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이은숙 시인)
평범한 일상 그러나 특별하고 소중한 삶의 이야기
시집 <개뿔> 출간한 이은숙 시인
-본인 소개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서울문예상과 시산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24년 부천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자반고등어를 굽다>, <그해 봄 바다>, 산문집 <주자천의 죽 쑤며 사는 이야기>를 냈으며, 국제 펜클럽과 한국작가회의 회원, ‘수주 시’ 동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시집 제목이 독특합니다. 신작 시집 <개뿔>을 소개하면?
<개뿔>은, 시집으로는 세 번째이며 10년 만에 출간했습니다. 시간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멀어지고 있지요. 나이가 일흔을 넘고 보니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동안 써둔 글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장해 둔 시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흔적이 정말, 흔적 없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그게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삶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에는 부모님과 형제 가족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가장 가깝지만 소홀하게 되는 가족을 일부러 끌어들였습니다. 마음의 빚이 조금은 덜어내지는 듯합니다.
-시집을 엮게 된 동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시집을 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었습니다. 시집을 더 내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내가 나에게 던지곤 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정말 딱 개뿔입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을 정할 때 사회적 현실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막막하고 암울한 현실, 안개는 언제나 걷힐까요.
개인이 한 사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장의 벽돌은 될 수 있습니다. 우연히 딸과의 대화에서 ‘개뿔’이 떠올랐고 아, 이거다 싶었지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정적 의미나 아쉬움이 있을 때 개뿔, 개뿔 하듯, 추임새 의미도 담겨 있지요.
-글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문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보기 좋은 포장을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직설적인 말투 때문에 가끔 오해를 받기도 하지요. 서로의 소통은 진심을 나눌 때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요.
글은 각자의 식성 같아서 내 입맛에 맞으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유명한 시인의
이름난 시라 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인을 위한 시가 아닌, 평범한 우리를 위한 시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시와 시인이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글과 많이 닮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나를, 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일 것입니다. 읽으면 공감되는 시, 쉽게 읽히는 시, 작은 감동을 주는 시, 어렵지 않아서 좋다. 내 이야기다. 저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평입니다.
-시에 대한 생각은?
시는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숨쉬기입니다. 숨을 쉬면서 멋지게 쉬려 하거나 남에게 표나게 하며 숨을 쉬지는 않거든요. 자연스러움, 숨을 쉬는지 멎는지 이렇다 저렇다 구분하거나 느끼지 않지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읽히고 느끼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말과 난해한 단어,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시를 보게 됩니다.
시는 살아가며 쉬는 숨입니다. 그러니 힘을 주며 일부러 숨을 몰아쉴 필요는 없거든요. 억지로 숨을 몰아쉬다 보면 결국 재채기를 하게 됩니다. 눈물 콧물이 쏙 빠지는 재채기를 해 보셨으면 알잖아요. 뭐든 인위적으로 만들면 오래 가지 않습니다. 감동이 없거든요. 큰 감동이 아닌 소소한 감동은 인간관계에서 소금 같은 것입니다.
-독자들께 드릴 팁이 있나요?
제 시를 읽는 독자들은 천천히 읽으시면 됩니다. 제 시는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읽어도 쉽게 읽히고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지요. 읽다 보면 어느 행간에서는 자신과 같은 느낌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단 한 줄이라도 공감한다면 우리는 이미 서로를 알기 시작한 것 아닐까요.
사람과 관계에서 어떤 사소한 한 가지가 서로를 가깝게 합니다. 큰 게 아닌 작은 것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저는 자잘한 것, 눈이 잘 띄지 않는 것, 생각 없이 지나치기 쉬운 것, 그런 것에 마음이 머뭅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생각의 길
생각이란 게 마음과 달라서
내 맘대로 되지가 않는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와서 흔든다
나도 더러
누군가의 생각을 흔든
바람이었을 터
-향후 계획
앞으로 한 권을 더 낼지 어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욕심을 내서 다시 한 권을 낼 수 있다면 여행기를 내고 싶습니다. 사진을 곁들이는 ‘포토 에세이’그런 걸 생각은 하고 있는데 이루어질지 어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평생이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누구나의 삶은 여행이지요.
내가 밟아 온 지구의 이모저모, 내가 만져 본 산과 들, 그리고 만나 본 많은 사람들, 여행 중에 접한 낯선 땅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싸돌아다닌 지구 두 바퀴를 소박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살면서 살아있다는 걸 절실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느낀 건 여행이었거든요. ‘무작정 여행자’라는 이름값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본지 독자들께 한 말씀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실행하시는 여러분이 참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글로 써야만 시는 아닙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오롯하게 받는 마음, 시는 그런 게 아닐까요.
마음속에 시가 종종 머물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정을 주변의 가까운 이와 나누고 하루하루가 귀하게 쓰이기를 소망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만하면 괜찮다 애썼다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다독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귀하게 여기세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우선입니다. 고맙습니다.
<뷰티라이프> 202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