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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 불리는 최건욱(40) 감독의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학부형들의 열성이 없으면 이루지 못할 성과였다.
그럼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숙소를 찾아가 그 주인공들을 만나 보자.
축구공으로 안동의 자존심을 지킨 남녀고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인공
우리도 가끔은 애국자가 될 때가 있다.
일본과의 축구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모두들 가슴 뜨거운 민족주의자가 되어
TV앞에 삼삼오오 몰려 앉아 흥분과 광기의 시간을 갖지 않는가.
그리고 늦은 새벽까지 경기를 보고 토끼눈을 해서 출근길,
등교길에 오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 가까이 국제 규모의 경기는 아닐지라도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제40회 청룡기 전국 중럭?축구대회’ 우승, ‘제51회 전국 남렛ʼn慈?축구대회’
우승이라는 다른 어느 지역의 고등학교 축구부가 할 수 없는 2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축구팀이 있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가 바로 그 신화의 주인공이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의 우승은 선수들의 땀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다.
우승이라는 화려한 무대 뒤에는 호랑이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는 날이었다.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는 운동장을 돌아 화장실 옆에 조립식으로 지은
30평 정도의 가건물이 축구부의 숙소이다.
마침 머리를 빡빡 깎은 축구 부원이 있어 그가 인도해서 들어간
최감독의 거처방은 화려한 우승팀 감독의 방이라 하기엔 초라해 보였다.
침대가 하나 있고 벽엔 어린 자녀들의 사진과 여러 장의 상장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최감독의 방엔 그 흔한 TV한대 갖추지 못했다.
부임 첫해
최건욱 감독은 1988년 3월에 안동고등학교에 특기 교사(축구)로 부임하였다.
부임 초기에는 지역 축구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최감독은 선수 생활을 국가 대표를 하며 화려하게 했던 것도 아니고
선수 시절 크게 두각을 보였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안동에서 과연 축구부를 잘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부임 첫해부터 2년여 동안은 남몰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다.
일부의 축구부 학부형들은 감독을 믿지 못하고
다른 감독으로 바꿔야 된다는 학부형들도 있었고
축구를 시키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낸다는 학부형도 있었다.
그러나 최감독을 안동고등학교로 부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를 끝까지
신임한 이수열교장(89년 교통사고로 명예퇴직)은 한결같이 최감독을 적극 후원하였고
“이곳 안동에 모든 축구인들은 최감독을 불신임하고 있으나 나만 믿고 열심히 해봐라”
라는 격려에 힘입어 88년에는 감독을 하지 못하였으나
89년부터 감독이 되어 선수들과 동고동락 하였다.
첫해인 89년에 준우승 1회, 4강진출 2회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했겠지
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90년에는 성적이 오르면서
국제 대회 우승 1회, 전국 대회 우승 5회, 준우승 2회, 3위 6회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최감독은 전북 전주에서 막노동을 하여 살아가는 집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가 태어날 때 이미 56세이시던
아버지 마저 돌아가시자 도청 공무원이셨던 형 밑에서 자랐다.
명지대 2년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으나 발목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대학 4년 때 형마저 백혈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자
그는 중이 되려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망나니 생활을 청산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형님의 유언을 가슴 깊이 새기며 새로운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1984년 영덕종합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축구부를 4년동안 지도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부터 축구를 한 선수들이 아니라
고등학교 내에서 몇 명을 뽑아 훈련시키는 것이어서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 안동고등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다.
0점 가장 최감독
그가 안동고등학교 축구부와 땔 수 없는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결혼에도 있다.
최감독은 88년에 결혼을 했는데, 최감독이 부인 박기라(34)씨를 만나게 된 내력은 이렇다.
88년에 축구부를 이끌고 대구로 전지훈련을 갔다.
훈련을 하던 중 한 선수가 부상을 당해 약을 사러 숙소 근처의 있는 약국에 갔다가
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지금의 부인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
전지훈련 20일 동안 프로포즈를 했으나 받아 주지 않았다.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여러 차례 시도를 해 봤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대구MBC 주최 문화체육부장관배 축구 경기가 있었다.
최감독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전에 묵었던 곳에 숙소를 정하고 다시 구애를 했으나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첫경기에 지고나서(감독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이길 수가 있었겠는가)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 그 약국을 다시 찾아가 경기에도 져 이제 올 수도 없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했다 한다.
