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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어느 날 조선일보에서 실로암안과병원장 김선태 목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소개했다. 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그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부모님과 집이 송두리째 폭격으로 사라진다.
일순간에 고아가 돼버린 김선태는 난리 중인 서울에서 편안히 누울 잠자리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불발된 포탄을 발견한 친구들은 호기심에 포탄을 갖고 장난을 친다.
그때 김선태는 친구들과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갑자기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포탄은 터졌고 친구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김선태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장님으로 살면서 그가 겪어온 생존의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험난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그리고 그런 비참한 생애가 역설적으로 위대한 삶으로 다가왔다.
고난과 시련은 김선태라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었다. 모든 선각자들의 삶이 그렇듯 김선태는 바로 그런 고행을 이겨낸 선각자였다.
한 인간의 삶이 만인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삶이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 이겨내 눈앞의 고통을 미래 영원한 행복으로 바꾸어냈다는 사실에 있다.
모든 선각자들의 고난에 가득 찬 삶은 그 자체가 만인에게 교훈이며 감동이고 깨달음을 준다. 나는 김선태라는 한 자연인을 찬탄하고 싶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경험한 삶은 특별하지만 그 자신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겪어낸 삶의 용기와 인내, 희망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의지는 만인에게 귀감이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개안을 도와주면서 정작 자신은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서 있다.
김선태 목사. 그의 생애를 서사시로 남긴다. 이 시를 쓸 수 있게 영감을 주고 자료를 주신 조선일보 기자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시를 두 분에게 바친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눈
-실로암 안과병원장 김선태 선생님에게-
이 남천
이 세상을 가장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구 실로암 안과병원>
<현 아이센터 신축공사장>
2009년 10월
아이센터(Eye Center)가 그 커다란 눈을 뜨면
동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길고 긴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눈부신 세상을 활짝 열어 보이리라
<아이센터>의 가장 낮은 자리 인
센터 운영 책임자
<구 실로암 안과병원장> 김선태는
1941년 경주 김씨 가문의 3대 독자로
서울 신당동에서 옷 장사하는
부모님 아래 태어나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다
1950년 6월 25일
북쪽에서 이념을 달리하는
같은 민족의 다른 군복을 입은 무리들
물밀듯이 남한으로 쳐들어오는
동족끼리의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이 시작된 지 열흘째 인
7월 4일
친구들과 어울려 동구 밖 야산에서
군인들 전투 흉내 내가며
한참을 놀고 있을 때
선태의 귓가에 들려오는 폭발음
그 굉음을 쫒아서 집으로 달려와 보니
부모님과 함께 오붓하게 살던 집
시커먼 연기와 함께 폐허로 변해있고
그 안에 장사하고 계셨던 부모님
당신들의 유골조차 남기지 못하신 채
온데 간 데도 없다
무학국민학교 4학년 김선태
갑작스런 고아가 되어
전쟁터의 한가운데 남게 되었고
똑같은 운명에 내던져진
학교 친구 여덟과 무리를 지어
왕십리 밭둑을 쏘다니며
설익어 비릿한 콩을 주워 먹고
한강변 뚝섬의 참외밭에서
노란 참외, 설익어 푸른 참외
가리지 않고 서리해 먹으며
굶주림을 달래야 했다
산등성이 너머로
밤마다 붉은 빛 번쩍이며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는
무섭고 불길하기만한 여름밤
밭고랑에 내던져진 돌멩이 되어
누워서 올려다 본 하늘엔
그래도 은하수는
눈이 시리도록 찬란하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친구들과 낮에는 강변에서
부들열매를 꺾어서
총 모양을 만들어 전쟁놀이 하고
땡볕에 온몸이 땀에 젖으면
한강물에 텀벙 뛰어들어
미역을 감다가
송사리나 발목 사이 지나는 붕어들
어떻게든 잡아 보려고
허탕을 치다 지치곤 했다
그러다 허공을 난도질해대는
인민군 따발총 소리 들리면
황급히 풀숲으로 몸을 숨기며
놀란 토끼마냥 주위를 살펴야 했다
7월 18일
들판에서 잠을 자며 돌아다닌 지
열나흘이 지났을 때
뚝섬 밭에서 나 혼자 멀찌감치
수박을 서리하고 있을 때
친구들 여덟 명은 한곳에
동그랗게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며
수군수군 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북한군 전투기가
떨어트려 놓고 간 불발탄!
