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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
7일 |
연중 제32주일 |
루카 20,27-38 |
성가 28, 227 |
14일 |
연중 제33주일 |
루카 21,5-19 |
성가 66, 462 |
21일 |
그리스도 왕 대축일 |
루카 23,35-43 |
성가 76, 77 |
28일 |
대림 제1주일 |
마태 24,37-44 |
성가 88, 91 |
●● 말씀나눔
함께하는 복음묵상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
사진 : 서울대교구 사목국 이준성 신부
참 생명을 살아가는 신앙인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 루카 20,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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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는 유다인 수혼제(嫂婚制)에 관한 내용을 통해서 부활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유다인들은, 인간은 자기의 후손을 통해서 사후에도 실존을 계속해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그 부인이 시동생과 결혼하여 집안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유다인 수혼제의 정신이었습니다. 보수주의이면서 실리주의였던 사두가이들은 그러한 율법을 내세워 부활에 대한 사상을 평가 절하시키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 사상을 변론하시는 예수님을 궁지로 내몰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다운 실존은 육체적인 삶에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참 생명이란 ‘생물학적’ 실존을 단순히 연장시켜나가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참 생명이란 첫 번째 창조 때에 표명되었던 하느님과의 절대적인 통교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만남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한 우리는 이미 참 생명, 곧 부활한 생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결코 우리의 일상을 치장하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은 부활한 생명을 살아가는 현장입니다. 죽어서야 살 수 있는 것이 참 생명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참다운 친교를 이루는 순간 이미 우리는 지상에서 참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이란 부활한 참 생명을 살아가는 축복과 행복의 순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반문케 합니다.
■ 묵상: ‘부활’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지에 관해 묵상해 봅시다.
조급함과 인내심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 루카 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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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미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된 예수님과 적들 간의 격렬한 논쟁은 급기야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적 시스템 속에 사로잡혀 앞을 보지 못하는 유다인 공동체에 의해 자신이 버림받게 될 것임을 인지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러한 유다인들의 모습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패망이 다가오고 있음 또한 직감하고 계십니다. 성전 파괴라는 대 재앙을 예고하심으로써 그 사건이 곧 세상 종말의 표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케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당신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미래의 전망을 펼쳐 보이십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들을 희생 제물로 삼아 폭력으로 얼룩지게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께 대한 신뢰를 가지고 끈기 있게 평화를 지켜가려는 자들은 참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전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조급함과 인내심이라는 두 가지 태도에 관해 묵상하게 됩니다. 믿음의 조급함은 인간적 욕심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요, 인내심은 희망을 살아가려는 열정의 자세입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 조급해 질 것이요, 믿음의 긴 여정을 흔들림 없이 가고자 하면 인내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조급함과 인내심이 주는 삶의 결실이 무엇일지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 묵상: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당신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왕 11월 21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루카 23,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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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는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처참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랜 세월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모든 논쟁들을 단숨에 표출시킵니다.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야말로 그의 삶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십자가를 보며 쏟아낸 조롱과 비웃음 소리가 온 천지를 뒤흔들던 그 순간, 가련한 강도의 처절한 모습이 강하게 부각됩니다. 강도들 중 하나는 예수님처럼 이유야 어떻든 처참하게 죽어가야 할 자신의 운명을 맞이하면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바람을 쏟아냅니다. 혼돈과 혼란을 한 순간에 씻어내는 듯한 그의 외침은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내어놓음으로써 우리의 왕이 되신 예수님께서 정녕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권력과 힘의 논리가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논리가 하느님 통치의 근간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미움과 증오, 시기와 다툼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 모두가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한 이미 익숙해져 버린 세속적 기준과 논리를 갖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예수님의 통치 방식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사랑의 행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이 그분을 닮아가려는 노력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묵상: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왕이신지 깊이 성찰해 봅시다.
준비하는 자세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마태 24,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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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전례력에 따라 우리는 대림절부터 새로운 해를 시작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홍수의 재앙 속에서 하느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노아와 그 가족들을 지켜주셨는지 구약성경의 내용을 하나의 예로 제시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력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홍수 사건의 역사적 실재가 어떠하든 그리고 창세기에서 그 사건에 부여하고 있는 보편적 중요성이 무엇이든 그 사건은 이미지를 통해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친히 방문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물론 인간들은 오로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관심사만 염두에 두고 살고 있기에 홍수 사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들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 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야말로 주님을 받아들이려는 이들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일상이 주님을 맞아들이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물론 주님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로 여겨지고 받아들여질 때에 말입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낡은 삶의 모습을 바꾸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길 수 있는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일상은 곧 행복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묵상: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믿는 이로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약속이 있다면?
●● 문화산책 l 님 기다림의 찬가, 진리에 바치는 연가!
님 기다림의 찬가, 진리에 바치는 연가!
‘고백록’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고백록>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397-400년 사이에 저술한 것으로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었고, 1-10권까지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의 회심 여정, 어머니의 죽음과 주교가 되고 나서 하느님을 인식하기까지를 다룹니다. 11권은 성경 말씀을 파고들어 하느님을 만나려는 갈망으로 시간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며, 12-13권은 창세기 1장 1-3절을 토대로 창조에 대해 사색합니다.
