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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자의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공무짱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 그 배경과 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
<출처:노동사회과학연구소>
1998년 말 우고 차베스(Hugo Rafael Chávez Frias) 대통령의 집권 이후, 특히 2002년 4월 차베스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미 제국주의가 뒷조종한 우익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베네수엘라에서는 거대한 정치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다소 누그러진 강도(强度)로 이긴 하지만, 지난해 말 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 Ayma)의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에서 볼 수 있듯이 남미의 주변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거나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19세기 초에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대항하여 베네수엘라를 위시하여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의 독립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el Liberator) 혹은 그들 여러 나라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ibár)의 이름을 따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이라고 불리고 있는 일대 반(反)제국주의적, 민중적 정치혁명인데, 세계의 노동자․진보운동 진영에서는 지금 그 성격과 전망을 둘러싸고 전적으로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이 운동의 핵심 지도자인 우고 차베스 본인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이 볼리바르 혁명을 가리켜 "21세기[형(型)]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면서 거기에서 21세기 사회혁명의 새로운 전망을 찾으려고 하는가 하면,1) 일부에서는 정반대로 남미적 파시즘을 향한 민중주의 혹은 "가짜 사회주의"(phony socialism)라고 규정하고 있고,2)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확정적인 성격 규정을 유보한 채 상황의 진전을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서 발생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로 사회주의의 위신과 그를 향한 혁명적 전망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 한 시대,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전세계적인 좌절의 한 시대였으나, 한도를 모르는 신자유주의 곧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의 강화,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의 격화로 이제는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는 가능하다"며 새롭게 반격을 개시해가고 있는 시대이다.
그리고 지금 볼리바르 혁명의 성격과 전망을 둘러싸고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과 진보운동 진영 내부에서 분분하게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논의는 그 본질상, 바로 그 반격 개시의 시대에 남미, 그 중에서도 차베스 지도 하의 베네수엘라가 실질적․전략적으로 그러한 반격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이냐, 아니면 여러 사람들의 눈에 그러한 착시현상을 유발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대중의 저항 에너지를 오도하는 남미 특유의 반동적인 민중주의․인민주의일 뿐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소개하고 고찰해봐야 하는 이유 역시 그 볼리바르 혁명이 바로 그렇게 "새로운 사회" 혹은 "21세기 사회주의"의 상(像) 및 전망․전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 볼리바르 혁명의 배경
중남미는 사실상 누구나 서슴없이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부를 만큼 미 제국주의의 지배와 영향력이 강한 곳이며,3) 따라서 그러한 미 제국주의 및 그와 결탁한 현지 지배계급(독점자본 및 토지귀족)4)의 무자비한 착취와 그에 따른 대중의 만성적이면서도 극심한 빈곤이 볼리바르 혁명이라는 대중적 저항운동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은 그것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구차할 정도이다. 그러한 정황, 특히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가 어떤 상황을 초래했는가를 간단히 보기로 하자. 마리아 빅토르는 여러 자료를 증거로 들면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IMF, 세계은행, WTO 등에 의해서 ... 극찬되고 ... 발전의 수단으로 강제된 [조치들은: 인용자] 거의 모든 지표에서 거대한 실패였다.
○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1인당 소득은 82% 증대한 반면에, 그 다음 20년 동안에는 단지 9%만 증대했고, 마지막 5년 동안에는 단지 1%만 증대했다.
○ 단 10년 동안에 빈곤자의 수는 1천4백만 명이나 증대했다.
○ 1990년에서 2002년까지 미국의 은행과 초국적기업들은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1조 달러를 이익금, 이자, 로열티로 송금했다.
○ 1990년대에 1,780억 달러 이상의 국유기업이 사유화되었는데, 이는 쏘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사유화된 가치의 20배가 넘는 액수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지배층(elites)과 그들의 식객인 중산층의 자발적인 부역이 없었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중산층은 일찍부터의 석유산업의 침투로 가장 미국화되어 있다. 지배층에 의한 40년간에 걸친 허위 민주주의는 1998년 현재 석유 대국 베네수엘라에 다음과 같은 것을 남겼다.
○ 인구의 80% 이상의 빈곤층
○ 인구의 5%에 의한 경작지의 75%의 소유
○ 학교 및 병원의 붕괴
○ 70%라는 퇴학률
○ 7%의 문맹률과, 60%에서 70%에 이르는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지난 25년 동안 석유 대국인 베네수엘라에서 빈곤이 가장 많이 증가했던 것이다.
... 충격적이게도, 인구의 20%에도 못 미치는 자신들의 불로(不勞)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국의 절대다수의 극빈층과 추악한 인종주의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5)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28년 동안에 베네수엘라의 1인당 소득은 35%나 떨어져서 그 지역에서 최악의 감소를 기록했고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하나"6)여서, "베네수엘라에서 자본주의에 의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10만 명 정도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자본주의로 인해 임금노예나 채무노예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7)는 증언도 있다.8)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서 베네수엘라에 강제된 신자유주의의 효과를 다른 관찰자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세계 5대 석유생산국인 베네수엘라는 역사적으로 거대한 불평등 사회였다. 소수의 지배층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생활을 즐기는 다른 한편에서 80%는 빈곤 속에서 살았다. ...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은 명백히 그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실질임금이 크게 떨어졌고, 비공식부문은 부풀어 올랐다.
겨우 3년 사이에 60만 명이나 도시로 이주했다. 농업노동자와 중농 및 소농은 90%가 축소되었다. 1980년에 34.5%였던 비공식부문 노동자 비율은 1999년에는 53%로 올라갔다. 1989년 이후 통신, 항만, 석유, 철강, 항공 부문이 부분적․전면적으로 사유화됨으로써 외국 자본의 수중으로 그 소유권이 넘어갔고, 이들 전략적 산업의 고용은 축소되었다. 도급과 외주가 문제를 더했다.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이 증대하여 실업률이 15.4%에 이르렀다. 실질임금이 크게 떨어졌고, 사회적 파편화도 크게 악화되었다. 다수의 민중단체가 조직되었지만, 전국적인 규모의 것은 없었다.9)
이러한 상황 전개를 민중이 마냥 구경하듯이 감내하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특히, "1989년 2월에 당시 대통령이던 카를로스 페레스(Carlos Andrés Pérez)가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제안하고 나섰을 때 민중은 폭발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산동네를 내려와 수퍼마켓들을 공격한 것이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 폭동을 진압했다. "군대가 사람들에게 발포하여 수천 명을 사살하고 나서야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일부 가난한 사람들이 각성되기 시작했다."10)
뿐만 아니라 일부 볼리바르주의적인 군 고위간부들 역시 분노하고, 각성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37살의 무명의 우고 차베스 중령이 이끄는 '혁명적 볼리바르 운동'(Revolutionary Bolivarian Movement, MBR200)은 1992년 2월에 부패한 카를로스 페레스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는 투옥되었지만, 2년 후 1994년에는 석방될 수 있었다. 만성적 정치 불안과 빈발하는 쿠데타 때문에 형성된, 실패한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관대한 남미의 정치적 전통(?) 덕택이기도 하지만, 그 쿠데타 시도를 계기로 생긴 차베스에 대한 대중의 높은 지지 열기 때문에 그를 처형할 수도, 장기간 수감해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11)
출옥 후 차베스는 반란 대신에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노선을 바꿨고, "베네수엘라의 혼란과 부패, 비효율을 종식시키고 베네수엘라에 절실히 필요한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제도적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민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전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12) 그리고 그 결실로 1998년 12월에 56%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 결정적 전기들
― 과두적 구지배세력의 반격과 그에 대한 대응
마르틴 하네커가 지적하고 있듯이, "차베스가 처음 집권했을 때, 베네수엘라는 완전한 국제적 고립에 직면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야말로 유일한 모델로 강제되고 있었다. 과거에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운동이 의존하곤 하던 사회주의 요새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사회주의에 대한 중심적 적대자인 미국은 어떤 견제력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유일의 군사강국이 되어 있었다."13)
그러한 조건 하에서 차베스는 그의 "집권 첫 해를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강화함으로써) 국제적 힘 관계를 변화시키려고 하면서, 그리고 그에 대한 국내의 지지를 공고화하면서 보냈다."14) 다행히도(?),
라틴 아메리카의 정부들은 새로운 헌법을 초안하는 헌법제정회의를 소집함으로써 그들 정권들에 새로운 의미의 정통성을 부여하곤 한다. 1998년에 [대통령에 ― 인용자] 당선되자, 가난한 민초들에게 전에는 그들이 전혀 몰랐던 권력을 부여하여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국민경제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부패한 정치적 상부구조의 해체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는 이를 멋지게 이용하였다. ...
