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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제 전날 산행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있고해서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였는데 결론은 비가 와도 산행은 강행
할 것이고, 또 어쩌면 눈이 내릴 것 같기도한데 그러면 대박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원래 참가 인원이 서생 진하에서 세 명이었는데 지금까지 산행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은 용우 친구까지
합세하여 네 명이 울산으로 출발하였다.
공업탑에서 기다리고 있던 울산 친구 두 명을 더하여 두 대의 차에 모두 여섯명의 인원이 목적지로
향했다.
당초에는 국수봉으로 예정하고 공지하였으나 정상에서의 조망이나 오늘의 산행이 시산제임을 고려해
볼때 아무래도 국수봉 맞은편의 치술령이 낫겠다는 산행대장의 이야기에 치술령으로 차를 몰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길은 질퍽하고 하늘은 흐렸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희끗희끗한 눈자취가 눈에
띄더니, 치술령 인근의 두동면 칠조마을과 박제상 유적지를 지나고 한튀미고개를 넘어서니 온 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혹여 차량이 눈길에 미끌어질새라 한 눈 팔 새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하건만, 앞과 뒤의 친구들은 창문을 열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눈구경하는 사람마냥 쉴새없이 쏟아대는 감탄사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뒤따라 오는 차가 하도 천천히 따라오길래 전화를 했더니 경치 구경하느라 그렇단다.
그래서 설경도 보고 사진도 찍을 겸 해서 한티미 저수지를 지나 법왕사 고갯길에 차를 새웠다.
모두들 사진을 찍고 또 찍은 사진을 이곳저곳 여러분들에게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내심 기대를 하지않은건 아니었지만 생각치도 않은 눈이 이렇게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아버렸나 보다.
산행대장님 말마따나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법왕사에 도착..
법왕사 경내에 새하얀 눈꽃이 피었다.
법왕사 대웅전 앞에서..
법왕사 전경..
법왕사 경내에 조성된 33 관음성지에서
부처님들도 머리에 하얀 눈꽃이 피었다.
출발에 앞서 경내를 둘러본다.
법왕사를 지나 치술령으로 향하는 산행이 시작된다.
눈 산행이라 평소보다 두 배의 힘이 든다.
오늘 처음 산행에 합류한 용우 친구는 배낭에다가 시산제 제기와 제구들을 들고 산을 오르느라
수고가 많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용우친구, 이번에는 수육으로 바꿔 들고 열심히 뒤따라 오고 있다.
오늘 많은 친구들이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하는 영수친구..
설경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중간 휴식터에서..
이제 정상까지 900미터 남았다.
오늘 정말 오기를 잘했네..
치술령에는 두 개의 망부석이 있다.
울산 망부석과 경주 망부석이 그것인데, 먼저 울산 망부석에 도착했다.
울산 망부석 위에 올라 바라다 본 산 위 전경.
어젯밤 내린 눈으로 천지가 하얀 별세계로 변했다.
정산부근의 능선에는 세찬바람으로 이뤄진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시산제를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제수를 진설하는 산행대장님.
이번 시산제의 제주로 임명(?)된 영수친구가 정숙한 마음으로 분향하고 자리에 앉았다.
치술령 산신령님께서 강림하시어 24회 여러분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드시기를 청하는 강신재배 의식..
유세차, 서기 2015년 을미년 3월 1일에,
성동24회 산악회 일동은 유서깊은 호국의 명산 치술령에 올라
천지신명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치술령 신령님이시여!
길지않은 시간이나마 우리 모두 그동안 사고 없이 산길을 걸어 왔음은
신령님의 은덕임을 잘알고 있으며,
어리석은 저희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깊은 정을 나누며
입산의 기쁨을 함께 하는 것도
지순한 저희 마음을 어여삐 지켜 주셨기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나이다.
올 한해도 저희 성동24 산악회 일동을 굽어 살펴 주시고
모든 성동 24회 친구들의 가정과 이웃에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게 도와 주소서.
이에 성동24 산악회 일동은 정갈한 음식과 맑은 술을 올리며
치술령 신령님 앞에 허리 굽혀 엎드렸사오니
우리의 정성이라 어여삐 여기시고 흔쾌히 받아 거두소서.