다음 순간, 고막을 찢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선태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아.......눈을 떴으나
캄캄한 어둠 속!
눈을 다시 크게 뜨고
세상을 보려 했으나
눈꺼풀은 천근만근
거대하게 가로막힌 어둠을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단지 어둠의 깊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체온처럼 따뜻한 아저씨의 목소리
<천만다행이구나, 목숨은 건질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구나, 네 친구 여덟 명은
모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단다>
<천만다행이구나, 하늘이 너를 도우셨구나>
하늘이 도우셨다니요...........
세상이 온통 캄캄해요!
푸르게 넘실거리던 한강물은 어디 있나요?
파란 하늘에 갖가지 모양으로
떠다니던 구름들은 어디로 갔나요?
두근두근 심장 소리는 들리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망망한 이 어둠 속에서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유일한 친인척 고모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주를 찾아가야만 해요>
나를 살려준 목소리에게 이렇게 간청하니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한강변까지 인도해준다
술렁거리는 사람들 긴장된 소리 사이로
찰박찰박 나룻배에 강물 부딪는 소리 정겹다
술래잡기하듯 배의 짐들 사이로
내 몸은 꼬옥 숨겨지고
나를 인도하던 따스한 마지막 목소리
<양주에 꼭 찾아가길 바란다!>
전투기 엔진 소리 날카롭게 창공을 찢고
어둠 여기서 저기로
허공을 베어내듯 총소리 날아다니는데
뱃전에 와 닿는 찰박찰박 그리운 물소리
정겨운 그 소리에 마음을 담그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한강을 건너간다
이십 일 동안
백리 길을
캄캄한 눈앞의 어둠
딱정벌레처럼 더듬어가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비릿한 물 냄새 풍기는 곳 찾아
논고랑 뻘 뒤져 우렁이 잡아먹고
개울가 영롱한 물소리를 찾아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
타들어가는 목숨을 적셨다
길섶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
양주 가는 길을 물으면
모두들 혀를 차며
그곳이 어디라고 그 몸으로 가느냐고
그래도 친절하게 앞길을 일러주지만
내게는 첩첩한 어둠의 산과 골짜기
오로지 가는 방향만 틀리지 않기를 바랄뿐
길섶을 더듬다가
데굴데굴 비탈길로 나뒹굴고
발을 헛디뎌 발목이 접질리고
돌부리에 걸려 나자빠지면
다시금 쓰라린 무릎을 일으켜 세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길가의 풀숲에서 지친 몸뚱이를 누이면
저녁나절의 쓸쓸한 풀벌레 울음소리에
저절로 마음의 눈은 감기고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한 어린 소년
더구나 두 눈까지 먼
상거지 꼬락서니의 어린 소년이
불행히도 자신의 조카란 사실에
고모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고 실망했지만
저렇게라도 버티고 살아나
서울에서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차마 문전에서 쫒아낼 수는 없었다
전쟁 중이라 가뜩이나 먹을거리도 부족한데
제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천애의 고아가 돼 버린
일도 못 시켜 먹을 장애인이
고모라고 믿고 찾아와 눌러 앉았으니
고모의 눈에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눈엣가시요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요
울화통 두들겨대는 애물단지였다
<소는 눈이 있어 일하고
개도 눈이 있어 집을 지키고
나중엔 잡아먹는데
너란 놈은 밥 먹는 버러지에 불과한 놈>
<이런 급살 맞아 죽을 놈>
<이런 벼락 맞아 뒈질 놈>
제 집에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고모는 부아가 나고 약이 올라서
틈나는 대로 욕을 퍼붓고
그것만으로 분이 안 풀리면
가시 잔뜩 돋은 아카시아 나무 잘라다가
조카의 여윈 몸에 매질을 해댔다
가시에 온몸이 찔려 피투성이가 되면
고모는 그때서야 매질을 멈추고
일그러진 양은그릇에 개밥처럼
