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를 만난 건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깬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마누라 등쌀에 떠밀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내가 타고 왔을 때 그대로 1층에서 대기 중이었다. 열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또다시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핸드폰에 빠져서도 능숙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꺾고 왼쪽으로 꺾었다. 현관문 앞에 다다라 도어락 덮개를 열고 박자에 맞춰 비밀번호를 눌렀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두 번의 경고음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쳐들었다.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606호?’ 뚜껑이 덮인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수상한 마음을 안고 부리나케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보니 엘리베이터는 그새 7층에 도착해 있었다. 비상계단을 통해 7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미심쩍은 생각은 걷히지 않았다. ‘이상하군. 잘못 눌렀다면 6층에 멈춰 있어야 했을 텐데. 어떤 머저리 같은 놈이 내려가고 싶은데 오름 버튼을 쳐 눌렀군.’ 그렇게 악담을 퍼부은 끝에 드디어 나는 707호라 새겨진 현관문 앞에 다다랐다. 아까와 같이 도어락 덮개를 열고 또박또박 번호판을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고음이 예리하게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육두문자를 가까스로 깨물며 신경질적으로 초인종을 눌러댔다. 인터폰 속에서 마누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나는 문손잡이가 뽑혀 나갈 듯 움켜쥔 채 연신 휘돌려대며 소리쳤다.
“누구긴 누구야!”
그녀도 당황했는지 덩달아 받아쳤다.
“누구신데요!”
“이 여편네가! 빨리 문 열지 못해!”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포복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밖에 누가 왔는데 다짜고짜 문을 열어 달래요.”
“뭐?”
그러자 이번엔 곁에 선 그가 다급히 이어받았다.
“여보세요, 당신 누구야?”
“그러는 당신은 누군야! 누군데 남의 집에 기어들어가 있는 거야!”
“남의 집이라니! 당장 꺼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줄 알아!”
“누가 할 소릴! 당장 나오지 않으면 너야말로 뒤질 줄 알아!”
“이런 미친 새끼가, 당장 꺼지지 못해!”
그 난리통 속에서도 ‘경찰이죠!’하는 그녀의 절절한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안에 있는 아이들은 집구석이 넓어져라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2.
아파트 화단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가뜩이나 명치까지 늘어져 있던 러닝셔츠의 목이 그와의 실랑이로 뜯어져 바람이 불 때마다 팔랑거린다. 오른쪽 젖꼭지가 까꿍까꿍 숨바꼭질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7층인 줄 알고 6층에서 내린 게 실수였다. 그때 분명 누군가 내가 내린 틈을 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7층으로 향한 게 틀림없다. 정말 투명 인간이었을까. 수중엔 담배 한 갑과 텅 빈 음식물 쓰레기통뿐이었다. 갑자기 손이 저릿저릿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자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얼른 꺼내어 보니 긴급 안내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xx경찰청] 경찰은 xx구에서 목격된
최지민씨(남, 59세)를 찾습니다-
162cm, 57kg ☎182
문자에 적힌 링크를 누르고 ‘연결’을 선택하자 화면은 이내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라는 블로그로 껑충 넘어갔다.
실종경보(최지민)
xx경찰서 실종수사팀 010-0000-0000
그 아래로 캡처된 사진들이 이어졌다. 대부분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대에 찍힌 사진들이었다. 한 가지 공통되는 건 사진 속 등장인물의 옷차림과 소지품이었다. 가뜩이나 저질스런 영상을 편집, 확대한 것이어서 해탈한 부처라도 자신의 눈이 동태눈깔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난처했지만 옷차림만큼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민소매에 체크무늬 반바지.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 이자가 혹시 그자가 아닐까. 아까 저 6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7층으로 올라간 바로 그 투명 인간. 나보다 먼저 나의 집으로 침입한 무뢰한. 나로 둔갑해 내 마누라를 감쪽같이 구워삶은 파렴치한. 아무리 그래도 가장 괘씸한 건 마누라가 아닐 수 없다. 이십 년을 함께 해 온 남편도 몰라볼 정도라면 급성 치매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때 아득히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아파트 단지 안으로 경찰차가 불쑥 들이닥쳤다. 뒤따라 들어선 구급차도 경찰차 곁에서 급제동을 했다. 사이렌 소리가 멎자 차에서 내린 두 명의 경찰관과 또 두 명의 응급구조사. 그들은 저만치서 머리를 맞대고 이따금 손에 든 무언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서로 얼마나 모자라면 저렇게 바짝 머리를 맞대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이 나를 향해 일렬횡대로 걸어온다.
어느새 다가선 그들 중 하나가 나를 흔들며 소리쳤다.
“최지민씨! 최지민씨! 눈 좀 떠보세요!”
3.
깨어나 보니 꿈속이었다. 여기서마저 눈을 감으면 다시는 죽을 수 없을 것 같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