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가 객관적이고 실제적이라면 고린도후서는 주관적이며 개인적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고린도후서를 가리켜 바울이 '자신을 위해 제시한 변증론'이라고 말하였으며(Findlay), 엄밀한 의미에서 본서는 '사도 바울의 자서전'이라고 주장하였다(Hunter). 또한 '핸슨'(Hanson)은 '본서에는 뾰족한 글을 줄질하지 않고, 날카롭게 떨어져 나온 한 덩어리의 바울의 생애가 있다'고 말하면서 본서에 대해 '믿을 수 있으며, 비판의 여지가 없으며, 당혹하리만큼 복잡하지만 놀라우리만큼 재미있는 바울의 생애'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린도후서는 다른 바울서신들과 많이 다르며, 특히 고린도전서와 많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가 사상과 주제의 분명한 구별점을 지닌 서신이라면 고린도후서는 감정이 뒤범벅되어 나타날 뿐만 아니라 격한 열정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고린도전서에서 '질서'를 찾을 수 있다면 고린도후서에서는 '혼돈'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고린도전서를 바울서신들 중 가장 체계적인 서신이라고 본 반면에 본서를 가장 체계 없는(the least systematic) 서신이라고 하였다(Schmiedel). 더욱이 이러한 차이점은 편집 비평학자들의 편집설에 직면했을 때 혼미를 거듭하게 된다. 즉 그들은 고린도후서를 6개의 편지의 수집이라고 주장하고 본서의 통일성을 부인한다(Perrin, Marxsen, Robinson).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매력은 역시 본서를 읽어 가는 중에 바울의 격한 열정에 동화되어 함께 호흡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선입견 없이 전체적인 흐름에 주의하면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투명한 샘처럼, 끊어 오르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담아 끌고 가는 강력한 급류처럼, 커다란 굉음을 내고 흘러간 후에 잔잔하게 흐르는 시내처럼, 또는 평정을 되찾은 호수처럼 퍼져 나아가는 바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제1부 고린도후서의 역사적인 배경
I. 저자
본서의 저자 문제에 관한한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거론된 적이 없는 만큼 바울이 본서의 저라는 점은 학자들 사이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고린도후서는 신약성경에서 바울의 편지로 간주된 것들 가운데 가장 바울의 문체와 태도를 잘 보여준다. 특별히 고린도후서는 바울 개인에 대한 정보가 많이 포함되었는데 여기에는 바울의 자서전적 자료가 많을 뿐만 아니라 바울의 정서, 강직성을 포함한 그의 인격, 그리고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도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한 바울의 예리한 통찰력이 포함되었다. 본서의 바울 친저성에 대한 내증 못지않게 외증 역시 바울 저자성의 진정성을 입증한다. 즉 고린도후서가 일찍이 140년부터 여러 교회에 배포되었다는 점은 문서 기록에 의해 훌륭하게 확인되었다. 또한 '말시온'(Marcion)도 고린도후서를 정경 속에 포함시켰다. 이와 같이 본서는 초창기 교회에 배포될 때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바울의 기록으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Polycarp). 한편 본서의 바울 친저성에 대한 의문이 19세기 이후 진보적인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들은 교회의 전승과 본문 연구사의 증거, 편지의 양식과 어휘 및 교의에 대해 개별적인 연구를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고린도후서 내에서 6개의 별개의 서신들을 발견해 냈다. 그리고 그 개별 서신들의 저자 몇 연대를 측정하였다(Schmidt, Lightfoot, Wilkens, Schnider). 그러나 이들 진보적인 학자들조차도 본서의 바울 친저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왜냐하면 별개의 서신들로 나뉜 6개의 서신들이 모두 바울의 문제 및 신앙적인 입장 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점은 편집사적 연구를 시도한 '페린'도 마찬가지로 인정하는 바이다. 즉 그는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6개의 개별 서신들이 서로 기록 연대나 쓰여진 장소가 다르지만 바울의 기록이란 점은 분명하다고 밝히고 본 서신의 편집은 고린도후서가 단권으로 유통되기 전에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Stein, Marxsen).
