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류철현기자]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한 길만 걸어왔다. 뒤도 옆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잘 하는 일, 남들에게 인정받는 일을 했다. 잘 하는 일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살아야 하기에 해야 했고 남들보다 잘 하는 일이라 찾는 곳이 많아 어렵지 않게 해왔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어 떠난 것도 아닌데 점점 더 멀어지고 희미해지는 꿈. 꿈은 진짜 꿈으로 끝나는구나 포기 할 만도 했다. 소녀티를 갓 벗은 20살 숙녀가 어느덧 세월을 느끼게 하는 중년의 여인이 돼 용기를 냈다.
죽어서라도 소원이었던 꿈을 위해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30면 만에 자신의 꿈을 이룬 가수 유연숙의 스토리다.
■ 독보적인 여성 전자 오르간 연주자
국내 록음악이 알려지며 학창시절 누구라도 한 번 쯤은 악기연주나 싱어로 그룹사운드를 했던 경험이 있을 80년대. 강원도 강촌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유연숙은 밴드부 활동을 하며 음악에 빠졌다.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 등 다양한 악기가 합쳐지며 이뤄내는 합주에 마음을 빼앗긴 유연숙은 자연스럽게 가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독특한 목소리에 음정 박자는 물론 느낌까지 살린 노래 실력을 인정받으며 주변에서 가수를 해보라는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집안에선 ‘풍각쟁이’는 필요 없다고 격하게 반대했지만 이미 꿈에 빠진 유연숙은 ‘더 큰 곳에서 음악을 하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밴드부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가수가 되더라도 연주만은 계속해야한다‘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가수를 준비하면서도 꾸준한 연주를 했다. 나이트클럽 등을 중심으로 해 몸 풀기 식의 연주 활동을 하던 그녀의 연주를 지켜 본 미 8군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연주자들이 같이 활동하자고 제의를 해왔다.
‘그래 가수 데뷔 하기 전까지 하자’는 순간의 선택이 가수의 꿈을 30년이나 미뤄야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자 오르간 연주자로 실력 있는 그룹에서 활동을 했던 유연숙은 솔로로 독립, 그녀만의 느낌이 있는 실력파 연주자로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 운명 같은 사랑. 꿈을 다시 꾸다 . 노래를 하려고 했지만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 유연숙은 연주와 노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연주는 생활이고 노래는 꿈이었다. 꿈을 위해 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 그러던 2001년 테니스동호회 활동을 하던 그녀는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났다. 동호회 멤버 중 한 눈에 반할만한 멋진 남성이 있었다. 생활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던 속마음을 털어놨고 그 남자는 포기하지 말고 언제든 꿈을 이울 수 있다며 아낌없는 격려를 해줬다.
연주자의 불규칙한 생활패턴 때문에 결혼도 포기했던 그녀는 그 남자의 격려와 사랑에 결혼을 결심, 영원한 자신의 편이 된 그 남자의 응원에 힘입어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 그 남자 작사 그 여자 노래 2001년부터 다시 가수의 꿈을 키운 유연숙은 10년 동안 많은 준비를 했다. 매일 무대에 서는 연주자로 음악을 깊이 있게 공부했고 대중들의 기호를 파악하는데 힘썼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작곡가 등 음악인들을 찾아다니며 동냥공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본격적인 가수 데뷔를 준비하자 남편인 그 남자가 처음 만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써놨다며 가사를 선물했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우연숙의 데뷔곡 <우연과 필연> (김헌규작사 유성민 작곡)이다.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많은 것을 버렸다. 노래를 위해 연주까지 포기했다. 매니저 없이 본인이 직접 홍보를 해야 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고정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지중지하던 전자 오르간도 처분하며 홍보에 매달렸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냥 연주자로 활동하면 어디서나 와달라는 부탁을 받던 그녀가 인사도 외면하는 방송계를 돌아다니며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찬밥신세’가 돼 버렸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30년 만에 꿈을 이뤘으니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1집 앨범을 발표하며 꿈을 이룬 유연숙은 지난 5월 신나는 리듬의 ‘오갈까’를 발표했다. 이노래 역시 남편인 그 남자 김헌규씨가 작사를 한 곡이다. ‘오갈까’로 홍보활동을 하며 방송출연, 각종 행사. 봉사 활동 등 다양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들려줬다.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창을 했냐?’ ‘특이한 목소리’ ‘색다른 가수’라는 칭찬을 받으며 용기백배하고 있다.
“전국 방송국을 다니며 발품을 파느라 힘은 들지만 최선을 다하면 대중들도 알아 줄 것”이라는 유연숙은 “오래된 꿈을 이룬 만큼 그 꿈이 나만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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