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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Ð 원정산행후기/사진 스크랩 유럽여행(7일차) 밀라노→루째른, 인터라켄, 융프라우
지리사나 추천 0 조회 476 10.10.24 20:5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아침식사후 스위스로 이동 : 밀라노 → 루째른(242km, 약 4시간 소요)

    이태리-스위스 국경을 넘어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 스위스 풍경이 펼쳐진다. 

 

 

▼ 호수도... 

▼ 호수 주변의 마을도... 

 

 

 

▼ 인터라켄 가는 중간에 한 컷트 

▼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스위스 가이드와 만나고,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 오르는 열차를 기다린다. 

스위스 인터라켄(호반의 도시)

 인터라켄(스위스 중부 베른 주에 있는 소도시) - lnterlaken
아레 강을 따라 베른 고지에 있으며 동쪽으로 브리엔츠 호와 서쪽으로 툰 호 사이에 있다. 해발 568m의 평평한 평야에 위치한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도시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한 수녀원을 둘러싸고 발달했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름 관광휴양지이고, 주요 대로(大路)인 회에베크에는 호텔들이 줄지어 있다. 남쪽으로 융프라우 봉(4,158m)의 멋진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으며, 알프스 유람 여행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직물과 시계가 제조된다. 인구 5,176(1990)

  

 

 

▼ 융프라우 왕복열차 이용권, 화한로 15만원 정도 

▼ 열차에 오른다. 융프라우 까지는 열차를 세번 바꿔타야 한다. 당연히 내려 올때도 마찬가지

    두번째 열차 부터는 경사면을 오르 내려야 하기 때문에 톱니바퀴 열차.

 

 융프라우(Jungfrau) - 4,158m 

라우터브루넨 계곡에 우뚝 솟아 있으며 해양도시인 인터라켄에서 남남동쪽으로 18㎞ 떨어져 있다. 베른알프스 산맥에 속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으로 베른 주와 발레 주를 나누며 그중 다른 두 봉우리들인 핀스터아르호른과 알레치호른은 융프라우의 높이를 능가한다.

1811년 동쪽, 즉 발레 쪽에서 두 스위스인 형제 루돌프 마이어와 히에로니무스 마이어가 처음으로 등반했고, 1865년에 비로소 어려운 서쪽, 즉 인터라켄 쪽에서 두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산에 올랐다. 1927년에 두 전문등산가가 남쪽에서 등반했다. 유럽의 가장 높은 철도 중 하나인 융프라우 철도(1896~1912 건설)는 아이거와 묀히 산허리를 지나 묀히융프라우 사이의 고갯길(3,944m)인 융프라우요크까지 길이가 약 7㎞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

 

▼ 열차가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 이미 눈이 내려 쌓여 있다. 

 

▼ 하행열차를 기다리는 가족 

 

▼ 융프라우에 도착했다. 

 

 

▼ 얼음 동굴, 만년빙을 뚫어서 활용하고 있다. 

 

 

 

 

 

 

 

 

 

 

 

 

 

▼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오른다.  

 

▼ 융프라우 정상이다. 일기도 좋지 않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다.

 

 

 

 

 

 

 

 

 

 

 

 

 

 

 

▼ 멀리 희미한 반대편 산맥을 배경으로 실루엣 한 컷트 

▼ 현재기온 섭씨 영하 12.4도 - 해외 어디를 가나 일본이 선수 친다. 

▼ 내려 가는 길, 바위암반을 뚫은게 100년도 넘은 것이다. 

 

▼ 톱니 레일 

 

 

 

 

▼ 내려 오면서 녹음이 짙푸러진다. 

 

▼ 밑에서 바라보는 설산도 장관이다. 

