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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문안하라2(10월 4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성경 : 로마서 16:1-16(신약 261)
희망이란...
크고 엄청난 것들만이 아니다.
그것은 작고,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은 숨겨진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란...
그것을 아끼고 키워 올리는 사람에게는
넝쿨처럼 자라서 벽을 뒤덮는 담쟁이처럼
삶을 견고하게 하고 더 높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깊고 험한 절망의 계곡에서도
작은 씨앗 하나만 한 희망만 있으면
담쟁이 넝쿨처럼 자라 절망의 계곡을 뒤덮는다.
희망은 힘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작고 깊이 숨겨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 ‘어제와 다른 오늘부터’ 중 -
지난번에는 서로 문안하라는 제목으로 뵈뵈 집사님과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라고 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문안하라고 말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살펴보면
1.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6절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마리아가 정확하게 누구를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헬라어는 ‘마리안’으로 이름의 뜻은 ‘높여진 자’ 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히브리어형인 ‘마리암’으로 나옵니다. 이 이름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마리아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7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1) 예수의 어머니(마 1:16;막 6:3;눅 1:41)
2) 막달라 마리아(마 27:56;막 15:40;눅 8:2)
3) 야고보의 어머니(마 27:56;막 15:40)
4) 글로바의 아내(요 19:25)
5) 마르다의 동생(눅 10:39;요 11:1)
6) 마가 요한의 어머니행 12:12)
7) 본절에 나타난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나타난 마리아들은 한 결 같이 신앙이 훌륭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본절에 소개된 마리아에 대해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이란 표현에 대해서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간단한 소개로도 우리는
(1) 그녀가 로마 교회 초창기의 한 성도라는 것과
(2) 로마 교회가 그녀의 수고와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과
(3) 뵈뵈나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활동적으로 바울의 사역에 참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처럼 바울의 배후에서 그의 선교 사역을 헌신적으로 지원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로마 교회에게 어떤 수고를 많이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로마 교회 성도들은 마리아의 수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헌신과 수고위에 세워집니다. 오늘도 참빛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시고 기도하시는 권사님들과 마리아와 같이 헌신하는 분들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도 오늘까지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마리아와 같은 성도님들의 헌신의 결과인 줄 믿습니다.
2.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두 번째로 언급된 분들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입니다. 7절을 보면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 대해서 바울은
첫째, 내 친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친척이란 말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친척’ 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이스συγγενεῖς’ 는 문자 그대로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9:3에서처럼 ‘골육의 친척’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바울인 유대인들을 지칭할 때 친척이란 표현을 종종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안드로고니와 유니아는 같은 유대인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친척이란 말에 두 번째 해석은 말 그대로 바울이 말한 것을 그대로 인정해서 바울의 친척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혼자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과 친척들 중에 예수님을 믿고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 나와 함께 갇혔던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συναιχμαλώτους’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 된 자’ 란 뜻입니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언제 감옥에 갇혔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들이 바울과 함께 갇혔던 곳을 에베소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언제 바울을 만났는지 어디서 함께 사역을 했는지 모르지만 바울의 사역에서 동참했던 분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에게’를 가리키는 헬라어 원문은 ‘엔 토이스 아포스톨로이스ἐν τοῖς ἀποστόλοις’로 복수 여격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일차적인 뜻은 그들이 사도들에게 잘 알려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주님이 직접 세운 사도를 제외한 다른 사도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를 지칭하는 ‘아포스톨로스’ 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셔서 세우신 열두 사도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12제자 이외의 제자들도 포괄하여 의미합니다.
