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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
(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했다.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이며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그런데 본 성당은 지난 1982년 강원도에 의해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바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기해 1920년에 제1회 성체대회가 실시되어
매년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6.25동란으로 3년간 본 행사가 치뤄지지 못했다.)
신앙의 요람터요 선조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30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되어 풍수원은 참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하겠다.
풍수원에서 가을의 정취와 더불어 아주 오래된 성당에 들러 잠시 묵상을 하였다.
명동성당의 축소판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실내에 의자가 없다. 방석을 깔고 앉아
미사를 봉헌하게 되어 있으며 산억덕을 오르면 화강암으로 깍아 묵주형태로 땅에
박아 놓아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드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고 붉은 단풍이 아직도 걸려있는 산을 구비구비 돌아 나갔다.
평일이라 길이 한가롭다.
한우 생산지로 유명한 힁성을 지나 둔내를 거쳐 태기산 마루에 도착하였다.
바람이 선선하고 하늘이 높았다.
이런 고산준령이들이 태백산맥까지 늘어 서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늘
산주름이라 표현한다. 이런 산주름은 영서,영동의 마루까지 펼쳐진다. 그로인하여
높세 바람 영향으로 이 지방에 특히 폭설이 잦았는데... 요즈음은 기상이변으로 그런지
옛적 눈을 보기가 어렵다. 지구 온난화 영향때문이다. CO2를 줄이지 못한다면 지구에
환경재앙은 불보듯 뻔한 일인데, 큰일이다. 적정실내온도를 유지하고 차량 이용을 줄이고
1회용 용기 사용을 자제하고 물을 절약하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모듬어야 한다.
가을바람에 쉼없이 돌고 도는 풍력발전기 가을하늘에 대비되는 은륜(銀輪)을 만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든다. 바람과 맞물려 도는 소리가 웅장하고 무겁다.
나는 순간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의 주인공 돈키오테를 떠 올렸다. 갑옷과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주인공은 거대한 풍차와 맞서 싸우는 광경이 연상된 것이다.
인간의 삶도 거대한 현실과 더불어 경쟁하는 모습이 바로 돈키호데가 아닌가!
맑은 가을하늘을 보자 파랗다. 그 위에 비행기가 수놓은 흰줄선이 반듯하고
시간이 지난 줄은 이미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현재와 과거는 이렇게 상반(相反)된다.
젊은날 나는 삶에 있어 많은 고심을 한적이 있었다. 살긴 살아야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숱한 진통끝에 얻은 결론은 인간답게 사는 일이 바로 올바른
삶의 길임을 깨닫지만 늘 실천이 문제였다. 사소한 이해다틈으로 마음을 내려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사는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다. 다시 눈을 들어 고산준령을 바라보며 긴
호홉으로 마음을 정리해 본다.
S군의 집은 태기산으로 올라가는 길, 계곡옆에 있었다. 강원도 특유의 가옥형태인
지붕이 낮고 텃밭을 낀 남향이었다. 일전 병원문제로 인사드렸던 아버님과 누님
건강하셨다. 차려주신 닭곰탕과 백숙 토종닭이라 고소하고 질긴듯하였지만
소주를 곁드린 점심은 나를 포식하게 만들었다. 후한 대접으로 즐거운 식사를
끝낸 나는 주변 산책에 나섰다. 폐교된 학교부지에 덩그라니 서 있는 동상이
세월의 무심함을 일깨운다. 그 동상은 반공소년 이승복이었다.
계곡을 건너 산으로 올라갔다. 인기척에 놀란 산새들이 후드둑 하늘 높이 난다.
숲에 새가 있고 동물이 있다는 사실은 숲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강원도 숲은 겨울이 길고 가을이 짧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 밟는 느낌이 가을을 등지고 겨울을 찾아 나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돌무더기를 돌아 작은 계곡을 넘으려하다 풀에 덮힌 서리를 보았다.
이곳은 이미 겨울이었다. 한 낮임에도 서리거 내린 모습이 산이 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돌주변으로 덮혀있는 지표식물에 하얀서리가 내려 앉았다.
유난히 지열(地熱)이 많은 곳이 있다. 그 부근 온도가 내려가면 이런 현상이 생긴는 것이다.
주황빛 낙엽송이 길게 늘어선 산판길이 오늘따라 보기가 좋다. 곧게 하늘을 찌르듯 서 있는 나무
낙엽송, 초봄 연두빛 침엽의 앙증맞은 모양이 예쁘고 성하(盛夏)때 곱술머리처럼 메달린 푸른솔잎이
보기 좋은 소나무나무과면서도 유일하게 가을이되면 낙엽이지는 나무 낙엽송(落葉松)!
가을산을 주황빛으로 물들게하는 마지막 가을 전령이다. 낙엽송은 늘 군락을 이루고 서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키가 커, 산 아래에서 쳐다보면 눈에 잘 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늦은 석양빛이
스며든 태기산 둔덕이 올망졸망하게 다가 온다. 나는 산판 길을 혼자 두 시간 가량 산책을하였다.
마음으로 드나드는 바람이 거칠지 않고 다정하고 따듯하면 육신 모든 것이 부드러워 진다.
이 기분을 도심까지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삶의 새로운 이완으로 작용할 수 있을 텐데......
가파른 곳까지 갔다가 등을 돌렸다. 이곳에서 15 여분 거리에 봉평 읍내가 있으며 읍내에서
또 10 여분거리에 가산 이효석 생가가 있다.
