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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15 이른 봄 저녁 명상의 집에서
3월 월례강좌 <영혼의 성>에 대한 강유수(마리요한)신부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임에도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는 좋은 분들이 많이 오셔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어가는 기도의 여정에 대한 열정적인 강의를 열심히“ 경청하여 하느님의 福을 듬뿍받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오실거죠?^^
감기 조심하세요~ 이번 감기몸살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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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 성모송, 영광송으로 시작된 강의.
... 제목을 “영혼의 성”이라고 한 걸 후회하신다고... 차라리 십자가의 길, 기도라고 할 껄...
영혼의 성에 7궁방까지 직접 가 본 경험이 없어서 어려울 듯... 3궁방까지는 체험을 하셨으나 4궁방부터는 책 내용 요약해서 하시겠다고요...^*^
성녀 데레사의 ‘영혼의 성’은 1577년 11원 29일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에서 마무리되었으며, 당시 성녀는 이미 영적 결혼 후 그리스도교적 신비체험의 정상에 계시면서. 영성생활의 전체 여정을 내려다 보면서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나서는 영혼들에게 도움될 수 있도록, 돌아가시기 5년 전 쓰신 책이다.
‘영혼의 성’은 교육적인 책으로 한 영혼이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높은 경지들에 도달할 때까지의
완덕의 모든 여정을 가르치고자 하는 그런 책이다.
성녀는 이 책을 비유-우의(寓意-alegoria)로써 시작하심. - ‘성’(城’, Castillo)의 비유.
성녀는 ‘대단히 값진 궁전이고, 그 건물 전체는 금과 보석으로 되어 있고...이 궁전 안에는 위대하신 왕께서...
대단히 값진 옥좌에 앉아계시는데, 이 옥좌는 바로 여러분의 마음입니다’하고 대단히 값진 궁전에 영혼을 비교하셨다.
... 성벽 밖은 모든 것이 어두움과 더러운 것들, 두꺼비들, 독사들, 그리고 해로운 짐승들 뿐.
성(城)으로 들어가는 문은 기도이며, 이 기도는 각각의 궁방 안에서 더 뛰어난 정도로 열리게 된다.
그러나 기도는 ... 항상 사랑과 함께 나아간다.
그래서 더 사랑할수록 더 일치되는 것이고, 완덕의 길은 곧 ‘사랑의 진실한 길’인 것이다.
기도하는 영혼들은 ‘사랑의 종’들이어야 한다.
영혼은 나약한 상태에서 이 길을 출발한다.
첫째 궁방들에서는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에 있다.
둘째 궁방들에서는 사랑의 길을 따라갈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아직 온갖 위험스런 일들로부터 마음을 떼어내지 못한 상태이다.
셋째 궁방들에서 영혼은 굳건히 서고 관대해진다.
넷째 궁방들에서 하느님의 기쁨을 느끼면서 영혼이 사랑으로 점점 타오르게 된다.
다섯째 궁방들에서 영혼은 사랑에 빠져든다.
여섯째 궁방들에서는 사랑은 대단히 증진되고 완전히 순수해진다.
마지막 일곱째 궁방들 안에서는 영혼은 자신의 충만함에 도달하고 하느님과의 영적인 일치에 도달하게 된다.
성(城)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인간 전 존재를 진보하게 한다.
모든 것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 화해하게 되는 데, 이 성(城)의 내부야말로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아야 하는 그런 곳이고,
생명의 나무, 곧 하느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신 이를 다시 찾아내야 하는 그런 곳이다.
성녀 데레사는 인간의 영혼을 마치 ‘모든 것이 금강석으로 혹은 매우 투명한 수정으로 된 城’과도 같다고 상상하셨다.
그대가 바로 그 매혹적인 성(城)이다.
이 城에는 수많은 방(房)들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행복해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어떤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고, 매 순간 어는 정도의 행복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행복을 점점 더 많이 찾아내라는 것이다.
낙원! 그대가 그 낙원을 금방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걸어가야만 할 것이다. 그 ‘낙원’은 이 세상에 있다.
그대 안에 있다. 그것은 ‘점진적인’ 낙원이다. 정상에까지 나아가면 그대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 그분께 다가가는 그만큼 그대 자신이 변화될 것이고 변모될 것이다.