II. 기록 연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이 오직 고린도전?후서 두 서신 뿐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전 5:9에서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고린도전서가 기록되기 전에 먼저 써 보낸 서신이 존재했다. 또한
고후 2:4, 9에서 바울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고린도후서가 기록되기 전에 고린도전서와는 별개의 서신이 기록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학자들은 전자를 '이전 서신'(the previous letter)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눈물의 편지'(the tearful letter)라고 부른다. 이처럼 고린도전?후서 외에 다른 서신들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졌다는 점은 고린도 서신, 특히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을 의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록 연대를 결정하는 문제에도 매우 큰 난점으로 부각된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많은 서신들이 고린도후서의 편집 과정에서 본 서신에 수집 편찬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기록 연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본 서신의 통일성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1. 통일성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고린도후서의 전체적인 통일성은 의심받지 않는다. 다만 전통적인 학자들도 인정하는바 고린도후서에는 약간의 다른 서신들이 결합된 형식을 취하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 서신의 통일성이 와해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로 약간씩 차이점을 보이는 서신들의 결합이라 할지라도 그 서신의 기록자는 바울이기 때문이다(Machen). 그러므로 본 서신의 저자는 바울이 틀림없지만 전에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이 합쳐졌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네 장(고후 10-13장)은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디도로부터 기쁨의 소식을 받았을 때 기록한 서신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견책의 글이라고 지적하였다. 그 결과 학자들은 만일 '눈물의 편지'라는 것이 현존한다면 이 마지막 네 장이 그 일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Plummer, Moffat). 또 어떤 비평학자들은
고후 6:14-7:1을 문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 본문을
고전 5:9에서 언급한 '이전 서신'이 아닌가 생각하였다(Metzger). 그러나 본 서신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보면
고후 6:13까지와
고후 6:14-7:1, 그리고
고후 7:2 이후 사이에는 분명히 어조는 다르지만 다른 말이 사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곧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후 6:13)는 말은 확실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고후 7:2)에 뒤따르는 구절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고후 6:14-7:1의 권면이 강조적으로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곧 이교도에게 둘러싸인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이 같은 권면이 필요하였다. 더욱이 그 권면은 신앙의 자녀에게 하는 권면으로서 어색한 점이 없다. 따라서 전혀 문맥에 아울리지 않는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방인 가운데 세워진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위치 때문에 강조적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고후 1-9장과 고후 10-13장 사이의 차이점도 결코 결정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9장까지는 확실히 친절한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10장 이후는 엄한 말을 사용하였는데, 전자는 바울의 훈련에 순종한 자들에게 주로 한 말이며, 후자는 바울의 훈계에 아직 반항하는 소수의 무리들에 대한 견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서의 통일성에 대한 이의 제기는 결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비평학자들의 견해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점은 기록 연대 문제와 결부될 때 더욱 절실해진다 하겠다.
2. 기록 연대
본 서신의 기록 연대에 대한 정확한 결정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고린도인들의 서신 왕래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본 서신의 통일성을 의심하는 진보적인 학자들과의 차이 때문에 본 서신의 기록연대에 대한 논의는 서로 구분하여 논함이 불가피하다 하겠다. 더욱이 이들 양진영 견해의 차이점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 서신의 기록 연대에 접근한다는 점에 있다. 즉 전통적인 입장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사이의 기간에 주의를 집중하고, 진보적인 입장은 고린도후서에 포함된 여러 서신들의 기록 동기와 시기 결정에 주안점을 둔다.
1) 전통적인 견해
전통적인 학자들이 고린도전서의 기록 연대를 55년 봄으로 잡는 것이 가장 통상적인 연대 측정이다(Jensen). 여기에 맞추어 고린도후서는 적게는 6개월부터 많이는 8개월 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바울의 모든 활동을 이 기간에 포함시키는 시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곧 본 서신의 기록 장소는 에베소였는데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그리스에서 얼마를 보냈다(참조,
행 20:1-6). 그런데 바울이 그리스에서 보낸 3개월이 겨울 동안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가 고린도를 출발하여 빌립보에 도착한 때가 바로 유월절이었기 대문이다(참조,
행 20:6). 또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가 오순절이었다(참조,
행 20:16). 그러므로 이때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에베소에서 기록한 다음해인 56년 오순절이라 하겠다. 이처럼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기간의 차이를 6개월로 추정하는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의 기록 연대를 56년 어간으로 생각한다(Menzies). 반면에 전통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도 고린도전?후서 간의 기록 기간을 18개월로 간주하는 학자들은 본 서신의 기록 연대를 57년이라고 주장한다(Machen). 그러므로 전통적인 학자들의 본 서신에 대한 연대 추정은 56, 57년 사이로 정한다고 하겠다.