삶은 감자 한 알을 던져 넣었다
친구들과 함께 들판에 누워
밤을 지새우던 시절
밤하늘을 가득 메웠던 은하수처럼
소년의 눈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방울은
어둠 깊숙이 알알이 흘러들어
찬란한 슬픔의 빛으로 떠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집안에 난리가 난 듯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니
눈앞에 갑자기 벼락이 치는 듯
고모의 불같은 손바닥이
소년의 볼을 내갈기고
돈을 훔쳤다고 도둑놈이라고
갈아 마실 듯 고함을 질러댄다
두 손으로 싹싹 빌며
그런 일 없다고
돈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른다고
소리소리 질렀지만
온 가족이 한통속 되어
외사촌에게 누명을 씌운다
이미 제 정신이 나간 고모는
부지깽이를 아궁이에다가
시뻘겋게 달궈서는
조카의 피멍든 팔뚝에다 지져댄다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와
눈앞에서 불타는 어둠이
하얗게 재 되어 날아가는 듯한 충격에
어린 소년은 까무러치고 말았다
자신의 큰딸이 저지른 짓으로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고모는 자신의 행위를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야수 같은 날들은 지나고
어느새 겨울은 닥쳐왔다
전세(戰勢)는 갈수록
북조선 편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그 해 12월 23일
고모네 가족들도 모두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했고
가족 모두가 모인 자리
고모의 무서운 말이
문풍지에 바람 새듯 들려왔다
<저 녀석을 집에 둘 수도, 데려갈 수도 없으니
내일 아침 평소보다 밥을 두 배 주면서
빨래하다 남은 양잿물을 밥 속에 넣어
죽여버리자>
겁먹어 눈물마저 목에 걸려버린 어린 소년
그날 한밤중
고모가족들 모두 깊이 잠든 시간에
참담한 암흑의 이승에서
의지할 데라곤 오직 하나뿐인
고모 집을 빠져나와
칼바람 휘두르는 어둠 속으로
멀리 멀리 도망쳐야만 했다
살갗을 파고드는 겨울바람
헐벗고 굶주린 소년의
온 몸을 매질하며 지나가고
쩍쩍 손끝에 달라붙는
얼음장 같은 허공 짚어가며
허우적허우적 앞으로 더듬어 나가다
간신히 붙든 정자나무 밑동
속 빈 줄기 안에 등걸잠을 청하니
나무기둥이 바람막이 되어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피난민이 흘리고 간 건지
폭격을 맞고 버려진 건지
길바닥에 나뒹구는
깨진 살림살이 더미에서
간신히 놋대접 하나 주워들고
사람 소리 나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동냥을 구하니
동전을 집어주는 사람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고함지르는 사람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집을 알려주는 사람
먹지도 못할 찌꺼기를 담아주는 사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마음들이 환히 보이는 구나
옷가지를 챙겨 주는 사람
입던 옷마저 벗겨가는 사람
집에 들여놓고 따뜻한
아랫목을 양보해 주는 사람
놋그릇에 밥 퍼준다고
냉큼 들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
시체 든 관에 잠을 자라고
놀리고 장난치는 사람
백 명의 사람마다
백 가지의 마음이 보이는 구나
동상으로 간질거리는 발가락을
밤새도록 벅벅 긁어대고
씻지 않은 몸에선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죽을 뻔 했던 고모 댁을 벗어나와
여기까지 와서 죽을 수는 없다고
이 악물고 썩어가는 몸뚱이
개처럼 제 혀로 핥고 씻으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어떻게든 남쪽으로 남쪽으로
후퇴하는 군인 행렬을
뒤따르기도 하고
피난 가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기름방울처럼 섞여 떠밀리기도 하면서
선한 사람들의 동냥을 받아가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육지의 남쪽 끄트머리
부산까지 내려왔다
자갈치 시장에서
배추꼭지 무청 주워 모으고
동냥깡통에 생선대가리 닭 내장
차곡차곡 채워 넣어
개천다리 가마니촌 움막에서
거지들 피워놓은 불에다
팔팔 끓여 골고루 나눠먹으니
동냥 잘해오는 거지라고
왕초거지로 따르는 구나
얻어 온 음식이든 돈이든
왕초거지 정직하고 의로운 소년이라
자기를 따르는 거지들에게
항상 공평하게 나눠주니
