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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뽈이와 무슈
어릴 적 추억 속, 우리 집은 항상 개를 기르고 있었다. 주로 스피츠나 발발이 종류의 작은 강아지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을 주며 길렀는데, 맛난 음식을 개에게 먼저 가져다 준다고 야단을 맞은 적도 많다.
보실보실한 털을 쓰다듬기도 하고 그 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쉬면 약간 비릿한 강아지 냄새에 오히려 맘이 편해지기도 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강아지는 어쩌면 유일한 자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성북구 종암동 마당 넓은 집에 살 때 일이다. 대학교 입학 선물로 치와와 강아지를 한마리 선물받았다. 몇년 전 고인이 된 오빠가 강아지라면 죽고 못살던 여동생에게 멕시코 치와와 주에서 들여왔다고 치와와라고 이름 붙여진 가장 작은 품종의 강아지 치와와를 선물한 것이다.
조막만한 몸집에 두 귀는 남산 야외음악당 만큼 컸으며, 소리나는 방향으로 두 귀가 돌아갈 때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귀만 보였다. 걷는 모습을 보면 뽈뽈거리면서 걷는다고 붙여진 이름, 뽈뽈이. 오빠가 지어준 이름이다. 뽈뽈이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 방 안에서도 벌벌 떠는 때가 많았고 고기나 생선만 먹고 야채와 채소는 입맛에 안맞는 모양이었다. 배가 고플 때도 남이 주는 음식은 먹지 않고 주인이 주는 밥만 먹었다. 새침하고 자존심이 강한 강아지. 식구들 중에서도 누가 가장 저를 좋아하는지를 아는지 늘 내 무릎 위에만 올라와 앉곤 했다. 가끔 얼굴을 쳐들고 하늘을 향해 목청껏 짖어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땐 맑은 고음의 강아지 테너 가수 같았다.
학교 갔다 오면 뽈뽈이 이름부터 부르고 옷에는 늘 털을 묻히고 다녔다. 그런데 그 무렵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뽈뽈이가 오기 전부터 마당에서 키우고 있던 개에 대하여. 그 개의 이름은 무슈(불어로 수컷이란 뜻) 무슈는 스피츠 잡종이었는데 뽈이가 나타나기 전 까진 나의 손길을 많이 받았다. 근데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는 격으로 뒷방신세가 된 셈이다.
집안 살림을 맡아 하시던 할머니가 눈치를 챘는지 무슈는 팔아버리고 치와와 한마리만 기르자고 넌지시 운을 떼시는데 나는 정색을 했다. 기르던 개를 어떻게 팔아버리느냐고. 두마리 다 기르겠다고. 할머닌 내게 '강아지 밥도 안주고 똥도 안 치우면서 그런다'고 나무라셨다. 그래도 토실토실한 무슈가 개장수에게 팔려갈 것을 상상하니 나는 끝까지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드디어 어느 날, 할머니는 개장수를 집으로 불러들이고 내 눈치를 보셨다. 그냥 한번 개장수를 데려와 보았다면서... 그런데 믿지 못할 상황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두고 두고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 뽈뽈이는 개장수를 보고 앙칼지게 짖어대는데, 무슈는 꼬리를 흔들면서 개장수를 반기는 상황. 값을 매기기 위해선지 목덜미를 만져 보는데도 여전히 두 발로 서서 혀까지 널름거리면서 꼬리를 흔드는데 생각해보면 이 개는 평소에도 주인과 낯선 사람과의 구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반면에 뽈이는 주인을 따르는 만큼 남들에겐 사나웠다.
사람만 차이가 심한 존재로 알았는데 개들도 저렇게 다르구나... 환멸감과 함께, 한마리 개에게서 배신감을 맛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짖어대진 않더라도 꼬리를 흔들지만 않았다면,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이라도 쳤다면 나도 팔려가지 못하게 발버둥을 쳤을텐데... 할머니는 내가 떼를 쓰면 다 들어주는데...
"할머니! 무슈는 할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무슈는 개장수를 주인 따라가듯 순순히 따라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들 중에도 꼬리 칠 사람과 짖어대야 할 대상을 구별 못하는 인간 무슈가 있다는 걸 30년이 지난 요즈막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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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필가 뺨칠 정도로 문맥이 부드럽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무슈한테선 절대 배우면 안되지요...
보신탕 장사한테 끌려가는 삶의 방식? ㅎㅎ
-인간들 중에도 꼬리 칠 사람과 짖어대야 할 대상을 구별 못하는
인간 무슈가 있다는 걸 30년이 지난 요즈막에 알았다.-이 작품의 백미이네요.
역시 후리지아님은 제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훤히 꿰뚫어 보고 계시네요.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개 두마리를 등장시켰지요.
30년 전 실화이기도 하구요...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