2) 진보적인 견해
진보적인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의 본문 구성에 연관시켜서 본 서신의 기록 연대를 추정한다. 또한 이들 학자들은 바울이 쓴 모든 편지들의 기록 연대를 기록 동기 및 바울의 전도 여행과 결부시킨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하여 얻은 본문 구성에 대한 인식을 비교적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본문의 기록 연대들로 설명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만일 고린도전서가 55년 초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면
고전 5:9-11에 나타난 '이전 편지', 곧 그들이 이전 편지의 일부로 간주하는
고후 6:4-7:1은 54년 말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눈물의 편지'(참조, 고후 10-13장), 또는 에베소에서 쓰여진 편지로서 제2차 고린도 방문을 하고 난 55년 여름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편지'(참조,
고후 1:1-6:13; 7:2-9:15)는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디도와 다시 만난 직후에 사람을 시켜 대필하게 한 편지로 간주되는데 이 서신은 아마 55년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기록된 듯하다(Hering, Betz, Collange, Fitzmyer). 따라서 진보적인 입장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본 서신의 기록 연대에 대한 견해는 비록 산만하지만 고린도전서가 기록되기 전부터 고린도전서의 기록 후 얼마 안 된 시기가 된다.
III. 기록 목적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에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기록된 서신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최대의 기록 목적은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곧 있을 자신의 방문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방문을 대비하게 하려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진 점은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위태로운 상황에 대해 해명하려는 점이었다. 동시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다행스럽게도 태도를 바꾼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려는 점도 본 서신이 갖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을 단순하게 밝히려는 시도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앞서 살폈듯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록 목적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이 운동에 참여하여 헌금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을 그동안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위기적인 상황 때문에 지연되었다. 따라서 본 서신의 기록 목적 가운데 이 모금에 대한 언급을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강력하게 변증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고린도 교회 내에서 아직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소수의 불평분자들 때문인 듯하다. 더욱이 그는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계획 하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분명한 사도적 지휘권을 크게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은 매우 복합성을 띠지만 모두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바울 자신에 대한 변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린도 방문을 준비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 하겠다.
Ⅳ. 특징 및 구조
1. 특징
본 서신은 바울서신 중에서 바울의 인간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며, 노하거나 기뻐하거나 두려워한다. 즉 그는 본 서신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악의를 품은 적대자들에 대하여 자기 변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비록 고통스럽지만 '눈물의 권면'을 하였다. 또한 본 서신은 냉정하게 이론을 세워 나간 논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린도전서와 구별된다. 즉 고린도전서는 객관적이며 실제적인 교훈을 초대교회의 특성을 고려하여 사려 깊게 가르쳤다. 반면에 본 서신은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내용을 바울 자신의 개성과 사역에 대한 통찰력에 비추어 열정적으로 증언하였다. 또한 고린도전서가 이방 종교의 영향에 대해 경고하였다면 본 서신은 유대교의 영향에 대해 경고한다는 점에서 두 서신 사이의 차이점을 보인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가 현재 혼란에 빠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음을 알고 격한 감정으로 편지를 쓴 것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특징 중 하나는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 개인적인 서신이란 점은 본 서신의 문체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즉 본 서신의 문체는 바울의 감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점에 대해 '에라스무스'(Erasmus)는 태풍같이 혹은 강력한 급류같이 흐르다가 다시 잔잔하게 흘러가고 또 온 땅을 덮는 호수처럼 평정하며 광대하게 퍼져나가는 문체라고 극찬하였다. 이처럼 바울의 문체에는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고뇌와 기쁨이 유감없이 피력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바울이 목자의 역할을 가르칠 때의 문체는 평온하고 안온하게 전개되지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에 이르러서는 강력한 급류처럼 쏟아져 내린다. 본 서신의 또 다른 특징은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즉 본 서신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바울이 교회를 생각한 간절한 마음이 잘 나타난다. 그만큼 그가 인간으로서의 약함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힘쓰는 목회자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은 고린도후서의 또 다른 가치라 하겠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에 노하고 잘못 가는 길에서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신랄하게 책망하면서도 다음 순간에는 너무 혹독하게 책망하여 그들이 도리어 상처받지 않았나 근심한다. 더욱이 그는 회개하고 되돌아올 가능성조차 없는 무리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고뇌를 드러내며 권면하였다. 그러므로 본 서신은 사랑의 호소를 담은 편지이자 인간 바울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권면이라 하겠다. 한편 고린도후서는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바울을 보여준다. 즉 바울은 자신의 일을 자주 말하였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또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고후 5:15) 부득이하게 자신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
고후 5:20) 자로서 살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점은 바울서신 전반에 걸친 가장 일반화된 특징일 것이지만, 특히 고린도후서에서 이 같은 사실을 더욱 느끼게 된다.
