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지위(不遷之位)에 대하여
1. 정의(定義)
조선 중기이후에 접어들면서, 조상이 죽으면
품계와 무관하게, 4代 奉祀가 일반화 되었는데, 이는 한 집안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조상의
범위를, 가장 넓게 4대까지로 인정하여, 제사를 지내고, 5代가 되면 친진[親盡 친함이 다하였으므로 5대조 이상의 조상. 반대는 친미진(親未盡)으로 아직 친함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부모∼고조]이라
하여, 신주(神主)를 땅에 묻어 조매( 埋 혼백을 무덤앞에 묻는 일)하게 되며, 이후로는 묘제[墓祭, 세일사(歲一祀) 등]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국가에 큰 공훈(功勳)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분에
대하여, 4代가 지나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모시면서, 백세불천(百世不遷)의 기제(忌祭)를 지내도록 국가 또는 유림, 문중으로부터
허락된 신위(神位)가 있으니, 이를 불천지위(不遷之位) 또는 불천위(不遷位), 부조위(不位)라고 하며, 체천위(遞遷位 체천하게 되는 조상)의 반대 개념이라
하겠다.
2. 역사(歷史)
고대중국의 분봉제(分封制)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데, 제후국(諸侯國)시절에 최초로 토지를 받고, 제후에 봉해진 사람을 태조(太祖)로 삼아 종묘(宗廟)에 모시고 불천위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후계(後繼) 왕 중에서도 탁월한 공덕을 세운 사람은 불천위로 그 공덕을 기리게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 태종무열왕, 고려의
태조,혜종, 현종 등이 불천위로 종묘(宗廟)에 모셔졌다고 하였다.
따라서 묘우(廟宇)를 짓고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고, 받들어
모시는 풍습은, 삼국시대 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에서는
현재 왕의 5代가 되어, 정전(正殿)에서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永寧殿)으로, 신주를 옮겨야 할 차례가 되었을
때, 조정신료들의 공론에 의해 불천위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양반 사대부 가문에서는 고려 중엽부터 불천위를 모시는 제도가 실행되었다고 보는데, 조선 초기까지는 주로 임금이 예조에 명해 공신들을 국불천위(國不遷位)로 임명하였다.
그 뒤 중기이후에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서원과
향교가 학덕이 높은 사람을 예조에 상소하여, 타당성을 검증받아 불천위가 되는 향불천위(鄕不遷位)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후기로 오면서는
추앙할 만한 조상이 있는 문중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불천위로 모시는 사불천위(私不遷位)도 등장하게 되었다.
국불천위는 왕과 마찬가지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소수에 불과하고, 향불천위도 엄격하게 결정됐으나, 후기에는
향불천위와 사불천위가 급격히 늘어나고, 그 구분도 불명확하게 혼재하면서, 다분__히 의례적인 행사로 변질되고 남발되어, 권위와
질서가 문란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3. 종류(種類)
일반 사가(私家)의 불천위는, 학덕과 충절의 공적이 있고, 성인의 삶을 실천한 군자에 대하여, 대
개 사망 직후, 또는 체천(遞遷)시에 조정에서 시호(諡號)를 내리고, 후손들이 영구히, 제사를 모시도록 하였다.
해당 인물이 사망한 지 200여 년이 지난
후에, 불천위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불천위가 결정되면, 임금이 직접 제관을
보내, 장례를 치르게 하거나, 예조에서 제관을 보내 제사를 지낼 전답(田畓)과, 제구 및 제물 혹은 영정을 교지(敎旨)로 하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선조와 후손에게 벼슬을 주기도 하였으며, 이에
후손들은 불천위 선조를 위한 별묘(別廟)를 세우기도 하였다.
불천위는 크게 3가지의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국불천위(國不遷位)는 나라에서 특별히 정한 것으로, 3가지
불천위중 가장 권위가 높다고 하겠다.
1) 국불천위(國不遷位)
국불천위는 국가에 지대한 공훈을 세운 공신과,학문이
높아 문묘에 배향된 선현 등, 시호(諡號)를 받은 2품 이상의 관리가 대상이었다.
백성으로 부터 추앙받는 인물 중에서, 조정의 논의나, 임금의 명으로 예조의 심의를 거쳐, 국왕이 봉작(封爵)과 시호(諡號)를 내리고, 교지로서 정하였다. 대부분이 공신, 선현, 왕자, 부마 등이었다.