이 책은 젊은 시절 방탕한 죄악의 생활을 참회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신 은총에 감사하는 저자의 내적 고백서인 동시에 ‘님 그림’의 서사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자신이 체험한 진리와 사랑에의 인생 편력을 하느님과의 대화 형식으로 서술합니다. 잘못에 대한 참회를 통해 의롭고 좋으신 하느님과 진정한 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고백록>을 쓸 당시 저자는 이미 주교였으나, 권위를 벗고 순수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주교라는 위치가 자신의 참모습을 미화할까 염려하며 하느님 앞에 진실하고자 하는 노력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하느님을 찾는 이들, 또 하느님은 몰라도 진리에 목말라하는 현대인의 갈증에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 최민순 옮김 / 640쪽 / 12,000원
구입문의: 02)944-0944 또는 바오로딸 인터넷서점(http://www.pauline.or.kr)
●● 도란도란 성경이야기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히브11,38)
트리나 폴러스라는 사람이 쓴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책은 호랑나비 애벌레가 호랑나비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어느 날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기둥들을 보게 됩니다. 그 기둥에 가까이 다가간 호랑나비 애벌레는 그 기둥들이 자신과 같은 나비 애벌레들로 이루어진 기둥임을 알게 됩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기둥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서로 밟고 밟히는 애벌레들을 따라 호랑나비 애벌레도 꼭대기를 향해 오르기 시작합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선 꼭대기에서 그 끝에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때 마침 그 기둥 주위를 자유로이 날고 있는 나비 한 마리를 보게 됩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다시 기둥 밑으로 내려와 자신도 고치를 짓고 나비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애벌레 기둥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남들이 올라가기에 무작정 따라 오릅니다. 그 꼭대기에는 허무하게 아무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짓밟으며 꼭대기에 오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애벌레 기둥을 오르지 말고, 고치를 짓고 나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에서는 엉뚱한 곳으로 올라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인의 길을 가르칩니다.
히브리서의 내용을 보면 이 편지는 꽤 오래 전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로서 지금은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처음 받아들였던 초기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신앙이 해이해졌으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깊이가 아직 얕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들은 복음 선포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복음과는 다른 교리에 현혹될 위험에 빠져있었으며 심지어 이들 중에는 복음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이미 모임에 나오지 않는 자들도 있었고 아예 그리스도교를 떠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박해의 위협까지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는 배교의 위험이 더욱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고자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여러 위인들이나 종교 제도와의 관계에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시는지 역설합니다.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그런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굳은 믿음을 가지고 반드시 믿고 따라야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극복하여 그리스도만을 따라감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 이 편지를 쓴 궁극적 목적이며 가르침입니다.
히브리서는 서간으로 분류되어 있으면서도 마지막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편지의 형식보다 오히려 설교의 형식을 취합니다. 간단히 히브리서를 살펴보면,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1,1-4,13)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둘째 부분(4,14-10,39)은 ‘대사제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며, 셋째 부분(11-13장)은 ‘믿음의 완성자인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각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밝힌 교리적인 요소로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권고적인 요소로 앞에서 말한 교리적인 내용을 실생활에 적용시킨 권고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과는 다른 가치관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고 있는 곳은 그리스도인들이 가고자 하는 곳과는 다른 곳입니다.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일등급 한우도 쓸모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은 가치가 없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히브11,38).”
히브리서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느님 나라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갈등과 유혹이 그리스도인들을 흔들리게 만들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희망이며 구원자이심을 거듭거듭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만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쁨과 만족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만남,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 (1691~1876항)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삶은 언제나 성부의 뜻을 따르며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여 사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14,5)”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그분께서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새로운 삶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성 대 레오)
제1부 인간의 소명 : 성령 안의 삶
제1장 인간의 존엄성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1701항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1,15)”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주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품위, 곧 그 존엄성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영혼과 지성과 의지를 지닌 인간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을 향하며, 영원한 행복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진리와 선을 탐구하고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완성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
1726항 참행복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최종 목적을 가르쳐준다. 그 목적은 하늘 나라, 하느님을 뵈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자녀가 됨,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참행복은 예수님 설교(산상설교)의 핵심이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이후 시작하신 약속을 반복하고 완성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그리스도인의 참삶의 특징을 나타내며, 그 행동의 궁극 목표 곧 영원한 행복을 밝혀 줍니다.
영원한 행복은 우리가 언젠가 충만하게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1,4)”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성삼위의 생명을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 안에서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이 행복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고 또 그곳으로 이끄는 은총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입니다. 이 약속된 행복은 우리에게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세상 재화에 대하여 확고한 도덕적 선택을 내리도록 촉구합니다.
인간의 자유
자유는 인간에게 자신이 행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1745항)
“한 처음에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집회15,14).”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참행복에 이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죄도 없겠지만,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자유는 진리와 선과 사랑을 지향하면 더욱 커지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인간을 죄의 종이 되게 합니다.
인간 행위의 도덕성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가 되려면 대상과 목적과 정황이 모두 선해야 한다.(1760항)
인간행위의 도덕성은 세 가지 요소, 대상과 의향과 정황으로 이루어집니다. 대상은 인간이 선택한 행위 그 자체를 말하고, 의향은 그 행위의 목적이며, 정황은 그 행위와 목적이 비롯된 여러 가지 상황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행위자가 선택한 행동(대상)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면서 그것 자체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고 중립적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요소인 행위자의 의향은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설정한 목적에로 나아가는 의지의 움직임이고, 수단을 목적에로 귀결시키는 힘이기 때문에 인간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는데 핵심적 요소가 됩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려고 도적질로 돈을 장만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면 그 행위는 악한 행위입니다. 선한 의향으로 행한 악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감정의 도덕성
도덕적 선이 완성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뿐만 자신의 ‘마음’으로도 선으로 나아갈 때이다.(1775항)
인간은 의식적인 행위로써 행복을 지향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고 때로는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 자체로는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고, 행위자가 선하다고 느끼는 것을 하게 되거나 악하다고 느낀 것을 행하지 않도록 행위자를 한쪽으로 몰아가는 정서적 움직임입니다. 의식적인 감정이라야 선악을 논할 수 있습니다. 즉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을 의지로써 지속시키는 경우라야 선한 감정이나 악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양심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이다.(1795항)
양심은 하느님께서 인간 인격 안에 심어주신 도덕적 판단력입니다. 선은 행하고 악은 피하라는 도덕의 기본 원칙은 하느님께서 정하시고 인간 양심에 새겨주신 것이므로, 이 법에 순응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길이고, 또 이 법에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습니다(사목헌장 16 참조).
