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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 화진포., 이승만 김일성 별장
윤영한 추천 0 조회 18 09.01.07 03: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전통정원 - 화진포., 이승만 김일성 별장

 

간성읍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거진을 지나 통일전망대 방향으로

15분 정도 달리다 만나게 되는 화진포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일성의 별장이

있어 더 유명한.,화진포.         
 


 

 

1990년 11월 24일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매년 이곳을 찾는 피서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며,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자연환경의 보존된 깨끗한 해수욕장.

 

화진포해수욕장은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안전하다

드라마 촬영지로 '가을동화'에서 준서가 죽어 가는

은서를 업고 해변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



 

 

 

바닷가 언덕위 김일성 별장은 화진포 순백의 모래밭이며,
짙푸른 동해의 파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좋은 집이다.



 

 

 

 

 

호수 안쪽의 이승만별장은 울창한 해송 사이로 호수의 풍광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으며,
 얕은 수심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특징인 화진포해수욕장은 조개껍질이 부서져 만들어진
고운 모래밭이 물놀이에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1875~1965

우남 이승만박사 상



 


 

 

 

 

 

 

 

 

 

 

 

 

 

 

 

1900년 6.1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생.,프란체스카 도너

  

중고시절 수학성적은 ‘수학의 진주’라는 애칭을 얻었고 

상업 전문학교 졸업후 영국 스코틀랜드에 3년간 영어 연수

 

영어 통역사자격과 타자-속기자 자격을 취득하였고 

독어와 불어를 구사하고 철물 무역과 청량음료 공장을 운영한 

아버지 사업의 후계자로 실무 학식 교양을 갖춘 부잣집 셋째 딸.

 

1933년 2월 어머니와 함께 파리 경유 스위스 여행길에 묵은 뤼씨 호텔

당시 국제 연맹 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 사람들로 호텔식당은 만원

프란체스카 모녀가 앉은 4인용 식탁 빈자리로 이승만 박사가 합석했다.

 

이 박사는 이틀 동안 국제연맹이 다루는 일본의 만주침략 건과 관련

만주의 한국동포들이 일제의 학정에 시달리는 사연을 홍보하고 

극동의 평화를 위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러 미국서 날라와 

국제연맹 방송, 각국 대표와 신문기자들과 면담 중이었다.

 

프란체스카가 다음날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승만의 전면 인터뷰 기사와 사진을 보고 스크랩

호텔 안내에 전하자 이 박사의 답례 차대접으로 재회

 

프란체스카 어머니는 여행을 중단하고 서둘러 귀가

프란체스카는 제네바의 이승만과 서신 연락을 계속. 

7월 소련 입국비자 받으러 비엔나에 온 이승만과 재회

 

프란체스카는 일손과 돈이 한없이 필요한 독립투사를 위해 

자기의 시간과 능력을 제공하였고 마침내 1년 3개월을 지나 

두 사람은 34살, 59살로 1934년에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반지도 여자가 준비할 만큼 가난한 독립 운동가의 아내

  

웃음으로 반짝이는 눈, 남편에 대한 사랑의 충만, 

미모와 사교로 워싱턴 저명인사 부인들과도 교제

 

가난한 독립운동가의 생활은 내핍과 검약뿐이었고  

독립운동을 위해 넓은 미국 땅을 이동할 때 운전 담당

무릎 담요는 온기없는 차에서 남편을 기다릴때 필수품

 

1945년 해방후 귀국해 처음에는 돈암장에 거주하고 

다음해 마포장으로 2개월간 이사후 10월 이화장에 정착

해방 당시 훈련된 비서가 없어., 남편의 영문 구술에 따라 

외교 문서를 타자기로 쳐서 정리하느라 늘 함께 붙어 다녔다.

 

미군정으로부터 이양받는 타이핑은 그녀가 도맡았다. 

경무대 안주인이 되며 손님초대할 때 부부 동반을 원칙

기생이 노래와 춤추고 첩이 동행하는 연회 풍습을 바꿨다. 

 

축첩 금지 법안을 임시국회 첫 회기에 반영시키려 하였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내핍과 검약으로 경무대 안살림을 꾸렸고

나이가 많은 대통령의 건강과 식사에 제일 많이 신경을 썼다. 

 

일본 총독과 미군정 하지 준장이 살았던 경무대를 수리하지 않고

목욕통이 짧아서 다리를 펼수 있도록 구멍을 더 파는 것으로 만족

 

미장원에 가지않고 블라우스는 천을 끊어서 만들어 입고 

옷, 양말은 기워 입었고 내의와 양말은 직접 손으로 세탁

6.25전쟁 초기 영문편지로 세계 각지에 구호 손길을 요청

 

하루는 하와이와 미주 찬자들에게 빈에 있는 친정가족에게 

부상병들을 위한 담요와 구호품을 보내달라고 쓴 편지가 37통

그녀 친정에서 구호품을 보내왔고 하와이 미주에서 구호품 도착

 

1960년 대통령 하야 후 하와이 망명 병상에서 헌신적인 간호

1965년 7월 19일 0시 35분 남편이 임종하자 의식을 잃은 그녀.

망명지에서 실의에 빠져 병든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느라 탈진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국제결혼으로 

32년 같이 보낸 사랑하는 남편 이승만

 

망명지 하와이에서 한스럽게 떠나보내고 

귀국 이화장에서 남은 여생 22년을 보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국립묘지 공작봉을 매주 찾으며 

날마다 남북통일과 집없는 사람을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

쪽진 머리와 한복을 입고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여인

 

1992년 3월 19일 이화장에서 영면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 곁에 묻혔다.



 

 

 

 이승만 대통령의 전용 낚시터



 

생전에 애용하던 낙시도구



 

 

낚시대



 

 

  

화진포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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