경국대전 봉사조항 세칙에는, 공신은 비록 4대가 지나도, 신주를
옮기지 않고, 따로 방 하나를 마련한다고 하였다.
즉 부조묘(不廟)를 세우고, 만세불천(萬世不遷)의 제사를 모시도록 하는 경우인데, 제사(祭祀) 때에는 나라에서 제관(祭官)과 제물(祭物)을 보내고, 그 후손에게는 은일(隱逸)로 벼슬을 제수하기도 하였다.
2) 향불천위(鄕不遷位)
향불천위는 유림불천위(儒林不遷位)라고도 한다.
유학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고, 충절(忠節)이 높은 분을 엄격한 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수(數) 이상의 유림이 흔쾌히 찬성하여 인정한 선현(先賢)이다.
즉, 시호(諡號)를 받은 관리로서, 지역적 인물이 그 대상인데, 후기에는 대상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었다.
3) 사불천위(私不遷位)
사불천위는 문중불천위(門中不遷位)라고도 한다.
인물의 판단 기준은, 대상(對象)에 따라서 다를수 있다.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 시호(諡號)도 받지 못하고, 학자로서도 크게 명성을
떨치지 못했지만, 문중 차원에서 자기 조상 가운데, 한 분[현조(顯祖), 입향조(入鄕祖) 등]을 불천위로 모시기도 하였다.
이때에는 문중에서 발의하여, 지역 유림의
동의와, 추인을 받아 불천위로 모시는 것이다.
주로 조선후기에 문중의 훌륭한 인물을, 불천위로
모시고 싶은 후손들의 염원과, 지역 유림사회에서, 을 향현사(鄕賢祠)에, 별도로 모시고 유림의 이름으로 제향을
올리는데, 이를 채례(采禮)라고 한다.
4. 제의례 공간(祭儀禮 空間)
불천위 제도는 불천위 제사에 의해, 실질적으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는데, 불천위제사는 “불천위 대제(不遷位 大祭)” 또는 “불천위 기사(不遷位 忌祀)”라고도 한다.
불천위 조상은 봉안(奉安) 공간에서도, 각별한 대우를 받는데, 우선 4대 조상을 모시는 가묘(家廟)와 달리, 독립된 별묘(別廟)에 안치된다.
만약 별묘를 세울 형편이 되지 않으면, 가묘에
함께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에도 불천위 조상은 “이서위상(以西爲上)”의 고례(古禮) 관념에 입각하여, 가장 우위로 인식되는, 서쪽에 감실(龕室)을 별도로 마련하여 봉안하게 된다.
또한 불천위 위패(神主)는 그 대상에 따라, 종묘(宗廟 왕이나 왕족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문묘(文廟 유학의 종통을 세우고 정신적 지주가 된 인물의 위패를 모신 향교와 서원의 사당), 가묘(家廟종가의 사당으로서 뛰어난 공적이나 학덕으로 그집안의 종통을 잇게 한 인물의 위패를
모신 곳)에 봉안된다.
불천위의 신주는 밤나무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며, 이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땅속의 씨앗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밤나무처럼,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신주(神主) 전신(前身)의 분면(粉面)에는 후일 봉사손이 바뀔 것에 대비하여, 수정할
수 있도록, 아교를 갠 분칠을 하여, 아무리 많은 글자라도
한 줄로 쓰게 되며, 후신(後身)의 함중(陷中)에는, 망자(亡子)의 정체성 즉 품계,본관 성씨, 이름, 자 등을 적는데, 이는
절대로 고칠 수가 없다.
※ 가묘는 부조묘(不廟)와 가묘(家廟)와 감실(龕室)로 나눌 수 있고, 대부분 별묘의 사당문은 3개이지만, 가묘의 문은
하나이며, 선비문화가 전수되고 있는 경상도지방에서는 대부분 단청(丹靑)을 하지 않았다.
(현재는 방재, 해충 등의 피해 방지를 위해 단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5. 종가(宗家)의 주요 조건(條件)
1) 보통 종가는 시호를 받는 등, 명망 있는
조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파종가(派宗家)는 불천위(不遷位)로 추대된 현조(顯祖)를 모셔야만 한다.