양심은 말 그대로 선량한 마음,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양심은 잘못 형성될 수도 있으므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양심을 갈고 닦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양심의 형성에서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기도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양심을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며(마태7,12)”, 서로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1요한3,19)”습니다.
덕
덕(德)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몸에 밴 확고한 마음가짐이다. 덕은 인간이 선한 일을 하게 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하도록 한다.(1803항)
• 인간적인 덕
인간적인 덕은 사람이 노력하여 갖추게 되는 덕입니다. 지혜서에 나오는 네 가지 덕이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네 가지 덕은 현명, 정의, 용기, 절제로 ‘사추덕(四樞德)’이라고 부릅니다.
현명의 덕은 우리가 참된 것을 식별하고, 그것을 실행할 바른 방법을 선택하게 해줍니다.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게 하는 덕입니다. 용기의 덕은 온갖 어려움과 유혹 중에도 사람이 걸어야 할 바른 길을 걷게 합니다. 심지어 죽음의 공포까지도 극복하고 진리를 증언하게 합니다. 절제의 덕은 우리 마음을 잘 다스려 우리가 가진 것들, 곧 능력과 욕망과 재물과 시간 등을 바르게 사용하게 하며, 절도와 중용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이렇듯 윤리덕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더욱 고양되고 사람을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준비시킵니다.
• 신적인 덕
신적인 덕은 하느님께서 주셔야만 갖출 수 있는 덕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이며, 이 세 덕은 하느님을 향한 덕이라 하여 ‘향주덕(向主德)’이라 부릅니다. 향주덕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행동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하려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영혼에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덕은 하느님을 믿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믿을 뿐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희망의 덕은 우리의 온갖 소망이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게 합니다. 기도는 바로 이 희망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사랑의 덕은 모든 것 위에 하느님만을 사랑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4,19).”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삶은 성령의 선물인 지혜, 통찰, 의견, 굳셈, 지식, 공경, 경외심으로 지탱됩니다. 이 선물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기꺼이 따르는 항구한 마음가짐입니다.
죄
죄는 “영원한 법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위나 욕망이다”(성 아우구스티노). 죄는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다.(1871항)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 죄를 뉘우치는 일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우리 죄를 깨우쳐 주시고 양심의 진리와 용서에 대한 희망을 주십니다.
죄는 법과 양심을 어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그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크게 ‘죽을죄(대죄)’와 ‘용서받을 죄(소죄)’로 구분됩니다. 대죄는 하느님을 저버릴 만큼 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자유로이 짓는 죄이며,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죽을죄는 우리 안에서 사랑을 파괴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뉘우침이 없다면 죽을죄는 영원한 죽음을 가져옵니다. 소죄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거두어 가지는 않습니다. 선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으며, 영원한 죽음의 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죄는 계속해서 죄로 이끌며,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여 악한 습관을 형성하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성향들을 죄종(罪宗)이라 하는데, 이는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641~695쪽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가정기도 l 예수님에게 없는 것
가정에서 온 가족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진행합니다.
1. 시작 기도
│진행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 중의 한분이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생활 말씀
│진행자│ 한 구절씩 돌아가면서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 요한의 첫째 서간 4장 16절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랑」 안에 머무르십니다.
│진행자│ 이번에는 다함께 소리 내어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다 읽은 후) 약 2분 정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묵상을 끝내고 다음의 나눔을 진행합니다.)
♠ 나눔
■성경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족 안에 머무르시도록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진행자│ 다음의 내용을 다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에게 없는 것
예수님은 손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발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시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입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이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 한 신부님의 쪽지에서-
♠ 나눔
■ 우리의 가정 안에서 예수님의 손이 되어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우리의 가정 안에서 예수님의 발이 되어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우리의 가정 안에서 예수님의 입이 되어 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4. 함께 실천합시다
│진행자│다음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나에게는 언제든 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언제든 가족에게 달려갈 수 있는 발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언제든 가족을 위해 칭찬과 격려를 전할 수 있는 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족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이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5. 가족 회의 시간
│진행자│ 가족 회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사항이나 논의가 필요한 일들, 가족 친지들의 생일, 축일 소식이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족에 바라는 점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자녀에 대한 훈계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6. 가족 평화의 인사
│진행자│지금부터 평화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해줍니다.)
7. 마침 기도
│진행자│다함께 손을 잡고 주모경을 바치겠습니다.
●● 그리스도교의 상징 l 아베 마리아(Ave Maria)
성모님을 향한 공경은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확산되었습니다. 나자렛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에서는 3세기경 것으로 추정되는 기둥이 발굴되었는데, 이 기둥에는 ‘마리아님 찬미 받으소서’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Xe Maria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베 마리아(Ave Maria)의 상징은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다음의 축하 인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1,28).” 라틴어로 이 말은 “Ave Maria, Gratia Plena.”라고 시작합니다. 교회의 전통은 이 구절을 시작으로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인 ‘아베 마리아(Ave Maria, 성모송)’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도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앞의 부분은 가브리엘 천사와 엘리사벳의 인사 그리고 뒤의 부분은 교회의 청원으로 이루어집니다.
