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싱’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나는 그동안 과연 얼마나 북한 주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가?’였다. 고백하자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동안 북한의 ‘인권’과 ‘굶주림’ 문제는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이 지난 10년간 햇볕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자주 사용해 왔던 문제였다는 점에서 괜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탈북자 문제를 다룬 영화 ‘크로싱’이 개봉하면서 사회적으로 탈북자 문제를 비롯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각 언론에서도 ‘크로싱’과 관련한 보도를 연일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진보좌파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도 ‘크로싱’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 '오마이뉴스' 해당 기사 보기 그런데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나 역시 조중동과 다를 바 없었네’라는 제목에는 진보좌파 진영이 ‘조중동’에 갖고 있는 극단적 혐오감이 배어 나와 있었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그동안 ‘조중동’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감으로 오히려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 그러다가 ‘크로싱’이란 영화를 통해 북한 주민의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으니 자신도 ‘조중동과 다를 바 없구나’라는 대략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조중동’이란 ‘공공의 적’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마저 마비되어 버리는 좌파 진영의 논리에 안타까움을 넘어선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서나마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행스러움으로 다가왔다.
기자는 “북한과 관련한 보수 언론의 논리가 모순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자신도 ‘햇볕정책이라는 ‘방법론’에만 매몰된 채 북한 주민의 참혹한 현실은 외면하는 모순을 저질렀다”며 “그런 의미에서 영화 ‘크로싱’은 북한 주민의 ‘굶주림’과 ‘인권’을 대하는 그동안의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영화 ‘크로싱’은 북한 주민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좌우이념으로 갈등하고, 대북정책에 대한 노선차이로 갑론을박하는 순간에도 북한 주민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영화는 북한의 강제노동, 굶주림, 질병, 관료의 부패 등의 현실을 참혹하게 보여줌으로써 수십만 명이 탈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그렇다. 크로싱에서는 누구도 부정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 일부가 담담히 묘사되어 있다. 김태균 감독은 북한의 실상을 차마 그대로 표현 할 수 없어 실제의 1/10 정도만을 스크린에 담았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지도 못한 이 영상만으로도 저절로 눈물이 툭툭 떨어질 정도로 2008년 북한의 오늘은 힘들고, 아프다.
그러나 분명히 크로싱을 보고 기사를 썼을 이 기자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 든 생각은 ‘그럼에도 ’햇볕정책‘만이 북한 주민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북한 주민을 도와주는 길이 무엇인가’이다. 보수 언론과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하나를 받아야 하나를 줄 수 있다’는 이른바 기계적 ‘상호주의’나 ‘대북강경론’은 이미 경험에 의해 길이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이명박 정권이 대북강경론에 다름 아닌 기계적 ‘상호주의’를 표방하자마자 대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우리나라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대북강경론은 남북관계의 호전은 물론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은 어떤가?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평화적 남북경협은 북한 주민들에게 경제활동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을 사실상 개성 위로 밀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북한에 대한 식량, 의약품 등의 각종 지원은 북한 주민의 생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고 북한 주민을 위하는 길은 ‘햇볕정책’밖에 없다는 것이다.”북한 주민의 ‘인권과 ‘굶주림’을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글이 ‘햇볕정책’에 대한 두서없는 찬가로 끝을 맺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한국사회 진보좌파 진영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은 인정하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끝까지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왜 ‘크로싱’의 주인공인 용수는 남한에서는 공짜로 나눠주는 결핵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야 했나? 왜 용수의 친구 상철은 성경책을 집에 숨겨뒀다는 이유로 한 밤중에 온 가족이 보위부에 끌려가야 했나? 왜 용수의 아들 준이는 국경을 넘다 노동단련대에 끌려가야 했나?
북한 주민들이 공포와 굶주림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인은 수령독재체제에 있다. 김정일은 일인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문을 걸어 닫고 주민들의 기아 상태를 그대로 방지하고 있다. 자국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 김정일 체제의 모순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남한 정부의 대북강경론만 탓하는 태도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고 북한 주민을 위하는 길은 ‘햇볕정책’ 밖에 없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추진해 온 ‘햇볕정책’의 결과가 바로 ‘크로싱’ 속 용수 가족의 모습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우리는 북한에 연일 ‘햇볕’을 비추었다. 그러나 그 10년간 북한 주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비록 결론은 다를지라도 영화 ‘크로싱’을 통해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해왔던 모습을 반성했다는 이야기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이 영화를 통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진보좌파 진영의 활발한 자기 성찰이 시작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