... 1999년 대통령으로서의 첫 해에 그는 유례 없는 많은 수의 투표를 실시했다 ― 인민이 새로운 헌법제정회의를 원하는지 여부를 물은 국민투표, 그 헌법제정회의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들, 신헌법을 비준하기 위한 두 번째 국민투표 등...15)
위 기사의 작성자인 존 필거(John Pilger)는 이 헌법을, 그것이 "차베스 자신이 그 일원이기도 한 혼혈인들이나 흑인들의 인권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있는 제123조와 같이, ...[가난한 민초들에게 ― 인용자] 이전에 듣지 못한 자유를 부여하였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관찰자도, "이 반(反)신자유주의적인 헌법은 ... 새로운 모델의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와 협동조합과 노동자 자주경영을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규정"하였으며, "이 두 모델은 모두 근본적으로 휴머니즘과 연대에 기초하고 있다"고16) 극찬하고 있다.
차베스는 그의 국내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취임 초부터 극빈자를 위한 여러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해왔다. 극빈자를 위한 긴급사회보장계획(Project Bolivar 2000)이나, 무료 공교육의 재건 및 볼리바르 학교(학생들에게 하루에 2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전일제 학교들) 창설운동 등 빈곤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교육제도의 도입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민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라디오 방송(나중에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발전했다)도 실시하여 매주 국민들을 상대로 직접 연설하기 시작했다.17)
1) 2002년 4월의 쿠데타
야당, 즉 "소수의 구(舊)지배층은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여전히 거대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영석유산업인 '베네수엘라 석유'(Petróleos de Venezuela, PDVSA)의 경영을 통한 막대한 금융적․경제적 권력, 입법부와 사법부 내에서의 압도적인 절대 다수 및 지방 정부의 고위층과의 수많은 동맹관계, 독점에 가까운 대중매체에 대한 통제, 기업가 연합은 물론 가장 강력한 노총인 [어용적인 ― 인용자] 베네수엘라 노총(CTV)의 지지, 그리고 일부 고위 장군들 및 고위 경영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 교회 일부의 충성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들 소수 지배층은 워싱턴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이들 반대진영은 처음에는 새로운 지도자, 즉 차베스를 무력화시키고, 매수하려 하였다.18)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구지배층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이 신헌법에 기초하여 2000년 7월 30일에 실시된, 대통령과 주지사, 시장, 국회의원을 뽑는 '대선거'(mega elections)에서 차베스가 임기 6년의 대통령의 직에 다시 당선되었을 뿐 아니라, 그 결과가 전반적으로 차베스 정권에 유리하였다. (그리하여, 금년 말에는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으나, 그의 당선을 위협하는 요소는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에서는, 선거에서 패배가 뻔한 야당이 트집을 잡아 선거를 보이콧하는 것으로 정국불안을 조성하려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러한 승리 덕택에 이제는 차베스주의가 정부를 지배하게 되었고, 야당은 깊게 분열되어 국회 내에서 거의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정당들이 위기에 처하자 대중매체들은 노골적으로 야당 편이 되었다."19)
게다가, "(차베스 지지 의원들의 경험 부족과 야당의 개입 때문에) 극히 느린" 속도로이긴 하지만, "헌법이 약속하고 있는 바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혁명적 입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1년 12월 10일에는 대통령이 헌법에 의해서 그에게 부여된 특별 입법권을 이용하여 49개의 법률을 제정하였는데, 토지법, 어업법, 탄화수소법, 소액대부법, 협동조합법 등이 그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일련의 법률들은 혁명과정을 앞으로 밀고나가려는 그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과두지배층은 전통적으로 다른 정치가들을 매수해왔지만, 처음으로 그 경제적 이익을 침해당한 그들은 이제 그를 매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게 되었다."20)
베네수엘라 정치에 새로운 극적이고 결정적인 전기(轉機, 혹은 戰期)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2002년 4월의 저 유명한 쿠데타와 그 반전(反轉)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많이 의존해온 마르타 하네커가, 비록 이 쿠데타에서의 미국의 배후 역할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베네수엘라 국내에서의 그 전개 상황을 아주 훌륭하게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그의 서술을 아예 그대로 옮겨와 보자.
반대세력은 차베스가 그의 계획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거대한 공세의 첫 번째 조치들을 취했다.21) 그들은 대규모 시위들을 조직했고, 문제의 49개 법률들이 입법된 바로 그날에 총동맹파업을 시도했다.
이 당시 정치적 상황은 이전에 비해서 차베스에게 훨씬 덜 유리했다. (혁명과정 초기에는 차베스의 핵심적 정치적 조직가였고,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루이스 미퀼레나(Luis Miquilena)가 49개 법률의 입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차베스에 의해서 해임되었고, 지도적인 반대인물의 역할을 담당했다. 핵심적인 정치참모를 잃어버린 것은 대통령에게 심각한 타격이었는데, 특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국회 내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잃게 되었고, 사법부에 대한 통제도 잃게 되었다. 미퀼레나와 연계된 많은 고위 관료들이 공개적으로 반정부적 입장으로 선회하여, 반대세력과 명백히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합했다. 많은 의원들이 차베스 진영을 떠났다. 이 기간 동안 반정부운동이 증대했고, 반대세력의 자신감도 커졌다.
2002년 4월 11일 및 그에 이은 여러 날들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작전통제권을 가진 장군의 80%가 차베스와 헌법에 여전히 충성했기 때문에 군사 쿠데타는 실패했는데, 이는 반대세력의 최초의 대패배였고, 차베스에게는 참된 선물이었다.
이들 사건을 통해서 배신자들(actors)이 폭로되었고, 군대 및 정치가들 내부에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인민대중의 정치의식이 성장했다. 이러한 상황은 군부의 숙정을 용이하게 했고, 반대세력을 분열시켰으며, 이전에는 볼리바르 혁명과정을 반대하던 중산계급의 분파들로 하여금 차베스의 패배를 수반할지도 모를 혼란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도록 만들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민중조직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볼리바르 동아리(Bolivarian Circles)들이 전국에 걸쳐 몇 배나 늘어났다. 도시토지위원회나 의사나 교사, 변호사들의 독특한 중산계급 단체들이 등장했다. 나아가서, CTV(베네수엘라 노총)의 공모에 비판적인, 여러 산업의 조합지도자들이 분발하여 혁명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독자적인 노동자세력을 결성했다.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차베스를 지원해왔던 다양한 좌파 정당들은 정부를 지원하는 공동전선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이전에는 그 변혁과정을 잘 이해하지도 높이 평가하지도 않던 전세계의 좌파 및 진보적 세력들이 이제는 그에 호감을 보내게 되었다. 정말로 혁명적인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반대세력의 맹렬한 반혁명적 본성도 설명될 수 없었을 것이다. 쿠데타에 대한 반감이 국제적으로 증대했다.22)
2002년 4월의 실패한 쿠데타는 이렇게 차베스 지도 하의 볼리바르 혁명을 강화하고 가속화시키는 주요한 전기였다. 그런데 이 쿠데타는 베네수엘라 내의 격렬한 계급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미 제국주의와 차베스 정권 간의, 미 제국주의와 베네수엘라 노동자․민중 간의 격렬한 투쟁이기도 했다. 볼리바르 혁명의 원인과 배경이 된 베네수엘라의 극심한 빈곤의 주요 원인이 미 제국주의에 의한 착취와 지배였던 만큼 그 운동의 주요 성격 또한 반미․반제국주의적이었고, 이러한 반미․반제국주의적 성격 때문에 이를 타도하기 위해서 미국이 쿠데타를 직접적․간접적으로 지원․뒷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에바 골링어(Eva Golinger)는 차베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부시 행정부의 활동들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그녀는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을 근거로 요구해서 입수한 CIA의 극비문서를 공개함으로써, 우고 차베스를 타도하기 위해서 미국이 CIA, NED,23) 그리고 USAID24)와 공모하여 2002년에 실패한 이틀간의 쿠데타에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4월 10일자 울티마스 노티씨아스(Ultimas Noticias) 지(紙)에 보도된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지금,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반대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브라질, 페루, 멕시코, 오스트리아 및 스페인과 더불어 반(反)차베스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입증하는 서류들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했다.25)
이 실패한 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그 직전과 직후의 미국의 고위관리들의 언동에서도 감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성형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올[2002년] 2월 CIA 국장 태닛이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이렇게 심증을 드러냈다. "나는 세 번째 석유공급국가인 베네수엘라를 우려하고 있다. ... 차베스 대통령의 '볼리바르 혁명'에 대한 국내의 불만은 점증하고 있다. 유가하락으로 경제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위기 국면은 아마도 악화될 것이다." 쿠데타 당일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은 이렇게 화답했다. "오늘 아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임은 축복으로, 민중의 의지로 볼 수 있다."26)
이 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개입․지원․조종이 얼마나 전면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베네수엘라의 반차베스 세력, 즉 구지배층이 얼마나 대미(對美) 의존적․종속적인가 하는 것은, 차베스를 거침없이 "민중주의자"로 규정하는 등의 기술에서 볼 때 결코 친(親) 차베스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성형 교수의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쿠데타 세력의 "3일천하의 과도정부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아이처럼 미국으로부터 훈령을 기다리는 애처로운 신세"였으며, 미국의 쿠데타 개입 사실을 폭로하는 문서는 "미국의 개입이 단순히 '조언'이나 '제안'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거의 '관리' 수준이었음을 웅변적으로 증언한다"고 쓰고27) 있기 때문이다.
