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에 다녀와서
김 광진
그토록 마음을 먹고서도 한번 다녀온다는 다짐을 이제야 실천을 하고나니, 나에게는 심적으로는 십년 묵은 체중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청암사와 인연을 맺은 것도 대전에 이사를 오고서 제주에서 6촌 형님의 증손이 전화로서 작은 할머니(육촌 형수님)가 대전 서구 평촌리 암자에 살고 계시니 한번 찾아봐 주시라는 부탁을 받고서 어느 날 찾아가서 육촌 형수님께 인사를 드리니, 형수님이 혼자서 암자를 지키시면서 생활을 하시다가 그래도 혈육이라고 찾아간 것이 너무나 반가워하신다.
그 이후부터는 형수님이 살고계신 주변을 지나갈 때에는 고독하게 자식도 6‘25사변으로 인하여 행방이 불명이라 찾지를 못하고 혼자 살고계신 형수님이 너무 안타가운 마음에서 자주 들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외롭게 살고계신 형수님에게도 유일하게 절에서 늦게나마 낳은 자녀가 있었다. 나는 형수님을 찾아 뵈운 것이 불교에 더욱 심취하게 된 지도 모른다.
사실은 내가 불교에 심취하게 된 것은 카톨릭에서 [바오로]라는 본명을 세레까지 빋고 집안 대대로 성당에 나가는 지인 형님이 불교대학 1년 코스를 마치면서 내게 권유해서 대전동구 자양동에 있는 광제사에서 허경원 불교대학장 tm님의 가르침으로 1년간의 불교대학 수련을 마치고서 나에게는 절에 나가지 아니해도 매일아침에 염불을 독송해서 불심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지금/가지 매일아침에 50분에서 1시간동안에 예불 발원문을 시작으로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금강밀타, 반복하고 있다.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염불을 하고나면 한 겨울에도 몸에서 땀이 비가 오듯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이제는 아침 염불 독송을 하지 아니하면 끼니를 한 끼를 거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평촌리 형수님을 자주 찾아뵙다가 형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어느 날에 마누라와 같이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를 찾아가서 상덕 스님께 인사를 드린 것이 지금까지 인연을 두고서 찾아다니고 있다. 상덕 스님은 10여 년 전에 대전의 평촌리에서 형수님이 세상을 하직 하시니, 우선 나에게 연락을 주셔서 장사를 지내는데 아들하고 일가의 육촌 시동생으로서 한몫을 한 바가 있다.
다녀온 청암사에 가려면 1일로서는 너무나 장거리이고, 힘든 여정이다. 그런데 마누라가 운전면허 취소를 당하고서 다시 면허를 어렵사리 취득을 하고서 마음먹은 대로 한번 장거리 여행 삼아 떠나기로 해서 다녀온 것이다. 마누라가 평소에 운전을 잘하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기에 이번에는 진정으로 마누라 실력을 실험하는 셈이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과 밥을 먹는 시간을 빼고는 운전대를 혼자 2일 동안 잡고서도 정신이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운전을 잘한다. 오죽하면 내가 마누라보고 고맙다는 말로서 똑순이라고 하다가 독순이라고 했을까? 보통 집에서는 내가 부를 때에는 우리 이뿐이 마누라, 똑순이 마누라, 하면서 부르다가 2일간의 긴 여정을 돌고 돌아서 여행을 마치고나서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똑떨어지게 운전을 잘한다고 하다가 지독하게 잘한다고 “독순이”라고 칭찬으로 불러 주기도 했다. 그나마 옆에서 운전하는 마누라가 가엽기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마운 마음뿐이다. 마누라가 운전대를 잡는 이유는 내가 운전을 하게 되면 너무나 출동 운전을 해서 난폭 운전이 되고 말아서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일 외에는 마누라가 동행하면 당연하게 이제는 내가 운전대를 놓고서 마누라가 운전대를 잡게 된 것이다.
