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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02
1. 더 클럽 앞 ( 저녁 ) -N8
터벅터벅 걸어오는 종구. 지나가던 커플이 종구 행색에 찌푸리며 비켜간다.
클럽 앞에 서는 종구,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2. 더 클럽 / 내실 -N8
테이블에 깔리는 술과 안주 접시. 종업원이 세팅하는 동안, 옆에 서서 지켜보는 미주.
상석을 비워둔 채 앉아있는 독사와 악어, 배중사. 유독 악어가 미주의 매혹적인 자태를 느끼하게 쳐다본다.
미주 : (세팅이 끝나자 조용히 목례) 그럼...
악어 : 어허, 우리 서마담 성격두 급하구먼. 한잔씩 쫘악 돌려야 분위기가 살제. (독사에게) 안그류, 성님?
독사 : (표정없고) ...
미주 : 이따 애들 들여 보내겠습니다.
악어 : 솜털 보송거리는 것들, 난 별루여.
배중사 : 아, 그러믄요. 술은 마담이 따라줘야 맛이 나죠.
악어 : (미주의 손목 잡으려) 일루 줌 앉아 보라니께.
미주 : (가볍게 뿌리치며) 회장님... 곧 오실 겁니다.
악어 : (꿈틀) 마담 눈깔엔 회장님만 사내고, 우덜은 핫바지여? 남바포부텀 식쓰까정 죄다 모였는디?
독사 : (언짢지만) ...내보내라.
악어 : 이 잡것이 씨부리는 싸가지가 얼척이 없잖유.
(미주 팔목을 나꿔채고 눈 부릅 뜨는) 고운 쌍판 스크라치 나기 싫으믄, 야무지게 잔 채워라.
노려보던 미주, 술병을 든다. 그럼 그렇지, 득의양양해서 독사와 배중사를 쳐다보는 악어, 다시 고개 돌리다가 멈칫!
잔이 넘치는데도 계속 술을 따르는 미주.
테이블에 넘친 술이 악어의 바지로 흘러내리고, 이크! 기겁해서 일어나는 악어.
악어 : (순간 열이 뻗치는) 이게 뒈질라구 환장을 했나...
짝! 악어의 손찌검에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미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배중사. 찌푸리는 독사.
그때 문이 열리고 종구가 들어선다. 다들 멈칫하고...
미주, 얼굴과 옷매무새를 수습하며 일어난다.
상황파악이 된 종구, 악어를 본다. 마지못해 고개만 까닥, 하는 악어.
종구 : (미주에게) ...나가.
미주 : (걱정돼서 보는) ...
종구 : 나가라구. ...난 소주로 갖구 와.
미주 : (하는 수 없이 방을 나가고)
독사 : ...오셨소?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종구 : 언제부터 자빠져 앉아서 인사 닦았냐?
독사 : (멈칫, 그러나 악어와 배중사를 의식하며)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융통성 있게...
독사 말이 끝나기 전에 악어에게 주먹 날리는 종구. 와당탕! 나가 떨어지는 악어.
흠칫 긴장하는 독사와 배중사.
종구 : 악어야.
악어 : (비틀비틀 일어나며) ...예.
종구 : 마셔라.
악어 : (뜨악하게 보는) ...?
종구 : 따른 사람 성의를 생각해야지. (넘쳐흐른 술잔 흘끔 보고) ...원샷해.
악어 : (독기 서린) 시방 뭐라구 하셨슈?
종구 : (코웃음) 안되겠다... 느이들. (독사를 응시하며 눈빛 매서워지는) 모인 김에 서열 정리 한번 하구 가자.
3. 더 클럽 / 홀 ( 밤 ) -N8
내실에서 집기 부서지는 소리. 움찔했던 미주, 애써 진정시키며 눈가에 얼음 찜질한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 미주, 흥삼이란 걸 알아채고 고개 돌린다.
미주의 턱을 잡아서 돌려 세우는 흥삼. 다시 고개를 피하는 미주.
낮게 혀를 끌끌 차는 흥삼, 내실로 향한다.
4. 더 클럽 / 내실 -N8
흥삼과 사마귀가 들어서는데 와당탕! 문 앞에 나가 떨어지는 악어.
테이블 위에 우뚝 선 종구, 흥삼을 보자 멈칫! 종구 향해 술병을 치켜 들었던 독사와 배중사도 얼어붙는다.
난장판이 된 내실을 태연하게 둘러보는 흥삼.
흥삼 : 젠틀하게 살자, 젠틀하게... (미소 속에 번득이는 살기) 어려운 거 아니잖아. 응?
재빨리 자기 자리 찾아서 예의 바르게 서는 독사와 악어, 배중사. 그에 비해 천천히 테이블에서 내려오는 종구.
흥삼, 종구를 보더니 씩 웃고 상석에 가서 앉는다.
흥삼 : 술 한잔 합시다?
종구 : ...끊었습니다.
흥삼 : (잠깐 보다가 웃음이 터지는) 농담이 늘었네, 류씨.
종구 : (웃지 않고) ...
흥삼 : 그러지 말구 앉으쇼. 갈 때 여자 붙여줄게. (짐짓 생각난 듯) 서마담 어때?
종구 : ...여자도 끊었습니다. (꾸벅 목례하고 돌아서는데)
흥삼 : (웃음기 사라지며) 류씨.
종구 : (돌아보는) ...
흥삼 : 이렇게 갈 거면 뭐하러 왔나? 온 김에 술 한잔 하자는데.
종구 : 부르셨잖습니까? 부르면 오는 게 서열 아닙니까.
흥삼 : (냉랭하게 응시하다가) 오늘은 그냥 가도, 담부턴 자주 봅시다. 명색이 서열 2윈데, 폐차장 귀신 되면 내 면이 안살지.
종구 : 귀신이 돼두, 파티는 안걸테니까 걱정마십쇼.
멈칫 봤다가 크게 웃는 흥삼. 표정없이 마주 보는 종구.
흥삼은 독사와 악어를 둘러보며 계속 웃는다. 보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어색하게 웃는 독사, 악어, 배중사.
심드렁히 돌아서는 종구, 방을 나선다.
5. 더 클럽 / 홀 -N8
특유의 걸음으로 나오는 종구. 얼음주머니 내려놓는 미주, 배웅하려고 따라 나선다.
멈추고 돌아보는 종구. 말갛게 바라보는 미주.
종구 : 너 머리 좋잖아.
미주 : ...누가 그래요?
종구 : 상황 봐가며 굽히구 살어. 버티다가 부러진다.
미주 : 아저씨두 안되는 걸 나보구 하라구요?
종구 : (뜨악하게 보다가) 소주는 킵해놔라.
휘적휘적 나가는 종구. 가만히 바라보는 미주. 쓸쓸해보이는 종구의 뒷모습 위로...
악어 : (소리) 지가 뭐 잘났다고 남바투래유?
6. 더 클럽 / 내실 -N8
상석의 흥삼, 그 옆에 조용히 서있는 사마귀.
악어 : 막말루 회장님이 꽂아줘서 그 자리 버티지, 조직이나 회장님 위해서 뭐 하나 제대로 허는 게 있냔 말유!
(독사 보며) 그류, 안그류?
독사 : (흥삼의 기색 살피는) ...
배중사 : (조심스레 편드는) 군기확립 차원에서두... 문제가 있지 말입니다.
악어 : 작두 성님도 빵에 기시고, 사실 지금 우덜 맴 속에 진실한 남바 투는 독사 성님 밖에 없슈.
흥삼 : (술잔 들다가 보는) ...그래서?
악어 : (멈칫) 야?
흥삼 : 니들 셋이 작당해서 넘버 투를 제끼겠다... 그 소리냐 지금?
악어 : (당황) 고것이 아니고라...
쉭! 날아온 술잔이 악어의 이마에 명중한다. 컥! 찢어진 이마를 감싸쥐고 고통스러운 악어.
일순 고요해지는 실내.
흥삼 : 서열에 불만 있으면 정식으로 파티를 해. 뒤에서 꼼수부리다 걸리면 내 손에 죽는다. (둘러보며) ...알아 들었냐?
독사, 배중사 : (냉큼) 네!
흥삼 : 악어.
악어 :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알것슈.
흥삼, 술잔 던지느라 손이 젖었다. 재빨리 물수건 건네는 사마귀.
어느새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온 흥삼, 손을 닦으며.
흥삼 : 앞으로... 동해 금융 애들하고 부딪힐 일이 생길거다.
독사 : 정만출 사장 말입니까?
흥삼 : (끄덕) 적당히 간보면서 어르고 달래. 무조건 정면충돌하지 말고.
독사 : 그쪽이야 사채판 주먹들인데 우리하고 무슨...
흥삼 : (눈썹이 꿈틀) 어이.
독사 : (긴장) 네, 회장님.
흥삼 : 내가 니들한테 결재 받으려고 모이게 했냐?
독사 : (얼른 조아리는) 죄송합니다.
흥삼 : (일어나는, 문득) 뱀눈은?
독사 : 공장에 보냈습니다.
/ 폐건물 독사의 수술실 내부모습 INS
/ 미간을 찌푸리는 흥삼.
흥삼 : 상대가... 누구라고?
독사 : 얼마 전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흥삼 : 굴러 들어온 사연이 있을 거다. ...조용히 털어봐.
7. 지하보도 ( 아침 ) -D9
뒤척이며 눈을 뜨는 태호, 일어나 앉는다.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제법 깨끗한 담요와 베개까지... 달라진 잠자리를 어색하게 둘러보는 태호.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오는 해진.
해진 : 아방궁은 아니라두 박스 쪼가리보다야 낫지? 한번 거기 맛들이면 맨 바닥에서 다시 못잔다니까.
태호 : 그럴 일 없어. 넘버1이 자는 침대까진 가야지.
해진 : 아이고, 이제 겨우 걸음마 뗐는데 벌써 뛰겠다구 하시네? 자, 뛰기 전에 배부터 채우고, 일하러 갑시다.