2. 구조
고린도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서두의 인사와 환란 중에서도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언급한 바울은 자기의 행동을 설명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근황에 대하여 전해 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전에 직접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그만 방문하지 못한 채 '눈물의 편지'를 써 보내게 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위해서였노라고 해명한다(참조,
고후 1:1-2:4). 그리고 바울은 계속하여 화해와 사도직의 위대함(참조,
고후 2:5-11; 5:18-21) 등의 주제를 전개시킨다. 그리고 그는 매우 흐뭇한 어조로 그 모든 불쾌한 감정과 역경에도 불구하고(참조,
고후 4:7-18; 6:3-10)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자신의 유일한 삶의 보람이며, 이제는 이 보람에 대한 기쁨 외에 또 다른 흐뭇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 교인들과의 화해라고 하였다(참조,
고후 7:2-16). 두 번째 단락(참조, 고후 8, 9장)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 운동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연보의 원리, 목적, 방법, 그리고 축복에 대해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락(참조, 고후 10-13장)은 고후 1-9장까지의 어조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자신의 사도성과 사역의 정당성에 대해 변증하였다. 물론 비평학자들은 이 단락을 '눈물의 편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앞에서와는 전혀 다른 어조로의 급전환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바울은 아주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비난하는 대적자들에게 따끔한 반박을 하며, 자신의 사도적 자격에 대해 대적자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그리고 이 단락에서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마지막 문안 인사를 포함한다(참조,
고후 13:11-13). 자세한 구조 분석은 <도표 1>을 참조하라 (참조,
고린도후서 도표1).
제2부 고린도후서의 특별 주제들
I. 바울의 대적자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과 싸웠다. 그런데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싸웠는지,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제시하는 자신들의 정당성은 또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살피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때문에 이 점을 살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적인 질문들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대적자들의 성격과 그들의 주장, 그리고 그들 사상의 유래 등을 고찰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에 대적하여 일어났던 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대적자들의 성격
바울을 비난하는 대적자들의 고소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약함'이 아니라 감동과 흥분을 일으키는 '성령주의적 능력의 결핍'이었다. 이 점은 대적자들이 바울에 대해 '말에는 능하지 못한 자'나 '사도의 표가 없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즉 바울이 말에 능하지 못하다는 대적자들의 표현은 바울에게 수사학적인 구변이 변변치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바울의 말속에는 성령의 감동이 결핍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사도의 표' 운운하는 것도 환상이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말하므로 결국은 사도 바울에게는 성령이 함께 한다는 아무런 표지도 없다는 비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바울을 비난했던 대적자들이 바울에게 요구했고, 또 자신들이 추구했던 바가 환상과 기적을 일으키는 성령의 능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적대자들의 이 같은 불만에 대하여 십자가의 선교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역설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도권을 옹호하기 위한 담대함과 용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신중함과 확신 등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대적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이 사도적 권위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었다. 성령의 은사를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은 바울이 제시한 성령의 내적 증거들이 오히려 성령의 능력을 제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
고전 4:9)다고 하였으며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핍박을 당하였으나 참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참조,
고전 4:11, 12), 적대자들은 여기에서 사용된 참는다는 표현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당당하게 교회의 부양을 받아들였지만 바울 일행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예루살렘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하여 모금 운동을 폈다. 문제는 바로 교회의 부양도 받지 않으면서 모금 운동을 펴는 바울 일행에 대해 적대자들은 간교한 술책으로 몰아 부친다는 점이다(참조,
고후 12:16). 물론 적대자들의 이 같은 비난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결코 경제적인 탐욕이 작용한 일이 없다고 천명하고 교회에 결코 흑심을 품고 손을 뻗힌 적이 없노라고 반박하였다(참조,