2002년 4월의 이 쿠데타 시도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관련하여 또한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에 대한 미국 노총 AFL-CIO의 개입․지원일 것이다.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 얘기한 것처럼 미국의 진보노동당(PLP)은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그러한 PLP가 "베네수엘라의 4월 19일 쿠데타 시도에서는 AFL-CIO가 지휘하는 한 기관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AFL-CIO를 "미 제국주의, CIA의 노동전선"이며 AFL-CIA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 쿠데타에서 베네수엘라의 부패하고 어용적인 노조 CTV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주로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AFL-CIO에 의해서 운영되는 '미국국제노동연대센터'(ACILS)를 통해 AFL-CIO가 NED와 더불어 바로 그 CTV에 "원조와 '기술적 조언자들'을 제공했다"는 것이다.28)
미국의 진보노동당(PLP)은 또한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즉,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AFL-CIO는, 미 제국주의 요구를 지원하고 또한 노동자들을 공산주의 혁명으로부터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 파시스트 노조를 훈련시키고 자금 지원해 왔다. 그들은 수백만 노동자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결국은 그들도 히틀러를 위해 행진했던 노조 지도자들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29)
아무튼, 주지하는 것처럼, 이 쿠데타를 지원․조종함으로써30)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 등에 대한 미국의 지배․이해관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려던 미국의 의도는 쿠데타에 반대하고 차베스 정권을 지지하는 베네수엘라의 수백만 노동자․인민의 시위 투쟁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리고 볼리바르 혁명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2) 2002년 말과 2003년 초의 '경제적 쿠데타'
반차베스 세력인 구지배층은 쿠데타의 실패를 통해서 커다란 타격을 받았지만 차베스 정권 전복 음모와 의도를 멈추거나 숨기지 않았다. 차베스 정권도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같은 반격"을 취하지 않았다.
차베스는 자신의 힘을 먼저 타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쿠데타가 좌절되고 헌정이 다시 확립되었지만, 혁명과정을 계속 진전시키는 데에 얼마나 많은 지지가 있을 것인가는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2의 쿠데타 시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힘을 강화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특히 그는 군부를 숙정하는 데에 온힘을 쏟았다. 나아가, 반대세력에 대한 타협의 몸짓으로 그는 경제계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인물들을 경제 관련 장관에 임명했고, PDVSA의 전 반대파 임원들을 복직시켰다. 게다가, 그는 볼리바르 혁명 과정에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한 라운드테이블을 개설하고 일부 위임입법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반대세력은 차베스의 이러한 행동들을 정부의 취약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세력을 재조직하기 시작했고, 법원이 군사 쿠데타의 범인들을 석방하자 그들은 불안정화를 위한 행동들을 다양하게 전개했으며, 경제적 쿠데타를 위한 전략을 확정했다. 그들은 2002년 12월 2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총동맹파업31)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그들의 목표는 전국을 마비시킴으로써 차베스로 하여금 사임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석유의 생산과 유통을 정지시키는 데에 초점을 모았다. 그리고 이를 달성할 수 없는 곳에서는 그들은 파괴행위를 벌였다. 그들은 차베스가 크리스마스 이전에 실각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의 확고한 지도력과, 석유노동자들은 물론 기타 노동자들과 지난날의 고난을 극복한 인민대중의 모범적인 행동으로 반대세력은 두 번째의 대패배를 겪었다.32)
차베스 정권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려는 저들 반대파들의 의도가 대부분 노동자들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그러자 차베스 정권과의 일대 회전에서 패배를 예감한 우익은 더욱 필사적으로 되어 2003년 1월 3일에는 "최후의 전투"를 선언하고 반차베스 시위대를 군기지인 티우나 요새(Ft. Tiuna)로 이끌어 가려고 시도했는데, 이 기지는 차베스를 지지하는 노동자 거주지역 인근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친차베스 노동자들과 반차베스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을 도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차베스 세력은 군부대에 대하여 차베스를 반대할 것을, 즉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요구했고, 차베스를 지지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군부대로의 이들의 행진을 저지했다. 그러자 차베스 반대세력의 시장 지휘 하의 시 경찰이 바리케이트에 불을 지르고 차베스 지지 시위대에 발포하여 2명의 사망자를 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1월 5일 수백만 명의 노동자․인민이 시위에 나서 "인민의 정의"를 외치면서 차베스 정부에 대해서 반대세력에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반대세력의 도발이 고조될수록, 이들 음모자들에 대해서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 또한 보다 광범한 부문의 노동자들로부터 터져 나왔던 것이다."33)
"석유회사 간부 수백 명이 파괴행위 때문에 해고되었다. 1월 8일엔 차베스가 국영석유회사를 재구성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반차베스 운동의 심장부인 그 경영관료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은행 간부들과 수퍼마켓 소유자들이 철시하려 하자 차베스는 은행을 국유화하겠으며 군을 보내 식품창고를 확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경영자들의 의지에 거역하여 일하는 것에서 긍지를 느꼈다. ... 소위 '파업'에 연대하여 은행들이 문을 닫자 ... '많은 은행 노동자들이 ... 이틀간의 파업 요구를 무시했다.'"34)
그랬다. 그들이 선동한 파업과 파괴행위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지만35) 그들은 결코 차베스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었고, 심대한 정치적 타격은 오히려 자신들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차베스 정권이 선도하는 볼리바르 혁명은 보다 광범하고 가속도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의 2개월에 걸친 노력...은 2월 3일에 붕괴되었다. 그 이후 가난한 사람들과 근로인민들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을 좌절시키려고 거듭 시도한 쿠데타 음모자들과 파괴행위자들을 처벌하라고 외쳐대고 있다. ...
차베스는 2003년을 '혁명적 반격의 해'로 선언했다. ...
결정적인 산업인 석유 생산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부(富)의 주요 원천인 거대 국영석유회사 PDVSA의 폐쇄에 가담한 경영자와 간부 1만 명을 해고했다. 국가의 사활이 걸린 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차베스는 과거 좌익 게릴라 운동의 사령관이었던 알리 로드리게스(Ali Rodriguez)를 PDVSA의 사장직에 임명했다. ...