천사의 인사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 곧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분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구원 역사에서 그분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분, 곧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당신의 태중에서 낳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교회의 청원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곧 교회의 어머니로 기억합니다. 항상 그분은 아들 곁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려고 준비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성모로서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을 받으신다. 사실 오랜 옛적부터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으시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교회헌장 66).
●● 성경 속 교리 단상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다
1. 시작 기도
(진행자) 한분이 시작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성경 읽기
(진행자) 돌아가면서 한 구절씩 성경을 읽겠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로 물이 되돌아오게 하여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날이 새자 물이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도망치던 이집트인들이 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의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탈출14,26-28). 모세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에서 떠나게 하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나아갔다.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 그들은 물을 찾지 못하였다.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탈출15,22-25).
3. 묵상하기
(진행자) 성경 말씀을 읽고 잠시 묵상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질문을 서로 나누어 보세요.
■ ‘파스카의 어린 양’은 무슨 뜻입니까?
■ 구약의 하느님 백성과 신약의 하느님 백성과의 공통점을 찾아보십시오.
4. 함께 읽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파라오에게 전달하였지만, 파라오는 자기에게 가혹한 벌이 가해진 후에야 이스라엘을 떠나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인의 맏배를 죽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르게 하여 그 표지가 있는 집은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이집트 탈출에 관한 전승들은 기원전 30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성경기자에게 중요했던 것은 탈출기 사건동안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이해했던 대로 전승들을 이용하여 그 시대의 하느님 백성들에게 종교적 가치를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행하셨던 업적에 대해 감사드리고, 파스카를 충실히 지켜야 한다고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파스카의 어린 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의 거룩한 백성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의 피로써 보호되었습니다. 미사 중에 바쳐지는 어린 양은 구약의 파스카 어린 양에 의해서 예시된 것입니다.
5. 마침 기도
(진행자) 마침 기도로 ‘망덕송’을 다함께 바칩시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참고문헌 : 성서와 교리교육(광주가톨릭대학전망편집부, 1986)
●● 노년의 향기 l 노인에 대한 이해
사랑의 언어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을 통하여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인 “사랑해”라는 말이 영어의 “아이 러브 유”, 독일어의 “이히 리베 디히”, 프랑스어의 “쥬 뗌므”라는 것쯤은 해당 외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기본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사랑과 사랑의 말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해”라는 말 이외에도 다섯 가지나 되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니 무척 흥미로운 일 아닙니까?
그 글에서 소개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바로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신체적 접촉’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사랑’이 마치 그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라는 말을 주고받고, 말로도 모자라 휴대폰 문자로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노년의 삶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노년을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배우자를 비롯하여 자녀, 형제, 일가친척,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노년의 동반자입니다.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연인에게만이 아니라 노년이라는 여정을 함께 할 이들 모두에게도 사랑의 언어로 마음을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인정해주는 말
상대가 누구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말을 한다면, 노년의 자신도 그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 함께 하는 시간
혹 젊은 시절에 바빠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면 노년에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시간을 나누어 그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꼭 같은 장소일 필요는 없습니다.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사용하면 멀리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대화가 가능한 요즘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함께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듯 느끼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 아닐까요? 물론 늘 옆에서 함께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 선물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지만 크고 값진 선물만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산에서 꺾어다 준 꽃나무가지 하나, 먹기 좋게 떼어 손바닥에 살포시 올려 주는 옥수수 알갱이, 좋아하는 반찬을 앞으로 밀어 주는 손길,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안타깝고 송구스런 마음으로 하는 자식의 전화에 “괜찮다”라고 다독여주는 말 한 마디, 쭈글쭈글한 얼굴도 마냥 예쁘게 보는 그윽한 눈길... 제가 만나는 노인들의 추억 속의 선물은 너무나도 평범한 것들이었습니다.
* 봉사
노년에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노년층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그야말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봉사는 꼭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가령 늘 차려주는 밥상만 받았던 남편이라면 이제 늙은 아내를 위해 서툴지만 정성스런 밥상을 차려보는 것, 혹은 아내가 차린 밥상에 대한 감사함으로 설거지를 하는 것도 즐거운 봉사일 것입니다. 봉사는 그렇게 작고 소박한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습니다.
* 신체적 접촉
노년에는 촉각이 조금 둔화됩니다. 좀 과장하자면 젊었을 때는 손가락만 살짝 스치듯 대어도 마음이 설레었지만, 노년에는 조금 세게 잡아야 ‘아! 손을 잡았구나.’하고 느끼게 됩니다. 사랑의 언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려면, 바로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보세요. 잡은 손 가득 사랑하는 마음이 마음으로 전달됨을 느낄 것입니다. 노년에도 이렇게 사랑을 하세요.
노인사목연구위원 이경희(세라피나)
■나눔: 주변의 사람들에게 위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실천해 봅시다.