고후 12:14, 15, 17). 이러한 점들을 토대로 살펴볼 때 바울의 적대자들에 대해 세 가지로 조명할 수 있겠다. 첫째 그들은 팔레스틴의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의 집단이었다(Bauer, Windisch, Kuemmel, Kaesemann). 그들은 비록 예루살렘의 최고 사도들로부터 위임받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적어도 최고의 사도들로부터 끌어내어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웠다. 또한 그들은 역사적인 예수를 실제로 보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반면에 그들은 바울이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울을 무시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적대자들이 유대적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적대자들은 분명히 성령주의적 경향을 보였는데 유대적 그리스도인들은 성문화된 율법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Friedrich). 두 번째 그들은 동방에 기원을 둔 영지주의 운동의 대표자들이었다는 주장이다. 곧 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자신 있게 성령과 영감 받은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그들이 영지주의자들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주장도 규명되지 않았다. 보다 큰 문제점은 그들이 소지한 추천서였는데 만약 그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다면 어떻게 추천서를 소지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바로 적대자들의 추천서를 소지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바울의 적대자들은 유대인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헬레니즘 세계의 영감을 받은 인물들의 선전 방식을 모방하여 성령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는 주장이다(Bornkamm, Georgi). 행동과 설교 양식에 있어서 그들은 순회하는 방랑 예언자들, 마술사들,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of Tyana)에 의해 대표되는 구원자에 유형에 속하는데 이 유형의 구원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절로 자처하면서 계시와 기적들에 의해 스스로를 찬양했다. '프리드리히'는 바로 이들을 모방한 자들이 헬레니즘적 기독교인으로서 바울의 대적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 세 가능성은 단지 가능성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견해 중에서 바울의 적대자들이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사상에 뿌리박았다는 주장은 비교적 근접한 견해로 학자들 사이에서 이해되었다.
2. 대적자들의 주장
1) 칭호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에 대해 적대적인 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히브리인'임을 강조한다(참조,
고후 11:22, 23). 그러나 학자들은 그들이 '히브리인'이라는 점에서 그 진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즉 '프리드리히'는 고린도후서의 대적자들이 스데반 그룹의 사람들로서 팔레스틴 기원의 헬라적 유대교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도행전에서는 헬라주의자들이라고 부름으로써 히브리인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학자들도 고린도 교회 내에서 히브리말을 하는 자나 히브리적 생활양식으로 사는 자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Kuhn, Charles). 다만 고린도 교회의 대적자들이 자기 칭호로서 '히브리인'을 사용할 때는 특별히 선택된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즉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 후계자이며 팔레스틴 지방에서 기원하고 히브리적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본거지와 연관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더욱이 그들이 주장하는바 추천서 등이 예루살렘 교회와의 연관이 강조된 것으로 보아 이 같은 주장은 거의 틀림이 없다 하겠다. 다음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칭호로 주장하는 '이스라엘 사람'이란 말은 유대교의 영역에 속한 표현이다(Georgi). 그러나 그것은 헬레니즘적 유대교 안에서는 결코 자명한 말은 아니었다(Kuhn). 왜냐하면 '유대인'이란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이란 표현은 현재에 실현되기를 원하고, 또 실현되어야 하는 유대인의 종교적 잠재력의 뿌리요 근원인 과거의 신앙인들을 가리켰다(Josephus).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적대자들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과된 사명을 계승하고 실현할 자로서의 자기 정체성(identity)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하겠다. 바울도 이 같은 영광스러운 사명의 실현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명의 실현을 그리스도로 실현된 새 계약의 선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참조,
고후 3:4-11). 따라서 바울과 적대자들의 대립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실천으로 인해 필연적인 것이었다. 세 번째로 적대자들이 자랑하는바 '아브라함의 자손'을 갈라디아서에서는 할례와 연관지어 나타난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계약 공동체에 속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점에 대해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지녔던 종교적 편협성을 고린도 교회의 대적자들이 한 치도 어김없이 계승하였다고 생각한다(Bauer, Kuhn). 이렇게 볼 때 적대자들이 자랑하는바 그들의 칭호는 민족적이고 또 계약 공동체에 소속했다는 권면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하겠다.