태호 : ...일?
8. 지하철역 일각 -D9
양씨와 노숙자 몇이 해진에게 수금한 지폐를 건넨다. 침 묻히고 세는 해진.
옆에 멋쩍게 서 있던 태호, 맹인거지를 흘끔 본다.
맹인 : (울상이 된) 저두 입에 풀칠은 해야죠. 그걸 다 가져 가시면...
양씨 : (태호 눈치를 보며) 동전 남겨줬잖아! 동전!
태호 : (물끄러미 맹인을 보는) ...
해진 : (다 세고) 오케이! (태호에게) 다음은 염천교로 가서...
태호 : 잠깐... 상납 비율이 어떻게 되지?
해진 : 7대3. 경기 좋을 땐 조직이 8까지 먹구.
태호 : 그렇게 상납해도 생활이 되나?
해진 : 세금이니까. 엉뚱한 놈들한테 뜯기는 대신,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금.
태호 : (맹인의 바구니에 남은 동전을 보다가) 앞으로는 5대5로 합시다.
해진,양씨 : (놀라는) 뭐? / 네?
태호 : 내가 맡은 구역에서는 반반씩 나눕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전해요.
해진 : (태호를 한쪽으로 잡아 끌고 가서) 미쳤어? 위에서 알면 어쩌려구?
태호 : 알라구 하는 짓이야. 알게 되면 입질 오겠지.
해진 : (기겁해서 보는) ...!!
9. 거리 일각 ( 낮 ) -D9
저벅저벅 걸어오는 군화. 배중사가 한무리의 사내들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이동 중이다. 그 살벌한 표정 위로.
해진 : (소리) 특공 무술 유단자에 맷집이 장난 아냐. 한번 붙었다하면 상대가 피떡이 될 때까지 짓이기는 놈이고...
10. 공원 일각 ( 낮 ) -D9
태호와 해진이 벤치에 앉아 있다. 옆 벤치에 조회장과 영칠도 볕바라기 중이고.
해진 :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형씨 실력으론 역부족이야. 어디 부러지거나 반병신만 돼도 다행이구.
태호 : 우리 매니저, 용기나는 멘트만 골라서 해주시네.
해진 : 농담 아니라니깐!
조회장 : 이거 봐, 차이사.
해진 : (돌아보는) 예?
조회장 : 거, 눈 이렇게 찌그러진 불량배 말야. 요새 안보이는구먼.
해진 : (태호 눈치를 흘끔 보는) ...
영칠 :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불쑥) 공장에 실려갔대요. 뭐, 콩팥은 중국에, 간은 필리핀에 가 있겠죠.
태호 : (멈칫, 해진을 보는) ...!
해진 : 파티에서 지면... 곧바로 재활용 신세야. 쥐도 새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주는) 그러니까 신중, 또 신중해야 된다구... 알아 듣겠어?
태호 : (미처 몰랐던, 표정 굳고) ...
배중사 : (소리) 이 새끼들, 완전 당나라 군대구만!
배중사 패거리가 험악한 눈빛으로 둘러보며 다가온다. 널부러졌던 노숙자들이 주섬주섬 일어난다.
긴장해서 보는 태호와 해진.
배중사 : (최군에게 다가가는) 너, 내가 오늘 일 있다고 했냐, 안했냐?
최군 : (겁 먹고) 까... 깜박했습니다.
배중사 : 깜빡?
배중사, 군화발로 최군을 걷어찬다. 움찔해서 보는 태호와 해진, 노숙자들.
배중사, 사정없이 최군을 차고, 밟으며.
배중사 : 전달 명령 받았으면 전달하구, 집합 시간에 맞춰야지! 응? 하나같이 빠져 갖구, 응? 전시에는 무조건 총살이야! 알어?
(씩씩대며 둘러보다가 태호를 발견하고) 뱀눈 제낀 새끼가 너냐?
태호 : (여차하면 받아칠 기세로) ...
배중사 : (코웃음) 기생 오래비같이 생겨갖구 제법이네. (쓱 손을 내미는) 반갑다. 나, 서열 6위... 배중사.
태호 : (악수하는) ...장태홉니다.
배중사 : (손에 힘을 주며) 돈 벌러 가자.
태호 : (지지 않고 힘주며 보는) ...
11. 유흥가 전경 ( 저녁 ) -N9
식당과 술집과 캬바레가 밀집한 거리. 네온사인이 현란하고...
캬바레 부장 : (소리) 야! 니들 정말 이럴 거야!
12. 캬바레 입구 ( 저녁 ) -N9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태호와 해진, 배중사를 비롯한 노숙자들이 사람 하나 지나갈 틈 없이 버티고 앉아있다.
캬바레 부장 : (붉으락 푸르락해진) 누가 안갚는다고 했어? 왜 이래, 정말! 돈 생기면 입금한다잖어! (코를 싸쥐고) 크.. 냄새.
배중사 : (깡소주 마시며) 지린내 맡기 싫으면 돈 가져오쇼. 캐쉬로...
캬바레 부장 : 장사를 해야 돈을 만지지. 니들 이러는 거, 엄연한 영업 방해야.
배중사 : (입구에서 어설프게 춤추는 최군 보며) 섭섭한 소리 하시네. 영업 도와주려고 뺑이치는 거 안보이쇼?
(일어나서 최군에게 다가가는) 그렇게 춰서 손님이 들겠냐? (느닷없이 발길질) 빠릿!빠릿! 절도있게 추란 말야!
쓰러진 최군에게 다시 발길질하는 배중사. 질려버린 부장, 투덜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참에 앉아있는 태호와 해진.
해진 : 이렇게 남의 돈 받아내주는 일두 제법 짭짤해.
태호 : 그렇겠지. 조폭 동원해서 깽판치는 것보다 노숙자들이 효과적이니까... 경찰이니 뭐니 뒤탈도 없을 테구.
해진 : 우리 형씨, 배움이 빠르네. 가방 끈이 긴가봐? (나즈막히) 밖에서 뭐 하다 왔는지 계속 묵비권 행사할 거야?
태호 : (입을 다무는) ...
배중사 : 야, 신참! 일루 나와 봐라.
태호 : (내키지 않지만 계단 올라가는) ...
배중사 : (끙끙대는 최군을 흘깃 보고) 이 새끼 대신, 니가 춰.
태호 : (표정) ...?
배중사 : 신고식은 해얄 거 아냐? 요즘 유행하는 춤으루다 한번 뽑아 봐.
태호 : (싸늘하게 보는) ...
배중사 : 뭐야, 그 쌍판은? 하극상이냐?
해진 : (얼른 끼어들며) 아유, 형님. 춤하면 K팝 주름잡던 저 아닙니까? 제가 폼나게 보여...
배중사 : (탁! 해진의 멱살 잡고) 내가 너한테 시켰냐, 새꺄?
해진 : (켁켁대며) 그... 그게...
배중사 : (해진 멱살 틀어쥔 채, 태호를 노려보는) 댄스 일발 장전... 발사.
태호 : (노려보는) ...
배중사 : 어쭈? 복명복창 안하지? (해진을 놔주고, 태호에게 다가서는) 길바닥에서 한따까리 할까? 어?
일전을 각오한 태호,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데...
끼익! 승합차가 멈춘다. 돌아보는 태호, 배중사 등.
승합차에서 우루루 내리는 정사장 부하들. 뒤따라 멈춘 승용차에서 떡대가 내린다.
흠칫 놀라는 태호,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포위하듯 늘어서는 정사장 패거리. 노숙자들도 배중사 주위에 벌리고 선다.
슬그머니 몇걸음 뒤로 물러나는 태호.
떡대 : (코에 대고 부채질) 휘유... 코 썩겠다. 야, 거지새끼들은 가서 급식이나 처먹어라.
여긴 형님들이 수금하는 가게니까 얼씬대지 말구.
배중사 : 아놔. 족보에도 없는 형님들이 한타쓰나 생겼네. 그쪽 수금은 그쪽이 알아서 하슈. 우린 우리가 받을 돈만 챙겨 가리다.
떡대 : (웃는데, 눈빛은 험악한) 까불다 맞는다.
배중사 : 개값 물어줄 자신 있으면 그러시든가. 우리 맞구 드러눕는데 이력이 났거든.
일촉즉발 분위기로 팽팽한 두 패거리. 긴장하던 해진이 문득 돌아보면 태호가 보이지 않는다.
13. 유흥가 / 골목 ( 저녁 ) -N9
벽에 기대선 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태호. 이런 곳에서 떡대를 마주칠 줄이야...
태호, 숨을 고른 뒤, 고개 내밀어 캬바레 앞을 살핀다. 여전히 대치 중인 두 패거리.
그때 캬바레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가는 종구가 보인다. 의아해서 보는 태호.
14. 캬바레 입구 ( 저녁 ) -N9
느긋한 표정으로 배중사와 떡대 사이에 서는 종구. 배중사는 난감하고 떡대는 같잖은 듯 꼬나보고.
떡대 : 이건 또 뭐하는 거지새끼야?
종구 : (못들은 척, 배중사에게) 돈은 받았냐?
배중사 : 기다리구 있슴다. (슬며시 떡대 보는) 이 가게 사장이 여기저기 빚이 많나 봅니다.
종구 : (떡대를 한번 봤다가 무시) 조용히 처리해라. 민폐 끼치지 말구.
배중사 : 예.
떡대 : (어이없는) 야, 꼰대! (한발 다가서는) 이것들이 단체로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오늘 줄초상 함 치러볼까?
종구 : 동해금융, 정사장 똘마니구나.
떡대 : (멈칫) ...!
종구 : 공공장소다. 너하구 나, 원터치로 끝내자.
떡대 : (허! 기가 막힌) 뭐?
떡대 향해 서는 종구, 가볍게 가드 올리고 자세를 취한다.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는 그림. 떡대는 헛웃음이 나오고, 배중사와 해진, 노숙자들은 긴장하는데...
저만치 골목에서 숨 죽이고 지켜보는 태호.