●● 노년의 향기 l 노년 준비 : 시니어 경제
앞으로 나의 재정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올해 2010년은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의 은퇴와 퇴직의 원년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퇴직자가 매년 10만 명 이상 씩 쏟아져 나오는 셈입니다. 이들이 앞으로 30~40년 이상 남은 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는 당사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친척, 이웃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클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리 모두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의 현 위치에서 앞으로 남은 기대여명을 정확히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 55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30세로, 평균 85세까지 산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보통 사람들은 건강관리를 잘하고 병에 대해 조기검진 및 예방하는 경우에 최소한 90세는 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새로운 장수 나이(90세 혹은 100세 이상)까지 충분히 재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본인의 자금설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남성의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노년에 10여년을 홀로 살게 될 여성 배우자의 노후 재정 설계까지 더욱 섬세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특히 노후에 건강하지 못한 기간이 보통 10년 정도라고 하기 때문에 의료비, 요양시설 이용비, 간병비 등에 대한 재정 설계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각자 본인의 기대여명과 건강수명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부터 노년의 재정설계는 시작되어야 합니다.
은퇴 후 노년기에서 경제적인 부분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이지만,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자녀의 교육비, 양육비, 결혼비용으로 인해 노년기 자금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노년기에 맞을 수 있는 위험요소(Risk)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러한 위험요소를 감안하여 안전한 노년기 자산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어떤 것이 필요하고 고려해야 하는지, 앞으로 함께 바람직한 자산설계를 해 보고자 합니다.
노년기에 맞을 주요 위험으로는 오래 사는 위험, 배우자 노후생활 불안정 위험, 노후 의료비 증가 위험, 장기간병 위험, 물가상승 위험, 투자 손실 위험, 가족부양 위험, 상속 위험 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은퇴 이후 황혼이혼에 따른 위험, 정부공공정책 변경 위험, 고용기회상실 위험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위험들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재정설계를 함께 고민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노인사목연구위원 한주형(마르첼리노)
●● 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517번
내가 절망 속에
11월 위령성월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더욱 많이 기도하고, 우리 자신 또한 언젠가는 맞게 될 죽음을 묵상하며 두 손 모으는 달이 돌아 왔습니다. 위령성월을 맞이하며 함께 나누기에 가장 적합한 성가 중의 하나가 바로 517번 ‘내가 절망 속에’가 아닐까 합니다. 이 곡은 성가책에 ‘참회’로 분류되어 있어 흔히 사순시기에 많이 부르게 되는 성가이지만 사실 장례미사에 더욱 적합한 성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사가 연도 중에 항상 기도하는 시편 130편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 성경에는 129편- 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라고 옛 조상님 때부터 불린 이 구성진 가락은 연도를 바쳐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결코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 연도의 가사가 오늘 소개해 드릴 성가 517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성가의 선율은 보르트니안스키(Dimitri S. Bortniansky)가 1825년에 작곡한 것으로 ‘St. Petersburg’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1751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 교회 성가대에서 음악을 접하기 시작했고, 피터스버그와 이태리에서 음악을 공부하여 피터스버그의 궁정 합창단 지휘자, 러시아 황제의 개인 성당의 음악감독 등을 지냈습니다. 그는 오페라를 비롯한 세속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곡의 전례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성가 517번은 그 중 하나로 당시 독일군 의장대의 사열을 마무리 짓는 전통 선율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가책에 이 선율과 함께 실린 가사는 사실 종교 개혁가 루터(Martin Luther)가 1523년에 시편 130편을 바탕으로 하여 독일어로 만든 것이 사용되었습니다. 애초에 가톨릭 사제였으나 종교 개혁을 일으키며 개신교 창시자가 된 그는 모든 신자가 전례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에 역점을 두었는데, 하나는 성경을 신자 대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모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미사 때 합창단이나 사제와 같은 특정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대중 찬미가의 양산이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음악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알려지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음악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음악은 또한 마귀를 몰아 내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음악은 사람의 모든 분노, 음란, 교만, 그리고 모든 악을 잊게 해 준다. 나는 음악을 신학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며 무한히 아낀다.” 루터는 시편 130편을 바탕으로 쓴 이 가사를 바탕으로 두 개의 선율을 붙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후에 이 선율들이 바흐(J. S. Bach)의 작품들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가사는 본래 5절까지 있었으나 개신교 찬송가집에 3절을 뺀 나머지 절들로 4절까지 번역되어 수록되었고, 이것이 우리 가톨릭 성가집으로 넘어 오게 되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서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로 시작되는 시편 130편은 ‘비탄의 노래’ 혹은 ‘애가(哀歌, Lament)’라고도 불립니다. 본래 이 시편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깊은 곳’이란, 단순히 깊은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었던 곳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는 ‘깊은 구렁(연도에서)’이나 ‘깊은 곳(찬송가에서)’ 혹은 ‘깊은 절망(517번 성가 가사에서)’이라고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그 본래 의미는 ‘죽음의 그늘진 곳’과 같이 죽음과 관련된 장소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편은 위령 성무일도 저녁기도에서도 사용될 뿐 아니라 오늘날의 연도에서도 기도문으로 사용됩니다. 아울러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인 존 루터(John Rutter)는 자신의 연주용 장례미사곡인 ‘레퀴엠(Requiem)’에 이 시편 130편을 가사로 한 곡을 덧붙이고 있기도 합니다.
이 시편에서 저자는 하느님께 자신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탄원하고 있으며, 그 분의 심판 앞에서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에 마치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주님께서 그 자비로써 자신과 함께 해 주시는 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우리의 모든 희망과 의미가 주님께 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위령성월에 본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성가를 많이 부른다면 좋겠습니다.