2) 자격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일꾼'(
고후 11:23), '그리스도의 사도'(
고후 11:13), '사역자', '일꾼'(
고후 11:13;
빌 3:2)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이들의 자격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한 주장이라고 반박하였다. 먼저 대적자들이 자처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자격을 살펴보자.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에 대립한 개념으로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 자격을 사용하는 동시에 모세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 즉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의지하여 일을 수행하려 하였으며, 율법주의적인 정죄와 열광주의적인 은사를 흠모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보다 더 강하게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참조,
고후 6:4), 대적자들이 스스로 그같이 일컬을 권리가 없다고 반박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자격이 스스로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러한 직분이 맡겨졌다고 주장하고(참조,
고후 4:1), 대적자들은 오히려 사탄의 일꾼이요 변장한 '의의 일꾼'이라고 비난하였다(참조,
고후 11:15). 즉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새 계약의 일꾼의 자격을 받았다고 설명하고(참조,
고후 3:6), 동시에 영의 일꾼, 의의 일꾼, 또 '화해의 일꾼'(
고후 5:18)으로 소명 받았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모세의 일을 행하는 활동은 저주와 죽음에의 봉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바울에 의하면 그들이 모세의 일을 행하면서 의의 일꾼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변장한 의의 일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바울의 대적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주장한다(참조,
고후 11:13). 그러나 바울은 여러 가지 근거로 그들이 거짓 사도임을 폭로한다. ① 그들은 자기 자랑을 일삼기 때문에 거짓 사도요 부정직한 일꾼이다. 즉 대적자들은 경쟁심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②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에서만 자신의 사도성을 주장하지만 대적자들은 다른 교회에서도 사도성을 주장한다(참조,
고후 12:13). ③ 적대자들은 '사도의 표'를 '표징과 기사와 이적'에서 찾았다. 물론 바울에게도 그 같은 기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그와 같은 표를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난과 근로를 통하여 몸소 선교한 교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사도의 표'로써 강조하였다. ④ 대적자들은 바울의 모금 운동을 비난하여 '궤계로…취하였다'(
고후 12:16)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고후 12:19)라고 자신의 확신을 피력한다. 마지막으로 대적자들이 자랑하는 사역자요 일꾼의 자격을 살펴보자. 거짓 사도라는 말로(참조,
고후 11:13) 바울은 대적자들의 자만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비꼬았다. 다른 경우에서도 그는 '개'(
빌 3:2)라고 표현한 바 있다. 물론 빌립보 교회의 이단들은 확실히 유랑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할례당'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의 유대인인 데서 비롯된 별칭인 듯하고, 그들이 '나쁜'이란 수식어를 갖게 된 것은 그 직무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기 보다는 선교의 방향이 왜곡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린도후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대적자들이 바울을 괴롭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이들을 선교사의 본질에서 벗어난 나쁜 사역자로 간주하였다. 결국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의 대적자들의 자랑하는 칭호나 자격은 모두 신실하고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울의 사역을 질시한 나머지 바울의 사역을 공격하기 위해 제기된 문제점들이요 대적자들의 교만이었다 하겠다.
3. 대적자들의 사상적 유래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대적자가 고린도전서에서 언급되었던 적대자와 다르다고 생각한다(Lake, Betz).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는 유대화 하려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대적자들을 비난했던 반면에, 고린도후서에서는 비유대적이며 구약성경을 알레고리화 하는(allegorize) 경향의 영지주의자(gnostist)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한편 '캐제만'(Kaesemann)은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더 이상 도덕적 방종주의와 다투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대적자들이 영지주의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 '게오르기'(Georgi)는
고후 2:14-7:4과 고후 10-13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내용을 근거로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대적자들의 사상적 특성을 밝혔다. 그에 의하면 대적자들은 팔레스틴에서 고린도로 내려온 전도자들이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초인'(superman), '신적 인간'(Heavenly man), '아브라함의 자손', '가장 훌륭한 히브리인'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 자신들이 초인이나 신적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자기들과 같은 신적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사상적 조류가 영지주의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영지주의적인 사상을 갖게 된 근거는 구약성경을 알레고리 하게 해석하는 데 있었다. 즉 그들은 구약성경에 드리워진 신비의 베일을 성령의 도움으로 벗겨냈다고 생각하였다(참조,
고후 3:15, 16).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신적 인간의 최고 표본으로 생각했으며, 반면에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극도로 경시하였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죽음 이전이나 이후나 모두 신적 존재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적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사역 중에서 고난을 삭제한 영광만을 취하여 강조하였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서만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이나 희생은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점이다. 물론 바울의 공격은 바로 이들의 교만과 거짓 설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참 기독교 전도자들이 받는 고난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의 일파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구속받은 구속'라는 영지주의적 신화에 뜯어 맞추었고 영지주의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받아들여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령 운동을 벌인 자들이라 하겠다.