서거한 공신에게 내려지던 시호와, 조금
다른 개념으로 보는 것은, 시호가 있어도 불천위가 아닐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친미진(親未盡, 父母∼高祖)의 기제 또는 묘제(墓祭)시, 주인(祭主)이 모든 신위(神位)에게, 초헌을 하는 것이 원칙인 것처럼, 불천위 조상에 대하여도, 묘제는 물론이고, 기제(忌祭)를 지내기 때문에, 반드시 제주(祭主)인 종군(宗君)이 초헌을 하여야 한다.
다만 현대사회에서는 문중회의가 구성되어 있고, 문중회의에서
주관하는 경우가 많아 상호 협의하여 초헌을 정하기도 한다.
3) 불천위 제향시 제사주관자는 비록 관직은 없어도, 사모관대(紗帽冠帶)하여 3품관(三品官)의 옷을 입어도 무방하다 하였다.
4) 불천위는 당사자의 배우자(再娶 包含)도 같이 모신다.
※ 체천위(遞遷位)를 모시는 맏집은 “큰 집”이라 부르고, 그
집의 맏 어른은 “주손(胄孫)”이라 칭한다.
- 유불천위(儒不遷位) 종가의 맏 어른은 “종손(宗孫)”이라 칭하지만, 국불천위(國不遷位) 종가의 맏 어른은 “종손(宗孫)”이 아니고 “종군(宗君)” 이라고 칭한다.
- 종가를 칭할 때 “○○씨 종가“라고 부르는데,불천위
종가는 휘자(諱字)나 호(號)를 앞에 붙여○○종가라고 칭한다.
즉 종가를 이를 때
”○○의 종가(宗家)“이지 ”○○성씨의 종가“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6. 특징(特徵)
1) 5代祖 이상의 조상은, 세일사(歲一祀, 墓祭)만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나, 불천위에 오르면, 영구히 기제사는 물론, 묘사(墓祀)나 시제(時祭)를 지낸다.
그러나 가문(家門)에 따라서는 기제사(忌祭祀)만 지내는 경우도 있다.
2) 불천위는 그 자손들이 생존하는 한, 분묘와는
별도로 부조묘(不廟) 또는 별묘(別廟)라고 부르는, 사당에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3) 불천위제사는 불천위로 정해진 뒤, 3년째부터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4) 제사의 절차는 가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기제사의 절차에 준하여 지낸다.
5) 문중(門中)내 한 파(派)의, 파조(派祖)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불천위제사는
종가가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물론이고, 불천위의 자손이
되는 원근의 일가(一家)까지도 참여한다.
또한 학문적연관을 지닌 지방의 유림이나, 유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주인(祭主 宗孫)이 주제를 하되, 문중뿐만아니라, 유림에서도 제관이 선정되기도 한다.
7. 결어(結語)
이와 같이 불천지위와 그에 대한 제사는,
1) 국가나 유림, 문중에서 정하는 공훈이 있는, 훌륭한 사람에 대한 예우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의 지위에 따라, 서거(逝去)한 뒤에도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구조를 지닌다.
2) 또한, 불천위의 생존시 업적이나, 지위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조상숭배가 아니고, 기념이 되거나 추도한다는 성격을
지닌다.
3) 불천위를 모시고 있는 문중의 입장에서 보면, 조정이나
유림에서 봉사할 만한, 위대한 선조를 가졌다는 영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문중성원들의
단결과 동질감을 강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위세와 우월감을 조장시켜 주기도 한다.
그래서 불천위가 있는 문중에서는 명조(名祖)를 두었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게 된다.
4)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현재 495위의 불천위가
조사 확인되었으며, 조선조 500여년 동안에 국불천위의 명예를 가진 인물은, 문묘에 종사(從祀)되신 동국 18선현을 포함하여, 79위로 조사되고 있다.
또한 경북 지역의 경우 135위(안동지역에만 47위)가
있고, 경북 지역의 불천위 종가 종손모임인 “영종회(嶺宗會)”에는 109위의 종손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문화재단에서는 경기도내 불천위 종가를 방문 조사하여. 집대성한 144위의 보고서(실제 360여 위로 추정)를 발표한 바 있으며, 산하(傘下)에 “경기도불천위문중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천위 제현(諸賢)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청렴과
근검한 삶을 살았으며, 학생(學生)과 덕생(德生)을 쌓는 등, 후세 사람들에 사표(師表)가 된다고 하겠다.
<경기도불천위문중협의회 자문위원, 문경공파
종회 柱昺>
출처 : 제320호 2017년 2월 1일 廣州李氏會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