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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중학교 학부모 독서토론회에서 함께 할 두 번째 책은 도서출판 이매진 간「골목을 걷다, 이야기가 있는 동네 기행」이다. 이 책은 사실 토론용의 책은 아닌 거 같다. 책상 앞에서의 토론보다는 직접 그 골목을 걸어보고 느껴보는 것이 백번 마땅하다.
그래서 우리 독서토론회 어머니들은 4월 마지막주 목요일, 책 속에 나와 있는 26개의 골목 중 몇 곳을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영남일보 기자 여섯 명으로 구성된 '골목길탐사팀'의 공동 작업으로 나온 책이다.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소개글을 올려본다.
『골목을 걷다』.기어이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누군가의 눈에는 ‘우리 동네의 보잘것없는 골목’은 빨리 개발을 해야 하는 곳일 것이다. 이 책은 역사와 사람을 고스란히 품은 우리 동네 골목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네 골목에 담긴 사람과 역사의 숨결을 느껴본다.
‘좁고 낡고 불편한’ 골목을 ‘넓고 새롭고 편리한’ 아파트 단지와 주상복합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유행’인 시대, 600년 역사의 피맛골도 가뿐하게 재개발하겠다는 요즘, 무심코 지나치던 우리 동네 골목을 새삼 돌아보다가 그 매력에 푹 빠져든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구에 있는 영남일보 기자들이다. 여섯 명의 기자들은 9개월에 걸쳐 대구 구도심인 중구의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겼으며, 그 중 스물여섯 곳의 이야기가 '골목을 걷다'에 담겼다.
-골목을 걷다, 책 소개글 옮김-
아침 9시 30분, 서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두 가벼운 차림과 밝은 얼굴로 제 시간에 모여주어 골목길기행은 가뿐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13명 전원 출석이다.
미리 이 곳을 한 번 다녀간 어머님이 있어 이날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아 주어 한결 길 찾기가 쉬웠다.
책에서는 90계단을 오르는 길부터 나왔었는데 우리는 동산병원으로 곧장 들어갔다.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바람이 살살 불어 조금 추운듯한 날씨였지만, 저 자세들을 보라,
눈바람이 몰아친데도 강행군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다.
동산병원 구내를 잠시 오르자 한 눈에도 알아 볼만한 풍경이 바로 나타난다.
의료선교박물관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100년 넘은 사과나무가 서 있다.
제중의원(동산병원) 초대병원장이었던 우드브리지 존슨박사가 심은 사과나무 여러 그루 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대구 사과나무의 시조격인 나무의 2세라고 하니 우리의 근대사와 함께 한 나무이다.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었던지, 나무는 시멘트로 속이 채워져 있다.
그래도, 잔가지에는 연두빛 새잎이 빽빽이 돋고 있다.
온 몸을 다 내어주고도 더 줄게 없어 안타까운 고향집 노모같은 나무,
그 엉클한 나무를 건웅이 어머님이 애잔히 들여다 본다.
-동산의료원의 옛현관
개관 시간보다도 좀 일찍 도착했지만 관리인이 들어와서 관람을 하라고 한다.
'잘 가꾼 자연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선교박물관이다.
그냥 선교가 아니라 그 시절의 선교는 의료 시술을 통한 선교였다. 그래서 의료선교로 불리기도 한다.
선교사들이 세운 영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지금의 동산병원이다.
그 시절 선교사들의 저택인 이 곳 박물관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지금은 유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선교박물관을 나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간다.
가늘 길에 마주친 이 대나무에도 사연이 있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집을 지으면서 다 캐어냈다는데, 몇년 전 다시 죽순을 틔워 울창해졌다고 한다.
왜 캐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주위와도 잘 어울리는 대나무였다.
선교사 쳄니스 주택이라는 의료박물관은 외관도 예뻤지만 2층 내부가 단아하니 참 예뻤다.
1층은 의료 박물관으로 되어 있으며,
2층은 선교사 가족이 살던 살림집으로 꾸며져 있다.
찬장에는 꽃무늬 찻잔이 있고,
베란다 밖으로는 동산의 꽃들이 그대로 내다 보인다.
지금 생활해도 부족함이 없을만치 가구며 집기들이 정갈했다.
의료박물관과 교육 역사 박물관 사이에 가곡 '동무생각'의 노래비가 서 있다.
세 채의 선교사 주택이 서 있는 이 동산이 바로 가곡 '동무생각' 에 나오는 청라언덕이다.
청라는 푸른 담쟁이를 뜻한다고 한다.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가사 속의 백합은 작곡가인 박태준씨가 좋아했던 신명여고 여학생을 뜻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작사자인 이은상씨가 작곡자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가사를 써 주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우리도 합창으로 '동무생각'을 불렀다.
