이 보여주고 있는 종말론적 개관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즉, 구약에는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미래적 축복들에 관한 많은 예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신약에는 이러한 예언들 중 대부분이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서 성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간의 예언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제3장은 역사의 목적과 그 역사가 진행하고 있는 목표에 관해 서술하고 있으며, 그 역사의 중심점은 그리스도이며,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1부의 나머지 4~6장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의미, 종말론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사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관계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제1장 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적 개관
종말론은 신구약 성경 메시지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즉, 모든 구약의 계시는 앞을 향하고 있고, 앞을 가리키고 있고, 결국 약속된 구속자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신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과 형태로써 장차 자기 백성과 아울러 이방인까지도 구원하시려고 미래에 나타나실 한 구속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종말론적 실재들, 즉 장차 오실 구속자, 하나님의 나라, 새 언약, 이스라엘의 회복, 성령의 부으심, 여호와의 날(주의 날),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일어날 것을 바라보았다. 본 장에서 저자는 성경구절을 통해 이 증거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2장 신약 종말론의 본질
신약의 신자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크고 위대한 종말론적 사건이 이미 발생했다고 생각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일련의 매우 중요한 종말론적 사건들이 장차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약의 종말론은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와 앞으로 실현되어져야 할 일, 이 두 가지 측면을 다룬다. 그러므로 신약의 종말론의 특징은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긴장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미”란 신자들이 지금 향유하고 있는 것이며, “아직”이란 신자들이 아직 소유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제3장 역사의 의미
성경에서 역사란 하나님께서 사람과 우주에 대한 자기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매개 수단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들을 역사 속에 나타내신다. 기독교에서 역사란 “구속사”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이다.
구속사는 하나님과 그의 목적들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최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며 구심점이다. 따라서 성경은 인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오스카 쿨만은 이 개념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D-day와 V-day 사이에 살고 있다. D-day는 그리스도의 초림이었고, V-day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며, 그 때에 원수들은 최종적으로 항복하게 될 것이다.
제4장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 의미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영토를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지배나 통치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인류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통치사역이다. 하나님의 통치 목적은 죄와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최종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지금 향유하고 있으며, 나라의 책임들을 나누어지면서 지금 하나님의 나라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현존하고 있으며, 세상의 끝 날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어질 것이다.
제5장 성령과 종말론
성령의 사역은 종말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성령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여러모로 연관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인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능동적으로 활동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은 신자들의 부활에도 능동적으로 간여하실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성령을 소유함으로써 장차 올 세대의 축복들을 우선적으로 맛보고 있으며, 동시에 육체의 부활에 대한 담보와 보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6장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이미”와 “아직”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이 신약의 종말론의 특징이다. 성도는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던 종말론적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최종적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다. 신자들은 이미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활된 육체를 기다리고 있다. 신자는 지금 마지막 날들 속에 살고 있으나 아직도 마지막 날은 임하지 않았다. 교회는 이 긴장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제2부 미래 종말론
제7장 육체의 죽음
인간이 죄를 범한 후에 그는 영적인 의미에서 즉시 죽었다. 즉, 하나님의 사랑스런 임재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상태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의 죽음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죄로 인해 인간에게 임한 저주의 한 형태이다.(창 2:17)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는 특이하다.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죄를 위한 보상이 아니라, 다만 죄에 대해서 죽고,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의 한 부분인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 후크마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음은 그리스도에게는 저주의 일부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축복의 원천인 것이다”(p. 123)
이 말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죽음이 축복의 원천’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너무 경박한 표현이 아닐까? 물론 신자에게는 내세의 복과 영생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축복 자체로 생각한다는 것도 이상한 표현인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런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죽음은 신자에게 있어서 형벌이 아니라 훈련이며, 성화를 위한 징계의 절정이며, 신자의 영혼을 성화케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되 근신의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제8장 영혼 불멸론
성경이 “영혼 불멸”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가?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죽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지도 않았고,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 성경에서 영혼은 계속 존재 유무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 후에도 당연히 계속되는 존재의 질이다. 육체도 마찬가지이다. 부활을 통해 영혼과 육체는 완전함을 이룬다.(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인간에 대하여 불멸이란 단어를 사용하려면 영혼이 불멸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인간이 불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혼 불멸”이란 표현은 성경의 강조점을 올바르게 다루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강조점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제9장 중간상태
중간상태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 동안에 죽은 자들의 영혼이 처해있는 상태를 말한다. 칼빈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중간 상태란 축복과 기대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축복의 상태는 잠정적이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은 중간상태에 있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시 부활한 육체와 결합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될 것이고, 불신자는 지옥의 영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제10장 재림의 기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의 나라의 최종적 완성을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관복음에는 임박한 재림과 지연된 재림, 그리고 재림 시기의 불확실성에 관한 구절과 비유들이 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재림의 지연의 문제이다.