내초거지, 초초거지, 신초거지, 똘마니까지
줄줄이 꿰여서
왕초거지 따라 교회까지 따라다니는 구나
교회도 교회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있어
동냥하러 온 거지라고
내쫒기부터 하는 교회
깨끗한 돈을 곱게 펴서
헌금하면 받아주는 교회
옻이 올라 온몸이 진물에 절어 나타나니
나병환자라고 내쫒는 교회
그래도 어릴 적 가본 교회가 좋아서
비록 거지지만
왕자거지라고 으쓱대며
이 교회 가서 위로 받고
저 교회 가서 구박 받고
그 교회에서 내 쫒기면
다른 교회 문을 두들겨
동냥한 돈 깨끗이 펴서
왕자처럼 당당히 들고 갔다
어느 날 부하 거지들
서울로 가자하니
서울 가면 미군부대 많아서
얻어먹을 것 많고 돈도 많이 번다고
왕초거지 김선태
망설이고 고민하다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까지 왔다
역에서 그만 인파에 휩쓸려
부하거지들과 헤어지고
무수한 사람들의 말소리만 가려듣다가
미국사람 말소리 들려 귀를 세우고
가까이 다가가<플리즈 헬프 미>하고
주워들은 영어로 말하니
친절하고 의로운 미군병사
불쌍한 어린 소년을 부대로 데려가
씻겨주고 입혀주고 병원에 보내
치료까지 받게 해 주는구나
영등포 우신국민학교에 있는
이탈리아병원에서
생전 처음 따뜻한 밥과 국을 먹고
짐승처럼 학대받아 아물지 못한 상처
말끔하게 치료받으니
이 세상이 곧 천국과 지옥
함께 있음을 알겠다
병원 치료 끝내고
삼애고아원에 데려다 주니
착하고 의로운 미군병사와의
아름다운 인연도 다 된 듯
뜨거워지는 마음에
서운한 눈물 왈칵 쏟았다
삼백 명이 모인 삼애고아원
삼백 가지 서로 다른 마음이 있어
눈이 되겠다며 길 앞잡이 해주는 고아
지나가는 발걸음에
딴죽 걸어 넘어트리는 고아
자신의 먹을 걸 덜어주는 고아
누가 때린 줄도 모른다며
틈나면 때리고 밀치고 오물을 끼얹고
착한 고아들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고 비열한 고아들의 뭇매에
더는 견딜 수 없어
삼애고아원을 도망쳐
또다시 거지로 돌아갔다
거리로 뛰쳐나와 혼자되니
맞지 않고 살 수 있어 좋지만
잠깐 동안 맛본 처마 밑이 그리워
헐벗은 하늘 아래
이슬 맞고 지새우는 밤이 서러웠다
국제극장 뒷골목에 박스며 가마니 주워
집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데
거지 소탕령이 덜컹 내려와
완장 찬 아저씨들 호루라기 불어대며
거친 손아귀에 붙들려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니
땀과 눈물 냄새 가득한 부랑아수용소에
짐승처럼 몰아세워졌다
다행이도 그곳에선 질 좋은 거지라고
도둑질하는 아이들 무리와는 떼어놓더니
서울에서 다시 부산으로
질 좋은 고아원이라며
궤짝처럼 옮겨다 놓는 구나
새로 옮겨진 고아원은
고아들이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태를 불쌍히 여겨주고 도와주니
여러 사람이 있어도
마음이 하나 일 수 있음을 알았다
그곳에서 라이트하우스라는
국민학교에 보내주니
마침내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이트하우스는
맹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학교여서
열심히 점자를 배워 4학년 편입하고
한 학기 다시 배워 6학년으로
월반하는 우등생 되었다
하지만 학교에도
선생님마다 서로 다른 마음 있었으니
여학생을 성희롱하는 선생님
욕설을 퍼부으며 매질하는 선생님
학생을 편애하며 불공정한 선생님
열 사람의 스승에게도
열 가지의 다른 마음이 있음을 알았다
어느 날
선태를 미워하던 양 사감님
송도 유원지에서 안마를 해보라며
대나무 피리를 준다
맹인 안마사들은 모두
대나무 피리를 불며 다니는데
그러면 손님들이
안마쟁이를 불러 안마를 받는다
안마쟁이로 나서면 돈은 잘 벌지만
어른들이 안마사들에게 하는
못된 짓들을 알게 되니
앞으로는 절대
안마사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 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도
자기 밥그릇에 대한
눈뜬 자 못지않은 집착이 있어
어린 안마사가
어른 안마사에게 잘못 걸리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얻어맞게 되는 것이 무서워
절대 안마사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 한다
눈을 뜨게 해준다는
대부흥기도회가 있어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수만 인파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박태선 장로가 해주는
안수기도를 받으려고 갔더니
안수기도 한다는 짓이
느닷없이 무쇠몽둥이 같은 팔을 휘둘러
어린 선태의 뺨을 후려치니
하마터면 귀까지 멀 뻔 했구나