그리고 시비를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겼다. ^^*
어디를 둘러봐도 참 예쁘다.
집이 예쁘고 정원이 예쁘고 그 사이로 난 길이 예쁘다.
??
모두 무얼 보고 놀라는지?
축축 늘어진 등넝쿨이 장관이다.
여느 등나무꽃은 송이가 굵직한데 이 등꽃은 가냘퍼 보일 정도로 가느다란 느낌이다.
줄줄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라색 하늘한 베일처럼 보인다.
이제 교육 역사관이다.
블레어 주택으로 불리는 곳이다.
1층은 생활관, 2층은 3.1운동 기념관이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추억 속의 물건들이 보인다.
우리의 근대사를 여러 주제로 모아 놓은 이 곳,
아이들을 데리고 후일 다시 와 봐야겠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대구에 수십년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니까, 옆에 계시던 어느 거사님,
자기는 코앞에 살았는데도 몰랐다고 한다. 저곳이 뭔가 하고 늘 궁금했는데,
오늘 보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자기도 들어와 봤다며, 바로 옆 계성고등학교 선생님이란다.
전시관 세 곳을 모두 돌고 나왔다.
청라언덕 아래에 선교사들의 묘비가 서 있다.
도심 한 가운데이지만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듯 느껴진다.
먼 이국의 동산에 고이 잠드신 이여, 평안하소서.
간간이 들리는 앰블런스 소리만이 이곳이 병원임을 상기시킨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과 닮았다고 해서 이 길을 '대구의 몽마르뜨'라고 책에서는 이름을 붙여 놓았었다.
저 위로 보이는 건물은 대구 제일교회, 규모가 엄청 크기도 했지만 건물이며 조경이 참 아름다웠다.
이 길은 3.1운동이 시작된 일주일 뒤인 3월 8일,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문시장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지나가던 길이라고 전해진다.
날씨가 좀 쌀쌀하기도 했고, 좀 쉬고싶기도 해서 우리는 찻집을 찾았다.
이곳은 제일교회에서 운영하는 커피점으로 인테리어며 분위기가 고급커피점 못지 않았는데
가격은 2천원 넘는 메뉴가 없을 정도로 아주 저렴했다.
각각 취향에 따라 여러 종류의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우리, 어디를 봐서 두번째 만남 같은가?
내 눈에는 딱 십년지기처럼 보인다. ^^*
커피점 맞은 편에 계산성당이 있다.
영남지역 최초인 고딕양식의 성당이라고 되어 있다.
골목을 걷다에 나오는 골목들은 거의가 대구시 중구의 골목길이다.
중구는 오랫동안 대구의 중심이었다.
문화, 예술, 경제의 중심엔 중구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 길을 따라 한창 번창했던 때의 대구를, 드물게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느껴보고 싶었다.
마침 미사가 올려지고 있는 계산성당,
유리문 안으로 들여다 본 광경이다.
지붕이 높아 실내는 더욱 장엄스레 보인다.
은은한 조명과 스테인드글래스가 잘 어울린다. 기도에 방해가 될까봐서 우리 일행은 얼른 돌아서 나왔다.
계산성당을 나와 이번에는 이상화고택을 향했다.
골목을 몇 굽이 돌자 깔끔하게 정돈된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가자 이상화고택이 있다.
고월이장희, 작곡가 박태준 등 동시대를 살다간 대구의 예술가들이 많지만,
대구출신의 시인으로 유난히 잘 기억나는 시인이라면 누구든 이상화시인을 떠올리게 되는데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제목만으로도 금방 기억해 내는 그의 시 덕분이 아닌가 싶다.
시인은 이 곳에서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사셨다고 한다.
이 곳에서 마지막 작품을 썼으며, 이 곳에서 43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1960년대에 이 집을 샀던 분이 이상화고택임을 알게 되어 집을 뜯어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집은 크지 않은 규모로 단아했다.
-이상화 고택에서
남아 있는 집기들이 반들 반들 윤이 난다.
잘 관리되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해설사의 설명으로는 마당의 저 석류나무는 수령이 백 년을 넘겼을 거란다.
모두들 열심이다. 경청하고 받아 적고..
그리고 시비 앞에서 옛시인을 만나고...
다음은 바로 이웃한 서상돈 고택이다.
이곳은 서상돈고택으로 되어 있지만 그 분이 살았던 집은 아니라고 한다.
국채보상운동의 거장인 서상돈을 기려 대구시에서 이곳에다 집을 복원해 둔 거라고 한다.
-서상돈 고택 바로 옆에 울타리 치고는 너무너무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다음은 인접한 약전골목으로 가 본다.
약령시한의약문화관,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큰 한약재 도매시장인 대구약령시를 기념하는 문화관이다.
무려 400년 전통이라는데,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잘 꾸며놓은 약령시의 역사, 문화관이다.
