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그린피크의 고재귀 작 박상현 연출의 공포
공연명 공포
공연단체 극단 그린피크
작가 고재귀
연출 박상현
공연기간 2014년 9월 25일~10월 5일
공연장소 서강대학교 메리홀
관람일시 10월 4일 오후 3시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극단 그린피크의 고재귀 작, 박상현 연출의 <공포>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제정 러시아 말, 안톤 체호프가 희곡 집필을 위해 교외의 한 부농의 전원주택에서 머물며, 집주인과 성직자 등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과 하인과 하녀들의 빈한한 삶과 그들의 자살에서 공포를 느끼고, 한편 집주인의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그려냈다.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 있는 항구도시 타간로크(Таганрог)에서 태어났다. 체호프가 열여섯 되던 해인, 1876년 그의 아버지는 파산했다. 파벨은 세간을 정리하고 모스크바로 이사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타간로크 중학교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홀로 고향에 남았다. 아버지가 돈을 보내 주지 않자 그는 돈을 벌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나아가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도와야 했다. 소년 체호프에게 이것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체호프가 인간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후 이러한 특성들은 예술적 이미지, 예술적 사실(작품)로 이어졌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어수룩한 사람』과 『가정교사』는 이때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체호프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참 어려운 시기였다. 명문가와는 거리가 먼 집안 내력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어린 나이에 학교 공부와 집안을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었다. 1879년 체호프는 모스크바로 이주해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유머 잡지에 글을 싣기 시작했다. 물론 체호프의 문학적 재능은 타간로크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독자들과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내면서 체호프가 가진 작가적 역량을 발현하는 것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보는 것이 옳다. 1880년 3월 페테르부르크의 주간지에 <박식한 이웃에 보내는 편지(Письмо к ученому соседу)>가 게재되었다.오만한 어투를 활용한 서간체를 빌려 시골 지주의 교양 없는 상태를 풍자한 이 짧은 작품이 체호프가 지면을 통해 발표한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그 후 체호프는 여러 필명을 이용해 패러디적 성향이 짙은 작품이나 소품을 대중 잡지에 실으면서 인기 있는 유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즐겨 사용한 필명인 안토샤 체혼테(Антоша Чехонте)에 근거해 이 시기를 ‘체혼테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1년에 10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 내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관리의 죽음(Смерть чиновника)』(1883), 『뚱뚱이와 홀쭉이(Толстой и Тонкий)』(1883), 『카멜레온(Хамелеон)』(1884) 등 지금도 회자되고 즐겨 읽히는 뛰어난 작품을 양산했다.1884년 대학을 졸업한 후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에 병원을 개업해 시골 마을이나 소도시에 왕진을 다녔다. 그러면서도 젊고 유명한 예술가들 및 문학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개업의로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1884년 그의 첫 단편집이, 1886년에는 그의 두 번째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이 두 작품집은 작가로서 체호프의 명성을 높여 주었다. 체호프는 의사의 길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의과대학 공부와 개업의 활동, 여기에 지칠 줄 모르는 창작 활동이 겹치면서 폐결핵의 징후를 보인다. 정신착란이 고골의 평생 지병이었고, 신장결석이 투르게네프의 평생 지병이었으며, 간질이 도스토옙스키를 평생 따라다녔다면, 폐결핵은 체호프의 평생 지병이 된다.1890년, 마차와 배를 이용해 시베리아를 통과해서 3개월간의 힘든 노정 끝에 사할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할린 섬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죄수들의 일상을 3개월여에 걸쳐 조사한 다음, 그해 10월 인도, 싱가포르, 스리랑카, 콘스탄티노플, 오데사를 거쳐 12월에 모스크바로 귀환했다. 무려 8개월간에 걸친 길고 긴 여행의 성과는 인상기 『시베리아 여행(Из Сибири)』(1890)과 조사 보고서 ≪사할린 섬(Остров Сахалин)≫(1893)으로 남아 있다. 귀국 후, 1892년에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 멜리호보의 영지를 사들였다. 