폐쇄기간 중에 석유생산은 하루 3백만 배럴에서 30만 배럴로 떨어졌다. 자본가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생산을 계속한 노동자들의 영웅적 노동으로 생산은 지금 하루 2백만 배럴로 올라왔다. ...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대세력의 핵심을 타격하기 위한 또 다른 움직임으로 차베스 정부는 2월 18일에 통화에 대한 통제를 실시하여 미국 달러와 같은 외환의 관리를 집중시키고 있다. 공장폐쇄에 가담한 기업의 대부분이 그 경영을 미국 달러에 의존하고 있다.
차베스는 또한 우유로부터 쇠고기, 쌀에 이르기까지 식품에 대한 가격통제를 발표했다. 일부 생산자들이 낮은 가격에는 팔지 않겠다고 위협하자,36) 차베스는 엄중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
차베스는 또한 은행이 부과할 수 있는 이자율을 제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또한, 4월의 쿠데타 시도와 볼리바르 혁명을 질식시키려는 최근의 시도를 선동하는 데에서의 역할과 관련, 5대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을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억만장자이자 과격한 우익인 구스타보 씨스네로스(Gustavo Cisneros) 같은 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상업주의적인 거대 대중매체들은 "공공질서를 전복시키기 위한 선전"을 방송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월 20일 페데카메라스(Fedecameras)의 총수인 카를로스 페르난데스(Carlos Fernandodez)의 체포는 반대세력을 재판하려는 차베스 정부의 최초의 시도이다. 베네수엘라 노총 CTV의 부패한 위원장 카를로스 오르테가(Carlos Ortega)의 체포영장 역시 발부되었다. CTV의 지도부는 주로 베네수엘라의 전통적 지배층에 의해 조직된 두 정당 중의 하나인 민주행동당의 간부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 ...
차베스 정부는 또한 '볼리바르 동아리'(Bolivarian Circles)의 조직을 장려했다. 이들은 볼리바르 혁명을 방어하고 혁명의 많은 사회적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조직되는 근린조직들(neighborhood groups)이다.
혁명이 심화됨에 따라 베네수엘라의 부자들과 워싱턴에 있는 그들의 후원자들은 갈수록 더 미쳐가고 있다. ...
전국을 질식시키려던 2개월에 걸친 시도가 분쇄된 이후, 볼리바르 혁명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37)
3)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
이 2002년 말에서 2003년 초에 걸친 사태에도 역시 미국은 개입하고 지원하였다. 그러나 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돌변하여, '대화에 의한 해결'을 촉구하게 되었다. 쉽사리 승리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베네수엘라 사태에 너무 깊이 개입되면, 이라크를 침공․점령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02년 1월 초 차베스 대통령이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했을 때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보장하는 조직으로 제안한 "우인 그룹"(Group of Friends) 프로젝트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반대세력의 '경제 쿠데타'가 패배로 끝난 후, "커터 센터(Carter Center)와 '우인 그룹'(미국을 포함한 국가들), 그리고 미주기구(OAS)는 모두 정부대표와 반대세력 간에 대화를 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그리고 5월 29일에는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에 명시된 수단, 즉 소환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38)
대통령을 소환하려는 국민투표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기로 하자.
아무튼 2004년 8월 15일에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결과는 58%의 지지를 얻은 차베스의 승리, 즉 반대세력의 세 번째의 대패배였다. 당연히 볼리바르 혁명은 공고화되고 심화되게 되었다.
3. 볼리바르 혁명의 내용과 성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의 내용과 성과는 여러 관찰자, 찬양자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소개되고 선전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중 약간의 문건에 의존하여 그 내용과 성과를 간단히 소개해보자.
우선 독자들은 마리아 빅토르가 요약하고 있는 바의, 차베스 집권 전의 베네수엘라의 빈곤상39)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그녀는 역시 같은 글에서, "차베스 대통령 정부는 무엇을 성취했는가?" 하고 문제를 제기한 후, 역시 여러 자료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석유로부터 얻는 수입을 공공복리를 위해 이용함으로써 차베스 대통령의 정부는 구지배층 정부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해냈다. 즉, 국민들의 기본적인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석유 수입은 이제 보편적인 보건 써비스와 모든 수준의 교육, 맑은 물, 식량 보장, 소액 대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토지의 분배와 사실상의 소유자를 위한 양도, 노동자 협동조합, 도로나 철도와 같은 기반시설, 독립적인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정책 협의를 포함한 모든 정부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장려되고 있다. 이는 이전에는 베네수엘라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세계의 모든 개발도상국들을 통틀어봐도 드문 일이다. 가난한 방관자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치선전자가 되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 이는, 인민은 지도자의 보호 하에 있는 거지일 뿐인 '민중주의'라는 오명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대중적 담론과 참여를 다원적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본질로 보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rbermas)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는 극적이어서:
○ 유네스코에 의해서 베네수엘라는 문맹이 없는 나라로 선언되었다.
○ 유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다.
○ 과거에는 혜택을 못받던 시민의 70%가 무료로 지역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 인구의 거의 절반이 공부를 하고 있다.
○ 2005년 현재 빈곤율이 37%로 떨어졌다. (1998년 현재의 빈곤윤은 80%)
○ 그리고, 2005년에는 경제가 9.4% 성장하여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었고, 더구나 대부분의 성장이 비석유부문(석유부문 1.2%, 비석유부문 10.3%)에서 일어났다.
차베스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오래 전에 시몬 발리바르가 제창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통합이라는 사상에 입각해 있다. ...40)
1) 국내의 사업과 성과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한 관료층의 비협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기구 외부에 일련의 '사업들'(missions)을 창출해냈는데, 특히 보건 및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데에서는 쿠바의 전문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41) 주요한 운동들을 개략해보자면, 다음과 같다.42)
◈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 (Mision Bario Adentro) ― 광범위하고 질이 높은 무료의 지역 보건․치과 치료를 병원과 의원에서 공급하기 위해서 3단계로 나뉘어 파견된 일련의 사업으로서, 2만 명의 쿠바 의료진의 지원을 받고 있다. 500개 이상의 병원이 설립되었다. 이 사업은 빈민가 및 도시 주거지역에 사는 수백만 명에게 질병예방 및 상담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이 사업은 또한 보건문제를 경제, 영양, 식품안전, 문화, 스포츠, 교육 및 환경 문제와 연계시키고 있고, 동일 지역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는 의사와 단체들의 참여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 미션 메르칼 (Mision Mercal) ― 이 프로그램은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생산물, 곡물, 유제품 육류를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이들 식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베네수엘라의 식량 주권도 증대시키려는 것이다.
◈ 미션 로빈손 I (Mision Robinson I) ― 이 사업은 자원활동가들을 활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친다. 2004년 현재 인구의 99%가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140만 명 가까이가 등록하여 거의 130만 명이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남북 아메리카를 통틀어 오직 베네수엘라와 쿠바만이 문맹을 사실상 완전히 없앴다. 미국의 경우 교육성은 인구의 20% 이상이 기능적으로 문맹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미션 로빈손 II (Mision Robinson II) ― 미션 로빈손 I의 연장으로서, 여러 지역에서 초등교육을 실시할 뿐 아니라 읽고 쓰는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120만 명이 등록하여 그 중의 절대 다수가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 미션 리바스 (Mision Ribas) ― 나이에 상관없이 고등학교 교육을 시키고 졸업자격을 부여하는 곳으로서, 전국적으로 약 2만9천 곳의 교육기관이 있다. 거의 150만 명이 등록하였다.
◈ 미션 수크레 (Mision Sucre) ― 고등학교 졸업자나 동등 이상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대학에서 거의 27만5천 명이 등록하였으며, 1999년 이후 5개의 새로운 대학교를 설립했다. 차베스가 집권하기 전에 비해서 이제 교육은 대학교 수준까지 완전히 무료이고, 학교에 등록하면 혜택이 따른다.
◈ 미션 과이카이푸로와 미션 하비타트 (Misiones Guicaipuro and Habitat) ― 미션 과이카이푸로의 목적은 공동체적 토지소유와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원주민들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거대 기업들의 자원 및 금융 투기로부터 그들의 권리를 방어하는 것이다. 환경자연자원부(部)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국가의 가장 거대한 사회운동 조직으로 되어 있다. 이 운동을 통해서 5천 개 이상의 토지위원회가 조직되었고, 5백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인구의 20%)이 가입되어 있다.