성(城)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城 주변에 머물기를 그친다는 뜻이다.
그 주변은 아주 더럽고 서글픈 무엇이다.
바깥은 비참함 . 공허함 . 흉함이고, 윤리적 불균형. 동물적인 난폭성이다.
첫째 궁방-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성(城) 안으로 들어가라.
첫째 궁방들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은 여기서 편안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영(靈)의 세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이고,
아직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한다.
여기서는 좋은 일도 덕스러운 일도 많은 수고를 요구한다.
완전한 변모는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충만함에 도달하기까지는 변모되어야만 할 것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죄의 결과들, 특히 악(惡)에로 기울어진, 은총과는 상관없는 그런 인간의 자유가 아직 남아 있다.
막 태어난 ‘새 인간’과 함께 ‘옛 인간’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첫째 궁방들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큰 문제는 은총 안에 머무르면서-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머무르는 것이다.
이들은 아직 대단히 나약하고, 좋은 일들을 종종 행하기는 하지만 쉽게 주저앉아버린다.
이 때 싸움이 치열하다.
악마도 여기서 놓치면 안 되니까 치열하게 달려든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약점있는 곳에 악마가 머물고 악마가 먹이를 내밀면 덥석 물면서 왜 힘들어 하는지를 모른다. 고통으로 찢긴다.
이 단계에서 제시하시는 첫 번째 대책은 기도이다.
또 다른 대책은 애덕(愛德)이다.
두 가지 차원- 첫째는 다른 사람들의 일들에 대해서 조심하는 것, 즉 그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도와줌으로써 그를 사랗하는 것이다.
기도의 방법들- ‘통회와 사랑의 눈물’. ‘바라봄- 그리스도께 시선을 둘 것’, ‘구송기도’, 영적 독서 등이다.
둘째 궁방-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을 찾아내라.
둘째 궁방들에 들어선 영혼들- 이미 기도를 실천하기 시작했고 ,
아직 그 첫째 궁방들을 떠날 결심을 하지는 못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톡징지우신다.
그들은 결심-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을 침되게 사랑할 결심 -을 못하고 많은 기회들을 버리지도 못한다.
첫째 궁방들에선 사랑은 잠들어 있엇교, 병들어 있었다. 아주 나약한 꼴이었다. 이제는 ‘우리 주님’께서 그가 당신께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바라시며, 그 영혼을 제 이름으로 부르신다.
기도 중의 침묵을 통해서, 갖가기 병고와 수고들을 통해서, 당신께서 가르쳐주시는 어떤 진리를 통해서,
영혼은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이 첫 은혜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영혼은 즉시 응답하지 못 한다. 그는 세상과 그리스도 사이에 끼여있다.
진정한 ‘마음의 갈라짐’이며, 삶의 모순이다.
“너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병들어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바로 그 마음에다 약을 투여해야 한다. 사랑을 바로 잡고 꿋꿋이 서게 해야 한다.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도달할 때 까지 무엇이 닥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수고를 해야 하든, 누가 수군거리든 말든, 내가 거기까지 도달하든 말든, 거기서 해야 할 일들 할 만한 마음준비가 있든 없든, 세상이 다 무너지든,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겠다는 아주 위대하고 결정적인 결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영혼은 셋째 궁방들에 들어가게 된다.
둘째 궁방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갈라짐, 망설임이다.
영혼은 이미 하느님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옛 욕구들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들로부터 정화(淨化)되지는 못한 상태에
있으며, 아직도 영혼은 피조물들에게 강하게 집착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 영(靈)이 주인이 아니며, 노예로 움직이고 있으며, 주님과 세상을 다 끌어안고 있다.
사람들은 갈 때까지 다 가 보고 놓는다. 통제되지 않은 어떤 애착들. 인간은 고집이 세다.
세상재미가 쓴 맛으로 바뀔 때까지 가 본다. 세상재미가 적은 사람은 빨리 3궁방으로 갈 수 있을 듯?
해결책은 다양하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개혁으로 감각들을 하느님께 복종시키면서 영(靈)의 자유라는 더 높은 차원으로 돌리는 것.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둘째는 아마 더 많은 포기(抛棄)를 하는 것.