임박한 재림을 말하는 구절이나 비유에서 그리스도는 자기의 조속한 재림을 예언하셨으면서도 왜 아직도 오시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종종 사용했던 예언적 원근통시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가까운 미래의 사건과 머나먼 미래의 사건을 함께 매우 인접해 있는 사건들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을 통시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지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재림의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경성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1장 시대의 징조들
일반적으로 시대의 징조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거나 재림에 선행하는 사건들이나 상황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시대의 징조들을 전적으로 세상 끝 날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님은 공관복음서에서 수많은 시대의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예언적 원근통시법’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묘사된 모든 시대의 징조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과 그 기간의 모든 세대에 있게될 일이다. 그리하여 징조들은 재림 때에 비로소 훨씬 완전한 성취를 이루게 될 것이며, 그 의미는 교회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또한 시대의 징조들은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들 사이에 끝없는 대립을 나타내는 것이며, 우리는 이런 징조들을 통해서 세대주의처럼 재림의 시간표를 작성하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12장 특별한 징조들
성경에 나와 있는 시대의 징조들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총을 증거하는 징조들로서 모든 나라에 복음이 선포되고, 이스라엘이 회심하여 충만한 숫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징조들로서 환난과 배도가 있고,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며, 거짓 선지자가 미혹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징조들로서 전쟁, 기근 지진 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13장 재림의 본질
본장에서는 New Scofield Bible에 나타난 새대주의의 천년왕국에 대해서 언급을 한 후, 그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재림이 단일한 사건인가 아니면 두 단계로 나누어지는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이다.
세대주의는 그리스도의 이중적 재림을 주장하는데, 그 두 재림 사이에는 7년 대환난이라는 단계가 끼여 있다. 그들이 말하는 첫 번째 공중재림 때 그리스도께서는 땅 위에 완전히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어느 지점까지만 내려오신다. 이
때 죽은 신자의 부활과 살아있는 신자의 휴거가 있다. 이들은 모두 휴거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지상에 남아있는 불신자들과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대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환란을 겪은 후 회심한다. 이 칠 년 기간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재림 하시어, 구약의 예언에 따라 다윗 왕국의 재건을 이루고, 이스라엘과 함께 천년간을 이 땅에서 통치하실 것이다. 이 때 주님은 예루살렘에 그 보좌를 세우신다.
이상이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이중 재림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다. 그러나 재림이 이러한 두 단계로 나뉜다는 입장에 대해서 성경에는 어떤 확실한 근거도 없다. 오히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대환란 후에 일어나게 될 하나의 단일한 사건이며, 우리의 눈으로 보이게 오신다고 증거하고 있다.
제14장 천년기에 관한 주요한 견해들
본장에서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각 천년기에 대한 견해들을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으므로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사실 본서의 13장부터 16장까지의 천년왕국에 대한 내용은 조금 미흡하기는 했지만, 두 번째 과제물(「천년왕국」)을 하면서 다뤘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확실하게 천년왕국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수가 있었다.
무천년주의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기가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가 바로 그 시기라고 믿는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단일한 한 사건이지, 결코 두 단계에 걸쳐 일어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재림시에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이 있다.
후천년주의는 무천년주의의 주장과 거의 비슷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 가지 천년기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그들은 미래에 영적 번영의 황금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천년왕국인데, 그 기간은 긴 기간이며, 문자적인 천년 그 이상의 긴 기간으로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재림 후 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후에 최종의 상태인 영원한 나라가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무천년주의의 주장과 일치한다.
세대주의에 대해서는 앞장에서 다루었고, 또 뒷장에서도 언급할 것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단, 그리스도께서 재림 후에 일천년 동안 땅 위에서 왕노릇 하실 것이라는 주장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가 일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15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비판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점은 반갑게 생각한다. 성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를 두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비판은 너무나 많아서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주요한 것만 몇 개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들은 역사를 7세대로 나누어서, 해당 세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특수한 계시에 순종하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구원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계시의 근본적 통일성을 공평하게 다루지 못한 결과이다. 오직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인간은 어떤 노력으로도 결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능력이 없으며, 자기들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스스로를 절대로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서로 다른 분리된 계획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갈 3:7, 28-29, 6:15-16; 엡 2:14-16) 성경은 진실한 성도이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또한 구약시대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제거되었다고 말한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가 이제는 참 이스라엘이며,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약속들은 참 이스라엘 안에서 그리고 참 이스라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별도의 계획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
셋째, 구약은 장차 미래의 지상적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구약의 예언들(사 65:17-25; 사 11:6-10; 겔 40-48장)을 들어서 지상적 천년왕국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예언 구절들은 천년왕국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새 땅에 대해서 영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넷째,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연기되었다는 주장은 성경의 뒷받침을 결여하고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제시했던 하나님 나라를 거절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나라를 연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유대인들의 태도와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를 일으키셨다.(마 12:28; 마 16:19)