부산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 와
1955년 효자동 맹아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역시 눈 먼 선배란 자들이
자기 앞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몽둥이 하나는 귀신같이 찾아
후배들을 수시로 때려잡았다
잡초처럼 모질게 살아 온 인생
여간한 매 앞에서도
오기를 부려 참고 이겨내며 살다보니
마침내 내 생애의 은인
알렌 클라크 선교사를 만나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당당히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학생 삼천 명 가운데
유일한 장애인 김선태를
그곳의 학생들 한 마음으로 아껴주고
서로 선태의 눈이 되 주려 애를 쓰니
삼천 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의롭고 친절한 한 사람과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이제 어느 누구도 앞 못 보는 ‘특별한 학생’
김선태를 손대지 못했고
왕자처럼 떠받들어 주어
숭실고등학교로도 무사히 진학해
계속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대학 진학을 위한 원서를 내었더니
시각장애인은 대학에 갈수 없다고
정부에서 기각통보가 왔다
어리지만 의로운 청년 선태
그날부터 잘못 된 교육제도에 항의하며
문교부 대학교육장과의 면담을 청했다
대학 진학을 위한 방문투쟁이
서른 세 차례나 계속되었지만
대학교육국 장학관은 철저히 무시했다
마침내 몸 안에 식칼을 품어 안고
서른 세 번 째 최후의 면담을 각오하고
목석같은 장학관에게 달려들면서
<당신 같은 사람은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끌어내리는 적이요>
<차라리 나와 함께 죽음의 길로 갑시다>하고
분노한 칼을 휘두르니
장학관 겁이 나서 줄행랑을 치고
이 모양을 본 기자들이 신문에다
이 사실을 낱낱이 실어주니
학생 김선태 갑자기 유명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같이 의롭다 칭송하는 구나
마침내 문교부장관 특별명령으로
시각장애인도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불굴의 의지로 대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숭실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 맥코믹대학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아
이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
눈을 뜨게 해주려는 일념으로
실로암 안과병원을 창립하고
가장 낮은 자리 인 병원 운영자 되어
맹인들의 살아있는 눈이 되니
1972년부터 지금까지
삼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사십만 명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는
의롭고 선한 목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눈 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었듯
예수께서 실로암에서 그렇게 했듯
김선태라는 의로운 한 사람이
죽음보다 더한 고난과
지옥 같은 암흑의 시련을 이겨내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눈
가진 사람 되어
어둠에 갇혀 사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자들에게
진실한 선함과 자비를 여는
깨달음의 열쇠 쥐어주고
캄캄한 어둠에 막힌 불행한 사람들
찬란한 하늘의 빛을 열어 주는 자 되었으니
정작 본인은 영원한 어둠 안에서
이 세상을 밝히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 되었구나
진실로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전 인류를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음을
한 사람의 불굴의 의지가
전 인류의 절망도 막아 낼 수 있음을
기억하라고! 결코 잊지말라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눈동자 빛이 되어
우리들 가슴 속을 환히 비추어주고 있구나!
**조선일보 2008년 11월 29일 기사에서 인용된 글도 일부 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