II. 화해의 편지와 화해 신학
1. 화해의 편지
바울은 디도의 편에 '눈물의 편지'(참조,
고후 10:1-13:13)를 고린도 교회에 보냈는데 디도로 하여금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바울에 대한 적대감 등을 해소시키도록 했던 것 같다. 디도의 고린도 교회 방문과 '눈물의 편지'로 인간 성도들의 회개와 화해는 성공적이었다(Barrett). 즉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이 사도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무시했던 일을 깨닫고 바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을 처벌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자신이 화해한 것을 기념하고 고린도 교회 내에서 다시 야기된 반목에 대해 화해의 위로를 하기 위해서 '화해의 편지'(참조,
고후 1:1-7:16)를 썼다. 이제 화해의 편지가 담은 바울의 메시지를 살펴보고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화해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바울의 메시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바울 자신은 그 소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향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이 일을 위하여 그의 대적자들과는 달리 추천장이 필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그가 전해 준 그리스도의 추천장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새 계약의 전도자이며,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을 전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즉 고린도후서에서 보여주는 바울의 자화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바울이다(참조,
고후 12:2). 그는 솔직한 어조로 자신의 풍채 없음과 말주변이 없음을 고백하였다. 그는 다정하게 말하기도 하고 격하게 흥분하기도 하는 연약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요, 또 무수한 감정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 존재의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씨름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생애의 획기적인 새로움이 찾아왔다. 곧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피조물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모든 문제 가운데서도 인간을 위로해 주시고 특별히 아시아에서 살아날 가망이 없을 때 구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린다고 고백한다. 계속해서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동기와 그로 인한 결과가 만족스럽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한다. 결국 '화해의 편지'에서 바울이 쓰고자 했던 요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요, 주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이요, 여러 교회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었다(참조,
고후 1:3; 2:4; 5:10, 11, 14; 11:11). 그 중에서도 그가 세운 교회는 특별히 자신의 기쁨이요,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참조,
고후 2:2, 3). 따라서 그의 전도 활동에 있어서 그는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았으며(참조,
고후 1:5),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부활한 생명도 나누어 가졌으며(참조,
고후 4:10, 11),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지속하였다(참조,
고후 2:14).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의 질병도 숨기지 않고 고난도 공개하였다. 즉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실제로 증거해 보였다 하겠다.
2) 신뢰의 회복
바울은 자전적 메시지를 통하여 자신의 사도적 직무를 변증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하였다. 그는 '화해의 편지'에서 여러 가지 실존적인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신뢰의 회복이란 주제는 이중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 중 하나는 고린도 교인과 바울 사이에 빚어진 불신의 벽을 깨뜨리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반목과 질서를 타파하고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눈물의 편지'를 썼으며, 마게도냐에서 당한 환란을 열거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이 두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호피우스'(Hofius)가 지적하는 것처럼 단지 자기 변명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함을 드러냈으며 자신의 단점들을 열거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을 제시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함으로써 화해의 소식을 전하였으며 그러한 전도 사역이 그리스로 인한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적 권위도 변증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의미하는바 화해에 근거하여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신뢰의 회복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2. 화해 신학
1) 속죄와 화해를 포괄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
고후 5:19에 의하면 하나님의 화해 명령과 구원 행동은 전우주적인 성격을 가진 사건이다. 그것은 교회 내지 성도 개인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세계'(die Welt)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세계'란 우주론적 개념이 아닌 인간학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보편적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보편적 세계 속에서의 화해를 말하기 위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선포하였다(참조,
고후 5:14, 15). 이것이 복음이며 화해 명령의 근거가 된다. 문제는 바울이 화해에 대한 인간학적 견해에 제한하여 이 말씀을 적용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인간학적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바울이 제시하는바 우주론적 범주와 인간학적 범주는 서로 비교적인 테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주론적 구원 행동을 전제한 교회론적 인간학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 점은
롬 5:1-19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고 롬 3장과 5장은 바울이 왜 이러한 논증 방법을 취하여 '모든 인간 세계와 화해함'이라는 주제를 말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곧 바울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의 세력 아래 노예 생활을 한다고 보았다(참조,
롬 3:9). 그리고 모두가 범죄한 존재이며(참조,
롬 5:12; 9:23),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심판을 받게끔 되었다고 보았다(참조,
롬 3:18). 곧 이 모든 '하나님의 적대자'로서의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구원받도록 하신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있게 되었다. 따라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죄의 영역에 이제는 화해 행위의 은혜가 채워지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은 화해의 명령을 세계 영역에서 수행한다(참조,
고후 2:14).
