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렬 씨와 보낸 하루. 2013. 5. 10.(금) 사역일지
장애인전용택시인 ‘두리발’ 처음 타던 날, 정렬 씨를 만났다. 시각장애인 경향 씨가 정렬 씨 집근처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집근처에서 전화를 하고 정렬 씨를 기다렸다.
누군가 했다.
그의 이름을 오래전 자료에서 보았다. 최근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뒤적이고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2004년 봄나들이 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곳에 자원봉사자와 장애인 명단이 줄줄이 나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원봉사자들이 차를 몰고 가서 장애인들을 집결지까지 데려오곤 했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와 시간, 명단과 전화번호가 소상히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무작정 전화를 하였다. 대부분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멀리 이사를 가고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사람과는 연결이 되어 통화를 하였다. 정렬 씨도 그렇게 통화를 하였다.
통화를 할 때만 해도 그가 누군지 잘 몰랐다. 그런데 비탈을 뒤뚱뒤뚱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았다.
이정렬. 그는 지난날 수화교실에 참 열성으로 나왔다. 그는 편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나도 편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어 그 상태로 수화 배우기가 얼마나 번거롭고 어려운지를 안다. 그런데도 그는 수화교실에 꼬박꼬박 나와서 수화를 배웠다. 그 사실이 떠올라 반가웠다. 그도 나를 보고는 참 반가워했다.
집에 들어서면서 그가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가 옥상에서 내려오셨다. 손에 흙이 묻어있다. 고추를 심으려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하신다.
방안은 조금 어지러웠다. 금방 라면을 끓여 먹었는지 냄비를 얹은 밥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수첩과 성경이 몇 권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마리아상이 놓여 있었다. 펼쳐져 있는 성경을 보니 형광펜 표시와 붉은 줄이 가득했다. 수첩에는 성경 구절이 빼곡히 적혀 있다. 성경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나오면 옮겨 적는 모양이다.
어머니께서 딸기를 씻어 내놓았다. 그것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렬 씨는 집에서 하루 종일 성경 읽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 보내는 경우가 많단다. 폐지 수집을 가끔 하지만, 수입은 시원찮은 모양이다. 교회와 성당 사람들이 많이 도와준단다. 병이나 박스 따위를 모아두었다가 그에게 연락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가끔 영도대교까지 걸어가서 바다를 보고 온단다. 집에서 영도대교까지 꽤 먼 거리인데, 힘들지 않느냐고 하니 운동 삼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친구를 따라 성당에 나가고 계신다. 그 때문에 정렬 씨는 교회와 성당을 왔다 갔다 한다. 어떨 때에는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갔다가 어떤 때에는 혼자서 교회를 나가기도 한다. 집 앞에 교회가 있어 오래전부터 출석을 하고 있다.
나들이를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옛날에는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 데리러 올 수 있느냐고 하신다. 그래서 그때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때에는 봉사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직접 차를 타고 집결지인 사직야구장으로 올 수밖에 없다, 이해해달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정렬 씨가 몇 년 동안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안타까웠다. 한편으론 한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렬 씨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사직구장까지 다녀오겠다고 했다. 믿고 맡겨달라고 했다. 그러라고 하신다. 정렬 씨에게 복지카드와 교통카드를 챙기라고 하고는 어머니께 몇 천원만 달라고 하였다.
그것을 챙겨들고 정렬 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 먼저 버스를 타고 영도대교까지 가서는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이동하여 우대권을 뽑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니 곧잘 한다. (자세하게 말을 할 수 없지만, 정렬 씨의 주소지는 부산이 아니다. 주소지가 부산이라면 은행에 가서 무임 지하철 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사직야구장까지 간다. 중간에 환승하는 곳이 있어 환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종합운동장역에 내려서 사직야구장까지 걸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사직야구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약도를 보고 길을 가려고 하는데 정렬 씨가 그쪽으로 가는 것보다는 이쪽으로 가는 것이 빠르다고 일러준다. 그래서 길 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정렬 씨의 말이 맞다. 예전에 말씀캠프 갈 때에 야구장 앞에서 모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했다.
정렬 씨와 함께 사직야구장 매표소에 도착을 했다. 마침 야구를 하고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자유석은 장애인에게 무료라고 적혀 있다. 복지카드를 제시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싶어 정렬 씨에게 관람을 권했다. 정렬 씨도 좋다고 한다. 아는 장애인이 몇몇 눈에 띈다. 그들도 이 사실을 알고 공짜로 야구를 보러 온 것이다.
자유석을 찾아 야구장을 돌고 돌았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어묵을 먹으며 야구를 관람했다. 자유석이라 그런지 선수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날씨도 조금 쌀쌀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정렬 씨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마음에 쓰였다. 그래서 2회 말이 시작될 무렵에 야구장을 나왔다.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정열 씨와 지하철역으로 향해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확실히 기억에 나지 않지만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뺑소니 사고였다. 그때 빨리 조치를 했다면 두 팔 모두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아쉬워한다. 20대 중반에는 연애도 하고 상견례까지 가졌던 적이 있다고 한다.(정렬 씨는 2급 장애인이고 그는 4급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의 어머니가 정렬 씨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 직업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니 결혼은 곤란하다고 했단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마음 아팠을 정렬 씨가 먼저 마음 쓰였다. 짠했다.
부산장애인전도협회 사무실이 있는 양정역에 내려 정렬 씨가 가지고 있는 돈에 5천원을 보태어 교통카드를 충전시켜 주었다. 그리고 집에 혼자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갈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오가던 길이란다. 그래서 도착하면 꼭 전화하라고 했다.
정열 씨를 보내고 계단을 오르다가 김밥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할머니에게 역무원이 여기에서 이러면 안 된다, 김밥을 팔려면 계단 위로 올라가서 팔아야 한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야구장에 갔다가 팔지 못하고 왔다, 팔게 해달라고 하신다. 계단을 오르다 다시 내려와 김밥 한 줄을 샀다.
정렬 씨에게는 한참 후에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다고 한다.
---
사진/정렬 씨가 읽던 성경과 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