이러한 ‘갈라짐’과 ‘망설임’이란 다른 어느 궁방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어느 누구든 예수님 그분을 이미 친구가 된 분으로 만날 수는 없다.
그분과의 우정은 수고와 인내를 통해서 기도 안에서 얻어져야 하는 것이다.
영혼은 그 우정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아는 그분과 함께 단둘이 자주 사귀면서 그 우정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정은 기도의 정수(精髓)이자 핵심이다. 이는 사랑과 신뢰에서 출발되는 것이다.
셋째 궁방- 영혼 안에서 꽃들이 피어난다.
들판은 영혼이다.
꽃들은 덕(德)들이고, 물은 은총, 꽃향기는 사랑의 그윽한 향기이다.
첫 번째의 심한 어려움은 극복되었고, 영혼은 德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커나가는지 기쁜 마음으로 본다.
이미 그는 주님만을 섬기기로, 자신의 삶을 그분을 향하도록 결심했으며, 이미 내적인 평화도 얻어냈다.
이것은 큰 기쁨의 동기(動機)이다. 성녀는 이들을 ‘행복한 영혼들’이라고 부르신다.
그들은 사랑을, 이미 대단한 싸움을 치루어낸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화(淨化)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곁가지들을 잘라내셔야 한다.
영혼은 아직 옛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고,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재고, 영(靈)에 비추어 판단하지 않는다.
- 이 시기에 영혼은 시원찮은 공로들로 뭉쳐진 무엇을 얻어냈다.
그러나... 사랑은 더 나아가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육(肉)으로부터가 아니라 영(靈)으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성부께서는 곁가지 자르기를 하시기 위해서 ‘영적인 메마름’이나 ‘밤’을 이용하신다.
‘감각의 밤’이 될 것이다.
영혼은 맛도 위로도 잃고 무미건조함을 느끼며, 하느님께서 버리신 듯한 체험을 하며, 어디로 나아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깜깜할 뿐이다.
‘밤’이라는 것은 인간을 제 자신과 제 기준들, 제 길들에 대한 포기에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하느님 안에서의 포기’에로 인간을 불러주시는 하느님의 초대인 것이다.
여기서 ‘관대하고 사심없는 사랑’에로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
제 자신을 잊고 그리스도 그 분을 향하는 그런 사랑의 길이 열린다.
‘새로운 인간’이 나타나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옛 인간’은 점점 죽어가야 한다.
셋째 궁방들의 문제들은 자만심, 허영심, 똑똑함의 문제로
성급하게 자신이 완전하다고 믿어버릴 수 있다. 영혼들은 안정되고 깔끔하며 맡은 일도 잘 한다.
그러나 아직도 자애심이 많으며, 자기 일이 어긋나면 쉽게 열받는다.
하느님 안에 살지만 아직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아직 에고가 크다.
전체의 조화를 못 보고 자기의 기질대로, 자기의 선(善)만 본다. 애덕으로 갔다가 내 것 다 챙기고 온다.
이제는 본전까지 바치라고 건들면 열받는다.
이 영혼이 ‘누에’의 모습을 벗어나 하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엄청난 변모를 겪어내야 한다. 이 영혼들은 쉽게 판단하기 일쑤이며, 종종 잔혹해진다.
그런만큼 여기서는 겸손의 길, 내적인 것을 찾는 길을 통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또 다른 위험은 이 자리에 몇 년씩이나 안주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안주함’이다.
이런 식으로 어중간한 상태, 영적으로 살아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맛을 잃어버린 소금으로 세상은 달라질 염려는 없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감각의 밤’으로, 영혼은 방향을 잃고 심리적으로 가라앉아버린다.
그 ‘밤’이란 혹독할 수 있다. 아주 길 수도 있다.
‘밤’이란 사실상 어떤 ‘변모’이고, ‘다시 태어남’ 이고, 지금까지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던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제 우리를 당신 뜻대로 가지려 하신다. ‘빈 손’을 원하신다.
이 ‘밤’은 우리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치유해 줄 것이다.
이 ‘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을 요구한다.
십자가에 대한 사랑은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다.
이 ‘밤’은 자신을 잊을 것을 요구한다.