지난 5일 월요일에 아침 10시에 이곳 청계면에서 출발하여 광주 무등산에도 들어가서 차로 한 바퀴 돌고나오고, 죽세공의 고장인 담양에 들려서 대나무 박물관에도 관람하고 가정용품도 구입하고 점심을 먹고서 한가롭게 전북 남원으로 가서 춘양 골에도 들려보고, 순창에도 들려서 순창 고추장이며 짱아치도 구입하고서 경남 함양을 거쳐서 산골자기를 굽이굽이 돌아서 거창에서 해장국을 먹고서 사우나 찜질방을 찾아서 하루 밤을 묵고서 다음날 아침에 아침 먹고서 9시에 출발하여 천천히 금수강산을 둘러보면서 청암사에 10시30분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전남 무안군 청계면 상마리도 주변이 산으로 둘러 싸여서 뒷산에 가면 봄이 되면 고사리며 산나물을 캐기에 무척 분주할 것 같다. 그런데 전남도 나주평야와 전북은 김제평야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산세가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촌락을 이루고, 마을마다 고산지대가 너무나 많아서 산을 돌고 돌아서 국도가 되어서 운전을 하는데 많은 곡예를 해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청암사에는 거창에서 유숙하면서 미리 연락을 해 둔 것이 오랜만에 방문을 한다 해서 주지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암사에 가면 승가대학 학연 스님들이 우리 공양이며 차를 대접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수발을 해서 좀 미안한 감이 들기도 한다. 주지스님을 방문하면 정말 칙사 대접을 해 주셔서 속세에서 못 느끼던 어떠한 우월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청암지” 편집장 법신 스님과도 연락을 해서 외국인이신 “대봉”스님의 영문 기고문을 원고를 파일로 받아서 영문 연설문 책자 발간에 “人情의 실현”이란 설법을 책자 끝자락에 실려서 발간한 영문 연설문 책자를 원로 지형스님과 주지 상덕 스님께 드리니 너무나 좋아 하신다. 내가 서울소방본부 근무 당시에 서울시 공직자 문학모임인 [서울 글 사랑]초대 회장을 역임하여 퇴직한 후에도 책자를 발간하면서 나의 시를 편집한 시집도 한권씩 학연스님들과 여러 스님들께 나누어 드리니 너무나 좋아하신다. 시집 편집을 시와 그림으로 시화전을 하는 것으로 편집을 하니 더욱 좋아 보인다고 하시면서 아이디어를 제공 받은 기분으로 편집에 대한 칭찬을 하신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원로 지형 스님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책자도 주지스님이 자랑을 하시면서 먼저 지형스님께 드리도록 주선을 하시기에 영문책자 발간 취지며 설명을 드렸더니 잘하고 있다고 원로 지형스님이 좋아하신다.
인사를 마치고 작별 인사가 끝이 나기가 무섭게 12시 20분에 출발하여 전북 무주구천동을 거쳐서 전북 진안을 거치면서 장터 휴게소에 들리니, 생 칡즙을 판매하는데 현금이 없다는 말에는 그냥 가지고가서 돈을 송금해 달라는 말에는 상품을 구입하지 말려고 하다가 내가 기침과 천식에 좋다는 도라지를 찾으니 남자 주인이 방에서 나오셔서 살구씨앗 기름을 권유해서 외상으로 구입한 상품대가 모두 23만원어치를 팔아준 셈이다. 장사를 하는 수법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 본다. 영세 상인이라고 하시면서 카드기도 배치 안 하고 판매고를 알지 못 하게 외상으로 판매를 하고서 송금을 받는 형식을 취하니 세금도 안내고 장사를 하는 셈이다. 그래도 지나가는 손님에게 안면부지이면서도 믿고 외상으로 물건을 준다는 마음이 가상스럽기만 하다. 이래서 대한민국이 아직도 사람들이 살만한 아름다운 나라임을 자부하고 싶다.
어제는 월남전에서 같이 근무하다가 마라리아에 걸려서 고국후송 길에 오른 것을 전우가 근무하던 중대에 가서 유품을 정리하여 남은 사진을 가지고 앨범을 작성하여 고국으로 보내준 것이 더욱 인영이 되어서 나에게 애경사가 있으면 왕복 차비 겸 축 부의금을 제주에 있는 전우 2명이 동일한 금액으로 송금을 해 주는 전우들인데, 지난날에 아들놈이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결혼을 한다기에 제주도 결혼 풍속도 소개 할 겸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찾아가서 결혼을 축하 해 준 일이 있는데 밀감 한 상자를 보내왔다. 그것도 목포 전에 살던 석현동으로 보내와서 일기 예보가 날씨가 추워지고 폭설이 내린다고 해서 무안으로 재 배송을 하다가 모처럼 보내준 밀감이 얼어서 상할까봐서 서현동 아파트 관리실에 맡기라고 해서 찾아오기도 했다.
언제나 무소유를 주장하시면서 산중에 한겨울을 나시는 법정 스님께서 길상사에서 발간하는 마음,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라는 정기 간행물에서 본 사연인데 강원도 산사나 빈집을 찾아서 겨울동안 혼자 은거에 들어가시는 법정 스님이 나이가 드시더니,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한겨울을 나신다니, 나이는 못 속인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나도 비록 남들과 같이 모아둔 돈도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강의를 나가는 대학교 근처에 농촌 한옥을 구입하여 새 단장을 하고서 살아가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좋은 생각이라 자위를 해 보기도 한다. 남들은 돈이 되는 경기도 지방으로 가서 투자를 하지만 이곳은 누가 쳐다보지도 아니하는 남도에서 우리 조상이 경상도에서 신라 마지막 왕손이 이곳에서 본관을 정한 조상이 지나온 과거를 둘러보면서 한가로이 농촌생활을 한다는 것도 의미가 부여되는 바라 하겠다.
몇 년 간이나 간다고 벼르던 청암사에 다녀온 것이 마음이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금년 출발이 좋은 의미를 가지고서 새해를 맞이하여 기쁜 마음으로 출발을 하련다. -끝-
2009.1.10 청계면 상마리 서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