그곳에서 1897년까지 머문 ‘멜리호보 시대’는 건강을 회복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시기였다. 1892년 6월 콜레라가 창궐하자 체호프는 톨스토이 등과 함께 구호 활동을 벌였다. 의사로서 봉사했으며 기아의 구원과 학교의 설립에 힘을 기울이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인간 생활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등장인물의 행위와 사고를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밝히려는 자세가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체호프는 1897년 3월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객혈을 하게 된다. 크림반도의 얄타로 거처를 옮겨 요양 생활을 시작한다. 얄타에서 고리키(М. Горьки, 1868~1936)나 부닌(И. А. Бунин, 1879~1953) 등 신진 작가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톨스토이의 병문안을 받았다. 이러한 요양 생활의 와중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Дама с собачкой)』(1899) 등의 소설을 내놓았다.그러나 체호프의 말년을 대표하는 장르는 희곡이었다. 『갈매기(Чайка)』(1898), 『바냐 아저씨(Дядя Ваня)』(1900), 『세 자매(Три сестры)』(1900), 『벚꽃 동산(Вишнёвый сад)』(1903) 등이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공연되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말년에 불후의 희곡 작품을 남겨 놓고, 체호프는 1904년 당시 유명한 요양지였던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폐결핵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러시아로 옮겨져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공포>는 안톤 체호프의 자전소설처럼 시작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대학 과정을 마치고 페테르부르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 살에 직장을 버리고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한다. 농장은 그런대로 잘 굴러갔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체호프는 그가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햇볕에 그을리고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그는 일 때문에 녹초가 된 모습으로 정문이나 현관에서 체호프를 맞았으며, 그 다음에는 저녁 식탁에서 졸음과 투쟁을 벌이다가 아내에게 어린애처럼 이끌려 잠자리로 들어가곤 한다. 이따금 그가 졸음을 이겨내고 부드럽고 경건한, 마치 기도하는 듯 한, 목소리로 자신의 훌륭한 사상들을 펼쳐 보이기 시작할 때면 체호프는 그에게서 경영자나 농장주가 아닌 한 지친 남자의 모습을 볼 뿐이다. 체호프가 보기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농장의 성공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하루가 무사히 가기를 바랄 따름이었던 것이다.
체호프 그의 농장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해서 한번 가면 이삼 일 정도 묵곤 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실린의 아내 마리야 세르게예브나가 너무도 체호프의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 있다. 그녀와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체호프는 그녀의 얼굴과 눈,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좋아했으며 한동안 못 보면 그녀가 그리워진다. 여기에 과거에는 귀족가문출신이었지만, 음주벽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중년남성 가브릴라 세베로프가 등장하고, 성직자 조시마 신부, 그리고 이 집 하녀였다가 쫓겨난 까쨔가 다시 일하게 되기를 열망하다가 거절당하자 목을 매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니, 체호프는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설에 묘사해 간다. 그러다가 실린의 부인 마리야와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감지한 실린은 분노나 항의를 표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주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무대는 회색의 색조로 칠해졌다. 자작나무 숲으로 연결된 경사진 오솔길과 실린 저택의 마룻바닥도 우측상향각도로 경사진 것으로 보이도록 만든 장치다. 하수 쪽 책상과 의자 중앙의 탁자와 소파, 상수 쪽의 높은 탁자 등은 흑색을 띄고, 객석전면의 꽃밭까지 흑색이라, 흑색과 회색조의 무대로 형성되었다. 다만 천정에 매어달린 샹들리에 만 갈색을 띄고 있을 뿐이다.
김태근이 체호프, 이동영이 드미트리 실린, 김수안이 마리야, 신덕호가 소시마 신부, 오대석이 가브릴라 세베로프, 최지연이 하녀 빠샤, 전박찬이 요제프 신부, 박하늘이 까쨔로 출연해 성격창출이나 연기 면에서 좋은 기량을 나타낸다.
드라마터지 마정화, 무대 박상봉, 조명 남경식, 의상 윤보라, 음악 민경현, 화술 김선애, 분장 이동민·최정현·김주현, 무감 김명환, 조연출·음향보 유옥주, 조명보 임지연, 그래픽 김 솔, 사진 박정근, 기획 드림아트펀드 등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그린피크의 고재귀 작, 박상현 연출의 <공포>를 고품격 고수준의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4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