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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 달 둘째 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2014년 갑오년 시산제를 준비하면서 소망을 가져봅니다. 내년 '갑오=청마'가 상징하듯이 우리 '아풍동님' 모두가 승승장구 할 수 있다는 소망 말입니다. 이번 시산제는 '한양설렁탕' 정 영자님의 음성 땅에서 지내려 합니다. 횡룡입수란 이렇게 하는 것이야라고 현장을 보시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혈처에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정성을 올리려 합니다.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와 사람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그리고, 덤으로 주시는 풍수로 맺어진 귀한 인연에 겨울이 주는 추운 날씨가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각만으로도 멋지지 않나요? 그 자리에 주인공이 되십시오. 2014년 갑오년은 모두모두 승승장구 하시길..... ** 총무 김 은희 올립니다. ** 1. 일시 : 2014년 1월 12일 (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9시 출발
3. 답사지
1)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생가 및 선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602-2)
반씨(潘氏)는 기성(岐城)·광주(光州)·남평(南平)의 3본이 있지만 모두 같은 분파이다. 기성은 거제도(巨濟島)의 옛 지명으로 기성반씨를 거제반씨라고도 한다. 광주반씨의 시조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진 반충(潘忠)이다. 그의 현손인 이조판서 반석평(潘碩枰)은 청렴한 문신으로 이름났으며, 그의 손자 반인후(潘仁後)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1944년 6월 13일 생으로 고등학교 때 에세이 경시대회에서 수상함으로써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잠시 만난 경험을 계기로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70년 외교부에 들어갔고, 2004년 대한민국의 외교부장관에 올랐으며, 2006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2011년 6월에는 2012년 1월부터 시작하는 두 번째 임기의 연임 추천 결의안에 대해 안보리의 만장일치와 지역그룹 전원이 서명한 가운데, 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박수로 통과되었다.
고향 마을인 행치는 약 500백년전 광주 반씨 장절공파에 의해 형성되었고. 음성 큰 산이라고도 불리는 보덕산부터 동남방의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둘러 싸인 가운데 있고 보덕산에서 뻗어 내려운 한 맥이 생가로 이어졌다.
2) 채신보 선생 묘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산38-1)
채신보는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 아버지는 사예(司藝) 채륜(蔡倫)이고, 아들은 난재(懶齋) 채수(蔡壽)이다.
1438년(세종 20) 18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함창현감(咸昌縣監)을 거쳐 1458년(세조 4)부터 1465년(세조 11년)까지 7년간을 음성현감으로 재직했다. 그 후 경산현감(慶山縣監)·평해군수(平海郡守)를 거쳐 1482년(성종 13)에 남양도호부사(南陽都護府使)를 지냈다. 이후 1484년(성종 15) 64세부터 처가가 있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물언덕에 소산정사(梳山精舍)를 짓고 산수와 벗하며 유유자적하게 여생을 보냈다.
3) 안동 권씨 3대 묘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
[권근1352~1409)]
본관 안동. 자 가원(可遠) ·사숙(思叔). 호 양촌(陽村). 시호 문충(文忠). 초명 진(晋). 1367년(공민왕 16) 성균시(成均試)를 거쳐 이듬해 문과에 급제, 춘추관 검열이 되고, 우왕(禑王)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1398년 정도전 일파가 숙청되자, 정당문학(政堂文學) ·문하부참찬사(文下府參贊事)를 거쳐 대사헌을 지내고, 사병(私兵)의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고, 대사성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거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 ·이사(貳師) 등을 역임하였고,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였다.
[권제(1387~1445)]
권근의 아들. 초명 도(蹈). 자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 지재(止齋). 시호 문경(文景). 찬성(贊成) 근(近)의 아들. 음보(蔭補)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고, 감찰(監察) 때 대사헌의 비위에 거슬려 파면되었다. 1414년(태종 14)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우헌납 ·병조좌랑 ·사예 ·사인(舍人) 등을 지냈다. 세종 초에 이르러 집현전부제학 ·대사헌 ·한성부윤을 지내고, 인순부윤(仁順府尹)이 되어, 1429년 진헌사(進獻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435년 이조판서에 승진되고, 이듬해 《동국연대(東國年代)》를 찬진(撰進)하였다. 1437년 예조판서에 전임되어 이듬해 계품부사(計稟副使)로 다시 명나라에 갔다가, 1439년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로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를 겸임하였다. 이듬해 《고려사》의 수찬에 참여했으며, 이어 좌참찬을 거쳐 1445년 우찬성이 되어 정인지(鄭麟趾) ·안지(安止)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를 지어 바쳤다. 문집에 《지재집(止齋集)》, 주요 저서에 《역대세년가(歷代世年歌)》 《영가연괴집(永嘉連魁集)》 등이 있다.
[권람1416~1465)]
권제의 아들. 자 정경(正卿). 호 소한당(所閑堂). 시호 익평(翼平). 1450년(문종 즉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감찰을 거쳐 이듬해 교리로서 《역대병요(歷代兵要)》를 함께 편찬하던 수양대군(首陽大君: 世祖)과 뜻이 통하여 그의 참모가 된 뒤 양정(楊汀) 등 무장을 포섭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우부승지에 특진하였으며,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이조참판에 발탁되었다.
이어서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으로 예문관 대제학이 되고,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다. 1458년 수찬관(修撰官)으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편찬하였고, 우찬성에 승진했으며, 1459년 좌찬성 ·우의정을 거쳐 1462년 좌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활을 잘 쏘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횡포가 심하고 축재를 하여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세조묘(世祖廟)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소한당집》이 있다.
4. 회비 : 4만원 (차량 대여비 및 중식 석식 기타 비용 포함)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연락처 : 총무 김 은 희 (010 - 3228 - 6489) 회장 김 종 대 (010 - 4234 - 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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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벌써 1년이 다 갔네요.. 올해 1월 그야말로 혈밭에서 시산제를 올린 기억이 생생한데...올 한해도 교수님, 회장님, 총무님 너무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시산제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