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하겠지 진실에 눈감는 '방관자 효과'를 두고만 볼 것인가? 한미우호증진협의회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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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처한 현장을 보고도 방관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방관자 효과'가 만연된 현실을 고쳐야 할 때다. |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무력도발이라는 것을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밝혀졌는데도 유엔안보리성명은 천안함 침몰만 규탄할 뿐 북한소행을 탓하지 않는다. 범죄만 있고 범인이 없는 성명은 중국과 러시아가 사사건건 국제사회에서 북한편을 든 결과다. 인류평화를 해치는 북한의 소행을 방관한 중국과 러시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거부한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정의의 하나님은 중국과 러시아의 만행을 방관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누군가 하겠지 진실에 눈감는 ‘방관자 효과’를 두고만 볼 것인가?
한미우호증진협의회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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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7명이 서울 잠실동 신천성당 앞에서 집단폭행을 해 뇌사상태에 빠진
피해자가 숨졌다.
도심 현장에서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범죄를 외면한 결과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현상을 심리학적 용어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또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고 한다.
1964년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가 뉴욕 시의 자기 집 근처에서 오전 3시 30분 강도에게 살해당할 때 그녀가 격렬하게 반항했다.
강도와의 사투는 30분 이상 계속되었는데 주변의 40가구에서 그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도 그녀를 구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 그대로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누군가 구하거나 신고하겠지 하는 방관자가 된 결과 범죄는 만연된다.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가정주부가 대낮에 인신매매사범에게 마구 폭행을 당해 납치될 때 주위에 살려 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누구도 도와주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주부는 납치되어 매춘을 강요당한 결과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는 방관자 효과로 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신약 누가복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의하면 예수는 지배세력인 레위인과 제사장을 방관자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수는 누가 이웃인가라는 율법사의 질문에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에 된 피해자를 보고도 레위인과 제사장은 방관자 효과로 그냥 지나쳤지만
이방인에 불과한 사마리아인이 돌봐주고 주막주인에게 돈까지 주면서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한 사례를 들어
누가 이웃인가하고 반문하면서 율법사 스스로 사마리아인을 이웃이라고 대답하도록 했다.
미국 쇠고기 광우병날조로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든 좌파의 난동때 무책임한 방관을 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당선시킨 집단은 그때 모두 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권력의 열매를 따막는데는 열심이었지만 좌파의 난동에는 방관자 효과로 내몰라라 한 것이다.
교회도 양적인 건물의 성장에 골몰하면서도 사탄과 같은 좌파의 난동에 대결해 순교자가 될 정열이 없기 때문에 한국이 물질적인 번영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가난에 허덕이는 것이 아닐까?
예수가 방관자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하나님(하느님)을 믿는다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들어 비판했다.
직설적인 비판이 아니라 간접적인 비유를 통해 그것도 예수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율법사의 입을 통해 레위인과 제사장이 아닌 이방인 사마리아인을 이웃이라고 대답하도록 한 예수의 지혜는 바로 성령의 도움으로 해서 가능했다.
하면서 하나님(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 불과한 사마리아인을 이웃을 돌본 선한 사람으로 비유한 것은 혁명적인 사고의 대전환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하느님)을 믿지 아니한 이방인에 불과한 사마리아인을 하나님(하느님)을 믿는 지배세력인 레위인과 제사장보다 더 도덕적인 우위에 있는 것처럼 대답하도록 한 예수의 놀라운 지혜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예수가 한국에 온다면 강도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세력으로 여야 정치권과 한국교회와 한국종교와 종교인들을 말하지 않을까?
최악의 이혼율과 자살율, 최저의 출산율, 지난 2년간 무려 17배로 늘어난 지방자치 부채, 간첩과 국가보안법위반 전과자에게 민주화의 명예와 거액의 보상금을 주는 등 영적타락에 빠진 한국을 방관자효과로 그냥 지나친 정치권과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세종시 문제와 하천정비 문제에 여야와 시민단체는 거의 모두가
찬반의 양극에서 평행선을 긋는 고집만 부렸지
거의 모든 정치세력과 시민단체가 서로 타협하도록 압력단체 역할을 하는 과제에는
방관자가 된 것도 위기를 증폭시켰다.
이명박정권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여의도 면적의 31배 크기의 농지가 수몰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종교계의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고 보수의 수와 높이를 줄이는 대타협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의 종교계는 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좌편향에 대하여는 왜 침묵하는지 왜 천안함 침몰 북한의 도발에 대하는 방관하는지 답답하다.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총장이 남침무력통일보고에서 20여개의 남침땅굴로 전후방을 교란해 육해공 무력통일이 가능하다고 하였지만, 무력남침 땅굴이 4개나 발견되었지만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극소수의 단체만 관심을 보일 뿐 거의 모두 땅굴에 대하여도 방관한다.
방관의 병폐는 한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 성공으로 민주화의 기반을 조성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을 쓰레기 매립장에 초라하게 짓는데도 거의 모두가 방관한다.
5.18때 북한군이 침투개입해 간첩이 조사해둔 무기고위기 첩보로 불과 4시간만에 30여개 무기고를 탈취하여 광주시민과 부녀자를 죽이고서는 마치 국군이 죽인 것처럼 날조해 친북정권을 세우려는 대남공작 군사작전을 벌린 것이 5.18의 실체라는 탈북자들의 기자회견에도 거의 모두 방관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인용한 보수단체를 탄압해 기소하는 이명박 검찰의 진실불감증, 광주에서 5.18 진실을 규명하려는 민주인사들에 대한 테러에도 모두가 거의 방관자효과로 외면한다.
북한의 무력도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국제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소행임을 분명히 해도 유엔 안보리성명은 천안함 침몰 범죄만 규탄할 뿐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범행만 있고 범인이 없는 유엔 안보리 성명은 우리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답답하다.
그러고도 인�평화와 정의가 지켜지겠는가?
유엔까지 범행만 규탄할 뿐 범인이 누구인지 규탄하지 아니하려는 방관자 효과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소행임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탄압 규탄결의에도
걸핏하면 반대표를 던져 북한의 버릇을 나쁘게 길들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하나님(하느님)과 부처님의 인내심은 끝날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도 진실에 눈감는 방관자는 여리고 성을 지나면서 강도만난 사람을 그대로 피해 지나치는 방관자와 같다.
좌파들을 똘똘 뭉쳐 단결하는데 보수는 보수대연합으로 단결하기를 거부하고 서로 탐욕과 분열과 도덕불감증과 코드를 즐기다가 지방자치선거에서 패배했다.
진실과 정의, 자유민주주의를 소중히 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그 대가를 치를 것을 깨닫기 바란다.
대선기간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은 당신에게 투자한다"고 한 오바마 대선후보의 제안은 가장 인기있는 공약이었다.
그는 2009년 4월 미국봉사단의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해 공약을 지켰다.
그는 라이벌에 투자하여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정적인 공화당에 투자하여 공화당소속 장관 3명이나 임명해 정국의 안정을 기했다.
여야는 엽관제 코드의 병폐에 머물 것이 아니라
라이벌과 정적, 건전한 양심세력과 보수대연합, 우파는 좌파를 벤치마킹하고 좌파는 우파를 벤치마킹하는 자율적인 조절에 대한 방관자 효과에서 벗어날 때 한국의 미래는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