그러자 냉랭했던 약국 아가씨의 마음은 어느새 봄눈 녹듯 녹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 최감독이 안동으로 와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3개월만에 데이트를 시작하고 처갓집의 반대를 극복하고 7개월만에 결혼을 하였다.
아마도 안동고등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부인과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결혼하고 9년째 최감독과 부인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최감독은 일주일에 한 두 번 대구에 있는 집에 간다.
부인과 딸 혜진(8)과 아들 규연(4)에게 늘 미안하다.
그렇게 떨어져 있으니 약국 문을 한 번 열어 줘 봤나,
아이들하고 같이 놀아 주기를 하나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최감독 가슴 한가운데 맺혀 있다.
방학에도 다른 교사들처럼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지훈련과 시합 때문에 집에 자주 갈 수 없다.
그나마도 집에 가면 머릿속은 온통 축구 생각뿐이다.
그렇게 축구하고 결혼한 사람에게 부부 싸움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혼을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이젠 부인 박기라씨가 많이 참아 주고 이해해 줘 고맙기만 하다.
감독으로선 100점이지만 가장으로선 0점인 최감독,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가장의 소임에 불성실하게 만드는가.
최감독은 새벽 6시 선수들과 함께 기상한다.
선수들은 학교 뒷산을 뛰는 산악 훈련을 통해 기초 체력 훈련을 한다.
그리고 오전에 최감독은 체육 수업을 두 시간 하고 나서 선수들과 같이 밥을 먹고
선수들 부상 치료를 하다 보면 오후 2시 30분. 이제 오후 운동 시간이다.
오후 운동은 실전 훈련과 전술 훈련을 한다.
호통치는 감독이나 선수들 모두 정신없이 훈련에 임하다 보면
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밤 8시가 되면 다시 저녁 운동을 해야 한다.
스피드 훈련과 점프운동 등을 1시간 30분 정도 하면 선수들은 기진맥진해지고
감독과 코치도 녹초가 된다.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진 후 10시에 취침을 한다.
취침 시간에 피로가 쌓여 소리를 지르고 잠꼬대를 하는 선수들이 있다.
고단한 하루가 지난 것이다. 그러면 최감독은 대구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한다.
전투하듯 치뤄낸 하루의 피로를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들딸의 목소리로 씻어 내는 것이다.
고추장에 밥 비벼먹고
안동고등학교 축구부는 자체 예산 3백만원과 도교육청에서 주는
9백만원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1천2백만원으로 축구부를 유지해 나가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다.
결국 그 부담의 몫은 학부형에게로 돌아가 학부형들이 8천-9천만원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안동고등학교와 라이벌 관계인 포철공고는 재단 측에서 연간 1억 5천만원 정도를 지원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축구부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점심 식사시간이 되어 선수들을 만나 보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육식 없이 야채만으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고 있었다.
없는 반찬이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물론 밥을 남기는 선수들은 없다.
겨울철에는 영양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고기 한 번 마음껏 먹이지 못하는 것이 최감독은 마음이 아프다.
선수들은 간식비가 없어 촌에 가서 5일 동안 단무지를 캐 받은 돈으로
간식비를 마련한 적도 있다.
시합에 나가 찬 김밥과 사발면을 먹는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작년 팔월에는 일본 원정을 가는데 유니폼을 맞출 돈이 없어 학부형들이
길안에서 골부리를 채취해 팔아 그 돈으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간 적도 있다.
그래, 지나온 한숨이야 일일이 열거해 무슨 소용이랴.
경제적 부담으로 그만두는 선수들 있어
점심을 먹고 선수들은 휴식 시간이다.
선수들을 따라 그들이 잠자는 방에 들어가 보았다.
넓은 방에 30여명의 선수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며,
한쪽 구석에 코치 김오종(28)씨가 커튼을 치고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방에는 사물함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다른 벽에는 수많은 상장과
유명 축구 선수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삼학년이고 쥬니어국가대표인 남영욱(19)군은 일년에 유니폼 한 벌과 축구화 한 켤레가 지급되는데 축구화의 경우에는 한 달이면 닳고 떨어져 못쓰게 된다고 한다.
뛰는 게 일인 축구 선수들에겐 무리도 아니다.