떡대 : (양복 상의를 벗어 부하에게 건네며) 내가 경로사상이 투철한 관계로... 딱 한 군데만 부러뜨려 준다.
위압적인 포즈로 마주 서는 떡대. 흔들림없는 종구 시선.
틈을 노리던 떡대, 치고 나가는 순간... 타탓! 빠르게 스텝 바꾸며 깊게 파고드는 종구.
떡대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종구의 카운터가 턱에 작렬한다!
쩍! 소리와 함께 그대로 엎어지는 떡대. 부하들이 달려들어 부축하는데 실신한 떡대 입가에 게거품이 흐른다.
종구, 바닥에 있던 소주병 들고 입을 헹군 뒤, 배중사에게 돌려준다. 위축된 채 병을 받는 배중사.
종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휘적휘적 걸어가고...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호.
15. 할매 식당 ( 저녁 ) -N9
테이블을 치우는 나라. 벌컥 문이 열리고 해진이 들어선다.
해진 : (두리번) 태호씨 안왔어?
나라 : 누구요?
해진 : 요번에 넘버7된 뉴페이스 있잖어. 곱상하게 생긴 친구!
나라 : (고개 젓는) 안왔는데요.
해진 : 하... 어딜 간 거야? 혹시 들르면 내가 열나게 찾는다구 전해줘.
돌아서려던 해진, 그릇에서 남은 반찬 집어 먹더니, 계속 손이 가는.
나라 : (슬며시) 그 아저씨... 싸움 잘하나봐요?
해진 : (우물우물) 아직 아마추언데, 내가 물건 제대로 만들어보려구.
나라 : (표정) ...
16. 건물 옥상 ( 밤 ) -N9
난간에 기대선 채 망연자실한 태호.
/ 스쳐가는 1부 장면들.
태호와 민수에게 린치 가하는 떡대, 카드를 내밀며 비릿하게 웃는 정사장,
억지로 술을 먹이는 떡대, 시커먼 물 밑으로 사라지는 민수의 마지막 모습.
/ 털어내듯 고개 젓는 태호, 자기 손을 내려다본다. 손톱에 때도 끼고, 어느새 거칠어져버린 손마디.
떨치고 싶은 트라우마... 그러기 위해선 싸워야 한다.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는 태호.
해진 : (다가오며) 여기 짱박힌 줄도 모르고 한참 찾았네.
태호 : (표정 고치고 보는)
해진 : 배중사 그 자식, 태호씨더러 쫌생이라던데? 패싸움 붙을 거 같으니까 쫄아서 튀었다구.
태호 : 틀린 말은 아냐. (시선 돌리고 야경을 바라보는) 세상 무서운 거 없이 살아왔더니, 이제 와서 겁나는 게 많아지네.
해진 : 선수가 추위타면 매니저는 얼어죽는데?
태호 : 더 이상 도망칠 데도 없고... 차라리 잘됐어. 상대가 만만하게 볼수록 허점을 찌르기 쉬워지니까.
해진 : 바로 그거야! 내가 찾아낸 태호씨의 필승법!
태호 : ...?
17. 폐차장 일각 ( 다음 날 아침 ) -D10
살풍경한 폐차장을 걸어오는 태호와 해진. 저만치에 종구가 사는 폐버스가 보인다.
앞서 걸어가던 해진이 돌아본다.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멈춰선 태호.
태호 :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데...
해진 : 못먹는 감, 찔러나 보는 거야. (잡아끌며) 가자구.
18. 폐버스 안 -D10
조심스레 올라서는 해진. 뒤따르는 태호.
해진 : 실례합니다...
군용침대에 누운 종구,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차내에 진동하는 악취에 손사레를 치는 해진.
한심해지는 태호, 두리번거리다가 챔피언 벨트를 발견하고 다가선다. 도금이 벗겨진 벨트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태호.
해진 : (속삭이는) 죽이지? 미들급 동양 챔피언...
태호 : (세상 편하게 자는 종구를 돌아보는)
해진 : 똑똑히 보라구. 타고난 싸움꾼들은 반사신경이 장난 아니거든.
뒤꿈치 들고 살살 다가가는 해진, 종구 향해 주먹을 치켜든다.
놀라서 보는 태호. 걱정 말라는 듯 쉿! 하는 해진, 종구 복부에 주먹을 내지른다.
어이쿠! 신음하며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종구.
이게 아닌데, 당황스러운 해진. 태호도 어이가 없고...
종구 : (기침까지 콜록대며) 뭐야... 어떤 새끼야...
해진 : (부축하며) 죄송합니다, 형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아니... 일부러 그런건 맞는데...
종구 : (정신 차리고, 해진을 알아보는) 너, 이 새끼, 사기꾼... 누가 보냈어?
해진 : 저희 발로 왔습니다. 에, 뭐냐... 어렵게 부탁드릴 게 있어서...
(태호 끌어다 세우며) 참, 태호씨 아시죠? 구면이라구 하던데.
종구 : (관심없이 소주병을 비틀어서 따는) ...
해진 : 아무튼, 형님이 예전에 동양챔피언이셨잖습니까? 그래서 이래저래 부탁드릴 말씀도 있고...
태호 : (한발 나서는) 싸움 좀 가르쳐주세요.
종구 : (병나발 불다가 멈칫) 뭐?
태호 : 덩치가 두 배, 키는 10센티 이상 차이나는데 펀치 하나로 끝냈잖습니까? 그 기술을... 배워야겠습니다.
종구 : (뜨악하게 보는) 네가... 뱀눈 제꼈다는 그 놈이냐?
태호 : (차분히 마주 보고) ...
종구 : (소주병 내밀고) 마시구... 가라.
태호 : (받아서 한모금 삼킨다, 돌려주는) 마셨으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종구 : (싸늘하게 보다가) 야, 사기꾼.
해진 : 차해진입니다, 형님.
종구 : 이 새끼, 뒷조사해봤어?
태호 : (멈칫) ...!
종구 : 딱 보니까 사고 한번 크게 쳤던 놈이다. 그런 놈한테 사람 패는 기술까지 가르치라구? (침대에 드러누우며) ...일없다.
해진 : (툭툭 건드리며) 태호씨. 형님 오해 없으시게 설명을 잘...
태호 : (종구 보며) ...관둡시다, 그럼.
종구 : (감았던 눈을 뜨는) ...?
해진 : (당황) 태호씨!
태호 : 넘버 투라면서요? 아래 놈들부터 처리하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돌아서서 버스 내려가는 태호. 갈피 못잡다가 꾸벅 인사하고 쫓아 나가는 해진.
태평하게 하품하는 종구. 그러다 문득, 피식 웃는.
19. 거리 일각 ( 아침 ) -D10
성큼성큼 걸어오는 태호. 안달난 해진이 계속 설득 중.
해진 : 부탁하러 간 사람이 선전포고를 하면 어쩌냐고? 응?
태호 : (묵묵히 자기 생각에 빠진)
해진 : 지금이라두 돌아가서, 아깐 잘못했슴다! 사과하고...
태호 : 필요없어. 어차피 싸울 땐 혼자야.
오십장 : (소리) 어이!
백팩을 둘러매고 다가오는 오십장.
태호, 무표정하게 보고 해진은 귀찮게 됐네, 찌푸리는.
오십장 : 미꾸라지 새깽이여? 약속을 혔으믄 파티를 붙어야지, 워딜 그르케 피해 다니는 것이여?
해진 : 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지, 피하긴 누가 피했다 그래요?
오십장 : 자넨 빠지고... (태호 향해) ...정식으루다 파티 붙어야제?
태호 : (담담히 보다가) ...그럽시다.
해진 : (답답한) 점점...
태호 : (해진에게) 도전해오면 받아줘야 한다며? 다른 건 뭐가 있는데? 그 파티 규칙이라는 거.
20. 지하보도 안 -D10
영문잡지를 보고 있는 조회장.
허겁지겁 달려온 영칠이 뭔가 얘기하자 조회장, 고개를 든다. 다른 노숙자들도 수근대면서 일어나고.
해진 : (소리) 시간하구 장소를 정하면 모두한테 알리는 거야. 노숙자들이 관중인 동시에 증인이 되는 거지.
21. 교각 아래 ( 낮 ) -10
인적이 드문 교각 아래, 노숙자들이 모여 있다.
비워둔 공간 양쪽에 서 있는 태호와 오십장.
와이셔츠 차림의 태호, 하늘을 보며 심호흡한다. 러닝만 걸친 오십장은 이리저리 몸을 풀고...
긴장, 흥분으로 지켜보는 해진과 조회장, 영칠, 노숙자들. 일련의 화면 위로 설명.
해진 : (소리) 첫 번째 규칙. 일대일로 싸운다.
양씨가 오십장을 검사하고, 태호에게 다가가 소지품을 살핀다.
해진 : (소리) 두 번째 규칙, 무기를 쓰지 않는다.
태호와 오십장, 마주 보며 다가와 선다. 일전을 앞둔 긴장감. 불꽃 튀는 시선이 부딪히고..
해진 : (소리) 마지막... 절대 상대를 죽여선 안된다.
22. 교각 근처 ( 낮 ) -D10
종구, 무료한 표정으로 걸어온다.
어린 딸을 목마 태우고 지나가는 남자. 종구, 물끄러미 그 부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때 저만치서 와!! 터져 나오는 함성. 고개 돌리는 종구.
23. 교각 아래 ( 낮 ) -D10
보기 좋게 나가 떨어지는 태호. 그새 입술도 터지고, 땀에 흠뻑 젖었다.
근육을 과시하는 오십장, 일어나라고 손을 까닥까닥.
해진 : (다급히 귓속말) 저 친구, 공사판에서만 15년 굴러먹었대. 노가다한 놈들, 허릿심이 장난 아니거든.
스피드! 스피드로 승부해야 돼!
끙차! 다시 일어나는 태호, 자세를 잡는다.
여유롭게 어깨를 움직이며 다가서는 오십장. 가쁜 숨을 몰아쉬며 틈을 노리는 태호.