이상철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야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윤곽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현상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는 타종교 전통들과의 대화를 요청받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화에 임하기에 앞서서 혹은 대화를 진행해 나가는 중에 올바른 그리스도 신앙관과 구원관 정립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오늘의 시대적 지평 속에서, 사도들에게 전수되고 위탁된 계시 진리, 즉 거룩한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을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할 것인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입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1962-1965년에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그 근본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의 교서 『새 천년기』 57항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제 막 시작된 이 세기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을 우리는 공의회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체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시각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의회 전체의 기본 준거로서의 그리스도 중심적 전망 속에서도 삼위일체론적인 차원이 등한시되지는 않았고, 그와 동시에 중요한 성령론적 전망들도 함께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 추기경이 지적하듯이, 공의회 문헌들에 나타나 있는 총 258회에 달하는 성령에 관한 모든 언급들을 일일이 분석하기란 쉽지도 않고 별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추기경이 언급하는 것처럼, 아마도 중요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한 성찰과 응답의 차원에서 성령론이 역동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의 인식, 그리고 그러한 발전의 단초가 되었던 근거 문헌들의 발견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헌장(constitutio)들, 즉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을 매우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여러 교령들과 선언들 속에 나타난 의미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선교 교령』(Ad Gentes Divinitus) 4항에 나오는 다음의 텍스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는 교회와 세상 간의 관계를 숙고하면서 ‘안으로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으로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공의회의 전체적 전망을 성령론적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는 어떤 의미에서, 성령론적 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체를 총괄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상징적인 대목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에게서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께서는 구원 활동을 내적으로 수행하시며 교회가 스스로 확장되도록 부추기신다.[…]오순절에 성령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영원히 머무시려고 그들 위에 내려오셨으며, 그날 교회는 많은 사람 앞에 공공연히 나타나, 설교를 통하여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성령께서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온 교회가 “친교와 봉사 안에서 일치하게 하시고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을 주시어”(『교회헌장』, 4항 참조), 교회 제도에 마치 그 영혼처럼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며 바로 그리스도를 재촉하신 그 선교 정신을 부어 주신다.
이 대목에는 Aggiornamento(개방, 시대 적응, 현대화, 현재화)라는 기본 정신에서 출발하여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관하여 고민하였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력이 성령론적 차원에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여 바라보던, 그래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명제로 대변되던 종래의 배타적인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의 시각을 복음의 빛에 입각하여 재해석하고자 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시도였고 공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을 더 이상 분리시키는 대신에, ‘안으로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으로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새로운 견지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통찰은 『교회 헌장』에서 ‘친교(communio, koinonia)’ 개념을, 『사목 헌장』에서는 ‘봉사(diakonia)’ 개념을 각기 천명하면서 구체화되어 드러나게 됩니다.
『선교 교령』 4항의 위 텍스트는 『교회 헌장』과 『사목 헌장』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노선을 성령론적 측면에서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창조 때부터 활동하시며 이 세상 안에 충만하여 계시는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교회에 주어져 교회 내부에서(Ecclesia ad intra) 그 구원 활동을 수행하시면서,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세상에 대한 개방과 대화와 선교를 통해서 그 외연을 넓혀감에로(Ecclesia ad extra) 인도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생명대학원 교수)
※주요 참고문헌: 박준양,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나타난 성령론적 전망, 가톨릭 신학과 사상 56(2006/여름),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33-137쪽에서 발췌, 요약한 것임.
●● 기획특집 l 대사를 받는 다양한 방법
교회는 교회력으로 연말에 해당하는 11월을,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달로 기념하면서 <위령 성월>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여 세상을 떠난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러한 관습은 클뤼니 수도원(프랑스에 있는 베네딕토회 대수도원)의 영향으로 998년 이후 보편화되었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떠난 부모, 친지, 특히 연옥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을 바치도록 권고 받습니다. 특히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면대사(全面大赦)’2)를 날마다 한 번씩 받을 수 있는 은총의 시기를 누립니다.
이 밖에도 교회에는 대사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분대사(部分大赦)’3)는 첫째, 그리스도 신자로서 자기 직무를 수행하며 생활의 노고를 견디는 가운데 하느님께 겸허한 신뢰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또 그러한 정신으로 경건한 다른 기도를 덧붙이는 사람, 둘째, 그리스도 신자로서 신앙의 정신에 인도되어, 고통 받는 형제들의 필요에 봉사하며 자신이 직접 또는 자기 재산으로 자비의 마음을 베푸는 사람,
셋째, 그리스도 신자로서 정당한 방법으로 기꺼이 참회의 정신에서 자발적으로 절제를 하는 사람,
넷째, 그리스도 신자로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공공연히 신앙 증언을 하는 사람에게 수여됩니다.
이외에도 그리스도 신자는 연중 모든 날에 다음의 신앙 행위 가운데에서 어느 한 가지만 실천하여도 전면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① 적어도 반 시간 동안 성체 조배, ② 십자가의 길 기도, ③ 성당이나 경당에서, 또는 가정이나 수도 공동체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른 여러 좋은 목적을 위하여 모이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모임에서 묵주기도나 성모 찬미가(Akathistos)를 바치기, ④ 적어도 반 시간 동안 성경을 경건하게 읽거나 듣기. 그리고 다음과 같은 특별한 신앙행위를 수행하면 전면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① 백성 앞에서 정해진 날 첫 미사를 거행하는 새 사제에게 ② 그 첫 미사에 경건히 참여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③ 자신의 사제 수품 25주년, 50주년, 60주년, 70주년을 지내며, 하느님 앞에서 자기 성소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는 사제들에게 ④ 자신의 주교 수품 25주년, 40주년, 50주년에 하느님 앞에서 자기 지위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는 주교들에게 ⑤ 그러한 기념 미사에 경건히 참여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전면대사가 주어집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대사의 은총은 우리들에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면대사를 얻으려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전면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세례 받은 그리스도 신자로서, 파문되지 않았어야 하고, 적어도 규정된 선행이 끝나는 때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며, 대사를 얻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하고, 아무리 작은 죄라도 어떻게든 죄로 기우는 마음을 멀리하고, 대사를 얻는 데 필요한 규정을 수행하며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곧, 고해성사, 영성체, 교황의 뜻에 따른 기도입니다.