봉평은 이효석의 고향으로 메밀꽃 필 무렵 소설이 완성된 문향이기도한 곳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메밀꽃 핀 달밤에 한 여인과 맺은 단 한 번의 사랑을 회상하며 장돌뱅이의 삶을 이어나
가는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시적인 분위기와 언어적 리듬성을 잘 살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의 특징은 공간적 배경이 직접 작품 주제에 관여한 점이다. 작품 전체의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 땅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80리의 밤길이다. 이 밤길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즉 일정한 목적지로
가기 위하여 설정된 단순한 수단으로서의 통로가 아니다. 이 밤길은 떠돌이 주변인, 유랑객들에겐
정신의 고향으로서 안식처다.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밤길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자연이야말로 그들에겐 꿈과 같은 환상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세계이다. 부드러운 달빛이 흐르는
달밤에만 옛 연분 얘기를 꺼내는 허 생원의 심리를 더 없이 밝히는 이 낭만적인 배경과 분위기가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에서는 시대성이나 사회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 점은 이 작품이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고 짙은 예술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한다. 또한, 관능적 정서를
고유의 토착정서에 여과시킴으로써 한국 산문 예술에서의 서정을 승화시키는 데 사용하였으며,
특히 회상 형식으로 이어지는 장돌뱅이 허 생원의 애수는 산길, 달밤, 메밀꽃, 개울로 연결되면서 한국
정서로 자리하고 있다.

1914년, 8살 효석은 고향 봉평에서 100리 떨어진 평창공립보통학교까지 걸어다녔다.
그는 통학을 하는 동안 자연을 관찰할 수 있었고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웠다.
그가 지나다녔던 노루목고개, 장평의 개울 등은 실제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14세 때 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무시험으로 입학한 후 우등생으로 졸업할 정도로 학업능력이
우수했다. 이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도시와 유령』『기우』『행진곡』등의
작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효석은 재능과 실력을 갖춘 수재였지만 심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해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았다.
효석이 대학 졸업 후 25세 때의 일이다. 이 때 그는 한창 작품활동에만 매진하고 있었기에 다른 수입이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효석은 결국 일본인 은사에게 일자리를 소개받아 조선총독부 도서과에
취직한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의 비난에 못이겨 그만두게 된다. 이갑기라는 청년이 길에서 만난 효석에게
취직한 일로 욕설을 퍼붓자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효석은 토속작가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서구지향적인 심미주의에 심취해있었다. 서양 문화에 일찍 눈을
뜬 아버지와 전공이었던 영어영문학, 외국인 교수와의 만남 등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그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음악을 좋아했고 우유와 커피를 즐겨마셨다. 또한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기며
유럽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총독부를 그만둔 이듬해인 26세부터 숨을 거두던 35세까지 효석은 경성농업학교, 숭실전문학교 등에
재직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더불어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35세 짧은 생애동안 70여 편의 단편소설과
2편의 장편소설, 20여 편의 에세이를 남겼다.
봉평은 메밀이 유명한 곳이다. 읍내에 가면 현대막국수 집이 있다. 지붕이 낮아
허리를 꾸부리고 들어가고 나오곤 하였는데 그 동안 입소문을 통하여 맛있다는
소문으로 리모델링하여 식당 내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오랜 전통때문인지
다른 집 보다 맛이 월등하다.
봉평장은 2일과 7일 열리는 5일장으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로 허생원이 들르곤했던 충주집터와 물레방아간 그리고 그 늦여름의
메밀꽃이 지금 도 소설의 분위기를 충분히 상상케 하고 있는 곳으로 최근에는
메밀의 고장답게 기존의 메밀막국소, 메밀부침 메밀전병, 메밀묵 등에서
메밀찐빵, 토종메밀순대, 메밀국수전골, 메밀나물비빔밥 등 다양한 메밀음식들이
개발되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잡고 있는데, 모두 토종의 메밀과 손맛을 자랑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흥정계곡은 흥정산에서 발원한 계곡이 흥정리, 원길리를 거쳐 흐르는 긴 계곡이
다. 비교적 수량이 풍부한 편이며, 흥정산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물이라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계곡으로, 열
목어가 서식하는 곳이다. 계곡은 허브나라농원 옆의 구유소 부근을 제외하면 물의 흐름이 완만해 아이들
이 물놀이하기에 적당하다.
무이교 옆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계속 흥정계곡을 따라오르게 되는데, 약 1km 정도 가면 오
른쪽으로 산채시험장이 있고 또 약 2.5km를 더 가면 유명한 허브나라농원이 있다. 이 허브나라농원 옆이
구유소다. 구유소는 흥정계곡에서 물이 가장 깊고 물살이 센 곳으로 생김새가 소나 말의 구유를 닮았다
해서 구유소라 불린다고 한다.
허브나라농원을 지나 계속 시멘트 길을 가면, 지금은 폐교된 무이초등학교 흥정분교가 있다. 이후로도 계
곡은 계속 이어지지만 자연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흥정계곡은 몇 년 전만 해도 한적한 계곡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밀려드는 인파로 몹시 시달리고
있다. 산채시험장, 허브나라농원이 끼어 있고,아이들의 물놀이에 적당하기 때문인 듯하다.또 허브나라농
원 상류로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흥정계곡은 마을관리 휴양지로 지정되어 여름이면 주민들이 입장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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