도시토지위원회법(CTUs)은 점거토지 위에 지은 집에 사는 사람들(거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은 국가에 토지소유권을 청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정책은 인구의 약 60%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도시주거지역(barrios)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토지의 소유권을 주고 있다. 2005년 중반 현재 12만6천 가구에 약 8만4천 건의 소유권이 부여되어, 약 63만 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실적은 도시주거지역 인구의 겨우 6%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더 많은 소유권 부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토지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의 베네수엘라 사회에 대한 공헌을 정부가 인정하고 합법화하는 한 방식이다. 이 권리는 신헌법 제82조에 규정되어 있다.
이에 비해서, 미션 하비타트는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공공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조력하려는 사업이다. 그 목표는 수천 채의 새로운 무료 주택을 건설하고, 의료와 교육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써비스가 제공되는 통합주택지역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 미션 부엘반 카라스 (Mision Vuelvan Caras, 전환) ― 이는 인민과 정부 간의 협동조합 프로그램으로서, 사회적․경제적으로 국가를 변형시키려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장래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 주요 목표는 사회적 필요를 보다 더 중시하는 국가, 그리고 보다 더 높은 생활 수준을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 농업협동조합43) ― 2003년 하반기부터 차베스 정부는, 사유지이든 국공유지이든, 경작되고 있지 않은 토지를 가난한 농민과 토지 없는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고 있다. 처음 약 15개월 동안에만도 약 220만 헥타아르의 토지가 11만6천 가구에 분배되어 협동조합으로 조직되었다.44)
이 외에 차베스 정부가 정치적으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로서,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2003년 현재 2백만 명 이상이 가입하고 있는 근린조직(近隣組織)으로서의 볼리바르 동아리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위에서 열거한 정부가 펼치는 여러 사회운동과 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이며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지역 차원에서 볼리바르 혁명과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45)
"나아가, 차베스 정부는 또한, 정부가 추가적인 운전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사적소유 회사들이 그 피고용인들로 하여금 회사의 운영에 대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발언하고 통제할 수 있게 허용하도록 권장함으로써 협동정신을 장려하고 있다. 차베스의 계획은, 회사들이 이사회에 노동자들을 포함시키고 피고용인 협동조합과 이윤을 분배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지원을 필요로 하는 약 200개의 회사들(대부분 소기업)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공동경영계획을 채택하기로 동의하였는데, 정부는 보다 더 많은 회사들이 이에 동의하기를 원하고 있다."46)
2) ALBA ― '자유무역'에 대한 차베스의 대안
차베스가 이끄는 볼리바르 혁명의 주요 내용의 하나는 반미․반제국주의이며, 이는 베네수엘라 인민의 빈곤과 고통의 주요 원인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한 빈곤․고통․굴종과 싸우는 정치노선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이미 얘기한 것처럼, 그리하여 그가 집권하자마자 노력을 기울인 것의 하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OPEC의 강화는 차베스에게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석유수출국들의 반미․자주노선을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 석유값을 높이 유지함으로써 볼리바르 혁명 추진의 핵심 재원인 석유 수입(收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목적을, 특히 석유 수입에 관한 한, 기본적으로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최근 OPEC를 강화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다름 아니라, 미국이 추진하는 소위 '자유무역', 즉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정책, 구체적․지역적으로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범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of Americas, FTAA)에 대항한, 라틴 아메리카의 통합, 혹은 그 지역 국가들의 경제협력체를 추구하고 있다. "자본가적 이데올로기를 지배하고 있는 경쟁이나 다윈주의[즉, 적자생존주의 ― 인용자]가 아니라 협동과 연대의 원칙에 기초한" 지역통합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그는 이를 ALBA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 즉 '범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적 대안'이라고 부르고 있다."47)
ALBA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그는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주민들을 상대로 정치적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접국가들에게, 심지어 남미에서 가장 친미적이고 대미종속적인 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콜롬비아에까지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최근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간에 1995년에 체결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에 가입하여 그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48) 그리고 심지어는 미국의 자본가계급이 벌이는 미국 내의 반차베스 선전선동에 대항하기 위해서,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의 미국내 자회사로서 3개의 정유공장과 거의 2만 개의 주유소를 가지고 있는 CITCO를 통해서 지난 겨울에는 뉴욕의 빈민지역 등에 난방유를 할인된 가격에 공급하기까지 하였다.
4. 볼리바르 혁명의 성격과 전망
위에서는 주로 친차베스적 자료와 문건에 기초하여,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볼리바르 혁명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내용과 성과를 개략적으로 소개하였다. 이렇게 주로 친차베스적 자료에 기초하여 논의를 진행시킨 이유는 당연히 내 자신이, 차베스가 주도하고 있는 볼리바르 혁명이 주관적으로 반미․반제국주의적이자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베네수엘라의 가난에 찌든 광범한 근로대중의 경제적․사회적, 그리고 정치적․문화적 이익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그 객관적 성과 또한 그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세계의 노동자계급에게 "그래! 가능하다!"고 하는 혁명적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볼리바르 혁명의 주관적 지향과 지금까지의 성과가 그렇다고 해서, 차베스 자신이 자임하고 있고 또한 많은 관찰자들이 그렇게 평가․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곧바로 '사회주의', 심지어 '21세기(형)의 사회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날 조․중․동 등의 파쇼 언론이나 한나라당과 같은 파쇼 정치세력, 그리고 그들의 주구 노릇을 하는 보수 지식인들의 소란스러운 악의적 행태에서 절실히 보는 것처럼, 그리고 무원칙한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 무지하고 순진해서 그렇게 규정하는 것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정권이나 정치집단의 주관적 의도․지향과 정책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친노동자․친인민적이면 곧 그것을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보다 엄격한 맑스-레닌주의적, 혹은 적어도 보다 넓은 의미의 맑스주의적 관점과 판단기준을 통해서 볼리바르 혁명의 성격을 가늠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우선 현재와 같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의 그러한 단계에서 과연 (백보 양보해서, 최소한의) 레닌주의적 정당이 없이도, 그러한 정치조직․정치활동의 원칙을 견지하지 않고도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나는 아직 앨런 우즈(Alan Woods)의 문제의 저서를 직접 읽어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그 저서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통해서 추측컨대, 영국의 유명한 맑스주의 정치학자인 우즈 역시 볼리바르 혁명을 기본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관점에서 쓴 [베네수엘라 혁명 ― 한 맑스주의자의 시각](The Venezuelan Revolution: A Marxist Perspective, Wellred Publications, 2005)에서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서평자 데이빗 레이비(David Raby)가 이렇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 '혁명적 맑스주의 조류'(Revolutionary Marxist Tendency)의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의 우즈는 ... 이 서평자처럼, 그러나 수많은 종파주의적 교조주의자들이나 주관적 이상주의자들(wishful idealists)과는 달리, ... 혁명이란 미리 생각했던 공식에 따라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인민(혹은 노동자계급)은 언제까지고 가만히 앉아서 완벽한 맑스-레닌주의적 정당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없듯이, (국제적인 반세계화운동 내의 일부 몽상가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들이 자발적이고 조직되지 않은 대중으로서는 혁명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내가 보는 바로는 우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혁명적 정당이라는 그리고 우리 시대의 혁명과 사회주의의 본질이라는 무언가 교조주의적인 관점에 속박당해 있는데, 그러나 이러한 면에서의 결점들은 그가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의해서는 보상되는 것이 아니다.
... 효율적인 혁명정당이 없는 속에서 차베스와 그의 볼리바르 혁명운동(MBR-200)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대중적 혁명운동의 사실상의 전위가 되었고, 결정적인 점은 대중들에 의해서 이 전위적 역할이 인정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맑스나 레닌, 트로츠키가 생각한 형태의 전위정당이 아니다라고 한탄해본들 소용이 없다. 우즈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수많은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차베스와 대중들 간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그들은 '민중주의'(populism)에 관해서 중얼중얼하고 있지만, 이는 "완전히 무능력하게도 대중들의 현실적 운동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49)
서평자 데이빗 레이비가 "차베스와 대중들 간의 변증법적 관계" 운운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적 전위정당의 폐기이고, 무원칙한 현실주의, 곧 기회주의가 아닐까?