태호 : (소리) 그 바닷물 속에서... 장태호는 이미 죽었다.
/ 1부의 차 안. 안전벨트 벗기려고 애쓰는 태호.
/ 퍽! 오십장의 스트레이트에 휘청하는 태호.
/ 물거품을 토하며 몸부림치는 태호.
/ 육중한 어퍼컷에 몸이 구부러지는 태호.
/ 차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태호.
/ 오십장의 돌려차기에 맥없이 무너지는 태호. 그렇게 교차되는 화면 위로.
태호 : (소리)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아나기 위한 싸움...
쓰러진 채 꿈틀대는 태호.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잡초가 솟아있다.
태호 : (소리) 이 싸움의 끝에서 기다리는 100억... (피가 엉긴 눈가를 닦고 잡초를 움켜쥐는) 난... 부활한다.
비틀비틀 일어나는 태호. 함성으로 응원하는 해진과 영칠.
질렸다는 듯 마무리 지으러 다가오는 오십장. 순간, 살짝 삐긋하는 오십장의 다리.
태호, 그 약점을 놓치지 않고 본다.
기세좋게 쇄도하는 오십장. 무게중심을 흘리는 태호. 아슬아슬하게 귓가를 스치는 주먹.
그와 동시에 태호, 오의 무릎을 걷어찬다. 균형 잃고 주춤하는 오십장.
재차 오의 다리를 공격하는 태호. 엄습하는 고통! 오십장, 결국 쓰러진다.
그 위에 올라타는 태호, 사정없이 주먹을 내지른다. 가드를 올렸지만 마구잡이로 맞는 오십장.
태호, 야수처럼 포효하며 주먹을 퍼붓고... 마침내 널부러지는 오십장.
우와! 환호하며 태호를 일으켜세우는 해진과 영칠.
녹초가 된 태호, 얼결에 목마 태워진 채 멍하게 하늘을 본다.
해진 : 이럴 땐 한턱 쏘는 거야.
태호 : (멍해서 보는) ...?
해진 : 뱀눈이 그걸 안했어.
그제야 둘러보는 태호. 기대와 열기에 들떠 쳐다보는 사람들.
그 눈빛, 표정들을 하나씩 보다가 엷게 웃는 태호, 고개를 끄덕... 와아!! 다시 함성이 터져 나온다.
먼 발치에서 표정없이 지켜보는 종구.
24. 창고 뒤편 ( 저녁 ) -N10
양철판에 구워지는 삼겹살. 노숙자들, 소주를 나눠 마시고, 고기를 집어먹고... 왁자지껄하다.
양씨 : (허겁지겁 먹는) 야, 간만에 목구멍 기름칠 좀 하는구나!
영칠 : 거, 한점씩 드세요! 익지두 않은 걸...
양씨 : 냅둬! 내가 돼지를 특별히 애정하걸랑! (낼름 삼키고) 앗 뜨뜨!!
해진 : 에헤이! 비켜 봐요. 요 앙증맞은 삼귀엽살! (플라스틱 접시에 고기 쓸어 담는) 우리 넘버 쎄븐 형님도 드셔야지!
창고 벽에 기대앉은 태호, 흐뭇하게 보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영문잡지를 읽고 있는 조회장.
태호 : 어르신은... 안드세요?
조회장 : 차이사가 챙겨올 걸세.
태호 : ...?
해진 : (고기 접시 들고 다가오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 고기 왔습니다, 고기!
조회장 : (잡지를 덮고, 젓가락 드는) 수고했네. 차이사.
기품있게 고기 한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조회장.
태호가 의아해서 쳐다보면, 해진이 귀에 대고 손가락 빙글 돌린다. 조회장이 보자, 이크해서 손을 내리는 해진.
조회장 : 차이사. 그... 오십장이라는 친구 말이야. 당분간 몸쓰기 어렵겠나?
해진 : 왜요?
조회장 : 이번에 이라크 재건 현장에 총책임자로 파견을 보낼까 했더니... 아쉽게 됐구먼.
듣자하니 원래 무릎이 좀 안좋다고 하던데.
해진 : 무릎이... 시원치 않았대요? (흘끔 태호를 보는)
태호 : (착잡해지고) ...
조회장 : (메모지에 ‘일금 일억원’ 써서) 이거, 병원비에 보태 쓰라구 전하게.
해진 : (받고) 예. (젓가락 권하며) 잊어버려. 파티가 원래 그런 거야.
태호, 젓가락 든 채 표정 무겁고... 그때 최군이 쭈볏거리고 다가온다.
최군 : 저기... 배중사 형님이... 좀 오시라는데요? 악어하고 독사 형님도 기다리신다고...
태호 : (표정) ...!
해진 : (긴장하는) 같이... 가줄까?
태호 : 매니저를 고용한 거지, 보모는 필요없어. (가볍게 일어나는) 고기 모자라겠다. 더 사다 먹어.
25. 폐건물 / 수술실 ( 저녁 ) -N10
쿵! 철문을 열고 들어서는 태호.
스텐레스 수술대와 트레이, 낡은 의료장비만 있는 황량한 실내.
빈약한 조명 너머엔 독사가 앉아있고 악어와 배중사가 양쪽에 서있다.
독사 : 네가 장태호냐?
태호 : 용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악어 : 워메~ 우리 동상, 성질도 급하구먼. (웃고 있지만 눈빛은 날카로운) 해꼬지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께 맴 푹 놔두 되야.
태호 : (긴장 풀지 않고) ...
독사 : 우리 조직은 서열이 생명이다. 밥 먹고, 똥 싸고, 숨쉬는 것까지 내 허락없이는 안돼.
근데 너, 누구 허락 받구 상납액을 낮췄냐?
태호 : 허락이 필요하면... 넘버원한테 받겠습니다.
독사 : (꿈틀) ...!
배중사 : 이 쉐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나서려는데)
독사 : (손을 들어 제지하는) 이 조직을 진짜로 움직이는 건 우리 세 사람이다.
큰형님은 큰사업에 바쁘고, 넘버투는 있으나마나하고... 절간에서 고기맛 보려면 눈치가 돌아가야지.
독사, 배중사에게 눈짓한다. 얼음이 든 비닐백을 꺼내 수술대에 툭 던져주는 배중사.
태호,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의 귓바퀴를 보고 멈칫!
악어 : (흐흐 웃는) 인사혀. 뱀눈이랑 구면이잖여.
태호 : (메슥거리는 기분을 애써 참는) ...
독사 : 알겠냐? 우리 눈 밖에 나면 고기맛 보기는 커녕, 니가 고깃덩어리 되는 거야.
태호 : (노려보는) 충고는 알아 들었고... 이번엔 내가 하나 합시다.
(손가락으로 한명씩 가리키는) 육... 오... 사... 서열대로 박살내주겠어.
배중사 : 뭐 이 새꺄!
독사 : 조용히 해. (태호 노려보며) 너, 여길 무사히 나갈 거라구 생각하냐?
태호 : 내가 여기 불려온 거, 최소한 열 명은 보고 들었는데... 그 입 다 막으시게?
파티도 없이 제꼈다 그러면 넘버원이 좋아하겠네.
독사 : (멈칫) ...!
태호 :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육, 오, 사... 기억해두쇼.
휙 돌아서서 방을 나가는 태호. 살기 등등해서 노려보는 독사.
독사 : 저 새끼... 빨리 뒷조사부터 끝내라.
26. 할매 식당 앞 ( 저녁 ) -N10
걸어오는 태호. 가게 간판에 불이 꺼져 있다.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낑낑대며 들고 나오는 나라.
나라 : (태호 발견하고) 어떡하죠? 방금 닫았는데.
태호 : (불꺼진 간판 보고) 그러네요. (봉투 보고) 이리 줘요.
나라 : 아뇨. 괜찮아요.
태호 : (가볍게 빼앗아 들고) 어디다 버리면 돼요?
나라 : (멋적은) 저기 골목 입구에 내놓으면 가져가요.
태호, 골목 입구로 향한다. 몇 걸음 떨어져서 따라가는 나라.
나라 : 밥때를 잘 놓치네요. 사먹든 밥이든, 무료 급식이든.
태호 : 그러게요. 근데 오늘은 밥 먹으러 온 거 아닙니다.
나라 : ...?
태호 : (음식물 봉투 모인 곳에 쓰레기 내려놓고) 노숙자들, 무료로 봐주는 병원 있다구 했죠? 어딘지 알아요?
나라 : 모르면 안되죠.
태호 : (표정) ...?
나라 : 제가 거기서 일하거든요.
27. 무료 병원 / 진료실 ( 저녁 ) -N10
낡고 협소한 병원. 나라의 부축을 받은 오십장이 절룩거리면서 다가와 침상에 눕는다.
오십장 : (기력없는) 참말로 폐가 많소. 나같은 놈헌티 요로코롬 신경을 다 써 주시고...
나라 : 몸이 이 모양인데 그런 한데서 주무시면 어떡해요?
오십장 : 워디서 잔들 뭐가 다르것소?
나라 : 가족분이나 누구... 연락할 데 있으세요?
오십장 : (허공 보며 물끄러미) ...
나라 : 직접 하기 불편하시면 제가 해드릴께요.
오십장 : (털어내듯) ...되얏소. 집두 절두 없는디 가족은 무신...
나라 : (짠하게 보는) ...
28. 무료 병원 앞 ( 저녁 ) -N10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는 나라. 골목 안쪽에 있던 태호가 나타난다.
나라 : (놀라는) 아직 안갔어요?
태호 : 번거로운 부탁해놓구, 혼자 가긴 그렇죠. 의리없게.
나라 : (가시 돋힌) 원래 병주고 약주는 스타일인가봐요?
태호 : 네?
나라 : 나한테 환자 부탁해놓고, 기다려주고... 정작 그 환자는 본인이 두들겨팼던 사람이고... 이상하잖아요.