보여주는 전시 뿐만 아니라, 직접 체험해 보고 공부해 보는 코스가 많아 흥미롭기도 했다.
-약령시 모형
-약재를 달던 약저울
-약재를 썰고 다듬는 과정
-약을 달이는 모습
-약재를 뿌리, 가지, 꽃, 열매, 광물, 등등으로 나누어 전시해 놓은 것 중, 열매부분.
-약방에 감초라는 그 감초, 처음 보는 감초라 보쌈해 옴.
ㅎㅎ
한 잔씩 마셔도 되는 코너이다.
약차인데 이름은 십전대보탕. 표정을 보니 달지는 않은 모양.^^*
구경 잘 하고, 한약으로 만든 초코렡이며 젤리, 향주머니 등을 하나씩 사고는 다음 장소인 진골목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약령공원
이곳은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테마가 붙어 있는 대구 종로이다.
조선시대 행정과 치안의 중심지에서 근,현대는 상업중심지로 변모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다니면서 새삼 느낀 것이, 그동안 대구시에서 골목길 개발을 참 잘 해놓았구나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무심히 그냥 지나쳤을 길인데, 책의 자세한 안내 덕분에 의미 있는 길이 됐다.
떡골목, 도자기 다기 골목 등 볼거리가 참 많은 길이다.
진골목이 목적지인지라 부지런히 걸었더니 바로 옆이다.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말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길다'를 '질다'고 한다.
질따란 골목이 진골목이다. ^^*
-진골목 간판 앞에서 회장님과 총무님
길기는 했지만 그리 좁은 길은 아니었다.
이 길은 높은 건물이 없어 아기자기했다.
향수가 물씬한 간판을 단 식당과 벽돌담, 돌담이 번갈아 나온다.
책에 소개되었던 그 진골목식당에서 육개장과 육국수와 콩나물밥을 먹었다.
식당 내부는 손님이 많아 사진을 담지 않았다.
이렇게 옛스런 골목에도 손님이 있을까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식당은 거의 만원이었다.
우리처럼 책을 통해 온 손님들인지, 본래부터 있던 단골들인지, 하여튼 식당은 분주했다.
오후 일정은 없다.
이제 집에 가면 된다.
그냥 가기가 아쉬워 쳐다보니 책에서 봤던 '정소아과의원'의 간판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지금은 병원문을 닫았는지 사람의 기척도 없고, 2층은 어느 상사의 간판이 걸려있다.
이곳 정소아과병원 건물은 대구 최초의 2층건물이라고 한다.
정소아과 담장은 세월이 흘렀지만 참 견고해 보이는 붉은 벽돌이다.
훼손되지 않고 오래오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든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이고, 손 안에서 지구촌의 모든 정보를 찾아보는 세상이지만
가끔은 질주를 멈추고 몸도 마음도 조용히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이 곳 중구의 골목에서 세월을 좀 거슬러 보면 좋겠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많은 골목이 남아 있어 나는 지금 기쁨을 잔뜩 저축해놓은 기분이다.
-대구골목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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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대구골목기행을 다녀왔다.
단체 사진 속에 단 한 컷 내 사진도 있어. 궁금한 사람은 찾아봐~^^*
유난히 초롱초롱하고 까맣던 눈망울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는데도 여전하네 ㅎ
그렇지 않아도 혹시 사진에 있을까? 찾고 있었는데... ^^*
찍는 역할이다 보니 내 사진은 어디든 좀 드물어. ^^*
알아는 보겄냐? ㅎㅎ
꼭꼭 숨어라 머리 카락 보인다 ~~~~
단체사진에 앞열 안좌 있는 사진에 옛 모습이 .....
부군 박 사장님은 잘계신감요....
초롱 초롱 알차게 도시탐방 글들을 제가 다녀온 모습으로 글을 감동 깊게 읽고 갑니다
내 곁에 우리 주변에 있는것이 무색 해지는 요즘 ....