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데이빗 레이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차베스의 정치적 능력이나 인민계급들과의 그의 긴밀한 결부(intimate bond)를 과소평가"해서도, "이 결부야말로 베네수엘라 혁명의 진정한 추진력이자 그것을 한층 더 급진적으로 밀고 가는 진정한 추진력"이라는 것을 몰라서도 결코 아니다.
레이비는, 1989년에 당시 카를로스 페레스 대통령이 IMF의 지시로 강제했던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대하여 "... 자연발생적이고 방향성을 갖지 못한 반란(페레스의 명령으로 수백 명, 실제로는 어쩌면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잔인하게 진압되었던 반란)에 참여했던 인민이 자신들에게 없었던 지도력을 1992년 2월 4일에 우고 차베스 중령이 이끈 성공하지 못한 군-민 봉기에서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바로 그대로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즉 고도의 정치적 사상․이론․이념으로 무장된 정치조직이 아니라 차베스 '개인'에게서 지도력을 발견하고, 대중이 그러한 정치조직이 아니라 바로 그 '개인'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에야말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의 커다란 문제점, 약점이 잠재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도 없는, 그리하여 일부에서는 현실적으로 염려하고 있는, 예컨대 미 CIA 등의 공작이나 기타 극우세력에 의한 '차베스의 암살'50)이 없더라도 말이다.51) 차베스의 정당인 '볼리바르 혁명운동'(MBR-200)은, 예컨대 2002-03년의 쿠데타나 '경제 쿠데타' 파동 등을 거치면서 많은 '배신자들'이 숙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규율이 있는 맑스-레닌주의적 의미의 전위정당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레이비의 서평 자체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한편, 베네수엘라의 노동자․인민의 정치의식은 신자유주의와 투쟁하면서, 그리고 차베스와 더불어 볼리바르 혁명을 전개하면서 크게 발전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위 "차베스와 대중들 간의 변증법적 관계"나 그를 통한 대중과 차베스 자신의 정치의식이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레이비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더라도, 즉 그러한 모든 사실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위정당의 부재를 보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두 번째로 제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차베스와 볼리바르 혁명이 현실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사유재산제도 자체를 기본적으로 폐지하지 않고도, (물론 맑스주의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경작되지 않고 있는 토지를 분배하고 있고, 그것을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성격의 협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있지만, 그리고 점거된 토지 위에 집을 지은 그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그 집의 거주자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그것은 베네수엘라에 존속되고 있고 차베스와 볼리바르 혁명이 인정하고 있는 거대한 사유재산제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아닌가?
또한, 차베스 정권과 볼리바르 혁명을 뒷받침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물론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참여이지만, 동시에 군부 다수파의 지지가 없이는 사실상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자타가 모두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차베스와 노동자․인민대중이 사유재산제 자체를 기본적으로 폐지하는 데에까지 나아가고자 해도 군부가 과연 그러한 차베스와 그러한 볼리바르 혁명을 계속 지지할까? 아니면, 전복(轉覆)에 나설까?
차베스가 즐겨 주장하는 "21세기의 사회주의"라는 것이 그리하여 만일 사유재산제를 그대로 존치한 채의 '사회주의'라면, 그것을 정말 사회주의로 받아들여도 좋은 것일까?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 당장 차베스와 볼리바르 혁명을 부인하고, 거부하고, 기본적으로 비판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미국의 진보노동당(PLP)이 볼리바르 혁명을 가리켜 "가짜 사회주의"(phony socialism, fake socialism)라고 규정하면서, 혹은 "가짜 혁명"이니,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면서, "차베스의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착취를 종식시키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52)도, 물론 현재로서는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지만, 마냥 흘려들을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리고, 레이비는 예의 서평에서 "이 역시 대중운동의 현실적인 역동성에 대한 무지에서 많은 종파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매도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노동자․인민에게 레닌주의적 "혁명적 전위정당"을 건설하라고 요구하고, 또 그들이 그것을 건설할 수 있도록 연대와 지지․지원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볼리바르 혁명이 민중주의로 전락하지 않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셋째로, 당연히 방금 위에서 제기한, 특히 사유재산제의 존치 여부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지만, 사회주의 혁명과 국가의 문제도, 볼리바르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기 전에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앞에서 본 것처럼, 차베스 정권의 볼리바르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한 관료층의 비협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기구 외부에 일련의 '사업들'(missions)을 창출해냈다"는데, 이는 단지 '관료층' 혹은 '관료주의'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혁명'의 문제 자체가 아닌가? 만일 지금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이 그러한 것처럼, 그리고 차베스나 볼리바르 혁명에 대한 찬양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를 그대로 존치시킨 채 그 권력만을 장악하고, 그것을 지렛대로 정부의 외부에 일련의 '사업들'을 창출하고 장려함으로써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별문제 아니라는 듯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등의 국가관을, 따라서 맑스(-레닌)주의를 부정하는 소부르주아적 망상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당연히(?) 차베스 정권의 볼리바르 혁명을 지지․지원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공산당'(PCV)의 한 당원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대답은 계급투쟁이다. PCV에 있는 우리가 볼 때, 머지않아 자본가들 및 그들의 관료제와 노동자계급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거대한 폭발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공식적 대표가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모두 국외에서 반혁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은 올 것이고, 누가 승리할 지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미국 역시 이 전투에서 관건적 역할을 한다.53)
이는, 발언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바로 사유재산제를 둘러싼 계급적 적대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따라서 혁명과 국가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볼리바르 혁명을 고찰하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볼리바르 혁명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순전히' 경제적 재원(財源)의 측면만을 본다면, 그 필수불가결의 지주는 거대 산유국으로서 석유 산업에서 오는 수입이다. 이는 물론 그만큼 더 미 제국주의의 위협을 초래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측면보다는 현실적인 재원이라는 측면이 훨씬 더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쉽게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의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나 웹싸이트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석유 민중주의"54) 운운의 논의가 나오듯이 말이다.55)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을 고찰하는 데에서 이 점은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는 석유로부터의 풍부한 재원이 지속적으로 보장되느냐 여부에 볼리바르 혁명의 지속 가능성 여부가 상당 부분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하게는 석유와 같은 어떤 특정한 부존자원이 혁명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게 하는 행운을 가진 나라의 수를 꼽자면 아마 열 손가락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극소수이며, 설령 볼리바르 혁명의 '성격' 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21세기(형)의 (사회주의) 혁명' 운운하고 일반화시킬 수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막대한 석유 관련 수입이 볼리바르 혁명의 절대적 조건의 하나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21세기(형)의 ...' 운운하는 것처럼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혹은 그와 비견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을 가진 데에서만 가능한 '특수한' 혁명인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미국의 진보노동당(PLP)은 차베스 정권의 볼리바르 혁명을 비판하면서, 차베스가 소위 '중국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든가, 볼리바르 혁명은 남미의 자원 및 시장을 둘러싼 미 제국주의와 제국주의로서의 유럽연합(EU) 혹은 그 자본, 그리고 역시 새롭게 그리고 무섭게 '제국주의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PLP는 현재의 중국을 그렇게 규정한다―) 간의 '파워게임' 등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며, 바로 그러한 조건에 의해서 그 성격이 규정되고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기도 하다.56) 여기에서는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논의할 여유도, 그럴 만한 충분한 자료도 없지만, 그냥 흘려 넘겨도 좋은 얘기는 아닐 성 싶다.