 

 

 

 

 

▼ 루째른 도착 

 (프)Lucerne.
스위스 중부 루체른 주의 주도
취리히 남서쪽, 루체른 호의 북서부로부터 발원하는 로이스 강을 끼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8세기에 세워진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장크트루시아리아 수도원에서 유래했다. 아마도 근처의 어촌이 시로 발달하여 1178년경에 자치시로 인가를 받은 것 같은데, 주민은 원래 그 수도원의 농노들이었다. 1230년경에 생고타르 수로가 개통된 후, 라인 강 상류와 롬바르디 지방 사이의 중요한 교역 중심지로 발달했다.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독일의 루돌프 1세)는 독립을 원했던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1291년 수도원과 시를 사들였다. 루돌프의 뒤를 이은 계승자들의 치하에서 발생한 정치적 불안 때문에 이곳은 1291년 우리·슈비츠·운터발덴 주들이 결성한 동맹에 1332년 가입했다. 이 동맹은 합스부르크 군대와 싸운 젬파흐 전투(1386) 후 독립을 얻었다. 1415년에 이르러 루체른 시는 조약, 무력 점령, 또는 매입에 의해 현재 루체른 주의 영토 대부분을 얻었다. 이곳은 종교개혁 때 가톨릭교를 따르는 주들의 주축이었고, 1579~1874년에는 로마 교황 대사의 주재지였다. 1798년에 이 시의 귀족 정권은 나폴레옹군의 맹렬한 공격 때문에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헬베티아 공화국의 수도였다가 1803년 주도의 지위를 되찾았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곳 중의 하나로, 로이스 강에 의해 2부분으로 나뉘며 강 위로 7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다리보다 더 오래된 바서투름(저수탑)의 곁에 있는 카펠 다리(1333)와
슈프로이어 다리(1407)는 가장 오래된 2개의 다리로, 지붕이 덮여 있고 17세기 패널화로 장식되어 있다. 강 오른쪽 언덕에 있는 옛 도시는 잘 보존된 14세기 도시 성벽으로 유명하다. 이 성벽 안에는 9개의 저수탑, 예스럽고 멋있는 골목길들, 중세·르네상스·바로크 풍의 집들이 있는 광장 등이 있다. 중요한 건물로는 역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시청(1602~06), 암린하우스(1617),장크트페터 교회(1178, 1750 개조), 8세기 대성당이자 장크트레오데거 대교회인 호프트키르헤(1633 이후 재건), 마리아힐프 교회(1676~81) 등이 있다. 호프트키르헤에는 성가대원들의 집, 토스카나 양식의 묘지, 2개의 탑(1504) 등이 있다. 그밖의 유적으로는 1792년 파리의 튀를리 궁전을 수호하다 전멸한 스위스 호위병들을 추도하는 베르텔 토르발드젠 작(作)의 〈루체른의 사자 Lion of Luzern〉 기념비, 1872~75년 발굴된 빙하시대의 유적인 빙하 정원, 대규모의 스위스 교통박물관(1959), 우텐베르크 스위스 민속의상박물관 등이 있다. 강 왼쪽에는 주정부 건물인 레기룬크스게베우데(1557~64, 1577~1804 예수회대학), 로코코 양식의 성모실과 도서실이 있는 주립 고문서보관소(1729~31), 고전(古錢)·자연유물·헬베티아 소장품들을 갖춘 중앙박물관(1951), 생프라시스그자비에 예수회 교회(1667~77), 로코코 양식의 수랑(袖廊)이 있는 14세기 고딕식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교회, 시 자치 청사(1675), 새 시청(1913), 리처드 바그너 박물관(1933), 현대적 장크트안토뉘 예배당(1954), 화랑, 의사당(1932~33) 등이 있다. 여러 주립·시립 학교 외에도 중앙 스위스 고등학교, 스위스 가톨릭 종교음악학교, 중앙스위스기술대학, 스위스 제과학교, 스위스 호텔관리학교 등이 있다. 또한 주대법원·상사재판소·형사법원·소년심리원·연방보험법원 등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훌륭한 주위 경관, 온화한 기후, 철도 및 도로를 이용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점들 때문에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주요한 관광중심지가 되었다. 호수에서 운행되는 증기선이 산지의 여러 철도 및 공중 케이블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계 스포츠 요충지인 엥겔베르크와는 협궤 철로에 의해 직접 연결된다. 카지노, 해변시설이 있고, 노젓기 및 배타기 경기대회, 경마 및 장애물 경기, 매년 열리는 국제 음악제, 사순절 전의 전통적 축제 등의 행사가 열린다. 이곳의 상업과 산업은 대부분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주민은 독일어를 쓰며 대체로 로마 가톨릭교도들이다.

 

숙소는 Kreuz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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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25 20:46

    첫댓글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엘리베터까지 설치하고, 얼음동굴도 이채롭네요..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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