칼빈도 여기서는 제자들의 개념을 확대 적용해서 사도들처럼 여러 곳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존중히 여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세모이ἐπίσημοι’는 ‘에피 세마ἐπί σημα’(도장을 찍은)에서 파생된 단어로 신약성경에서 본절과 마 27:16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본절에서는 좋은 의미로 ‘유명한’, 혹은 ‘뛰어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나쁜 의미로 ‘소문난’, ‘이름난’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 두 사람(안드로니고와 유니고)이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의 사역을 돕는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특별히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왜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바울 보다 먼저 주님을 만난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이 어떤 경로로 로마에 왔는지 모르지만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서 로마에 까지 가서 아마도 지도자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째, 이들을 부부라고 보기도 하고 아니라고 보기도 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안드로니고” 는 헬라식 이름으로서 남성이고 “유니아”는 로마식 이름으로서 여자의 이름이라고 보고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부부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두 남자일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라틴어에서 파생된 로마식 이름이지만 그들의 이름을 풀이하자면 안드로니고는 ‘승리자’ 라는 뜻이며 이며 유니아는 “젊은이”란 뜻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함께 주님 앞에 신실한 사역자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 암블리아
세 번째 바울은 암블리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에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바울이 암브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 소개된 암블리아에 어떤 사본에서는 단축형 ‘암플리아스’로 기록되기도 한 ‘암블리아’는 라틴식 이름 ‘암플리아투스’의 축소형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큰’ 또는 ‘많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은 당시 로마에서는 흔했으며 특히 황제의 가문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 묘지나 카타콤의 비문에도 이런 이름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암블리아에 대해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매우 다정한 수식어를 사용하여 특별히 개인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바울과 그의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이 깃든 교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관계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같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다투고 그런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라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 서로 주 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성도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를 통해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4. 우르바노
네 번째 인물은 우르바노입니다. 9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우르바노’(우르바노스Οὐρβανός)의 뜻은 ‘세련된’, ‘우아한’ 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은 일반적으로 로마 노예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그를 가리켜 ‘우리의 동역자’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전도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많은 노예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서는 바울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분들도 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는 도망친 노예였던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바울을 만나서 바울의 사역을 돕게 되었는데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바울의 사역을 돕던 많은 사람들 중에 이렇게 노예 출신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의 나라에서는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이며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5. 스다구
다섯 번째 인물은 스다구입니다. 9절을 다시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신약성경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나의 사랑하는’ 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도 역시 바울 사도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던 자로서 암블리아와 같이 바울의 사랑을 받은 로마의 성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이름이 귀족의 비문에 나타난 것을 볼 때 황제의 가족에 속한 자라고 여겨집니다. 앞에 우르바노는 노예 출신으로 알려진 반면 스다구는 로마의 귀족 집안으로 보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노예 출신 사역자가 있었고 귀족 출신의 사역자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빈부귀천과 출신 성분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같은 믿음 안에서 모두가 형제요 모두가 자매였습니다. 오늘 교회가 이런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우리 참빛 교회가 차별이 없는 교회로 모두가 동등한 주님의 자녀로 하나 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를 세워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열고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6. 아벨레
여섯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아벨레입니다. 10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아벨레라는 이름은 ‘특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또한 황제 가문이나 로마인들 사이에도 종종 발견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아벨레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 자’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로는 ‘톤 도키몬 엔 크리스토τὸν δόκιμον ἐν Χριστῷ’ 로 ‘도키몬’은 ‘시험받은, 인정된’ 이란 의미로 아벨레가 어떤 극심한 시련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단단히 받았음을 시사하는 단어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잘 지키므로 그리스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아벨레는 자기가 당한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 성도가 복된 성도입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감으로 인해서 주님께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고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10절을 다시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도불로는 헤롯 왕의 손자였으며, 아그립바와 형제였습니다. 당시 그는 로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으며 또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친구요 추종자였으며,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른 황제의 집안에 귀속되어 그들의 신분이 유지되었고 그의 집안의 노예들과 자유인은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들 가족 중의 일부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의 권속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리스도불로 아래 있었던 노예들과 일꾼들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리스도불로 집안에서 노예와 일꾼으로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문안하라고 말한 일곱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귀족도 있고, 노예도 있고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어떤 시련이 온다고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을 섬기며 주님을 의지하며 서로 존중하는 참빛 교회가 되고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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