그리고 나머지 신발과 유니폼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하는 축구지만 선수들이나 부모들의 부담이 적지 않다.
그래서 돈이 없어 축구를 그만두는 선수들이 많이 있다.
선수들 중 25%는 중도에 탈락을 하는데 축구가 힘들어서 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최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때때로 최감독이 주머니 돈을 꺼내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남들은 학교에서 체육도 가르치고 축구 감독도 하니까
월급을 다른 교사보다 배로 받는 줄 알지만 교사 월급 이상으로 돈을 받지 않는다.
지난 ‘제30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MVP를 받은 김도균 선수도 안동고등학교 출신이다.
김선수는 아버지가 생후 2개월만에 지병으로 사망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최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에도 여러 차례 경제적인 이유로 축구를 그만두려 하는 것을 최감독의 격려와 도움으로 지금은 훌륭한 선수가 되었다.
지금도 어려운 결정을 할 때면 최감독에게 상의해서 결정한다고 한다.
선수들 전용 버스 한대만이라도 생겼으면
지금 선수들 중에서 배지훈(19)군은 축구부 최고의 개그맨으로 통한다.
특히 마카레나 춤을 잘 춘다는 그는 공도 잘 차고 놀기도 잘한다.
졸업하면 영남대학교로 갈 예정인데 최감독에 대해서 “정이 많은 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후배들을 위해 전용 버스가 생겼으면 좋겠단다.
이중규(18)군은 축구가 그냥 좋아서 시작했다는데 여자 친구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없다며 “감독님 아시면 혼날 거”라면서도 “여자 친구 구한다고 써 달라”며 너스레를 떤다.
모두들 밝고 맑은 모습들이다.
십대들의 탈선행위가 신문 사회면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요즘 현실에서 내일의 꿈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이들의 모습이 더욱 밝게 느껴진다.
홍명보를 좋아한다는 서정규(17)군은 홍명보 선수가 왜 좋냐는 질문에
“고3 때까지는 별로 잘하지 못했으나 그 뒤로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당차게 말한다.
집에는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니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는 데 가끔은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며 수줍게 웃는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에 따로 영양사를 두는 건 생각해 볼 수도 없다.
학부형 중에 한 명이 선수들의 식사를 도맡아 해주는 것이다.
한쪽 구석에서 멸치를 다듬고 있던 학부형들을 만나 보았다.
지난 2년 동안 선수들과 같이 숙식을 하면서 선수들의 밥을 해 준 골키퍼
장봉기 군의 어머니 남순임(50)씨는 한 선수에게 드는 돈이 일년에 천만원 정도라며
“대회 나가서 우승하면 학교 빛내는 일이고 다 지역 광고하는 일인데 남일이다 생각하지 말고 조금만 도와주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잖니껴”라고 말한다.
그래도 남순임씨와 같은 삼학년 학부형들은 고생 다 한 거나 마찬가지다.
곧 있으면 아들이 졸업해 대학에 들어가니까.
새로 선수들의 식사에 대한 책임을 맡은 이재진 군의 어머니 조이순(42)씨는
“다른 건 다 둘째 치더라도 전용 버스만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니더”라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 한다.
관광버스를 맞춰 서울 등지로 시합에 가면 이기는 것도 문제라 한다.
이기고 나서 경기가 다음날이나 있으면 차를 그냥 세워 놓고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경기장까지 시내버스나 지하철로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이들로선 헤매기 일쑤여서 선수들이 경기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지치는 경우도 있다.
결승까지 올라가면 며칠을 계속 있어야 하는데 여관비며 식비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돈이 없어 식비를 주지 못하고 내려와서 다시 돈을 모아 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운동하는 선수들 가운데 왜 그리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지 멀리서 와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최감독이 몰래 용돈 주는 것을 볼 때가 있었는데 눈물이 나오더라고,
“최감독님 아이들에게 축구화 하나 얻어 신기려고 애쓰는 거 보면 가슴이 아프니더”라고 어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역시 선수들의 부상에 더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주장 이성민 군의 어머니 전삼영(51)씨는
“아이들이 경기하다 다치면 뼈가 녹니더”라고 말한다.
우리 선수들이 이기는 것도 좋지만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다치지만 말고 경기가 끝났으면 하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다.
