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닥터가 전하는 먹거리와 건강법(2)
- 잘못된 광고에 속지 않는 기준은 이런 것입니다. -
어떤 병이나 어떤 조전에 대해서도 특별한 저항력이나 방어력을 가진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현대의학에서는 그런 사람을 일컬어 슈퍼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지요.
쇠를 먹는 사람, 설탕이나 콜라만 먹고 사는 사람, 담배를 아무리 많이 피워도 폐에 이상이 없는 사람, 심지어는 화학오일인 자동차 구리스를 먹고 사는 사람조차도 요지경 세상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에는 등장하더군요.
그렇게 보자면 유전자도 슈퍼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있고 극도로 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있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러니 우리가 보편적인 어떤 길을 찾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적절한 방법을 찾을 때는 그런 슈퍼유전자로 설명되어지는 부분은 열외로 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야할 것입니다.
이빨로 차를 끄는 사람, 머리카락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사람, 몸에서 전기를 내뿜는 사람 등등 희한한 사람은 기네스북을 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역시 상식을 넘어서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늘 접하는 먹거리인 설탕이나 콜라를 먹고 사는 사람에 관해서만은 특별대접을 하지 않고 설탕이나 콜라가 과잉되어도 몸에 나쁘지 않다는 모범적인 한 예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으니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누구는 저렇게 먹고도 사니까 저 사람 보다 적게 먹는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버리는 그 편리한 이해구조가 진짜 문제의 핵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인간의 보편적 특징으로 규정하고 있더군요. 어떤 진실에 대해서 인정해야만 할 때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어떤 실천적 변화를 행동해야한다면 사람들은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쪽으로 자신의 견해를 바꾸어 버리는 편리한 심리가 있다고 말이죠. 예를 들어서 방이 지저분하다고 하죠. 방이 지저분한 것이 나쁘다고 인정하게 되면 방을 치워야하죠. 그런데 치우기는 귀찮을 때 사람들은 ‘지저분한 것은 나쁘다’라는 생각을 접어두고 ‘좀 지저분하게 사는게 인간적이야’하고 생각을 바꾸는 쪽을 택한다는 말이죠. 정신적 갈등이라는 부분에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친구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친구의 행동이 나쁘다고 인정하면 친하게 지내는데 갈등이 생기니까 ‘사람이 한번쯤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친구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없애버린다는 것이죠.
결국 요즘 신조어로 떠오른 귀차니즘으로 표현되는 몸과 마음의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먹거리에 관한 광고 역시 그 귀차니즘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입맛을 바꾼다는 것, 요리법을 바꾼다는 것, 판단의 기준을 바꾼다는 것 모두 힘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꾸기 보다는 간단하게 무언가를 하나 추가함으로써 갈등도 없애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합성비타민제품이고 수많은 건강기능식품입니다.
사람은 건강을 위해서 적절한 운동을 해야한다고 말하면 누구나 수긍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는 어렵고 귀찮죠.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뱃살을 빼주고 운동을 시켜준다는 물리치료기계가 가정용으로 만들어져 대박 기록을 세우며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금 먹던 그대로 먹어도 영양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기능식품 역시 대박기록표를 연속 강타하며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타민제품이고 기능식품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당장은 분명히 기대대로 편리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샛강 하나를 살릴 때는 그 결과가 나중에는 바다도 살리는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또 더 길게 보면 흙과 공기도 살리는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수록 점점 더 득이 되는 것이어야 진짜 좋은 물건입니다.
결국 그렇게 따지면 우리의 먹거리를 질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우리 자신 속에 내재된 게으름입니다. 길게 따져보기 귀찮은 생각의 게으름과 당장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행동의 게으름이죠.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제품의 정직성과 진실을 파악한다는 것은 도리어 더 쉬운 일이 됩니다.
어떤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면서 광고를 할 때 잘 보세요. 그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생각을 바꿀 것이 없어서 너무 좋고 행동을 바꿀 것이 없어 너무 쉬워 보이면 먼저 의심해 봐야합니다. 그 결론은 궁극에는 나 자신을 지금보다 더 어렵고 더 나쁜 길로 인도하는 것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결국 선전과는 달리 내게는 나쁜 제품이라는 뜻이 되겠죠.
그러나 반대로 어떤 선전이나 광고가 의미는 좋으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 귀찮음이 따른다는 것을 당당히 이야기 한다면 그때는 궁극적으로 내게 좋은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대로 된 유기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끊임없이 신경을 쓰며 농산물을 모두 살피고, 하나부터 열까지 힘들여 몸으로 일해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오늘 내다 팔 작물 그 자체 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울 하늘과 땅과 바람까지도 염려해야하는 스스로의 양심적인 한계를 설정하고 하는 일입니다. 오늘 당장은 내가 계산에 어눌하고 다른 사람에게 눈에 보이게 돌아갈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농사꾼의 할 일이라는 것을 믿기에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비자들을 힘들게 합니다. 정성껏 꼭꼭 씹어야 단 맛이 나는 현미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부드러운 속살만 먹지 말고 거친 껍질까지 먹으라고 합니다. 주말에 누워서 쉬고 싶은데 땅을 밟으러 농촌으로 놀러 오라고 합니다. 듣다보면 온통 귀찮은 것만 요구합니다. 생각과 행동의 총체적인 귀찮음을 모두 이기지 않으면 사소한 소비조차 동조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귀찮음을 많이 요구하는 것이 유기농산물을 먹는 일이라면 어딘가 진실일 것 같지 않습니까? 일단은 그들의 이야기가 건강한 생명에 정말로 도움되는 일인지 아닌지 진지하게 하나씩 따져볼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하나씩 확인해볼까요?(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살림닥터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