태호 : (쓰게 웃는) 그 친구, 내가 병원 가자고 했으면 절대 안움직였을 겁니다. ...어쨌든 도와줘서 고마워요.
나라 : 사람이 다쳤다니까 따라나선 거 뿐이에요.
태호 : (새삼 쳐다보는)
나라 : (멋적어지며) 간호사로서의 직업정신, 뭐 그런 건 아니구요... 제가 원래 타고난 오지라퍼거든요.
태호 : 급식소 일도 거들고 있잖아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나라 : (칭찬받는 게 어색한, 짐짓 부루퉁) 환자는 걱정마세요. 워낙 체력이 좋은 분이라
타박상하고 찰과상은 며칠 쉬면 나을 거에요.
태호 : 무릎이 안좋다고 하던데...
나라 : 오래 묵은 병이라 약을 계속 먹어야 한대요.
태호 : (신경쓰이는) ...
나라 : 이상한 사람 맞네. 그렇게 걱정될 거면 처음부터 안싸우는 방법도 있거든요.
태호 : 어쩔 때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선택도 있어요.
나라 : (새삼 보는) ...
태호 : (그 시선에 보고) ...
나라 : (표정 고치는) 전 이쪽으로 가면 돼요.
태호 : 바래다 줄게요.
나라 : 아뇨. 들렀다 갈 데두 있어요.
태호 : 이 시간에 괜찮겠어요?
나라 : (코웃음) 애기 때부터 이 동네 살았거든요? 골목에 샛길에 개구멍까지... 서울역 근처는 눈 감아도 찾아가요.
그쪽이나 조심해서... 참, 이름이 뭐라구 했죠?
태호 : 장태홉니다.
나라 : 신나라에요. (새침한) 담에는 밥때 놓치지 마세요.
종종걸음으로 골목에 들어가는 나라,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앉는다. 아담하게 꾸며진 꽃밭. 꽃밭을 살펴보는 나라.
나라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서는 태호.
29. 폐버스 안 ( 아침 ) -D11
여느 때처럼 술병이 어지러운 차 안. 종구가 늘어지게 자고 있다.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뒤척이다가 일어나는 종구, 짜증나고.
30. 폐버스 앞 ( 아침 ) -D11
하품하며 나오는 종구, 멈칫 본다.
버스 앞 공터에 널려있던 부품이나 쇠뭉치를 치우고 있는 태호.
종구 : 뭐하냐... 너?
태호 : 청소합니다. 너무 어수선해서...
종구 : 그거 다 치우고 파티 붙자고? 벌써 독사까지 제끼구 왔냐?
태호 : (들고 있던 부품 한쪽에 치우고, 종구 앞에 서는) 정식으로... 다시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싸움, 가르쳐 주십시오.
종구 : 날 까겠다고 협박해놓구... 나더러 호랑이 새끼를 키워봐라?
태호 : 키우는 맛, 나실 겁니다. 저, 엄청 똑똑하거든요.
종구 : ...지랄.
태호 : 나중에 저하구 파티 붙게 되면... 싸우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종구 : ...염병.
태호 : ...받아 주십시오.
종구 : (물끄러미 보다가) 운동은 뭐했냐?
태호 : 스쿼시, 테니스, 수영... 뭐 그런 거...
종구 : 어쩐지 스피드는 있어 보이더라. 눈도 빠르고.
태호 : (뜻밖인) ...보셨습니까?
종구 : 그래봤자 배중사, 그 놈한테는 한주먹감도 안된다.
태호 : ...압니다.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종구 : 솔직히 까봐. 너... 밖에서 뭐해먹던 놈이야?
태호 : (난감한 표정) ...
31. 할매 식당 ( 낮 ) -D11
태호와 종구가 앉아 있고, 해진이 주방 입구에서 할매가 내주는 뚝배기와 반찬을 받아 든다.
해진 : 우리 할매는 갈수록 젊어지시네!
할매 : 더운 밥 처먹구 식은 소리 말어! (내다보며) 쯔쯔... 역적모의하려구 모인 꼬라지들 허구는...
해진 : 역적모의가 아니구요, 도원결의! 서울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의기투합하는 자립니다!
할매 : 입으로 똥을 싸라... (들어가고)
삐죽하는 해진, 음식 쟁반 들고와서 테이블에 세팅하며.
해진 : (들뜬) 형님께서 큰 결단 내려주신 덕분에 한숨 돌렸습니다!
제 머리하고 형님 실력이면, 태호씨가 서울역 제패하는 거야 시간 문제...
종구 : 아직 결정 안했다.
해진 : 네?
태호 : (표정) ...
종구 : 펀드매니저하던 놈이 서울역엔 왜 왔어?
태호 : (시선 피하며 수저를 뜨는) 뭐 그냥... 일이 잘 안풀렸습니다.
종구 : 너, 작전인가 뭔가 하다가 쪽박 찬 거지?
태호 : (멈칫) ...!
종구 : 맞구만, 경제사범. 주식 갖구 장난치는 놈들.
태호 : (발끈) 그러는 형님은 동양챔피언까지 하셨던 분이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셨습니까?
해진 : (만류하는) 태호씨...
종구 : (태연하게 글라스에 술 따르며) 술... (잔 들고) 여자... (마시더니 크으, 소리내고) ...마약.
태호,해진 : (어이없는) ...
종구 : (다시 술 따르며) 싸움질 배워서 뭐할 거야?
태호 : 올라 가려구요. 넘버원까지.
종구 : 글쎄, 올라가서 뭐할 거냐고? 여기나 거기나 거지꼴은 똑같은데.
태호 : 이곳을... 벗어날 겁니다.
종구 : (보는) ...
태호 : 곽흥삼이 가진 백억... 그 돈으로 다시 시작하려구요.
종구 : (표정 바뀌는) ...!
해진 : (얼른 끼어드는) 물론 형님 몫도 단단히 챙겨드려야죠.
10억 정도면 새출발하실 수 있잖아요. 밖에 두고온 따님도 찾으시고...
종구 : (쾅! 테이블 치고 일어나는)
해진 : (찔끔하고) ...!
종구 : 니들... 내가 쉽냐?
태호 : ...아뇨. 안쉬워요, 형님. 저는 숫자만 밝지, 사람은 잘 모릅니다. 그치만 저, 남 밟고 올라가는 건 정말 잘해요.
형님이 도와주시면 1등 자리는 조금 쉬울 거 같습니다.
종구 : (안경 너머로 응시하는) 밖에... 뭐 좋은 거 두고 왔냐?
태호 : ...
종구 : 너만 특별한 거 아니다. 여기까지 굴러 들어온 인간들... 목숨보다 중한 거, 다 하나씩은 밖에 남겨두고 왔거든.
헌데... 나가고 싶다고 나가지고, 찾고 싶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냐. (쐐기박듯) 서울역이 감옥이면 우리 다 무기징역이야.
태호 : 그러면... 탈옥해야죠. 그래서... 되찾을 겁니다. 반드시...
종구 : (가늠하듯 보는) ...
태호 : (결연한 눈빛이고) ...
종구 : ...죽을 각오는 했냐?
태호 : 벌써 한번... 죽었습니다.
32. 폐차장 ( 낮 ) -D11
타이어를 발로 툭, 차는 종구. 데굴데굴... 태호 앞에 굴러와서 쓰러지는 타이어.
어리둥절해서 보는 태호와 해진.
종구 : 타이어 구보 스무 바퀴... 그 담엔 싯업, 푸시업 각각 300회.
해진 : 사... 삼백회요?
종구 : 구구단을 떼야 인수분해를 하지. 끝나면 깨워라.
돌아서서 버스로 들어가는 종구.
난감해서 태호를 보는 해진. 결심한 태호, 타이어를 번쩍 든다.
33. 편집화면 -D11
바닥에 질질 끌리는 타이어. 태호, 상체에 묶은 줄로 타이어를 끌며 공터를 달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 해진이 다리를 잡아주고, 태호가 싯업(윗몸 일으키기)를 한다.
‘백이십사, 백이십오...’ 카운트 하는 해진. 이를 악 물고 용쓰는 태호.
D11/ 지하도 일각.
상납받은 돈을 세던 배중사, 갑자기 지폐 다발로 태호의 뺨을 후려친다.
배중사 : 어른한테는 두 손으로 주는 거다. 싸가지 없는 새끼.
태호 : (꾸욱 참는) ...
D12/ 다른 날.
푸시업하는 태호. 옆에서 숫자 세는 해진. ‘이백 육십일, 이백육십이...’
하품하며 버스에서 나오는 종구, 태호 등에 걸터 앉는다. 컥! 무너지는 태호. 부들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쓰고...
D12/ 공터 일각.
얼차려 받는 태호와 노숙자들. 쪼그려뛰기를 한다.
교관처럼 돌아다니면서 으르렁대는 배중사, 영칠이 어기적거리자 발로 걷어찬다.
꿈틀! 시선이 부딪히는 태호와 배중사.
덤비라는 듯, 기다리는 배중사. 태호, 결국 시선을 피한다.
D12/ 타이어가 두 개로 늘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구보하는 태호.
그늘쪽, 낡은 덱체어에 기대있는 종구. 태호가 지나가면서 먼지가 날리자 소주병을 막았다가 잠시 후 병나발.
D13/ 또 다른 날.
종구의 머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태호, 종구를 등에 태운 채, 악으로 깡으로 푸시업하는 중. 터질 듯한 근육. 곤두선 핏줄.
감탄하며 바라보는 해진. 태호의 근력이 달라지고 있다.
34. 할매 식당 ( 저녁 ) -N13
먹음직스러운 삼계탕. 태호, 걸신들린 사람처럼 고기를 뜯고, 씹고, 삼킨다.
질린 듯 바라보는 해진. 종구는 무표정하게 술잔만 기울이고...
짧은 시간경과.
그릇을 싹 비우고 내려놓는 태호, 살 것 같은 표정.
해진 : (종구에게) 파이터로 만드는 줄 알았더니... 푸드 파이터였어요?