단 한 번의 고해성사로 더 많은 전면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은총 상태에 있다면 매번 고해성사를 보지 않아도 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한 번의 영성체와 교황의 뜻에 따른 한 번의 기도로는 한 번의 전면대사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조건은 정해진 규정을 수행하기 며칠 전이나 후에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성체와 교황의 뜻에 따른 기도는 규정을 수행하는 날에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사를 받고자 하는 충만한 의향이 없거나 또는 요청된 일과 세 가지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부분대사만 수여될 것입니다. 교황의 뜻에 따른 기도는 그 뜻에 따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침으로써 충분히 채우게 됩니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저마다 각자의 신심과 헌신에 따라 다른 어떠한 기도든 바칠 수 있습니다.
1) 대사란 보속(補贖)을 면(免)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는 용서받았어도 그 죄에 따른 책임, 즉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잠벌은 보속을 통하여 치르게 되는데, 현세에서 다하지 못할 경우, 연옥에서 치러야 합니다. 대사는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은사(恩賜)를 말합니다. 살아있는 이는 주어진 보속을 수행하거나 미사, 영성체, 기도, 극기, 희생 등으로 스스로 대사를 받을 수 있으나, 죽은 후 연옥에서는 스스로 보속을 할 수 없습니다. 이에 살아있는 이들이 교회가 정한 규정에 따라 신앙행위를 행함으로써 죽은 이들을 위하여 대사를 청하고 예수님과 성인들의 공로로 잠벌을 면제받을 수 있게 됩니다.
2) 잠벌의 전부를 없애 주는 은사, 일명 전대사(全大赦)
3) 잠벌의 일부를 없애 주는 은사, 일명 한대사(限大赦)
●● 사목국 교육안내
정진석 추기경의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 독후감 공모
● 응모자격
(남성/여성)
● 응모형식
A4용지 3매 분량(200자 원고지 15매 내외)
● 접수마감
2010년 11월 21일(그리스도왕 대축일)
● 발표 및 공고
2010년 11월 28일(대림 제1주일)
● 시상내역
대상(1명) - 상장 및 지원금 50만원
최우수상(1명) - 상장 및 지원금 30만원
우수상(3명) - 상장 및 지원금 20만원
장려상(6명) - 상장 및 지원금 10만원
구역(반) 활성화 우수 사례공모 … 12월 19일까지
● 응모자격 서울대교구 본당 구역장·반장 (남성/여성, 경력 2년 이상) ● 응모형식 A4용지 5매 분량(200자 원고지 25매 내외) ● 접수마감 2010년 12월 19일(대림 제4주일) |
● 발표 및 공고 2010년 12월 25일(예수 성탄 대축일) ● 시상내역 대상(남녀 각1명)-상장 및 지원금 50만원 최우수상(남녀각1명)-상장및지원금 30만원 우수상(6명) - 상장 및 지원금 20만원 장려상(20명) : 상장 및 지원금 10만원 |
보내실 곳 : 100-809 서울시 중구 명동2가 1-5 교구청 별관 2층 사목국 일반교육부 또는 guban@seoul.catholic.or.kr (※연락처 기재 바람) 문의 : 727-2062~3(사목국 일반교육부) ※ 응모된 독후감은 반환되지 않으며, 수상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사목국에 귀속됩니다. |
사목국 일반교육부
■ 11월 구역(반)장 월례연수
주제 : 그리스도인의 행복 영성
11월 |
오전 10:30 |
오후 2:00 |
11일(목) |
서초동(10:00) |
|
16일(화) |
고척동 |
연희동 |
17일(수) |
|
흑석동, (중앙동) |
18일(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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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
19일(금) |
창 동 |
오금동(2:30) |
22일(월) |
(불광동) |
|
23일(화) |
이문동 |
명일동 |
24일(수) |
구의동 |
역삼동 |
25일(목) |
대방동 |
등촌1동 |
26일(금) |
목 동 |
|
※ 명동(가톨릭회관)에서는 월례연수가 없습니다.