“집떠나 모두들 힘들게 운동하는데 다치지나 말아야지렁렁렁”라며 흐리는
말끝에 자식 걱정으로 새카맣게 탄 부모의 속마음이 보이는 듯 하다.
축구에 미친 사람 최감독
안동고등학교의 한해 두 번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은
선수들의 피땀어린 훈련과 더불어 감독의 말없는 눈물,
그리고 학부형들의 한숨이 이루어 낸 결과다.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지금의 안동고등학교 축구부는 있을 수 없다.
지금의 숙소도 학부형들의 힘으로 작년에 지어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애씀에도 불구하고 안동고등학교 축구부가
평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89년과 91년에는 해체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큰 이유는 공립고등학교 재정으로 테니스부와 같이 축구부를 운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공진영(61)교장은 운동에 관심이 많고 특히 축구부에 애정을 많이 갖고 있다.
앞으로 공부 잘하는 명문고와 운동 잘하는 명문고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을 작정이다.
공진영 교장은 축구부를 지원하기 위해 동창회, 학부형회 등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열심히 지원할 예정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안심하고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엑스트라일 뿐이고 축구부의 진짜 주인공은 최건욱 감독입니다.
최감독은 축구에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한가지 일에 그렇게 미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라며 최감독을 추켜세운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는 더 이상 안동고등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동 지역민의 문제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안동고등학교 축구부가 안동시의 홍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던가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해 질 것이다.
주위에서 소리 없이 안동고등학교 축구부를 후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보조기축구회 회장 및 회원들은 선수들의 밥값을 내기도 하고
동산정형외과 원장은 선수들의 부상을 무료로 치료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경북축구협회 부회장 정동완(57)씨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안동소주 사장과 안동병원 이사장 등이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들이 모자라고 최감독과 학부형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여러 가지로 운동을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이 있지만
이런 것들을 극복해 내기 위해서 최감독의 남다른 훈련 방법은
무자비한 스파르타식 훈련이다.
이는 선수들에게 강한 정신력을 심어 주기 위함이다.
어린 선수들에겐 다소 벅찰지 모르지만 기본기가 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최감독의 믿음이다.
최감독은 축구는 비과학적인 운동이라 말한다.
그래서 변수가 작용하기 쉽다는 것이다. 가장 큰 변수는 실력과 상관없이 정신력에서 나온다. 이겨야 한다는 강한 정신력만 갖춘다면 경기에서 반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란다.
모두들 요즘 젊은 신세대들은 몸도 마음도 너무 약해졌다고 한다.
고생을 해보지 않고 너무 풍족하게 살아온 탓이라고 말들을 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을 보면 모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가 많은 지원과 풍족한 여건 속에서 연습을 한다면 오히려 지금과 같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배고프고 힘드니까 무언가 보여 줘야 한다는 투지가 그들을 우승으로 이끄는 지도 모른다.
인간되기를 먼저 가르친다
그래서 최감독이 훈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기초체력훈련이다.
안동고등학교 뒷산에는 약 7Km 정도의 산길이 나 있다.
누가 일부러 길을 만든 것이 아니다. 매일 선수들이 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다.
일학년 신입생들은 이 고된 훈련을 견디기가 힘들어 연습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동료 교사들조차 너무 심하게 연습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연습 중에 그렇게 뛰어야 시합 중에 지치지 않는 것이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의 힘은 다른 것이 없다. 조직력과 기동력이다.
축구는 혼자 하는 기록 경기가 아니다.
또한 한 사람의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열 한 명의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뛰어야
좋은 경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초체력과 정신력은 더없이 중요하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잘하는 그런
선수들은 아니다.
좋은 선수들은 좋은 조건으로 포철공고 등지로 간다.
결국 이곳 안동고등학교로 오는 선수들은 그런 경쟁에서 뒤쳐진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을 최고의 선수들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강도 높은 스파르타식 훈련이 가장 적절할 지도 모른다.
안동고등학교 축구부 출신은 전원 대학에 진학한다.
지금 쥬니어국가대표 선수가 두명 있고 그 동안 배출한 선수들은
현 올림픽 대표로 있는 경희대학 4년 재학 중인 최윤열, 청소년대표로 있는
한양대학 2년 재학 중인 이상만과 울산대학 2년에 재학 중인 김도균, 한양대학 2년 재학 중인 오정훈, 일화프로팀의 김원규, 숭실대학 재학 중인 김경태 등 모두 5명이나 있다.