"21세기(형)의 혁명" ― 그것은, '20세기의 혁명'의 성공도 좌절도 다 거기에 달렸던 것처럼, 다름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의 원칙(―물론 교조주의적인 그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그것―)에 철저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노사과연>
특집 : 혁명―20세기, 그리고 21세기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 그 배경과 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
채만수 | 소장
1) 대표적으로, "저항적 삶의 정신"(The Spirit of Resistance Lives)를 모토로 내걸고 있는 'http://www.zmag.org/'나 'http://www.venezuelanalysis.com/' 등의 논설과 기사는 대체로 이러한 관점에 서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지난 3월 15일에 토론토 대학에서 발표되고 같은 달 말에 Zmag 및 VenezuelaAnalysis에 게재된 한 논설(Mr. Danger and Socialism for the New Millennium : A Discussion of the Current State of Venezuela)에서 마리아 빅토르(Maria Páez Victor)는 조지 부시(George Bush) 미국 대통령은 'Mr. Danger', 즉 '위험의 원인이 되는 인물'로, 베네수엘라의 현상황, 즉 볼리바르 혁명은 'Socialism for the New Millennium', 즉 '새천년대의 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2)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미국의 한 노동자 정치조직인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 PLP, http://www.plp.org)를 들 수 있다. 다만 이 단체는 카스트로 지도 하의 쿠바 역시 "가짜 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로 밝혀두고 싶다.
3) "2002년 6월 1일 웨스트 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 인용자]에서의 한 연설에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미국은 그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이는 세계의 어떤 정부도 전복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전례 없는 주장을 했다. 이는 캐나다를 포함하여 전세계에 놀라운 뉴스였겠지만,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1846년 이후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12개 국가에서 약 50번에 걸친 군사적 침략과 불안정화 작전을 수행해왔다. 이들 국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어떻게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만한 역량을 가진 적이 없지만 말이다. 미국은 단지 자신의 경제적 통제와 팽창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입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미국은 또한 바티스타(Batista, 1959년의 혁명으로 실권․추방된 쿠바의 독재자 ― 인용자), 소모사(Somoza, 1937년 이후 대를 이어 니카라과의 대통령이 된 독재자 부자 ― 인용자), 트루히요(Trujillo, 미국의 지지 하에 1930년부터 1961년에 암살 당할 때까지 도미니카를 지배했던 악랄한 독재자 ― 인용자), 피노체트(Pinochet, 미국의 지원 하에 1973년에 사회주의적 아옌데[Allende] 정권을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1990년까지 칠레를 지배하면서 수만 명을 학살한 악명 높은 독재자. 칠레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인용자) 같은 그 지역의 극악한 독재자들을 지지해왔다." (Maria Páez Victor, "Mr. Danger and the Socialism for the New Millennium: A Discussion of the Current State of Venezuela", [http://www.zmag.org/, 2006년 3월 29일; http://www.venezuelanalysis.com/, 3월 30일]).
4) 이들은 "가톨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의 무제한한 지원"도 받고 있다. (Juan Carlos Vallejo, "Another Way Called Venezuela",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6년 2월 23일 참조.)
5) Maria Páez Victor, 같은 글.
6) Stephen Lendman, "Venezuela's Bolivarian Movement: Its Promise and Perils",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6년 1월 4일).
7) David Sugar, "A Visit With the Bolivarian Revolution",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6년 1월 9일). "1998년 현재 베네수엘라는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의 하나로서, 국민 중 가장 부유한 상위 10%의 소득은 가장 빈곤한 하위 10%의 62배이다."(Tim Anderson, "Breaking Imperial Ties: Venesuela and ALBA", http://www.greenleft.org.au/back/2006/662/662p12.htm.)
8) 자본주의 국가에서 빈곤은 물론 보편적인 것이어서, "기회의 땅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역시 4,600만 명의 사람이 어떤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고, 그 위에 다시 수백만 명이 부분적으로밖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추산으로도, 전가구의 10%가 넘는 1,200만 가구가 식량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자주 끼니를 굶는다"(Stephen Lendman, "US Planning Fourth Attempts To Oust Hugo Chavez", http://www.zmag.org/, 2006년 4월 18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9) Marta Harnecker, "After the Rerendum: Venezuela Faces New Challenges", Monthly Review, Vol. 56 No. 6, 2004년 11월호, p. 35.
10) 이상, Marta Harnecker, 같은 곳. IMF와 세계은행이 요구한 이들 신자유주의적 경제조치들은 1983년 2월 18일에 도입되었으며, 그 결과 빈곤층으로 전락한 고지대의 수십만 빈민들이 1989년 2월 27일에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켜 길거리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파괴․방화했고, 거대 수퍼마켓들을 약탈했다. 당시 언론은 "온 베네수엘라가 불타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Juan Carlos Vallejo의 같은 글 참조.)
11) "패배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자 차베스는 항복했다. 대량 학살을 피하기 위해서 그는 텔레비전에 나가, 아직도 두 개의 도시를 장악하고 있던 자신의 동료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처신은 물론 투항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인용자]
그 짧은 생방송을 통해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두 가지 일을 해냈다. 첫째로, 그는 서투른 쿠데타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았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이는, 거짓말과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표준적인 정치적 전통으로부터의 중대한 단절로 보였다. 그리고, 패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차베스는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설정한 목표들이 달성되지 않았다'라고.
그후 2년간 차베스가 감옥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 그 결정적인 한 마디―'지금으로서는', 혹은 스페인어로 por ahora―는 함성, 페인팅으로 벽을 뒤덮는 저항의 슬로건, 비열하고 부패한 정계(政界)를 휩쓸어버리기를 바라는 부적이 되었다.
... 그 쿠데타의 자세한 내막과 그 '지금으로서는'이라는 말들이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수도 ― 인용자]의 가난한 슬럼가에 몇 번이고 메아리쳤다. 여기에서는 절대 다수―과거에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가정주부에서 1970년대 도시 게릴라운동의 핵심 용사들까지― 차베스 대통령을 우러러 존경하고 있다. 그들은 그를 정치적 성자(聖者), 구원자, 새로운 국민적 이념의 구현자로 보고 있다."(Christian Parenti, "Hugo Chávez and Petro Populism", The Nation, 2005년 4월 11일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5년 3월 25일자에서 재인용.])
12) Marta Harnecker, 같은 글, pp. 35-36.
13) Marta Harnecker, 같은 글, p. 36.
14) Marta Harnecker, 같은 곳.
15) John Pilger, "Chávez Is a Threat Because He Offers the Alternative of a Decent Society", http://www.guardian.co.uk/comment/story/0,,1773908,00.html (2006년 5월 13일). 국호를 '베네수엘라 공화국'에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는 것을 포함, 396개 조로 구성된 이 신헌법(일명 '볼리바르 헌법')은 71%의 찬성으로 비준되었다.
16) Marta Harnecker, 같은 글, p. 37.
17) 같은 글, p. 36.
18) 이상, 같은 글, pp. 36-37.
19) 이상, 같은 글, p. 37.
20) 이상, 같은 글, pp. 37-38. "무엇보다도 석유 부문의 통제와 감산으로 인한 유가상승 정책은 미국의 반발을 가져왔다. 베네수엘라 석유 부문의 민간개방을 노리는 다국적 석유 카르텔들은 차베스가 집권하는 동안에 자신들의 꿈이 실현될 수 없음을 절감했다. 국내에서는 2001년 11월에 통과된 49개 법안들로 기득권층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분노를 자아낸 것은 토지법이었다. 대토지소유제(ratifundio)의 유휴 토지를 수용하여 경작농민들에게 제공한다는 이 법은 과두제 세력의 기득권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이에 대응하여 2001년 12월 10일에 자본가들이 조직한 파업이 전국을 마비시켰다. 올해[2002 ― 인용자] 1월 23일에는 20만 명을 동원한 야당 세력 연합의 차베스 퇴진 시위가 조직되었다."(이성형, [라틴 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 경제], 역사비평사, 2002, p. 237.)
21) 회사 내의 정보 흐름에 대한 기술적 지식과 절대적 통제력을 이용하여 PDVSA(국영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의 고위 집행부는 [컴퓨터의 ― 인용자] 접근 코드들을 수정하고 생산과정을 교란시켰으며, 이들이 온도조절장치들을 고의로 파괴했다는 것을 새로운 기술자들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폭발해버렸을지도 모를 일부 시설들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마지막으로는,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모든 생산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사 내부와 외부의 원료 수송을 봉쇄해버렸다. 그들은 두 주일 동안이나 선박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 [Marta Harnecker의 원주임.]
22) 같은 글, pp. 38-39.