문 의 : 727-2062~3
■ 본당 수도자 연수
주 제 : 중년기와 자기리더십 ②
일 시: 11월 9일(화) 14:00~17:00
장 소 : 가톨릭회관 1층 강당
교육비: 없음 (접수마감 11/2)
문 의 : 727-2062~3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 ‘함께하는 여정’ 교육 3단계
대 상: 함께하는 여정 1,2,3단계 수료자
일시 및 내용 :
① 하느님 체험과 공동체 만들기 11월 27일(토) 10:00~16:00 가톨릭회관 7층 강당
② 신·삼위일체론 12월 4일(토) 10:00~16:00 가톨릭회관 1층 강당
교육비 : 35,000원 (접수마감 11/19)
문 의 : 727-2065~6
사목국 기획실
■ 2011년 본당 사목계획 수립을 위한 실무자 기획연수
대 상 : 본당 사목협의회 기획분과장및 총무 (사목계획서 작성 실무자)
일 시 : 11월 13일(토) 13:00~18: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강당
교육비 : 교재포함 10,000원 (접수마감 11/5)
문 의 : 727-2132
사목국 노인사목부
■ 노인사목후원회 미사 및 시니어 문화마당
대 상 : 노인사목후원회 회원 및 모든 시니어
내 용 : 영화 <굿바이> 상영
일 정 : 11월 2일(화) 10:30, 종로성당
문 의 : 727-2121 (노인사목부)
■ 제3회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졸업작품 발표회
대 상 : 연합회소속 본당 노인대학 학생및봉사자
일 시 : 11월 17일(수) 19:00
장 소 : 명동성당 꼬스트 홀
문 의 : 727-2118 (노인사목부)
■ 노인대학 봉사자 특별교육
대 상 : 연합회소속 본당 노인대학 학생및봉사자일 시 : 11월 9일(화) 10:00~16:00
장 소 : 우리은행 본점 4층 대강당
교육비 : 10,000원
문 의 : 765-8456 (노인대학연합회)
■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3기)
대상 : 55세 이상 서울시민 (장소당 60명)
내용 : 계획적이고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기 위한 노년준비교육
일시 : 11월 9일-12월 28일(매주 화, 목) 15:00~17:00
장소 : 5지구(이문동),8지구(자양동),10지구(미정),12지구(반포),13관악지구(중앙동)
교육비 : 80,000원 (본인부담 10,000원, 서울시지원 70,000원)
문의 : 765-8458 (사단법인 서울시니어아카데미)
사목국 가정사목부
■ 가정성화 생명수호 월례특강 및 미사
주 제 : 그 숭고한 시간을 위한 준비
일 시 : 11월 2일(화) 13:30~16:30
장 소 : 가톨릭회관 2층 강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 낙태치유 프로그램 및 월례미사
대 상 : 낙태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내 용 : 생명의 소중함, 화해 및 치유 프로그램, 미사
일 시 : 11월 9일(화) 13:30~16:30
장 소 : 서울대교구청 별관 6층 소성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 81차 약혼자주말
대 상 : 예비부부, 1년 미만 신혼부부
내 용 :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프로그램
일 시 : 11월 19일(금) 19:00 ~ 21일(일) 18:00, 2박 3일
장 소 : 신길동 살레시오 회관
수강료 : 240,000원/커플
문 의 : 727-2069 (www.ceekorea.or.kr)
●● 문화산책 l 마음을 보았습니다
진솔한 고백 속에 담긴 따뜻한 사랑 이야기
마음을 보았습니다
“교도소에 가서 수인들을 보면 긴장이 사라지고, 욕심을 버리게 되고, 무언가를 주고 싶어진다. 그간 세상사에 찌들어 다툼과 갈등 속에 살면서 실었던 이기심과 모든 짐을 내려놓고 무장해제 하게 된다. 이들과 대화하면 불필요한 싸움을 포기하게 되고, 갖고 있던 악한 감정이 부끄럽게 여겨지며, 내 안의 미움이 봄눈 녹듯 녹아 버리게 된다.” 이 책은 청주 교구에서 교정 사목을 하고 있는 이길두 신부가 쓴 수필집입니다. 어린 시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남은 인생은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저자의 진솔한 고백이 담겨 있는 이 책은 특히 8년여 동안 수인들과 봉사자들을 만나면서 체험한 이야기를 잔잔한 감동을 담아 전해 줍니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수인이 되어 살아가지만 저자는 그들과 지내면서 오히려 자신을 더 되돌아보게 되고 미움이 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 죄를 극복하는 길은 하느님 그분 안에서만 가능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에 처한 이들과 함께하는 저자의 따뜻한 사랑이 잘 녹아 있는 이 책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구입 문의:070-8233-8221 또는 가톨릭출판사 인터넷 서점(www.catholicbook.kr)
●● 성화에 담긴 영성
<라자로의 부활>은 제라르 드 생 장이라는 15세기 플랑드르 작가가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주로 작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마치 인형처럼 보이는 달걀 모양의 머리를 한 인물 묘사가 특징적입니다.
<라자로의 부활>은 나무판에 템페라로 그린 1480년대 작품입니다. 템페라화는 안료를 달걀노른자에 개어서 그린 회화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프레스코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색감을 찾기는 힘듭니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색조로, 예수님과 다시 살아난 라자로의 모습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은 <라자로의 부활> 중에서 중심부분만 확대해 놓은 세부도입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작품 중앙에 서서 라자로에게 손짓 하시며 “라자로야, 나오너라.”하고 외치시는 예수님. 몸과 얼굴을 싸고 있던 천을 헤치고 일어나 앉아 예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라자로. 이 놀라운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상체를 숙여 라자로에게 바짝 다가가고 있는 자와, 기적의 순간을 대하며 숙연한 자세로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죽은 이를 다시 살려내신 예수님의 기적을 대했을 때의 놀라움, 더 나아가 경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자로의 부활>에는 작품 전경에 웅장한 고전 건축물도 없고 원근법을 암시하는 바닥이나 천장의 장식도 없습니다. 전경과 후경에 그려진 인물의 크기도, 라자로가 누워있던 관의 표현도 원근법이나 단축법이 정확히 맞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다소 어색한 표현이 오히려 이 작품이 전하는 삶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꾸밈없이 표현하여 한층 더 마음에 와 닿게 합니다.
위령성월 기도문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 당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이다. |
† 기도합시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주님을 섬기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이 바라던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