종구 : 구구단은 얼추 뗐으니까 다음 주부턴 스텝하고 펀치 들어간다. 맷집도 더 키워야 돼.
태호 : 단기 속성으로 안되겠습니까?
종구 : ...되지. 그 다음엔 어설픈 실력으로 파티 걸었다가 박살나면 되고.
태호 : (표정) ...
종구 : 어떤 격투기든, 기술은 기술일 뿐이다. 실전하곤 달라.
태호 : (가만히 보다가) 곽흥삼이랑 파티 붙어 보셨습니까?
종구 : (보는) ...아니.
태호 : 어느 정도 실력입니까?
종구 : (수북히 쌓인 닭뼈에서 갸날픈 날개뼈 고르고) 이게 너... (굵은 다리 뼈 들고) 그리구 이게 곽흥삼.
종구, 날개뼈로 힘껏 다리뼈를 친다. 반토막나며 날아가는 날개뼈.
태호, 바닥에 떨어진 뼈조각을 본다. 종구, 다리뼈를 내밀어 보이는.
종구 :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 그게 곽흥삼이야.
긴장한 만큼, 투지에 불타는 태호의 눈빛. 그 표정 위로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베르너의 ‘들장미’가 들리며...
35. 펜트 하우스 - 편집화면 -D14
널찍한 펜트하우스 실내. 오디오에서 합창곡이 흘러 나오고...
대형 거울 앞에 서서 외출준비하는 곽흥삼.
문가에서 사마귀가 배중사로부터 스포츠백을 받는다. 거실로 돌아오는 사마귀, 옆에 비슷한 가방이 몇 개 더 있다.
/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악어가 내린다. 스포츠백을 들고 펜트하우스 앞으로 간다. 벨을 누른다.
/ 짧은 시간경과.
문이 열리고 사마귀 얼굴이 보인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007가방을 든 독사.
독사 : 형님 좀 뵈어야겠다.
사마귀 : 외출 준비 중이십니다. 나중에 오시죠.
독사 : (표정) ...
사마귀, 가방을 흘끔 본다. 넘겨주고 꺼지라는 눈빛.
독사, 007가방을 건넨다. 문이 닫힌다. 치미는 울화를 참는 독사.
/ 007가방을 내려놓는 사마귀, 딸칵! 연다. 현금이 가득하다.
계수기에 지폐를 올리는 사마귀. 합창 소리에 맞추듯 타르륵... 돈이 넘어간다.
외출 준비를 끝낸 곽, 흘끔 돌아본다. 테이블 위에 사마귀가 가지런히 추려놓은 지폐다발.
느긋해지는 곽, 합창이 고조되는 부분을 독일어로 따라 부른다.
텅 빈 공간에 곽의 노래소리와 지폐 다발 넘어가는 소리가 묘하게 뒤섞이고...
36. 중식당 / 내실 -D14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은 곽흥삼과 정사장. 곽은 여유롭게 식사 중이고 정사장은 표정이 까칠하다.
정사장 : 곽회장이 달랑 두쪽만 차가 서울역서 빌빌거릴 때... 돈 대줘, 일 대줘... 내 물심양면으로 밀어줬다 아이가?
그칸데 이래 은혜를 원수로 갚나?
흥삼 : (태연하게 우물거리는) ...
정사장 : 바지 하나 앞세워가 사채회사 인수했제? 것도 내 앞마당에다... 넘의 밥사발에 그래 숟가락 얻으모 밥상이 뒤집어질낀데.
흥삼 : ...식사하세요. 해삼이 물 좋습니다.
정사장 : (버럭) 곽흥삼이!
흥삼 : (젓가락 멈추고) 빌린 돈 다 갚았고, 일로 빚진 것도 예전에 다 때웠습니다. 정사장님도 손해보는 장사한 거 아닙니다.
정사장 : 장사가 아이라, 의리를 말하는 기라! 의리!
흥삼 : 아... 의리. (냅킨으로 입 닦고, 싸늘하게 보는) 그 의리 믿구 들어갔다가 50억 날렸습니다.
정사장 : (멈칫) 마... 그기 온전히 내 잘못이가? 대동바이오 설계는 곽회장이 디민 거 아이가?
흥삼 : 주포는 정사장님이 구해 왔습니다. 작전쪽 에이스라면서... 큰돈 걸리니까 의리 대신 의심이 나던가요?
정사장 : 이카지 마라! 내도 글마 때문에 70억이나 깨묵었다!
흥삼 : 헌데 아직 어디 숨은지도 모르시네.
정사장 : (부르르) 잡을 끼다! 잡아가 고마 척추 접어 삐리고, 곽회장 공장에 보내 주꾸마!
흥삼 : 망한 작전 길게 얘기할 건 없고...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정사장 : 몰라 묻나? 내 구역에 느그 걸뱅이 자슥들 싸그리 빼삐라.
(스윽 몸을 기울이고) 지난 세월 의리를 봐가... 정식으로 갱고하는 기다.
미동없이 보던 흥삼, 잔에 냉수를 따른다. 그리고 회전식 테이블을 돌려서 정사장 앞으로 물컵을 보낸다.
흥삼 : ...드세요. 속 차리시게.
정사장 : (꿈틀) ...내 정만출이야. 넘들 핵교서 아엠어보이 배울 때, 사채시장 뒷골목서 백동전 긁어모아가 여까지 왔다.
흥삼을 노려보며 물컵 드는 정사장, 단숨에 마셔 버린 뒤 바닥에 힘껏 던진다.
컵 깨지는 소리에 황급히 뛰어 들어오는 사마귀와 떡대.
정사장 : 후회하게 될 끼다... 이 배은망덕한 노무자슥!
태연하게 바라보는 흥삼. 정사장이 나가고, 떡대가 뒤따른다.
조용히 다시 젓가락을 드는 흥삼. 그때 사마귀의 핸드폰이 울린다. 받더니, 흥삼에게 다가서는.
흥삼 : 누구야? (발신자 확인하고 표정 - 화면에 이름은 보이지 않고 - 전화 건네받는) 용건없이 전화하지 말랬잖아.
(듣다가 굳는) ...언제? ...확실해? ...윤회장도 병원으로 갔나? (묘한 미소) ...보고 싶구만, 그 노친네 표정.
37. 병원 / VIP 병실 -D14
무표정하게 소파에 앉아있는 윤일중 회장의 얼굴.
침대에 둘러선 가족들의 오열이 들린다. 흰 시트가 덮인 시신. 작은 아들이 ‘어머니!’ 울부짖으며 침대에 엎드린다.
오열하며 고개 숙인 큰아들. 뒤에서 임종을 지킨 가족들도 말문 잃은 채 흐느끼고...
미동없이 앉아있던 윤회장, 힘에 겨운지 천천히 눈을 감는다.
38. 병원 / 복도 -D14
병실 앞에 임원진과 비서들이 모여있다. 한쪽에 세훈도 무거운 표정이고... 그러다 놀란다!
상기된 모습으로 병실 향해 다가오는 정민. 시선이 마주치면, 세훈은 의아하고, 정민은 난감한데...
그때, 병실에서 윤회장이 나온다.
윤회장 : (정민을 보자 뜻밖인) 정민아.
정민 : (저도 모르게 다가서며) 아빠...
세훈 : (놀라고) ...!!
윤회장 : (건조한) 오래비들이 반기지 않을 거다. 걔들 어미도... 가는 길 보여 주기 싫을 테구.
정민 : (표정 식는) 그게 유언이에요? 평생 동안 우리 모녀를 저주했던 사람이... 자기 마지막은 우아하게 감추고 싶다구요?
윤회장 : 목소리 낮춰. 보는 눈이 많다.
윤회장, 앞장 서서 걸어간다. 따라가는 정민, 문득 멈추더니 세훈을 돌아본다. 얼떨떨한 세훈.
정민, 할 말을 삼키고 윤회장 따라간다.
39. 병원 / 옥상 혹은 야외 일각 ( 낮 ) -D14
뒷짐 지고 서 있는 윤회장,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조금 전보다 한풀 꺾인 정민, 침묵을 지키고...
정민 : 걱정마세요. 장례식엔 참석하지 않을게요. 제가 안보이는 편이 아빠가 덜 부담스럽잖아요.
윤회장 : (돌아보는) ...
정민 : (씁쓸한 미소) 죄송해요. 딸자식이랍시구 할 수 있는 효도가 투명인간이 돼드리는 것 밖에 없네요.
윤회장 : 정민아.
정민 : 빈말이라도... 오빠들한테 위로한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곧이 곧대로 안들을 거구, 그게 사실이니까...
아빠 건강만 조심하세요.
윤회장 : (가만히 보다가) 장례식 끝나면 집에 들르거라.
정민 : 저, 아빠 집 재미없어요. 그 집 식구들도 제가 별로잖아요.
윤회장 : 재미없는 집에... 들어와 살라는 얘기다.
정민 : (표정) 아빠?
윤회장 : 오피스텔 정리하고 짐 챙겨 들어와.
정민 : (놀랐던 표정이 가라앉고) 본처가 세상 떠났으니까 내놨던 첩실 자식, 보란 듯이 집에 들이시게요?
윤회장 : (잠깐 굳었다가) 큰놈은 물러 터졌고, 둘째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믿고 의지할 자식이 너 밖에 없다.
정민 : 저 믿지 마세요. 아빠가 의지할 만큼, 대단한 능력 없어요.
윤회장 : 쓸만한 방으로 비워두마.
정민 : (묵묵히 보는) ...
40. 병원 로비 ( 낮 ) -D14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정민, 멈칫!
화난 표정으로 서 있는 세훈, 정민을 흘끔 보더니 돌아서서 간다. 착잡해진 정민, 따라간다.
41. 병원 / 산책로 일각 ( 낮 ) -D14
굳은 표정으로 걸어오던 세훈, 돌아선다. 멈춰서서 보는 정민.
세훈 : 왜... 말 안했어요?