2) 화해의 말씀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참조,
고후 5:19)께서 유일한 화해의 주체로서 화해의 직분을 주셨으며(참조,
고후 5:18), 화해의 말씀을 세우셨고 사절을 통하여 스스로 화해를 선포하셨다고 증거한다(참조,
고후 5:20). 그런데 '불트만'(Bultmann) 등은 '화해의 말씀'을 바울의 설교라고 이해하고 그것을 바울의 화해 직분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학자들은 화해의 말씀을 복음과 동일시하며, 이는
고후 4:4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란 표현과 상통하는 복음이라고 생각한다(Hofius). 그런데
고전 15:3-5에 의하면 하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화해의 행위를 계시하였으며, 예수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영광의 표를 주셨다는 것에서(참조,
고후 4:4) 계시의 국면을 보게 된다. 따라서 화해의 말씀은 화해자가 교회 안에 확립하신 복음이다. 때문에 이 하나님께 받은 화해의 말씀을 용납하고 세계에 전파하는 가운데 사도의 직분이 수여되는 것이다. 즉 사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데서 그들 자신의 말로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도의 선포 가운데 현재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참조,
고후 2:14). 또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부르짖는다. 특히 바울이
고전 5:20에서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선포할 때 이는 간접이 아니라 직접으로서 화해의 말씀이 제시하는 그 화해의 본질에 일치한다. 따라서 화해의 선포는 그 자체로서 화해 받은 인류로 하여금 실현된 화해를 믿는 신앙에 초청하는 부름이라 하겠다. 곧 화해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실현된 복음이자 전 인류를 향한 창조적 부름이다.
3) 바울의 화해 사상
바울의 화해 사상의 요지는 화해를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이었다(참조,
롬 5:10). 이는 '적대적인 반항'을 한다는 능동적인 의미와(참조,
롬 8:7) '미움을 받는다'는 수동적인 의미 모두를 포함한다(참조,
롬 5:10; 11:28). 그런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적대적인 관계가 변화되었다(참조,
고후 5:10, 18). 더욱이 바울이 하나님의 자발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이러한 화해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며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롬 5:10) 신과 화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화해는 인간의 모든 노력, 모든 지식을 선행한다. 또한 이는 인간의 주관적 결단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정황이다. 즉 인간은 단지 화해를 받을 뿐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화해의 말씀을 세우고, 또 화해의 직무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 주관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으며, 그로 인해 실현된 복음으로의 창조적 부름에 초대하셨다. 그러므로
고후 5:20의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명령은 화해의 말 혹은 화해시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화해의 소식이며 화해에 참여하라는 부름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 즉 바울은 인간이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면(참조,
롬 5:1), 인간의 모든 '노력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적대적인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참조,
롬 5:10). 여기에서 '행위 없음'과 '노력 이전'이란 표현은 둘 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재성'(Prioritat)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이미 창조된 것일 뿐만 아니라 복음의 형태로 우리에게 초대장을 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죄와 관련지어 화해 사상을 살펴본다 할지라도 바울은 죄의 용서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용서받음을 말하기보다는 죄인 자체에 대한 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참조,
롬 3:25). 즉 화해는 죄의 사면과 동시에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지시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린도후서의 '화해의 편지'와 바울의 화해 사상은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물론 '화해의 편지'에서 그가 의도하는바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거꾸로 화해의 말씀이 갖는 내용을 고린도 교회에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화해의 말씀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완성된 화해의 복음이었으며, 화해의 명령은 화해의 복음에 참여하라는 부름이었다. 특별히 이러한 사상은 계시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화해의 사상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즉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합하라는 명령이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온 교회에, 인류에 보편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