다섯째,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후에도 계속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성경적이 아니다. 세대주의는 그리스도의 이중적 재림을 주장하는데, 그 두 재림 사이에는 7년 대환난이라는 단계가 끼여 있다. 이 칠 년 환란기 동안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십사만 사천 명)와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단 한 번뿐이며, 심판도 단 한 번뿐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는 성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
제16장 요한계시록 20장의 무천년기
본장은 무천년주의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 20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도 역시 「천년왕국」에서 자세히 다뤘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간단히 중요한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저자는 요한계시록 해석방법으로써 ‘점진적 평행법’을 말하고 있다. 요한 계시록은 일곱 단원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각 단원들은 서로 평행을 이루면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시까지의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일곱 개의 단원들은 각각의 단원 속에서뿐만 아니라, 책 전체로써 그 안에서도 종말론적인 점진성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요한계시록 20:1-3절의 사탄이 결박되었다는 것은 지금 이 세대, 즉 복음의 세대 기간 중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사탄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모두 함께 모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셋째, 요한계시록 20:4-6절의 천년 동안 왕노릇 하는 것에 대한 “ἔζησαν(살아서)”이란 단어의 해석이다. 이 단어는 이미 죽었던 신자들의 영혼들이 지금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기 상태 동안에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다 후크마 교수님은 덧붙여서 “ἔζησαν”을 “중생”으로도 해석하여,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서 왕노릇 하는 신자의 숫자에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신자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넷째, 위 사항을 볼 때, 하늘에 있는 영혼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서 왕노릇 하는 천년이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시기까지의 복음 시대 전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계 20:4-6의 천년기는 지금이며, 이 천년기 동안에 신자들과 함께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왕권적 통치는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 천상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제17장 육체의 부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고, 인간은 육체 없이 완전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은 육체가 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자들도 영화로운 육체들로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자들의 영혼이 중간기 상태 동안 잠정적 행복을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행복은 그들의 육체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게 될 때에 비로소 완전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부활은 독특한 기독교 교리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이 동시에 일어난다.
둘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단 한 번 있는 사건이다.
셋째, 부활이 있은 후에는 심판이 따를 것이다.
넷째, 신자들의 부활육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육체와 같이 신령한 육체가 될 것이다. 이 부활육체는 비물질적이거나 비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히 물질적 신체적이면서 신령한 몸이다.
제18장 최후 심판
심판이란 세상 끝 날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성적 도덕적 피조물들에 대해서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시는 행위이다.
그러면 이러한 최후 심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각 사람의 최종적 운명을 나타내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통해서는 자기의 은혜를, 자기 원수들을 정죄하는 일을 통해서는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실 것이다. 둘째로, 심판의 목적은 각 사람이 받게 될 보상과 형벌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세 번째 목적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행사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제 각 사람에게 그들이 영원토록 지내야 할 장소를 정해주신다. 새 땅이든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든지....
심판의 시기는 언제인가? 그것은 현세의 종말에, 부활 사건이 있은 후에 있을 것이며, 그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다만 인간은 그 징조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심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밖으로의 사역은 나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천사들과 성도들은 심판의 조력자가 된다.(마 13:41-43, 24:31, 25:31; 고전 6:2-3; 마 19:28; 눅 22:30) 심판의 대상은 신자들과 불신자들 그리고 사탄과 사탄의 추종자들(타락한 천사들)이다.
심판의 내용은 선악간에 되어진 모든 일들을 결산하신다. 그것은 사람이 행동으로 옮겼던 모든 행실과 우리가 내뱉었던 모든 말들과 그리고 심지어 사람들이 가졌던 모든 생각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심판의 판단 기준은 물론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양심법으로 심판하신다(롬 1:18-21, 2:12, 14-16). 반면에 유대인은 구약의 계시에 의해서,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특별계시에 의해서 심판하신다.
다음은 상급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모든 성도들은 구원을 받지만, 성도들이 받게될 상급들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눅 19:12-27의 므나 비유)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에 대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상급이란 책임을 얼마나 완수 했느냐의 문제이다.
또 상급에 관한 중요한 구절은 고전 3:10-15에 나오는 ‘두 종류의 건축자들’에 대한 비유이다. 이들은 모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어떤 성도는 상급을 얻을 것이고, 어떤 성도는 상급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과 상급은 비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상급들은 인간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제19장 영원한 형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후에 최종의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최종 상태는 영원한 비참이든지, 영원한 행복이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축복상태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모든 자들(사탄, 거짓 선지자들, 악한 천사들, 불신자들)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다시금 기회가 없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살 것이다(살후 1:9)
제20장 새로운 땅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며, 그 땅 위에서 성도는 영화롭고 부활된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의미는 인간의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낙원이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사 65:17; 계 21:2)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하늘과 땅”이란 표현은 전우주를 지칭하는 성경적 표현법이다. 하늘과 땅은 우주를 함께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현재의 우주가 완전히 소멸되고, 현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새로운 우주가 등장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우주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되, 오직 새롭게 되고 정화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가 들어갈 세상은 다른 세상이 아니다. 그 세상은 바로 이 세상, 이 하늘, 이 땅이다. 그러나 새롭게 된 세상이다. 영화롭게 된 교회는 바로 이 새롭게 된 세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