정민 : (담담한) ...지금 세훈씨같은 표정, 여러 번 봤거든요. 전에 만났던 남자들, 아빠 이름만 대면 다 도망쳤어요.
세훈 : 내가 정민씨한테서 도망칠 거 같아요?
정민 : 모르죠. 세훈씨가 어떤 사람인지, 나두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세훈 : 미안하다는 마음이 없네요.
정민 : 아버지가 재벌 총수라 미안해하면 나, 이 나라에서 못살아요.
세훈 : (표정) 내가 왜 화났는지도 모르네.
정민 : 미안하지만 세훈씨... 나 오늘은 길게 얘기할 기분이 아니에요.
세훈 : (쓴웃음) 좋아요. 정민씨가 추스르면 그때 얘기합시다. 그때까지도 내가 들어줄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냉랭하게 정민을 지나쳐가는 세훈.
혼자 남은 정민, 낮게 한숨 쉰다. 답답하고 복잡한 시선. 그 감정에서 떠오르는 누군가...
42. 폐차장 ( 오후 ) -D15
으아아!! 괴성 지르며 마지막 스퍼트하는 태호.
타이어가 세 개로 늘었다. 폐버스 앞 골인지점까지 달려온 태호, 통과하자마자 대자로 뻗는다.
체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가쁜 호흡. 땀이 흘러 눈가마저 쓰린데... 역광을 받으며 내려다보는 미주.
태호, 누군가 싶어 몸을 일으켜 앉는다. 표정없이 보다가 시선 거두는 미주, 버스로 향한다.
43. 폐버스 안 -D15
버스에 올라서는 미주.
낡은 구두에 철지난 양복까지 갖춰입은 종구, 가방에 옷가지를 쑤셔넣고 있다.
흘끔 미주를 보고 계속 가방을 꾸리는 종구.
미주 : 아저씨... 특이한 취미가 생겼네요? (창 밖에 태호를 봤다가) 가르쳐서 보디가드로 써먹게요?
종구 : (피식) 나한테 배워서 나 까겠다는 놈이야.
미주 : ...?
종구 : (가방 지퍼를 잠그고, 돌아서서 손 내미는)
미주 : (핸드백에서 메모지 꺼내 건네며) 주소는 확실한데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요. 이번에도 헛걸음되기가 쉬울 거에요.
종구 : (메모지 내용을 보고, 주머니에 넣는) 상관없어.
미주 : 만나게 되면... 어쩔 생각이에요?
종구 : (멈칫, 봤다가) 머리가 나빠서 한번에 두가지 생각은 못해. 닥쳐보면 알겠지.
미주 : (안스럽게 보다가) 소주 킵해놨어요. 오는 길에 들러요.
종구, 대꾸없이 지나쳐 가려는데 미주, 다가선다. 주춤, 긴장하는 종구.
미주, 비뚤어진 종구의 넥타이를 고쳐 매준다. 미주는 넥타이에, 종구는 천정에... 시선 마주치지 않는 두 사람.
44. 폐차장 -D15
가방을 둘러맨 종구, 버스를 나선다.
몸에 묶인 타이어줄을 풀다가 돌아보는 태호, 양복 입은 종구를 신기해서 보는.
태호 : 결혼식 가세요?
종구 : 이틀 정도 비울 거다.
태호 : 어디 가시는데요?
종구 : 알면? 따라 올래? 갔다오면 그날부터 지옥훈련이니까, 그 사이에 도망쳐.
태호 : 하던 대로 구구단이나 외구 있겠습니다.
종구 : (타이어가 세 개 묶인 것을 흘깃 보는) 담부턴 하나 더 달아.
뜨악해서 보는 태호. 종구, 휘적휘적 걸어간다.
태호 옆에 서는 미주, 멀어지는 종구를 보는.
미주 : 계속... 아저씨 옆에 있을 건가요?
태호 : (돌아보는) ...?
미주 : 안그래도 위태위태한 분이에요. (태호를 돌아보는) 그쪽 때문에 더 위험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태호 : 대답하고 싶어두... 댁이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미주 : 제가 그쪽을 알죠. 뱀눈 해치워서 넘버세븐이 됐고, 두목들 허락없이 상납비율도 내렸고,
자기 구역에서는 폭행이나 소란을 절대 금지시켰다는 거...
태호 : (표정) ...!
미주 : 서울역에는 소문이 빨라요. 비밀도 없고... 혹시라도 감추고 싶은 사연이 있으면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거에요.
태호 : 떠날 곳이 없다면요?
미주 : 두목들이 노리고 있어요. 아저씨까지 다치는 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태호 : (팽팽하게 보는) 아직... 댁이 누군지 모르고 있습니다.
미주 : 차차 알게 될 거에요.
태호 : ...
45. 펜트 하우스 / 복도 -D.N15
독사, 상기된 표정으로 바쁘게 걸어간다. 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사마귀가 나온다.
사마귀 : 상납일이 아닌데 오셨습니다.
독사 : 회장님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사마귀 :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독사 : (꿈틀) 니깟 놈이 끼어들 얘기가 아냐! 넘버세븐 그 자식, 정체를 알아냈다구!
사마귀 : (표정변화 없고)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독사 : (눈빛 매서워지고) ...비켜라. 나, 서열 4위다.
사마귀 : 이런 식으로 자꾸 회장님하고 독대하려는 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독사 : 니 주둥이부터 바람직하게 빠개줄까?
사마귀 : 회장님 거처입니다. 이 주변에서는 거친 언사도 주의해주십시오.
독사 :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사마귀, 너 이 새끼...
사마귀 : (안경 너머 번득이는 살기) 주의... 부탁드렸습니다.
독사 : (멈칫, 기싸움에서 밀리는) ...
46. 펜트하우스 ( 저녁 ) -D.N15
‘들장미’가 흘러나오는 실내.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은 흥삼, 눈을 감은 채 감상 중.
언더락스 잔을 건네면, 미주가 조용히 얼음을 챙긴다.
흥삼 : 주말에 박검사하고 최검사, 클럽에 갈 거다. 술보다 여자에 환장하는 위인들이니까 에이스로 준비해.
미주 : 그럴게요.
흥삼 : 류씨는 요즘 뭐하나?
미주 : (얼음 고르다 멈칫, 그러나 표정관리하며) 제가 어떻게 알아요?
흥삼 : 클럽엔 안들르는 모양이지?
미주 : 양주보다 소주 체질이니까요.
미주, 차분하게 얼음을 마저 채우고 잔을 건넨다.
가늠하듯 보는 흥삼. 사마귀가 다가와서 흥삼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인다.
끄덕이며 듣던 흥삼, 문득 표정이 변한다. 호기심이 떠오르는 눈빛...
흥삼 : 펀드매니저라... 작전 주포였단 말이지?
47. 지하보도 ( 밤 ) -N15
쿨럭거리는 조회장. 태호와 해진이 걱정스레 들여다본다.
약봉투를 사들고 뛰어오는 영칠.
태호 : 수고했어. (조회장을 부축해 앉히며) 어르신... 약부터 드세요.
조회장 : (손사레 젓는) 괜찮어...
해진 : (속상한) 하나도 안괜찮거든요, 지금? 떨어지는 가랑잎두 피해야되는 연세에요, 회장님.
조회장 : 차이사는 김박 귀국했나 알아봐. 지난 주에 학회 참석하러 런던 간다고 들었는데... (다시 기침)
해진 : 주치의 아직 안왔으니까요, 일단 아무 병원이나 가시자구요. 중역들이 직언하면 귀담아 듣는 것두 오너의 자세 아닙니까?
조회장 : (해진을 봤다가, 태호를 보는) 장이사 의견도 같은가?
태호 : 예. 내일 병원에 같이 가시죠. 가벼운 감기라두 조심하셔야 됩니다.
조회장 : (한숨) ...다들 쇠고집이구만. 알았으니까 약이나 주게.
영칠이 가루약과 쌍화탕을 꺼내서 조회장을 먹이는 사이, 해진이 조심스레 태호를 한쪽으로 데려간다.
해진 : 근데 말야... 내일 작업있다고 열외없이 집합하라는데...
태호 : 배중사?
해진 : (끄덕) 인원파악도 칼같이 할 거래. (조회장 쪽 보며) 어떡하지?
태호 : (잠시 표정) 회장님은 쉬시게 해.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해진 : (불안한) 그 인간, 한번 꼭지 돌면 완전 미친 개야.
태호 : 약에 쓸 몽둥이부터 찾아야겠네.
해진 : 물리면 안돼. 아직 준비가 덜 됐다구.
태호 : (전의를 다지는) ...
독사 : (소리) 장태호... 제껴 버려야겠다.
48. 폐건물 일각 ( 밤 ) -N15
독사 옆에 서 있는 악어와 배중사, 의아해서 본다.
악어 : 큰성님헌티 오다 떨어졌슈?
독사 : 그 자식, 대동바이오때 주가로 장난질쳤다며? 형님이 쉬쉬해도, 그때 최소한 큰 거 50개는 날렸을 거다.
그 놈 정체 알게 된 이상, 형님이 가만 있을 거 같냐? 형님 수고, 알아서 덜어드려야지.
배중사 : 명분이 없는데 어떻게 조집니까? 윗서열이 아랫놈한테 파티를 걸 수도 없고...
독사 : (표정) 장태호가 걸면 돼. 그 놈이 도전할 때까지 악소리나게 갈궈.
배중사 : (미소와 함께 우두둑 주먹을 꺾는) 그거야 제 주특기 아닙니까?
49. 공터 ( 아침 ) -D16
하나, 둘, 셋... 군대식으로 번호 붙이며 인원 보고하는 노숙자들.
태호와 해진, 영칠, 양씨 등도 보이고, 지휘봉을 든 배중사는 교관 포스로 그 앞에 서 있다.
‘이십 사! 번호 끝!‘ 소리에 찌푸리는 배중사.
배중사 : 왜 정원이 스물 넷이야? 한 놈 어디 갔어?
태호 : 환자가 있습니다.
배중사 : 열외없이 집합이다! 데려와!