오로지 창조주이시고 구세주이신 그분만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밤은 한 과정이다. 영속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 나의 약함, 필요함을 끝없이 부르짖는 가운데 나를 고쳐달라고 하느님을 바라보고
간절히 청할 때 타인을 편견없이 보게 된다.
하느님 사랑을 청하는 것이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수시로 청하면 더 잘 들어 주시고,
구원을 덤으로 주신다 (소화 데레사)
네째 궁방- 사랑의 호수 앞에서
‘밤’을 지난 후 영혼들은 자신들의 중심에 거처하시는 하느님을 향해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오, 복된 행운이여!
알 이 없이 나왔노라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 밤 노래 1절)
정화(淨化)는 옛 인간의 많은 것들을 쓸어 버렸다.
빛은 격류처럼 비쳐들어온다.
덕(德)의 꽃들은 더 불어난다. 영혼의 비밀이 조금씩 조금씩 밝혀진다.
영혼은 새로운 세계를 순수하고 평온한 느낌을 얻어내는 어떤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시편 33,9)
‘맛’이란 수고나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오는 것으로,
밝은 빛이고 순수한 위로이고 아주 새하얀 밀가루같은 것이다.
‘하느님의 기쁨’들은 영혼의 기도를 변화시킨다.
이 하느님의 기쁨들의 열매는 ‘고요의 기도’, ‘거둠의 기도’이다.
- ‘자신을 거두어들이는’ 순간과 ‘고요 안에 머무르는’ 순간이다.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것으로 인간의 생각과 의지를 온전히 거두어들일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거둠’의 비유로 목자의 비유-
목자의 휘파람소리는 흩어져있는 양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을 우리에로 몰아넣는다.
이 휘파람소리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이고 양들은 영혼의 능력들로 하느님의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서
영혼의 성(成) 안으로 모아들여진다. - 이는 ‘고요함’ 중에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신비와 함께 머무르는 그 ‘고요함’ 안에서,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어떤 향기가,
우정의 명백한 징표들로써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는 그 하느님을 향한
순수하고 깨끗한 감정들, 감사, 찬미, 사랑의 향기가 피어난다.
고요의 기도는 나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떠남이며,
기억과 이성은 잠잠케 하고 의지가 하느님께 빨려 들어감- 얼마나 좋은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상처가 치유된다.
그러다 다시 3궁방으로 되돌아가 상처 받기도 하고 다시 4궁방으로 되돌아 오기도 한다.
문득 하느님 앞에서 희열이 솟아남.
넷째 궁방들의 문제점은 이 궁방에서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들과 은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데,
이 예외적인 은총들을 마치 ‘길’인 양 생각하는 데서 생길 수 있다.
이는 용납될 수 없으며, 이런 은총들은 항구한 것이 아니다.
4궁방까지 받은 은총 많으며, 5궁방 가기가 어렵다. 주제넘은 짓 하지 말 것. 자기 힘으로 하려 하지 말 것.
작은 불꽃. 구원 표징이 심어져 있다. 이미 치유받아 날아 갈 듯 하나 아직 솜털에 불과.
아직도 유혹 있으나 간파할 지혜 부족함. 까불다 넘어짐.
겸손, 겸손 신신당부하심.
모든 영혼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언제나 믿음의 길, 희망의 길, 사랑의 길이다.
대신덕(對神德)의 좁은 길이다. -이 덕들이야말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해주는 덕들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가장 뛰어난 일치는 자신을 온전히 믿음에 내맡기는 것으로
하느님의 뜻을 온전하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그리스도교적인 삶 안에는 사랑이 탁월함을 지니게 된다. ......
(참조: 신부님께서 위원장님께 보내주신 영혼의 성; 사랑의 길
- 무염시태의 일데폰소 신부, O.C.D. 지음
십자가의 안셀모 신부, O.C.D.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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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많은 시간과 힘듬을 바치지 않으면 어려운 일... 시작하셨네요. 봄비 오는 날 아침!!! "영혼의 성" 네째 궁방까지 간접체험하게 해주심에 고맙슴다. 강의 들을 때는 세째, 네째 궁방을 왔다갔다 하는 줄 알았더니... 착각을 심하게 했네요. 첫째, 둘째방도 제대로 왔다갔다 하는 것인가... 부끄럽슴다. 깨달음 주심에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