내실있는 탐방을 동료 학모님들과 잘 하셨네요
잘 있음. ^^*
TV에서 대구를 소개할라치면 꼭 나오던 골목골목이네
귀순이 덕에 눈도 즐겁고 마음의 양식도 얻는다
청라언덕이 무슨 언덕 이름인줄 알았는데 그게 담쟁이 넝쿨 이구나
고등학교때 교목선생님의 전도로 잠시 다녀봤던 제일교회,예배 마치면 우루루 몰려다니던 진골목
혼자서 다니기도 비좁던 골목길이었는데 약간의 보수가 있었나보다
그러니까 동산병원이 있는 그 동산이 청라언덕이지. 아직도 담쟁이가 많이 남아 있더라~
진골목의 그 유명한 미도다방을 가보고싶더라만 미리 차를 마신 뒤라 못 가봐 아쉬웠다.^^*
보리, 젊은 엄만들 모임 있으면 앞으론 나 같은 낙동강 오리알도 좀 불러주길. 하다못해 짐을 듣다든지 심부름을 한다든지 하며 기여를 할테니. 저 능금나무로 말하자면 나도 능금을 좋아해 몇 번 가 보았구만. 1900년에 존슨(장인차)이 미국갔다가 72포기의 묘목을 가져와 심으면서 대구가 능금의 도시로 발전했다는구만. 저 능금나무는 70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처음 72포기 중의 한 포기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하는데, 접 붙이기를 한 것인지 씨를 받은 것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두만. 하여간 대구가 능금의 도시로 유명해지고 대구 여인들이 능금 아줌마로 이쁘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도 110년 전의 어느 코쟁이 덕분이라니 역사의 아니러니.
그리고 저 '담쟁이 언덕'으로 말하자면 본인도 더러 가 본 곳인데, <동무생각>이 새겨진 시비는 그 밑에 있지. 계성고를 다녔던 박태준이 저 언덕을 넘어 다니던 어느 신명여고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그 여학생이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백함인듯 고왔다는구만. 헌데 박태준은 그 긴 세월 동안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고 말 한 번 붙이질 못했다지. 누구처럼. 나 중에 그 사연을 들은 마산 출신의 이은상 시인이 즉석에서 시를 지었는데, 그게 <동무생각>이고. 말이 동무지 다 큰 처자였고 힌 카라 교복의 그 처자에 대한 연모를 백합에 빗대어 놓은 거고. 내 다시 청함은, 대구 주변에서 유사한 모임있으면 이 몸도 불러주길. 보시하는 마음으로.
아이 학교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학부모독서토론 모임이야.
6월 초엔' EBS 지식채녈e'의 김이중PD를 초청해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고,
2학기엔 문학기행이 준비되어 있어.
외에는 매달 두 번 모여서 책상앞에 앉아 읽은 책 토론하고 그러는 모임이지.^^*
나하고는 거의가 10년 이상 차이나는 젊은 엄마들이 맞아.
'골목을 걷다' 그 책에 소개된 대구 중구 일대 골목이 26곳이더라. 삼덕동 일대를 꼭 가보고싶은데 그때 연락할까? ^^*
끝내 한 번 오라는 말은 안 하는구만 흐ㄱ흐ㄱ.
^^*
예전의 경규는 부끄럼도 좀 탔던 거 같은데 이젠 낯선 아짐들도 안 무섭다 이거네? ^^*
좋아, 우리도 골목기행 한 번 하자!!^^*
이 나이에 부끄러워하고 젊잔부리고, 그런 거 연출할 때는 지났지 않겠나. 망가질대로 망가졌고 받을 상처는 대체로 받아놨다. 낯설어봐야 아줌마는 아줌마, 잡아먹길 하겠나 무섭긴 무가 무섭노, 신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나의 꿈인데, 도전은 각오해야지. 날 한 번 찍어보길! 관련 한량들 불러 말걱리라도 한 잔 해야지 않겠나.
시끌벅적 왁자지끌, 보리 덕에 내 눈이 즐겁고 마음 더 환하다.
어제 잔치가 있어 한양갔었다. 갔다 하고 말이지.
서울 친구들 생각나더라. 사진에서 본 말순이 얼굴도 왔다
경규와 울 소중에서 3층 도사관 드나들든 옛 문예반 번개 팅이라도 한번 걸어 볼까나 귀순님이 허락 하시면 6~7명 선에서는 번개가 가능 한디~~~ㄱㅇ규와 귀순님의 동의가 필요한듯~~~ 뎃글 달아 보삼 조망간 지기가 주선 하리다...
박수~!!!!!!!!!!!!!!!!!!!!!!!!!!!!!!!!!!!!!!!!!!!!!!!!!!!!!!!!!!!!!!!!!!!!!!!!!!!!!!!!!!!!!!!
내밀한 남녀의 만남을 문예미팅으로 확대하겠다고? 좋은 아이디어이네. 실은 나도 젊은 엄마들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다만 이제 술이 없이는 문심이 발동될 나이가 아니므로, 술과 문예와 추억을 맞춰야하지 않나 싶네. 보리는 어차피 약속을 했고 언덕빼기 모여인도 관심을 보인 바 있으니, 문예 번개팅도 가능할 것 같네. 보리는 자작시 한 편, 희숙이는 빛바랜 편지 한 장, 누구는 음담 한 수 프레젠테이션한다든지 하면서.
오월은 집집마다 행사가 많아 모이자고 하기도 미안하고, 모이자고 할까봐도 겁나고 그렇네.^^*
치면 가서 잘 꿉혀봐야지
그래도 약속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