태호 : 나이도 많구, 감기 몸살이 심해서... (조인트 까이는) 윽!
배중사 : 귓방맹이에 말뚝 박혔냐! 데려 오라구! 나머진 올 때까지 대가리 박는다, 실시!
태호 : (매섭게 배중사를 보는) ...
50. 무료 병원 앞 ( 아침 ) -D16
간호사 복장의 나라, 조회장을 부축해서 나온다.
나라 : 멀리 못나가요. 약은 꼭 챙겨 드세요.
조회장 : (기침하며) 내가 자네 혼처를 봐둔 데가 있는데...
나라 : (익숙한 얘기인 듯) 김장관님 아들이요? 하버드 유학 갔다는?
조회장 : 내가 얘기했던가?
나라 : (미소) 나중에 소개시켜 주세요.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만원 짜리 한 장 꺼내 쥐어주며)
이건 뇌물~ 따뜻한 거라두 사 드세요.
끄덕끄덕 하더니 걸어가는 조회장. 안스럽게 바라보는 나라.
그때 허겁지겁 달려온 영칠이 조회장에게 뭔가 얘기한다. 의아해서 보는 나라.
영칠, 조회장을 부축해서 어디론가 가고.
51. 공터 ( 아침 ) -D16
낑낑대며 원산폭격 중인 태호와 노숙자들.
배중사 : (눈을 부라리며) 이 쇄끼들이 빠져 가지고... 앞으로 전진!
머리 박은 상태로 낑낑대며 앞으로 가는 노숙자들. 중심 잃고 쓰러지면 가차없이 밟아버리는 배중사.
이 악물고 버티는 태호.
영칠이 조회장을 부축해서 온다. 안색이 파리한 조회장, 연신 기침한다.
배중사 : 기상!
살았다는 듯 헉헉대거나, 신음하며 일어나는 노숙자들.
조회장 앞으로 다가가는 배중사. 지친 태호, 긴장해서 지켜보는.
배중사 : (지휘봉으로 쿡쿡 찌르며) 영감 하나 때문에 집합이 30분이나 늦었다. 전우들은 얼차려까지 받았고... 어떻게 생각하나?
조회장 : (말 꺼내려다 기침, 겨우 진정하고) 회장으로서... 사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오.
배중사 : (피식) 노망난 늙은이는 군기로 개조해야지. (버럭) 푸시업 준비!
조회장 : (못알아듣고 멍한)
배중사 : (조회장 목덜미를 잡고 끌어 내리며) 엎드려 뻗쳐 모르나!
엉거주춤 엎드려 뻗치는 조회장.
울컥, 나서려는 태호. 해진이 팔을 잡는다. 절대 안된다는 눈빛.
배중사 : 하나에 내려가면서, 정신! 둘에 올라오면서 통일! 알았나?
조회장 :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배중사 : 하나! (조회장, 꼼짝 안하자 재차) 하나!!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조회장. 그때, 멀리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조회장, 그 소리에 왈칵 겁에 질리는...
‘어디서 불났나?’ 수런거리며 쳐다보는 노숙자들.
배중사 : 지금 교육 중이다! 잡담 금지! (조회장 보며) 하나... (하다가 멈칫) ..?
무릎 꿇은 채 귀를 막고 어어... 괴로워하는 조회장. 공포와 혼란으로 어지러운 눈빛.
실제로 들린 사이렌보다 훨씬 과장된 소리가 조회장의 귓가를 파고든다.
그 상태를 눈치챈 해진과 영칠, 일났다 싶은.
영칠 : 형님. 또 시작했나봐요!
해진 : (사색이 된) 저거... 저럼 안되는데...
태호 : ...?
조회장 : (으어어... 신음 더 커지며 몸까지 흔드는)
배중사 : 내 앞에서 요령은 안통한다!
말이 끝나는 동시에 발길질하는 배중사. 그 직전에 튀어나간 해진, 조회장을 감싸 안는다.
퍽! 군화발을 대신 맞고 함께 쓰러지는 해진과 조회장.
더욱 열오른 배중사, 그 둘을 가차없이 다시 밟으려는데... 퍽! 깡통 하나가 얼굴에 맞는다.
배중사 : (돌아보는) 어떤 새끼야!
태호 : ...나다, 이 새끼야.
배중사 : (부라리는) 이게 서열을 뭘루 알구... 하극상이냐?
태호 : 아니... 파티다.
배중사 : (기다렸던 바, 비릿한 웃음) 정식으로 도전하겠다?
태호 : (분노와 투지로 이글거리는) 시간하고 장소 정해. 아주 개박살 내줄 테니까...
(돌아서서 조회장과 해진에게 다가가는) 빨리 병원부터.
새우처럼 웅크린 채 몸을 떠는 조회장.
해진과 영칠이 부축해주면, 태호, 조회장을 업는다. 썰물처럼 비켜주는 노숙자들.
52. 무료 병원 / 병실 ( 오전 ) -D16
조용히 잠들어 있는 조회장. 침대 옆에 서서 내려다보는 태호와 해진.
해진 : 어떻게든 부도는 막겠다구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공장에 불까지 나구...
하필 그날따라 마나님이 도시락 싸와서 기다리구 계셨대. 공장 안에서...
태호 : 그럼...
해진 : (착잡해지는) 사업두, 인생두... 그날로 잿더미된 거지, 뭐. 제정신으로 감당 안되니까
(자기 머리 톡톡 두드리는) 여기 어디가 합선돼버렸는데... 모르지. 백지수표 날리는 회장님 인생이 더 행복할 지두.
태호, 머리맡에 수첩을 들춰본다. ‘일억’ ‘십억’ ‘백억’ 한자와 숫자로 적힌 어마어마한 금액들.
수첩을 덮고, 조회장을 바라보는 태호.
태호 : 그래서...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그렇게 되는 거야?
해진 : 어쩌다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구... 대중 없어.
그때 문이 열리고 링거팩을 든 나라가 들어선다.
나라 : 환자분 쉬어야 되니까 그만들 나가세요.
(다가가서 조회장 살피다가, 주머니에서 삐져 나온 만원 끄트머리를 본다, 울컥 짠해지고) ...
태호 : 회장님... 잘 부탁합니다.
나라 : (표정 고치고, 링거팩 교환하면서) 조용히 쉬게 해주시면 도움이 더 될 거에요.
태호 : (쓰게 웃더니 문으로 가는)
해진 : (따라가며) 정말 배중사하고 붙을 거야?
나라 : (그 말에 돌아보는) ...?
해진 :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니까.
태호 : (담담하지만 각오한) 그래두 꿈틀대려구... 계속 밟히고 살긴 싫거든.
53. 더 클럽 앞 ( 저녁 ) -N16
실망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종구. 그러다 문득 길 건너에 클럽 입구를 본다.
미주 생각에 잠시 보다가 그냥 지나쳐가는 종구.
54. 할매 식당 ( 저녁 ) -N16
들어서는 종구, 가방을 대충 의자에 던져 놓고 털썩 앉는다.
한마디 퍼부으려고 내다보는 할매, 양복 입은 종구 보더니 표정 바뀐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인지 짐작하는...
평소와 달리 술도 안꺼내고 멍하게 앉아있는 종구.
할매가 소주병과 글라스 꺼내오더니 종구 앞에 앉는다.
할매 : (병을 따서 소주 따라주는) 쭈구렁탱이 할망구라두 잔은 여자가 쳐야 제맛인게... (종구가 피식 웃자) 얼라려? 시방 비웃냐?
종구 : (씁쓸히 웃으며 글라스를 비우는) ...
할매 : (짠하게 보다가) 고래심줄보다 질긴 것이 핏줄이여. 언제구 만나게 될 테니께, 너무 안달복달할 거 읎어.
종구 : (빈 잔을 물끄러미 보는) ...
할매 : (잔을 뺏으며, 짐짓 기운차게) 한잔 따라봐. 나두 목이 컬컬한디.
종구 : (그 마음 아는, 술을 따라주는데)
나라 : (드르륵, 문 열고 들어오다가) 할머니! 술 마시면 안된다니까!
할매 : (얼른 마시려고 입에 대는데)
나라 : (재빨리 나꿔채는) 아휴, 진짜! 젊어서 많이 드셨잖아요. 이젠 속 망가 지면 고치지두 못해.
할매 : (아쉬워하며) 요것이 손주딸년이 아니고 시에미다, 시에미!
종구 : (둘의 투탁거림을 미소로 보는데)
나라 : (문득) 아저씬 안갔어요?
종구 : 어딜?
나라 : 맨날 하는 싸움질 있잖아요. 무슨 검투사들도 아니구...
종구 : (표정) ...!
나라 : 근데 그 아저씬 정체가 뭐에요? 서울역에 싸우러 왔대요?
벌떡 일어나는 종구, 가방도 놔둔 채 황급히 뛰쳐 나간다.
55. 폐창고 안 ( 저녁 ) -N16
싸울 준비를 갖춘 태호. 맞은 편에 히죽거리며 서 있는 배중사. 군용 러닝셔츠 위로 드러난 근육이 우람하다.
예전에 들뜬 분위기였던 파티와 달리, 팽팽한 긴장감으로 지켜보는 노숙자들.
서로를 향해 한발씩 다가서는 태호와 배중사. 살기로 번득이는 배중사의 눈빛, 심상치 않게 씰룩이는 근육.
태호,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킨다.
태호 : (소리) 강하다... 예상보다 훨씬 강한 놈이야... 어쩌면... 난...
56. 폐창고 앞 ( 저녁 ) -N16
허겁지겁 달려오는 종구, 심각한 표정 위로... 태호 NA를 이어받는.
종구 : (소리) 어쩌면 너... 오늘 죽는다...
57. 폐창고 안 ( 저녁 ) -N16
빈틈을 발견한 배중사가 쇄도한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는 태호. 그와 동시에 창고로 들어서는 종구.
일격 날리는 태호와 놀란 종구 얼굴이 한 화면에 박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