이 절과 함께 한 순배 크게 올리겠나이다.
상향.
서기 2015년 3월 1일
성동24 산악회 일동 배(拜)
제주의 낭랑한 목소리가 치술령 자락에 울려 퍼졌다.
이어 용우 친구가 아헌(亞獻)을..
산행대장님도..
성동 24회 여러분들의 마음을 받아주신 듯 치술령 산등성이에서 때마침 일진광풍이 몰아치더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눈꽃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우리들의 온 몸을 휘감았다.
이어 동기회장도..
경건한 의식이 끝나고 점심시간..
오늘따라 준비한 음식들이 많네..
불어오는 바람따라 눈가루들이 어지럽게 나부낀다.
때마침 이곳을 찿은 산꾼들과 막걸이와 떡을 나누어 먹었다.
알고보니 온산면 이진리 사람들이란다.
고향 까마귀라고, 반갑기 그지없네..
아래에 내려가 보니 바위에 '망부석'이라고 뚜렷이 음각되어 있다.
망부석 전망대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300미터 거리의 치술령 정상으로 향했다.
아직도 절경은 계속되고..
치술령 정상(765m) 에서..
정상 바로 아래의 경주 망부석 전경..
이나라 강산 어디인들 애잔한 사연이 깃들지 않는 곳이 있으랴마는 이번에 찿은 치술령 만큼 애절한 사연이
담겨져 있는 산도 드물다.
왜왕의 손아귀에서 왕제(王弟)를 구해내고 정작 본인은 처절하게 죽은 신라 신하 박제상과, 죽은 남편을 못내
그리다가 남편 따라 죽은 김씨부인.
임 그리는 한(恨)이 끝내 육신은 돌이 되고 넋은 새가 되어 동굴 속으로 숨어 들었다는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훗날 사람들은 박제상의 거룩한 죽음보다 김씨부인의 숭고한 정절을 더 높이 사 신모로 떠 받들게 됐고 지금까지
삼국유사의 현장으로 전해져 온다.
치술령으로 가는 길.
김씨부인의 넋이 새가 되어 숨듯, 치술령도 숨어 있기를 원하는 탓인가, 나는 지금까지 수차례 치술령을 올랐지만
단 한번도 치술령은 쉽사리 길을 열어 주지 않았었다.
맑은 날을 택하였지만 올라가는 도중에 비가 오기 일쑤였고 안개 자욱히 끼어 이리저리 헤메기 여러번이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충신 박제상은 눌지왕 2년(AD418) 삽량주(현재 양산)의 간(干)으로 있었는데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가 있는 두 아우를 데려와 달라는 왕의 명을 받고 먼저 고구려로 가 장수왕(長壽王)을 설득하여 큰 아우
복호(卜好)를 데려오고, 바로 왜로 건너가 둘째 아우 미사흔(未斯欣-삼국유사에는 미해美海)을 데려오려 했으나
쉽지 않자 마사흔만 몰래 탈출시키고 자신은 붙잡혀 불태워져 죽었다고 적혀있다.
박제상(朴堤上)이 인질로 잡혀간 미해왕자(美海王子)를 구출하기 위하여 왜국으로 떠난 뒤 부인 김씨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치술령(鵄述嶺)에 올라가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여
듣고 두 딸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
그 때 시신은 망부석으로 변하였고 혼은 새가 되어 날아올라 저 건너 국수봉에 있는 바위틈에 숨었다 한다.
이곳에서 날마다 동해바다 뱃길을 바라보며 오늘일까 내일일까, 오매불망 낭군을 기다리며 한없이
눈물 지었을 김씨 부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만천하에 찐한 애정표현을 심하게 공개하네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의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와도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두 닭살부부..
망부석 위에서 바라보니 저멀리 국수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보인다.
박제상이 왜국에 인질로 잡혀간 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신라로 탈출시키고 왜군에게 잡혀 순절한 뒤
그의 아내가 날마다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 땅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세상을 떠나자, 신라 사람들이 그녀가
죽은 자리에 신모사(神母祠)를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신모사가 있던 곳에 지금은 '신모사지
(神母祠址)' 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잠시나마 김씨부인의 넋을 되새겨 보는 이씨 부인..