처음에 다른 고등학교로 보내려고 했던 학부형들도 지금은 모두 최감독 밑으로 잘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전라도나 충청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안동고등학교로
오기를 희망하는 선수가 많다고 한다.
최감독은 “요즘 학생들은 고무줄같이 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너무 잡아당기기만 하면 끊어져 버리듯 잡아당겼다 놓아줬다 하는 것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 가르치는 것보다 선수들 관리가 더 어렵다며
“굴비 한 두름을 한 아름에 안고 가려면 빠지는 것도 있고 오래 가지도 못하지요.
적절하게 하나씩 꿰어서 어깨에 울러 매고 가야 힘도 안들이고
모두를 안전하게 가지고 갈 수 있듯이 선수들의 성격과 심리,
가정적인 것까지 파악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맹장뿐만이 아니라 지장과 덕장의 모습까지 베어 나온다.
그리고 운동보다는 먼저 인간 되기를 가르치는 것은 최감독의 오랜 신조다.
축구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최감독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미칠 정도의 열정이 있어야 하고,
또한 중요한 것이 예술가적 기질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11명의 선수들을 잘 다듬어서 각자의 성격에 맡는 위치를 선정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시합이라는 것을 통해 그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라 한다.
축구에 미쳐 버린 축구쟁이 다운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런 쟁이로서의 기질이 최감독의 가슴속에 녹아 있어 저력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라도 경기에 임하면 이겨야 한다.
그러나 승부라는 것이 마음과 같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경기에 지건 이기건 경기가 끝나면 최감독은 말이 없어진다.
연습 때에는 호통도 치고 말이 많아지지만 경기에 지면 진 데로 혼자서 패인을 분석해야 하고, 우승을 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것을 위해 그 동안 정신없이 살았던가 하는
허무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 경기를 분석하고 미비점이 발견되면
최감독은 허무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 만은 없다.
또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냉혹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보낸 13년의 세월이 나이 40인 최감독을 50대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영화배우가 꿈이었다며 꺼내 보인 대학시절의 사진 속에 그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으로 그가 산 삶의 무게가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최감독은 고교시절 말썽도 많이 부리고 선수 생활 떄 숙소 이탈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끝까지 축구를 하도록 챙겨 주고 보듬어 준 이가 있는데,
고교시절 축구감독인 임창수(59)씨라고 한다.
임창수씨는 지금 중풍으로 8년째 누워 있는데 일년에 한 두 번은 찾아가 본다고 한다.
그런 고교시절의 경험이 지금 선수들의 마음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하고, 감독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최감독에겐 이제 대표팀 감독이 되어 보는 것과
세계적인 선수를 키워 내 보고 싶은 마지막 꿈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가족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자신을 믿고 자식들을 맡긴 학부형들과 선수들의 초롱한 눈망울을 보면 그렇게 쉽게 다른 결정을 하지도 못한다.
최건욱 감독, 그는 안동고등학교에서 9년여 동안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해 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완성해야 할 것은 더 있다.
더 높고 먼 고지를 향하여 이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목표가 달성되는 그 짜릿한 희열을 맛보기 위하여렁렁렁
세상이 온통 시끌벅적하다.
막가파의 어이없는 범죄도 그렇고 피와 땀이 아닌 돈으로 목적을 달성시키려 했던
이양호 전국방장관 뇌물수수에 대한 기사를 보면 막가파의 심정을 이해 할 것도 같다.
시민들의 버스 요금을 갈취하고서도 만성적자 운운하면서
더욱더 시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던 서울버스회사 사장 비리렁렁렁 이 모든 것이 저 혼자만 잘먹고 잘살아야 겠다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열한명이 한 마음으로 뛰어야 하는 축구경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각자의 선수들이 저 혼자 튀어 보려고 제각기 날뛴다면 경기는 제대로 될 수 없고 그들이 속한 팀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비가 많이 오고 있는데 선수들은 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체육관 시설도 없어 비가 오면 감기에 걸릴까 봐 오히려 숙소에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정상에 도달하는 것보다 정상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비오는 운동장에서 그들이 합심해서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안동의 희망찬 미래를 느끼게 한다.
도 웅 민(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