23) NED :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즉 파라과이·니카라과 등에 반공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 해외홍보처 USIA 에서 지원하는 자금 ― NAVER 지식사전.
24) USAID : '미국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종래의 미국 대외원조기관인 국제협력국과 개발차관기금을 통합하여 국무성에 설치한 비군사적인 원조프로그램 수행기관이다. 1961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제안으로 대외 경제협력과 기술지원, 개발차관기금의 대출업무, 수출입은행의 지역대출 기능을 일원화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1979년 이래 독립적인 미국국제개발협력처(U.S.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Agency)의 소속기관으로서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 NAVER 지식사전.
25) Stephen Lendman, "US Planning Fourth Attempt To Oust Hugo Chavez", http://www.zmag.org/, 2006년 4월 18일.
26) 이성형, 같은 책, pp. 231-32. 참고로 말하자면,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결코 '사임'한 적이 없다. 미국 고위관리들과 CNN 등 언론매체의 "차베스 사임" 운운의 발언과 기사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물론 반차베스 진영을 지원하려는 고도의 대중적 정치공작의 일환이었다.
27) 이성형, 같은 책, p. 244.
28) PLP, "Oil, Venezuela and The AFL-CIA", CHALLENGE, 2002년 5월 22일.
29) 같은 글.
30) 베네수엘라의 이 쿠데타를 비롯한 중남미 등지에서의 미국의 쿠데타 지원․조종이나 정치 불안정화 공작에 대해서는 Joshua Kurlantzick, "The Coup Connection", http://www.motherjones.com/news/outfront/2004/11/11_401.html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302에도 재록)도 간단히 참고할 만하다.
31) "대기업 경영자들과 그 연합체, 구정치세력들, 일부 부패한 노조 지도자들, 그리고 소수의 군 장교들"로 구성된 이들 반대세력은 이를 "총동맹파업"(general strike)라고 부르지만, 미국의 또 다른 정치조직인 '노동자세상당'(Workers World Party)가 적절히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공장폐쇄(lockout)이다. 그것은 자본가들과 기업 임원들에 의해서 조직되었지, 노동자들에 의해서 조직된 것이 아니다."(Andy McInerney, "VENEZUELA, Right-wing lockout loses steam", Workers World, 2003년 1월 23일.)
32) Marta Harnecker, 같은 글, pp. 39-40.
33) 이상, Andy, McInerney, "Rich vs. poor in Venezuela's 'Bolivarian Revolution'", Workers World, 2003년 1월 16일.
34) Andy, McInerney, "VENEZUELA, Right-wing lockout loses steam".
35) "[2002년 4월의 ― 인용자] 이 쿠데타 소동과 그에 이은 석유회사의 공장폐쇄는 2002년과 2003년에 걸쳐서 커다란 경제침체를 유발했다."(Tim Anderson, 같은 글.)
36) 베네수엘라의 농업은, 중남미의 대부분의 국가들에서처럼, 전통적이고 반봉건적인 대토지소유제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다.
37) Andy McInerney, "'Revolutionary Offensive' in Venezuela: Arrest bosses who sabotaged oil production", Workers World, 2003년 3월 6일.
38) Marta Harnecker, 같은 글, pp. 40-41.
39) 이 글의 제1절 "볼리바르 혁명의 배경" 참조.
40) Maria Páez Victor, "Mr. Danger and the Socialism for the New Millennium".
41) Tim Anderson, 같은 글.
42) 이하는 Stephen Lendman, "Venezuela's Bolivarian Movement: Its Promise and Perils",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645 (2006년 1월 4일)에 의한다.
43) David Raby, "The Greening of Venezuela", Monthly Review, Vol. 56 No. 6 (2004년 11월), p. 49.
44)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에서의 '협동조합 운동'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Camila Piñerio Harnecker, "The New Cooperative Movement In Venezuela's Bolivarian Process",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5년 12월 17일도 참조할 것.
45) Stephen Lendman, 같은 글.
46) 같은 글. 베네수엘라에서의 공동경영제도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Michael A. Lebowitz, "Constructing Co-Management in Venezuela: Controdictions along the Path",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5년 10월 27일도 참조할 것.
47) Stephen Lendman, 같은 글.
48)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지난해 말 좌파이고 원주민인 에보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은 그의 이러한 노력의 최대의 성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9) David Raby, "Book Review ― The Venezuelan Revolution: A Marxist Perspective",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5년 8월 21일. 이 글의 일본어 번역본은 [社會評論] No. 144, 2006年 冬, スペ-ス伽耶 (도쿄), pp. 68-70에서 읽을 수 있다. 참고로, 그리고 농담 삼아 얘기하자면, David Raby는 "Venezuela: The Myths of James Petras"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348, 2005년 1월 10일)에서 페트라스의 "Myths and Realities: Venezuela's Chavez and the Referendum"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270, 2004년 9월 2일)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모른다며 호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내가 참으로 행운인 것은, 나의 이 글은 한국어로 쓰였다는 언어상의 이유 때문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의 수준이 너무나도 낮다는 이유 때문에도, 영어나 기타 레이비가 해득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에 가깝다는 사실일 것이다.
50) Mother Jones: "차베스는 정말로 미국이 자기를 죽이려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Richard Gott: "진보적인 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라틴 아메리카를 휩쓰는 공포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차베스는 암살 가능성을 극히 심각하게(very seriously) 받아들여야 합니다. ..." (Julian Brookes - Mother Jones, "Interview with Richard Gott: Hugo Chavez and His Bolivarian Revolution", http://www.venezuelanalysis.com/, 2005년 10월 8일.)
51) 방금 위의 각주에 등장하는 Richard Gott은 영국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일간지 Guardian지의 특파원 및 편집인으로서 40년간이나 라틴 아메리카 문제를, 물론 호의적이고 진보적인 태도로, 보도해온 사람이고,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운동](Guerrilla Movements in Latin America) 및 [쿠바 ― 새로운 역사](Cuba: A New History) 등의 저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최근에는 [우고 차베스와 볼리바르 혁명](Hugo Chavez and the Bolivarian Revolution, Verso)라는 저서를 통해서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을 호의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말로 차베스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리고 그는,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아니요. 나는 그가 알고 있다고 [혹은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다고 --- 인용자] 생각하지 않습니다(No. I don't think he does.) 그는 '참여' 같은 유행어들(buzzwords)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는 '참여민주주의'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지만, 이들 개념을 실제로 구체화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회사의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좋아하는데, 이는 아주 낡은 그리고 흥미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는 노동조합 자체가 의미있는 세력이 되는 것에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나 정당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는 대단히 이례적인 좌파(very unusual leftist)입니다." (Julian Brookes - Mother Jones, 같은 글). 이 글의 출처 또한 대단히 친차베스적이고, 친볼리바르 혁명적인 곳이라는 것도 상기하기 바란다.
52) 진보노동당의 웹 홈페이지(http://www.plp.org/)에서 "Chavez's 'Socialism' Won't End Workers' Exploitation" (2006년 3월 1일), "Chavez's State Capitalism No Road to Workers' Power" (2006년 3월 15일), "Not Fooled by Chavez's Fake Revolution, Youth Joins PLP" (2006년 2월 15일) 등 참조.
53) Coral Wynter and Jim McIlroy, "Creating Socialism in this Century in Venezuela",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679, 2006년 2월 23일. 참고로 말하자면, 물론 간접적으로 국제적 연대전선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말이지만,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그토록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베네수엘라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54) Christian Parenti, "Hugo Chávez and Petro Populism"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405, 2005년 3월 25일), Charles Muntaner, "Is Chavez's Venezuela Populist or Socialist?"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439, 2005년 5월 6일), Greg Grandin, "Latin America's New Consensus" (http://www.venezuelanalysis.com/articles.php?artno=1709, 2006년 4월 19일) 등 참조.
55) 이와 관련, Luciano Wexell Severo, "In Venezuela, Oil Sows Emancipation"(베네수엘라에서는 해방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http://mrzine.monthlyreview.org/lws160306.html(2006년 3월 16일)도 흥미 있는 글이다.
56) 예컨대, "Venezuela's Chavez plays the China card" (http://www.plp.org/cd06/cd0329.html)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