이제는 하산의 길로..
따뜻한 날씨와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에 얹혀있던 눈들은 대부분 녹고 떨어졌다.
소나무 아래를 지나면서..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
쌓인 눈길로 올라갈 때도 힘들었지만 내려올 때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다시 법왕사로 돌아와 신발을 털고 아이젠을 벗으면서..
이제부터는 빠지지 않고 산행에 참석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용우 친구,
오늘 산행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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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마치고 나니 아직도 오후 두시 반..
아직 집으로 돌아가기가 좀 그래서 인근의 국수봉 은을암으로 향했다.
국수봉 은을암이라면 맨처음에 이번 시산제를 계획했던 곳이기도 하다.
은을암에 올라 바라보니 저 멀리 아까 올라갔던 치술령이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인다.
치술령 은을암(述述嶺 隱乙庵)은 신라충신 박제상(朴提上)의 두 딸에 얽힌 애절한 설화가 깃든 산상 암자이다.
은을암 설화의 바탕인 충신 박제상 이야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고 있으나
암자의 설화는 구전으로 이어졌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 미사흔이 혼자 돌아오고 박제상이 죽은 사실이 전해지자 제상의 부인과 두 딸은 바다가 보이는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었는데 부인의 몸은 굳어 망부석이 되고 혼은 새가 되어 남편이 죽은 왜국
으로 날아갔다.
그 때 큰딸 아기(阿奇)와 셋째 딸 아경(阿慶)도 함께 죽어 혼이 새로 변했으나 어린 새라 어미새를 따르지 못하고
치술령 남쪽에 있는 국수봉 바위틈으로 숨어들자 사람들은 그 바위를 새가 숨은바위라고 하여 숨을 은(隱), 새 을
(乙)자를 따서 은을암(隱乙巖)으로 불리게 되었다...
은을암 뒷쪽 계단 위에 놓여있는 범종루..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을 뵙고 나온 두 여학생님..
이곳이 바로 어린 새가 숨어 들어왔다는 애틋한 전설을 지닌 바로 그곳, 은을암의 동굴..
동굴에는 석간수가 솟아나 이 물을 감로(甘
숨어 들었다는 새의 흔적은 어차피 찿을 길이 없지만 숲속에서 들려 오는 이름모를 새소리에서 김씨부인의
한맺힌 울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1973년도 여름에 친구와 처음 이곳에 와서 은을암에 얽힌 여러 사연들을 들었고 그 뒤로도 몇 번 더 왔다.
최근에는 삼, 사년 전에 이곳을 찿았는데 올 때마다 절의 여러 모습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찿아 오는 까닭이겠다.
애닯은 김씨부인과 그 딸들을 생각하며 차를 끓이는 두 여사님.
숱한 전설들을 뒤로 하고 은을암 산문을 나서는 여러분들..
돌아오는 길에 문수산 입구에 들러 두부와 파전, 칼국수로 요기하면서 오늘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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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사 가는 길에 있는 박제상 유적지에는 노래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배주리라는 가수가 부른 '망부석 여인' 이라는 노래인데 노래는 모르지만 가사가 좋아 베껴 써보았다.
망부석 여인
김영달 작사/ 현기철 작곡
배주리 노래
치술령 망부석에 흰구름 지나가면
바람 속 들려오는 여인의 그리움이
동해바다 저멀리서 아련히 피어오네
굽이치는 저물결아 우리님 언제오나
산새야 너도가서 내님좀 데려오렴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쯤 오시려나
망부석 여인은 오늘도 기다린다네
치술령 망부석에 아침해 떠오르면
밤새워 애태우던 여인의 기다림이
동해바다 저멀리서 아련히 피어오네
굽이치는 저물결아 우리님 언제오나
산새야 훨훨날아 소식좀 전해주렴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쯤 오시려나
망부석 여인은 오늘도 기다린다네
첫댓글 시산제 멋있게 보냈네요.참석 못하여 아쉽지만,동기 여러분의 환희와 감동이 저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것 같습니다.올 해의 산행이 무사하게 진행되길, 저 역시 빌어 봅니다.사진을 보는것으로 만족 할렵니다.
봐도 봐도 멋지네.
모습들 보니 입이 다 귀에 걸렸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